“그렇군요. 하긴, 탑의 몬스터들은 바깥의 몬스터를 모방했다고 했으니 저 자이언트 웜의 모습은 명백히 이상하네요. …그리고 한나 양도요. 마법사라서 무언가를 느끼고 있는 걸까요?”
갑작스럽게 몰려든 이상 성욕 외국인들 덕분에 명백히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 한세아. 시청자도 아니고 동료에게, 그것도 상냥한 마망 동료에게 이런 평가를 듣게 된 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며 나와 그레이스, 아이린은 다시 한번 골렘이 잠들어 있었던 격납고로 향했다. 이 텅 비어있는 공간에서 가장 수상한 것은 망가진 기사형 골렘이었으니까.
무언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라고 한세아는 생각하고 있겠지. 몰려든 다양한 외국인 때문에 방송이 버벅거릴 지경이고, 채팅창에는 번역기조차 돌리지 않은 다양한 외국어들이 가득 찬 상태. 수만 명의 사람이 갑자기 추가되어 십만 명이 넘는 생방송 시청자들을 어르고 달래느라 바쁘겠지.
고 홈 양키를 외치는 한국인, 귀신같이 욕설은 알아듣는 서양인, 와패니즘에 취한 양덕, 외국어 번역기를 돌리고 욕설을 박는 악질들과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한 마디씩 던지는 시청자들까지.
십만 명이 넘는 시청자 중 절반만 난동을 부려도 오만 명의 폭도를 눈앞에 둔 상황이니 백만 단위의 구독자와 만 단위의 시청자를 능숙히 다루던 한세아도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거, 망가지긴 했어도 뭔가 수리를 할 수 있어 보이지 않아?”
“이 골렘은 검이 아니라 활을 들고 있네요?”
그렇게 정신이 없는 와중에 내가 일행들을 이끌고 격납고로 되돌아가서 망가진 골렘을 살펴보고 있으니 무슨 일인가 싶겠지.
물론 한세아가 허공에 손가락질하며 난리가 난 시청자들을 진압하고 열심히 추방하느라 도움은커녕 시선도 주지 않고, 나머지 일행들이 격납고에 들어가 버렸다 해도 케이든은 열심히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 중2병 공녀님의 마음 한구석에는 무뚝뚝하지만 유능한 모험가와 함께 로봇에 대한 로망도 있는 모양이네. 든든하게 쌓여 있는 마석을 믿고 신이 나서 검술을 펼치는 케이든을 뒤로한 채 한세아가 격납고 내부로 들어와 내게 질문을 던진다.
“…저기, 롤랑. 뭐 하고 있어?”
“무언가 놓친 게 있는 것 같아서 다시 한번 살펴보는 중이다.”
“놓친 거라니?”
“그레이스와 아이린에게도 이야기를 했다시피, 저 웜은 남부 사막지대 깊은 곳에서 행상인들과 유목민을 습격하는 대형종 몬스터야.”
“그게 왜?”
“지금까지의 마왕의 행보와는 너무 다르니까. 뿔늑대의 상위종인 만월늑대, 오크 사냥꾼을 통솔할 오크 주술사와 오크 우두머리. 두 번 모두 바깥의 몬스터를 복제하는 마왕의 권능과 관련이 있었어.”
“…그러네? 30층은 동굴이고, 황금색 골렘은 자신이 미궁의 수호자라고 했어. 사막이 갑자기 나올 이유가 없는데.”
-어어 그럼 내 포인트는?
-사장님 3번은 목록에 없었잖아요? 하우스 관리가 왜 이래 이거
-동굴과 미로 중 정답은 사막이었습니다
-그래도 벌레니까 대충 동?굴이 이겼다고 치는건 어때
-아 시발 외국인 새끼들아 지금 내 추억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메카롸벗 이지랄
[관리자에 의해 삭제된 채팅입니다]
그제야 로봇에 정신이 팔린 시청자들이 포인트 생각이 났는지 다시 한번 시끄러워지는 채팅창. 오래간만에 열린 포인트 도박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수는 없다는 듯 다들 서글프게 울부짖기 시작한다.
동굴의 몬스터가 변이했을 것이냐, 동굴과 융합되어버린 미궁의 몬스터가 보스가 되었을 것이냐. 10층과 20층처럼 그리되리라 생각하고 딱 두 가지 선택지를 내밀었는데, 뜬금없이 사막의 자이언트 웜이 등장하지 않았나.
간만에 열린 포인트 도박장이어서 그런지 다들 이때다 싶어 제가 가진 방송 시청 포인트를 전부 걸어버린 상황. 돈과 관련이 없이, 그저 방송을 켜 놓고 있으면 쌓이는 포인트라 해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으음, 여기에는 무언가가 없는 것 같아. 벽면도 바닥도 전부 흩어봤는데 아주 자그마한 흠집조차 없네. 저 커다란 골렘을 위해서 엄청 튼튼하게 지었나 봐.”
“이쪽도 마찬가지예요. 열쇠 구멍이나 자그마한 홈 하나 없네요.”
“으음, 정말 천장에 있는 조명 말고는 아무것도 없네?”
한세아까지 합류해 골렘 격납고를 샅샅이 뒤졌지만 나오는 건 없었다. 역시, 격납고가 아니라 30층의 어딘가에 기믹이 숨겨져 있는 건가? 포기하고 자이언트 웜을 죽여버려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으니 귓가에 들려오는 익숙한 멜로디.
시야 구석에 치워둔 한세아의 방송 창에 누군가가 도네이션을 도배하고 있었다.
[그게임난민출신님 5,000원 기부!]
문 기준 좌측 골렘 기준 우측 벽면 RGB값이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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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기준 좌측 골렘 기준 우측 벽면 RGB값이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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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야왜안나가양키때문에도네밀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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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쪽 벽면에 골렘미로 출입구 크기의 패널이 색이다르다고
“어, 난민님 도네이션 감사하구요. 이러면 만원은 환불을 해 드려야 하나…? 그런데 우측 벽면에 패널이요? 아, 여기도 미로처럼 마력을 흘려보내야 하나?”
시청자의 강조되고 반복되는 도네이션은 한세아를 흥분하게 만드나 보다. 시청자들에게 시달려 그 새 지쳐버린 한세아가 갑자기 지팡이를 번쩍 치켜들고 벽면을 향해 우다닷 뛰어가는 걸 보니 금융 치료의 효과는 역시 확실하네.
그런 느닷없는 한세아의 모습에 기대감을 잔뜩 품은 그레이스와 아이린이 종종걸음으로 그녀를 뒤쫓아간다. 인벤토리와 미니맵에 이어 ‘여신에게 사명을 받은 천재 마법사 한세아’가 되어버렸으니까.
“왜 그래, 한나? 뭐라도 발견한 거야?”
“아, 확실하진 않아요 언니. 근데 여기만 뭔가 다른 것 같아서.”
물론 조명이 있어도 어둑한 격납고 내부 벽면에서, 색이 확연히 다른 것도 아니고 RGB 값이 다르다는데 그걸 쉽사리 찾아낼 리 있나. 한참을 더듬거리며 헤맨 한세아가 겨우겨우 무언가를 찾아낸다.
“여기인가? 마력 들어가는 걸 보니 맞는 것 같은데…?”
-아니쉽헐 대체 머가 다른데여
-그냥 다시 롸벗 보여주면 안됨?
-어그로 같은데 환불해주고 밴때리고 거대괴수vs기사골렘 보여달라고
-아니 동굴벽이 2.7.21인데 저기만 0.0.0인곳이 있다니까?
-그게 저 어두운 곳에서 분간이 되냐고 시발 ㅋㅋㅋ
드넓은 격납고는 거대한 골렘을 수용하기 위해 반들반들하면서도 아주 튼튼하게 지어져 있었다. 상급 모험가의 마법과 검기로도 뚫리지 않는 문만 봐도 이세계의 기술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지.
물론 축과 기어를 통해 인간처럼 관절을 움직일 수 있는 골렘을 만들었다고는 해도 기사형 골렘이 영원불멸한 내구도를 가진 것은 아닐 것이다. 애초에 세 대는 팔다리가 파손되거나 조종석이 부서지는 등 다양한 이유로 망가져 있었으니까.
그러니 격납고에는 당연하게도, 정비 기관이 딸려 오는 것이 정설 아니겠는가.
“이걸로 저 골렘들을 수리하는 걸까요?”
“다른 곳은 엄청 휑하던데 여기는 뭐가 빼곡하게 있네.”
동굴의 벽면이 아닌 격납고의 벽면에서 겨우 찾아낸 마력 패널. 이번에도 한세아가 마력을 흘려 넣자 벽면이 열리며 기계 팔과 다양한 중장비 등 누가 봐도 골렘을 제작, 수리할 수 있을 법한 기계 장치가 잔뜩 있는 방이 드러난다.
그와 동시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굉음.
끄이이이이이익―
“우왓, 뭐, 뭐야? 최후의 발악이냣!”
문이 열리는 게 일종의 트리거였는지 괴성을 지르며 꿈틀대기 시작하는 녀석과, 이에 당황한 케이든의 외침까지 들려온다. 아무래도 기사형 골렘에는 알보병과 소통을 위한 스피커 따위라도 달린 모양.
아이린은 그 소리를 듣고 케이든이 걱정되었는지 바깥으로 향했지만, 우리 셋은 남아서 정비소의 설비를 살펴보기 바빴다. 4★ 검사가 기믹용 골렘에 탑승했는데, 정비소 문 열리자마자 패배하면 밸런스 조절 실패 아니겠는가.
“후우, 쓰러트렸나?”
“꺄, 꺄아아악―?!”
혼잣말로 중얼거린 것조차 포착해 증폭시키는 골렘의 스피커 성능에 감탄하며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으니 갑자기 들려오는 다급한 발소리. 분명 케이든은 멀쩡한 것 같은데 무슨 일인가 싶어 황급히 밖으로 나섰다.
그렇게 밖으로 나서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차디찬 바닥에 몸을 뉜 자이언트 웜의 시체.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석으로 변하지 않고 시체가 남아 있네. 저것 때문에 아이린이 비명을 질렀나 싶었지만….
“고, 골렘이 케이든 씨를 여자로 만들었어요! 어쩌지, 저주가 걸려 있는 고대 유적인가 봐!”
“아니, 자, 잠시만요 아이린 양!”
“어서 정화를!”
그 옆, 멀뚱히 서 있는 기사형 골렘에서 내린 케이든이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케이티 웰즐리의 모습을 본 아이린이 화들짝 놀라 격납고의 어둑한 조명보다 환한 신성력을 사방팔방으로 흩뿌리고 있었다.
“…뭐야? 진짜 저주야?”
그레이스가 옆에서 작게 중얼거리지만, 뭐라 대답해야 할지를 모르겠네.
대체 무슨 일이야?
※
사라지지 않는 자이언트 웜의 시체, 거대 골렘을 수리할 수 있을 것 같은 설비, 수상할 정도로 색조에 민감한 시청자. 이러한 잡다한 사실들은 모두 케이든의 본 모습에 의해 싸그리 뇌리 바깥으로 밀려 나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