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9화 (129/175)

[r/Mecha에 올라온 한세아 방송 캡처본.JPG]

보면 Posted by u/MCLOVE just now임 시발 ㅋㅋㅋ

판타지 세상에 왜 탑승이 가능한 기사형 골렘이 있는지 욕하는 놈이랑

마법으로 조형을 하더라도 만들어 탈 수 있으면 메카라며 편드는 놈이랑

레딧에서 시간당 수백 단위의 글이 올라오며 지들끼리 불타는 중

┗글로벌 인재 포르노 걸

 ┗+18 mecha girl 됨? 미치겠네 ㅋㅋㅋ

┗레딧놈들 윤활류 싼다 ㅇㅈㄹ중 ㅋㅋㅋㅋㅋ

┗애니메 레딧 쪽 애들은 저걸로 피규어 만들 생각중이더라

 ┗이걸 현실성 갓겜으로 봐야하나?

방패를 깡깡 두드리며 한세아의 방송 대신 히어로즈 크로니클 갤러리를 보니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입소문이 쫘악 퍼진 모양이다. +18 Mecha girl이라니, 어째 한세아의 별명이 점점 길어지는 기분인데.

갑자기 기사형 골렘이 등장해 게임의 장르가 바뀐 것 같지만, 이 게임은 내가 생각하기에 엄연한 다크 판타지라고 볼 수 있다. 10년이라는 경력이 쌓이기 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내 눈앞에서 죽어 나갔는지 설명하자면 입이 아플 지경이니까.

 ‘제대로 치였네. 갈림길이 나오지 않아서 그대로 따라잡혔나?’

그것은 한세아가 진입한 30층 또한 예외가 아니라는 소리.

방패를 퉁퉁 두드리며 걷다 보니 시나리오 퀘스트를 위해 등장한 거대 보스에게 당해버린 모험가의 잔해가 복도에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사실 잔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파편일 뿐이지만.

아무래도 장님뱀이 아니라 웜 종류인지 으스러진 갑옷의 파편과 한 뼘 정도 남은 활, 찢어진 천 조각 따위가 피와 살점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상황. 단순히 짓뭉개고 나아가는 게 아니라 명백하게 사람을 갈아버리듯 잡아먹은 흔적이다.

30층에 왔다는 것은 적어도 4인이라는 소리인데, 잔해는 다 모아봐야 0.3명 정도 아닐까. 모험가 패 또한 육체와 함께 완전히 분해되었을 테니 오지랖을 부려 모험가 길드에 신고조차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웜이면 동굴 몬스터라고 봐야 하나? …어쩌면 메카-웜일지도.’

시체를, 아니 잔해를 수습해 줄 수도 없으니 부릴 수 있는 오지랖도 없다. 그래도 혈향이 사라지지 않은 걸 봐선 보스 몬스터가 이 통로를 막 지나간 모양. 복잡하게 이리저리 꺾다가는 메카-케이든이 기다리고 있는 공터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 그저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방패를 두드리며 귀찮은 일 없도록 최대한 직진을 하고 있으니 귓가에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이, 이봐! 뭐 하는 짓이야?!”

 “멈춰욧!”

보스 몬스터가 돌아다닐 법한 커다란 통로에서, 옆으로 살짝 나 있는 자그마한 샛길. 길이라기보다는 굴에 가까울 정도로 자그마한 통로에서 기다시피 허리를 웅크리고 있는 모험가 두 명이 다급하게 나를 부른다.

아무래도 보스 몬스터의 돌진을 피해 숨어 있다가 내 방패 소리를 들었나 보네. 두 사람밖에 없다는 건 아까의 갑옷 조각과 활 잔해가 이 녀석들의 동료일지도 모르겠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 태연하게 그들을 내려다보자 두 남녀가 황망하다는 듯 나를 올려다본다. 도망을 치며 꽤 고생했는지 어째 동굴 안에 있으면서도 흙먼지로 지저분해진 두 얼굴.

덥수룩한 머리카락에 빽빽하고 짧은 수염을 잘 가다듬은 남자는 손에 잡힌 물집과 갑옷을 보면 전사로 보이는데, 무기도 버리고 도망쳤는지 빈손이었다. 어깨까지 오는 머리카락이 산발이 된 여자는 도적인지 허리춤에 락픽 같은 잡동사니가 잔뜩.

 “다, 당신 그거 못 봤어? 지금 30층에 이상한 게 돌아다닌다고!”

 “혼자 다니는 걸 보면 실력에 자신이 있나 본데, 만용 부리지 말고 그만둬. 우리 파티의 탱커도 동굴거미와 대치하고 있다가 반응도 못 하고 순식간에 찢겨 나갔다고!”

혹시라도 목소리를 키우면 놈이 돌아올 거라 생각하는지 목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나를 설득하려는 모습이 참 기특하기 짝이 없다. 방어와 공격을 나눠서 전담하는 두 전사와 길잡이 궁수, 함정 탐색의 도적 4인 파티였었나.

자신들의 안전에 대한 걱정 때문에 나를 말리려 들는 것이지만, 인권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중세 판타지 랜드에서 이 정도면 상위권의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 아닌가. 겁에 질려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남 걱정부터 하고 있으니까.

 “놈이 방금 이 쪽으로 지나갔나?”

 “그, 그래! 그러니까 얼른 나가야 해. 혹시 랜턴 남은 거 있으면 팔아줄 수 있어? 아니면 29층으로 향하는 통로로 안내해 줘.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례금은 충분히 지불할 생각이니까.”

아무래도 이쪽 파티는 자신감 때문인지 랜턴을 길잡이 궁수만 들고 다닌 모양. 내가 괜히 한세아에게 1인 1 랜턴 이야기를 한 게 아닌데 정확하게 반면교사가 등장하네.

혹여나 내가 계속 미친놈처럼 방패를 두드릴까 봐, 아니면 자신들을 두고 휙 떠나버릴까 걱정을 하는 얼굴들. 그 필사적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뒤 허리춤에서 랜턴 하나를 그들에게 건네주었다.

평소대로라면 게이트 앞까지 호위를 해 준 다음 명성작을 하겠지만, 지금은 명성보다 메인 시나리오의 보스 몬스터를 잡는 게 우선이니까.

 “이봐, 괜찮겠어? 그놈은 이 통로를 꽉 채울 정도로 커다란 녀석이라고.”

 “걱정하지 마. 그 정도면 대형 몬스터 평균이니까.”

 “혼자 다니는 걸 보니 상급 모험가인가 보지. …길드를 통해 사례금을 지불할 생각인데,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롤랑, 상급 모험가 롤랑이다. 대형종 몬스터는 익숙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녀석은 내가 사냥할 생각이니 탑 밖으로 잘 나가보라고.”

 “가, 감사합니다….”

겁에 질린 채 계속해서 걱정 어린 말을 내뱉는 전사와 달리 상황을 파악하고 랜턴을 공손히 챙겨 드는 여도적. 궁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탐색꾼 직종이니 몬스터를 피해 도망칠 수 있겠지. 일단 20층까지만 가면 게이트를 타고 밖으로 도망칠 수 있으니까 게이트가 없던 과거보다 훨씬 살아날 확률도 높을 테고.

랜턴을 받아 든 도적이 사방을 슥슥 둘러보더니 여전히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상태로 통로를 향해 걷는다. 전사 또한 갑옷까지 벗어버리고 발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그 뒤를 따라가는 게, 판단력도 좋아 보이긴 하네. 어차피 싸울 일이 없을 테니 장비는 다 벗어버리고 튀는 건가.

그렇게 겁에 질린 초식 동물 같은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시야 한구석에 띄워둔 한세아의 방송이 갑자기 갱신된 퀘스트 창을 공개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괴물이 굉음과 함께 모든 것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몬스터도, 모험가도 구분하지 않는 괴물에게 당해버린 모험가들]

[그들이 말하기로는 녀석은 전투의 소음을 듣고 찾아온다는데…?]

 “오, 롤랑이 누굴 만났나 봐. 갑자기 퀘스트 창이 갱신되네. 이러면 보스 몬스터를 만났을 때 새로 갱신이 되려나?”

-얘는 태생 6★ 탱커님을 모셔도 모자랄 판에 퀘스트 셔틀로 쓰고있냐

-하 여신님 신성력탱크만 아니었으면 롤랑 파티탈퇴하고 후피집 방송각인데

-이거 로봇이 아니라 보스 먼저 만나야 진행되는거 아님?

-로봇에 탑승하는 퀘스트는 바깥에도 필요합니다. 일을 해야한다 비비게임즈

-아니 그런게 나타났으면 카메라를 먼저 돌리라고 ㅋㅋㅋ

 “아 맞네, 롤랑 지금 뭐 하는지 상황 한 번 볼까?”

그러다 시청자들의 훈수를 들었는지 통로를 바라보는 척 몸을 돌려 홀로그램을 조작하는 한세아. 그와 동시에 그녀의 방송창이 공터의 일행들 대신 나를 비추기 시작했다. 물론 퀘스트 창을 갱신시켜둔 모험가들은 동굴의 어둠 저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

그녀의 방송 창에 비친 것은 시체 조각 위를 걸으며 방패를 횃불형 마도구로 탕탕 두드리고 있는 내 뒷모습뿐이었다.

-아니 선생님 저기만 게임 장르가 다른데여

-바닥에 있는 저 뻘건게 피해를 입은 모험가들임? 피해가 아니라 어우 그냥;;

-다른 모험가 구경 좀 하려 했더니 모험가 였던 것들만 잔뜩있네

-메카물인지 고어물인지 하나만 정하라고 시발 좀

-저거 보니까 고블린한테 뱃가죽 난도질당한건 양반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히어로즈 크로니클에 아무리 가챠 캐릭터가 있고 미녀들이 잔뜩 있다 해도 엄연히 피와 내장이 튀기는 전투가 함유된 미성년자 플레이 금지 게임.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도 몇 번 죽어봤는지 온갖 경험담이 튀어나온다.

물론 무슨 판타지 소설처럼 감각이 100% 연동되어서 데스 게임이 벌어지는 일 따위는 없지만, 감각이 없다고 해도 자신의 아바타가 칼에 맞는 건 유쾌한 경험이 아닐 테니까.

누구는 고블린에게 뱃가죽이 찢기고, 누구는 오크에게 당해 다진 고기가 되는 경험을 하는데 한세아는 그18로 시작해 한 번도 죽지 않고 30층까지 와서는 혼자 로봇을 타고 논다.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한세아를 욕하기 시작하는 채팅창.

 “아니, 여기서 왜 내가 욕을 먹어야 하는 건데 갑자기?!”

 ‘쟤들도 참 독하다, 독해.’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발걸음을 마저 옮겼다. 근데 보스 몬스터 이 새끼, 자기 움직이는 소리가 너무 커서 내 방패 소리를 못 듣는 건가?

덩치가 커서 그런지 멀리도 갔네, 시발.

아아아아아아아악―

내가 바로 개빡대가리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마력을 듬뿍 담은 채 동굴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고함을 질렀다. 그냥 처음부터 존나 시끄럽게 굴어서 유인하면 될 걸, 뭐하러 보스 몬스터 뒤를 따라 걸었는지.

내가 백날천날 방패를 두드려도 고블린 수십 마리가 모여서 케륵거리는 소리보단 작을 수밖에 없다. 횃불형 마도구가 무슨 드럼 스틱도 아니고 소리를 내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잖아.

거기에 보스 몬스터의 매커니즘도 문제였다. 작은 소음만 들려도 무조건 달려들면 플레이어가 골렘을 찾기 전부터 급습해 올 거 아니야. 그러면 플레이어가 기믹은 발견도 못 하고 게임 오버를 수십 번 반복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야아아아악― 좀 와라아아아악―

그래서 그런지 발걸음을 재촉해 꽁무니를 뒤따라 가서 깡깡 방패를 두드렸지만 나를 무시하고 동굴거미를 향해 달려가는 길쭉한 보스 몬스터. 설마 저 놈을 유인하려면 소음을 발생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기믹이 필요한 건 아니겠지?

[그들이 말하기로는 녀석은 소리를 듣고 찾아온다는데…?]

[굉음의 주인공은 피부가 바위 껍질과도 같은 거대한 웜이었다]

[모험가들이 말하기로는 이 녀석은 사막에 산다고 하는데, 어째서 동굴에…?]

그래도 마주친 판정이 났는지 살아남은 모험가들에게 딱히 들은 이야기도 없지만, 아무튼 방송에서 한세아의 퀘스트 창이 또 갱신되었다. 그게 갱신이 되든 말든 저 길쭉하고 커다란 웜은 나를 무시한 채 저 멀리 달아나버렸지만.

그 결과가 이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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