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0화 (130/175)

웜 한번 꼬셔 보겠다고 미친놈처럼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면서 통로를 뛰어다니는 모습. 마음 같아서는 대번에 달려들어서 꼬리를 붙잡고 끌고 가든, 아니면 때려죽이든 했지. 하지만 현실은 그게 불가능한 상황.

씨발놈아 왜 이렇게 빠르냐고오오오오―

마력으로 육체를 강화한 나는 말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다. 홀로그램 인터넷 창으로 검색을 해 보니 말의 평균 속도는 88km/h니까 나는 대충 90~100km/h의 속도로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거지.

그리고 저 시발 보스 몬스터는 나보다 아주 약간 빨랐다.

이러니까 모험가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보스 몬스터한테 치여서 뒤졌지. 동굴에 악에 받친 내 고함이 울려 퍼진다. 놈이 인근의 몬스터를 다 갈아버리고 내게 반응할 때까지, 계속해서.

…그런데 저 새끼가 나보다 조금 더 빠르면, 유인하다가 따라잡힌―

결국은 이렇게 될 거라는 걸 나도 한세아도, 심지어 다른 일행들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예상하였을까. 거대한 웜의 주둥이 앞에 대롱대롱 매달린 것 같은, 조금 추한 자세로 보스 몬스터를 질질 끌면서 등 떠밀리며 등장하자 일행들의 기묘한 시선이 나를 샅샅이 흩어보는 것 같았다.

대체 왜 그러고 있어- 라며 시선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 같은 느낌.

 “…저기, 제가 그걸 베면 되겠습니까?”

 “그래. 부탁 좀 할 게 케이든.”

보스 몬스터인 웜, 정확하게는 자이언트 웜이 지치지도 않고 펄떡펄떡 뛰어서 그나마 다행이지. 기사형 골렘에 탑승해 있던 케이든이 검을 쥐는 것과 동시에 자이언트 웜의 튼튼한 이빨을 손에서 놔 버렸다.

그러자 옆으로 비켜선 나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고 조금 찌그러진 주둥이를 내밀며 맹렬하게 케이든에게 달려드는 자이언트 웜. 기잉기잉 움직이는 골렘의 소음이 가장 신경 쓰였는지 제 주둥이를 잡고 있던 나조차도 무시하는 모습이다.

마치 칠성장어처럼 둥그런 주둥이에 빼곡히 나 있는 수백 개의 날카로운 이빨. 갑옷을 입은 중급 모험가도 순식간에 다진 고기로 만들어버리는 위협적인 모습이지만 일행들은 긴장감은커녕 맥 빠진 반응을 보이며 케이든을 응원한다.

 “엄청 강해 보였는데, 그래 봐야 롤랑에겐 평범한 대형종 몬스터였구나.”

 “밖에서 만난 웜이랑 비슷해?”

 “…비슷해. 땅속으로 숨지 않고 땅 밖에서 계속 돌아다니니까 상대하긴 더 편하긴 하네.”

그야 내가 저 보스 몬스터를 질질 끌다시피 등장했으니까. 사실은 녀석이 내 전력 질주 속도보다 빨라 등 떠밀리듯 놈의 커다란 몸에 밀려서 오며 방향만 조절했을 뿐이지만, 저 수백 개의 날카로운 이빨이 결국 나를 씹어먹지 못한다는 걸 일행들이 알게 되었다.

오히려 땅속으로 파고들었다가 발밑에서 튀어나와 발목부터 갈아버리는 패턴이 봉인되었으니 쉽다고 봐야겠지. 뭐라고 해야 할까, 기믹을 통해 알아보는 대형 몬스터 튜토리얼이라는 느낌이 강하네.

튜토리얼이라는 사실은 시청자들 또한 느끼고 있었는지 기사형 골렘과 자이언트 웜의 맹렬한 힘겨루기엔 관심도 가지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롤랑 볼 때, 보스가 다니던 길에 무슨 굴 있었잖슴. 원래 그거 써먹는 듯?

-그 바위 굴러오면 옆에 숨는 통로 같은 역할인가봄 테런같이

-달려오면 피하라니 걍 몸으로 막으면 됨(선행조건 태생6★) ㅋㅋ

-테런이 뭔데 틀딱아 인디아나 존스도 아니고

-거 위쪽 선생님들 춘추가 어떻게들 되시나요? 돋보기 끼고 방송 볼 것 같은데

그래, 채팅창의 말이 정답인 것 같네.

태생 6★ 탱커의 전력 질주보다 빠른 보스 몬스터의 돌진이다. 속도가 대략 120km/h라 가정하면 과속을 한 자동차와 마찬가지인 속도. 플레이어에게 말보다 빠르게 달리라고 시킬 리 있나.

정상적인 진행이라면 커다란 자이언트 웜을 먼저 만나고, 아까 봤던 전사와 도적 생존 모험가 2인조처럼 통로에 나 있는 굴에 숨으며 30층을 탐색하는 것이었겠지. 그렇게 몸을 숨기며 이 골렘 격납고를 발견해야 하고.

하지만 우리는 가상 현실 게임 특유의 자유도 덕분에 정반대의 루트를 타 버렸다. 보스 몬스터보다 골렘 격납고를 먼저 발견해버린 상황. 그러니 유인 기믹도 못 발견한 데다 퀘스트 갱신까지 한 박자씩 늦는 것이겠지.

[한세아를 도와 30층에 숨겨져 있는 장소를 발견하자 1/1]

[한세아를 도와 30층에 숨겨져 있는 장소를 발견하자 1/1 ※ CLEAR]

[보상 : 정체를 알 수 없는 차원의 파편]

바로 지금처럼.

나를 이 세상에 보낸 놈이 비비게임즈를 이용해 히어로즈 크로니클을 만들었다고 강력히 주장이라도 하듯 한세아의 퀘스트 창과 마찬가지로 한 박자 늦게 등장하는 퀘스트 창. 심지어 퀘스트가 등장하는 것과 동시에 완료되어 보상까지 함께 지급되었다.

기억하기로 지난번에 받은 보상은 이와 비슷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정보의 파편’이었지. 신전에 방문하니 자동으로 열람되었으며 마나의 일부가 신성력으로 대체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보의 파편이 아니라 차원의 파편이라니.

정보는 확인할 수 있는데, 차원의 파편은 대체 어디에 써 먹는 거지?

 “흐읍- 이 녀석, 골렘을 명백히 적대시하는 것 같습, 니다?!”

 “도와줄까?”

 “아뇨! 제가 해 보겠습니다!”

나와 한세아가 슬그머니 퀘스트 창을 확인하는 그 와중에 케이든은 검사로서 자존심과 호승심에 불이 붙었는지, 아니면 기사형 골렘에 푹 빠졌는지 자이언트 웜과 열심히 맞서 싸우고 있었다.

기이이이잉― 엔진음이 아니라 마석음이라 해야 할 소음이 점점 격렬해지며 힘겨루기에 들어간 두 거구.

껍데기가 바윗덩어리인 거대한 자이언트 웜이 마치 뱀처럼 기사형 골렘을 휘감은 뒤 이빨로 갉아버리려 들지만, 케이든의 유려한 몸놀림에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다. 때로는 보법으로, 때로는 검술로 자이언트 웜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밀쳐낸 뒤 강렬한 검격을 때려 박는 그녀.

성인 남성도 한입에 삼켜버릴 커다란 괴물과, 이에 맞서는 신장 6m짜리 강철의 거인.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겐 미녀의 알몸보다 매력적으로 느껴질 법한 장면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한세아도 조금 당황을 한 모양.

 “어, 어어? 시청자 자릿수가 하나 더 늘어난 것 같은데, 내 착각은 아니지?”

-지금 서브레딧쪽에 니 방송 링크 쫙 퍼졌음

-온갖 기계박이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찾아오고 있워요

-솔직히 기사형 골렘 꼴리긴 해 매끈한거 봐라

-거미 방적돌기 찾던 새끼랑 같은 새끼 아님 저거?

-국내에서 잘나가는 방송인이 아니라 글로벌 스타 다 되어가네 ㄷㄷ

서양 쪽에서 좀 유명한 인간이 SNS에 한세아 방송 사진을 올렸다느니, 와패니즈에 미쳐 있는 일뽕 양덕들이 동양인과 메카를 보고 일본인 방송인 줄 알고 추천을 한다는 등 온갖 어질어질한 이야기들뿐이다.

골렘 타고 체조 몇 번 했다고 만 단위의 시청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으니 천하의 한세아라도 당황을 할 수밖에. 그 덕에 나는 손에 땀을 쥐며 케이든을 응원하는 그레이스와 아이린 옆에서 마음 편히 퀘스트 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도 정보의 파편처럼 신전에 방문해야 하나?’

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퀘스트 보상에 머리를 굴리는 도중 조금씩 결착이 나기 시작하는 케이든과 보스 몬스터의 싸움.

자이언트 웜이라 해도 땅을 파고 들어가 발밑에서 급습하는 능력이 없다면 그저 커다란 뱀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독이 없고 이빨이 조금 많을 뿐이지, 휘감고 깨무는 게 전부니까. 그리고 북부 서리늑대 기사단의 검술을 배운 4★ ‘검의 공녀’가 검을 들고 고작 커다란 뱀에게 패배할 리 없다.

맨몸이 아니라 갑옷으로 중무장한 것 같은 강철 골렘에 익숙해진 케이든이 커다란 골렘의 검뿐만 아니라 박투술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와, 저 정도면 혼자서도 잡겠는데? 일단 저 기사형 골렘을 찾으면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나 봐.”

-아니 보지만 말고 도우라고 ㅋㅋㅋ

-메카와 괴수 싸움에 끼어들라고? ㄹㅇ 꼴알못이네 이쉐끼들

-끼어들지마! 움직이는 새끼가 마왕 끄나풀이야!

-그래서 자이언트 웜이랑 미로랑 골렘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건데

-퀘스트 라인 꼬이니까 이해를 몬하겠네 뭐 빼먹고 온 것 같은디?

하체를 휘감으려는 꼬리를 골렘의 강철 다리가 짓밟고, 팔뚝을 물어뜯으려는 아가리에 강철 주먹이 쑥 들어가 잇몸을 으스러트리듯 쥐어버린다. 단순히 검술에만 조예가 깊은 게 아닌, 튼튼한 갑옷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적극적인 갑주 무술 실력.

그 현란한 모습에 그레이스와 아이린도, 시청자들도 시선을 빼앗긴 상황. 그래도 계속 구경만 할 순 없으니 슬그머니 그레이스와 아이린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아, 네! 저희도 케이든 씨를 도울까요?”

 “아냐, 우리는 이 공터를 다시 한번 수색해보자.”

 “공터를? 무언가 찾아야 할 게 있어?”

거대 괴수와 강철 거인의 싸움에 꽤 몰입해 있었는지 내 터치에 화들짝 놀라며 성법을 준비하려 드는 아이린. 그런 아이린의 모습을 보며 그레이스가 배시시 웃어 보이더니 내 옆에 슬그머니 달라붙는다.

꽤 오래 머물러 있던 텅 빈 골렘 격납고를 다시 한번 살펴보자는 말에 의문을 표하지만, 불만은 없는 두 사람. 채팅창 문제 때문에 한세아가 입을 헤 벌리고 있어도 마법사니 무언가 느끼는 게 있나 보다― 하며 내버려 둔 채 나를 돕는다.

 “저 자이언트 웜, 남부 사막에 사는 놈이야. 탑에는 동굴이 있고, 골렘은 자신이 미궁의 수호자라고 주장했지. 그런데 갑자기 사막에 사는 놈이 나오는 건 이상하지 않아?”

 “하긴, 지금까지 마왕은 그 장소에 맞는 몬스터를 만들어서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지?”

내가 찾으려는 것은 우리가 놓쳐버린 기믹. 시청자들의 말대로 퀘스트 순서가 꼬이며 무언가 하나를 놓친 것 같기 때문이다.

넓은 통로에 숨을 수 있는 굴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적어도 숨어버린 플레이어를 지나쳐버린 보스 몬스터를 다시 유인할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해야 하지 않겠는가? 설마 플레이어한테 나처럼 마력을 듬뿍 담은 고함을 지르라고 시켰으려고.

사실, 케이든이 슬슬 자이언트 웜을 해체하기 시작했으니 기믹은 몇 개 놓쳐도 상관없었다.

물론 그것은 모험가 롤랑의 의견.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모험가라면 손쉽게 30층의 이변을 해결하고 마탑에게 돈을 달달하게 뜯어낼 생각만 하면 되겠지. 하지만 마음 한구석의 게이머 롤랑으로서는 불만이 많다.

차원 이동과 인생이 걸린 게임 퀘스트인데 진행 순서가 꼬이고 퀘스트 보상도 이상하면 찝찝하잖아. 여기서 뭐 하나라도 놓쳤는데 마왕과의 결전에서 필요한 단서였다면? 같이 부정적인 생각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것이다.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 아까는 동굴거미도 고블린도 공격하던데 이번에는 왜 골렘한테만 달려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원래 웜 종류의 몬스터는 커다란 놈을 무조건 노려?”

 “아니. 저놈이 벌레처럼 보인다 해도 어느 정도 포식자로서의 지능과 본능이 있어서 약한 걸 급습하는 편이지. 상단 따위를 습격했을 때 커다란 짐마차보다는 혼자 도망치는 낙타나 사람이 더 맛있다는 걸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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