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8화 (128/175)

역시 몬스터 탐색에는 궁수가 우위를 점하지만, 이런 구조물 관련 기믹에는 도적이 필요한가. 클래스마다의 장단점을 떠올리며 벽면을 더듬길 한참.

 “여기, 뭔가 있는데?”

그래도 탐색꾼 답게 남들보다 민첩한 그레이스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쿵쿵쿵―

굉음이 울리며 넓은 공터가 소음으로 가득 찬다. 소음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케이든. 잔뜩 들떠서는 눈 오는 걸 본 강아지처럼 바둥바둥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걸까.

나는 내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우왓- 이, 이거 정말 대단한데요-!”

 “이건, 대체….”

무뚝뚝한 모험가 연기조차 까맣게 잊은 케이든이 마치 개구쟁이 소년처럼 크게 웃는다. 와하하핫- 하고 공터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그 어처구니없는 모습에 나는 물론이요 한세아를 비롯한 일행들도 말을 잊은 채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심지어 시청자들도.

그래,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왜 갑자기 메카물이냐고 시발 ㅋㅋㅋㅋ

-말하는 골렘 수호자가 떡밥이었나?

-what is the name of the girl in robot?

-지금 이거 찍어서 올리니까 레딧애들 지랄났음

-양덕쉑들 K-게이머 맛에 정신 못차리쥬?

골렘 내부에 쏙 들어가 골렘을 조종하는 케이든의 모습을.

아니, 저걸 골렘이라고 불러도 될까. 둥근 바위, 강철 덩어리에 팔다리만 붙여 놔 머리 부분이 없던 기존의 골렘과는 전혀 다르다. 늘씬한 팔과 다리, 손끝에 붙어 있는 다섯 개의 손가락, 인간의 것처럼 완벽하게 구현된 온갖 관절까지.

그래, 골렘보다는 메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늘씬한 강철의 거인 속에 케이든이 열쇠형 마석을 사용하여 탑승해 있었다.

 “…아무래도 30층의 기믹은, 저 골렘인지 메카닉인지 모를 저 탈 것 같지?”

-아니 RPG할 때 많이 보긴 했는데…

-당신의 동료는 멋진 메카에 탑승해 있다, 나는 그것의 조언을 원한다

-아무튼 마석으로 움직인다고 시발 ㅋㅋㅋ

-이 방송은 어떻게 로봇을 구했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반드시

-이야 채팅창이 버벅일 정도로 다 몰려오는데? 번역체 존나 많음;;

격납고가 떠오른다고 생각한 넓은 공터는 정말로 격납고가 맞았다. 그레이스가 발견한 열쇠 구멍에 마석 열쇠를 밀어 넣으니 드드득 소리와 함께 위로 말려 올라가던 굳건한 문. 그 안에는 완전히 망가진 3개의 골렘과, 멀쩡한 기사형 골렘이 1대 있었다.

 “보스가 엄청 커다란 것 같던데 저 골렘을 타고 싸우는 건가 봐.”

동굴 통로를 꽉 채울 정도로 거대해진 보스 몬스터와, 이를 맞이하는 거대한 기사형 골렘. 다른 RPG 게임의 던전에서 봤던 것 같긴 하네. 그걸 내 눈앞에서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

한세아의 중얼거림처럼 아무래도 30층의 기믹은 저 골렘인 것 같았다. 10층의 컨셉이 도시 습격, 20층이 오크 군대라면 30층은 거대 괴수 대격돌 정도가 아닐까?

 “바위 골렘에서 나오는 마석은 연료, 강철 골렘에서 나오는 마석이 배터리, 황금 골렘에서 나오는 마석이 시동을 거는 열쇠. 일단 롤랑이 바위 골렘의 마석을 충분히 모아놔서 다행이네. 근데 연료가 개당 10골드면 저게 스포츠카보다 더 가성비가 구린 것 같은데.”

-아니 다른 플레이어들은 마석을 개당 10골드에 못사요 님아;;

-우리 같은 사람들은 발품 뛰어서 모으지 18련아

[관리자에 의해 삭제된 채팅입니다]

-진짜 어떻게 사람이 숨쉬듯 비틱질을 할 수 있을까 이게 재능이란건가?

-이곳은 탑의 30층 입니까? 나는 이 사실을 믿을 수 없다

원래대로라면 이 넓은 공터로 보스를 유인해서, 최대한 긁어모은 바위 골렘의 마석으로 한정된 시간 동안 저 기사형 골렘으로 상대하는 방식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정된 시간이고 나발이고 한세아의 인벤토리에는 바위 골렘의 마석이 대략 50개, 강철 골렘의 마석이 20개 정도 고이 잠들어 있는 상황. 중2병답게 기사형 골렘을 보더니 눈을 빛내며 공터에서 칼춤을 추기 시작한 케이든을 말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풍족하다고.

기사형 골렘이 팔을 휘두를 때마다 3m는 되어 보이는 강철의 장검이 허공을 붕붕 가른다. 저 정도면 오우거에 필적할 수준의 근력은 있는 것 같은데. 하긴 태생 6★ 탱커가 없어도 그 거대한 보스 몬스터를 막아 세울 방법이 있어야 게임이 진행되겠지.

 “후우… 이거, 참.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나, 나도 타 볼래!”

그렇게 한세아와 내가 30층의 기믹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무렵, 나머지 일행들은 골렘을 열심히 가지고 놀고 있었다.

기사형 골렘에 탑승해 제가 알고 있는 검술을 실컷 휘두르던 케이든이 겨우 진정하고 내려오자 곧바로 열쇠형 마석을 채가는 그레이스. 케이든처럼 검을 휘두를 줄은 모르지만, 폴짝폴짝 뛰어보거나 팔다리를 휘두르는 등 다양하게 즐기고 있었다.

전투하지 않을 땐 마력 소모가 적은 것인지, 아니면 바위 골렘의 마석 하나가 생각보다 오래 쓸 수 있도록 게임사가 배려해 둔 건지 케이든에 이어 그레이스도 실컷 즐긴 상황.

 “아이린, 너도 타 볼래?”

 “아뇨, 저는 괜찮아요….”

 “언니, 그럼 내가 타 볼래요.”

-한세아도 못참는 롸벗탑승

-방송각이 떡상을 하는데 어떻게 안 타냐구 ㅋㅋㅋ

-Где вы нашли этого потрясающего робота?

-속보) 한세아 레딧에서 메카닉 포르노 걸로 진화함

-ㅋㅋ 환장하겠네 히어로즈 크로니클이라 18+ 태그 있어서 그런가?

바위에 팔다리를 붙여둔 골렘들과 달리, 늘씬한 사지에 섬세한 손가락까지 구현된 기사형 골렘. 갑옷을 입은 것처럼 두툼한 흉부에는 사람이 탈 수 있는 공간, 콕핏 같은 게 있었으며 거기에 있는 수정구에 열쇠 모양 마석을 꽂아 넣고 양손을 올리면 제 몸처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게 케이든과 그레이스에 이어 한세아까지 골렘을 움직여보며 알아낸 여러 가지 사실들.

하나. 아쉽게도 기사형 골렘은 공터 밖으로 몰고 나갈 수 없었다.

 “나가려면 기어서 나가야겠는데요?”

 “역시, 그 녀석을 이곳으로 유인할 수밖에 없겠네.”

그 커다란 보스를 막기 위해서인지 기사형 골렘은 거의 6m는 될 덩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통로가 아무리 반들반들하게 정리되었다 해도 높이가 3m 정도였기에 공터 안에서 꺼낼 방법은 없었다.

…한세아가 시청자 채팅을 보고 인벤토리에 넣으려 했지만, 그 또한 불가능했거든. 다른 몬스터 사냥에도 쓰지 말고 딱 보스만 잡으라는 의도로 보인다. 망가진 골렘도 기사형 골렘도 꺼낼 수 없으니 보스를 잡고 마탑의 마법사를 불러와 볼까.

 “아, 마석 하나가 빛을 잃었네. 마력을 다 사용했나 봐.”

 “바위 골렘의 마석 하나에 10분 정도인가요.”

둘. 한세아가 중얼거린 대로 기사형 골렘은 21~30층에서 얻을 수 있는 골렘들의 마석을 사용해 움직인다. 가슴 부분, 사람이 탈 수 있는 위치에는 열쇠 구멍이 있었듯이 등 쪽에는 배터리 팩을 착용하듯 마석을 끼워 넣을 수 있는 부품이 있었거든.

중앙에는 크리스털처럼 다듬어진 모양새의 강철 골렘의 마석을, 그 주변에는 둥근 모양의 바위 골렘의 마석을. 장난감 로봇에 건전지를 끼워 넣듯 기사형 골렘의 등을 타고 올라간 내가 그곳에 마석을 직접 끼워 넣었다. 

 “어때, 케이든? 막아 세울 수 있겠어?”

 “예.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30층의 기믹을 파악한 한세아가 전략을 세운다. 전략이라 말하기도 어려운, 너무나도 단순한 이야기지만. 골렘에 탑승하는 것은 케이든, 보스 몬스터를 유인하는 건 나. …왜냐하면, 내가 저 기사형 골렘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거추장스럽게 기사형 골렘에 탈 이유가 없으니 맨몸으로 보스 몬스터를 공터까지 유인한 뒤, 몸 쓰는 것에 자신 있는 케이든이 탑승해서 보스 몬스터를 막아 세운다. 그 뒤 넓은 공터에서 길쭉한 보스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가 다져버리는 거로.

나름 한세아 파티의 지도 역이라는 핑계를 대고 합류해 전투를 어느 정도 그녀들에게 맡겨 왔지만, 수상할 정도로 거대해진 보스 몬스터까지 너희들만의 힘으로 잡으라고 시킬 이유는 없었다.

그레이스도, 아이린도, 한세아도 전부 기사형 골렘에 탑승한 케이든과 함께 공터에 놔 둔 채 나는 홀로 통로를 걸었다. 정확하게는 내게 붙은 서브 카메라 드론과 함께. 한세아의 방송 창을 보니 카메라 하나가 날 따라와도 기사형 골렘을 촬영하느라 바쁘네.

아무래도 내가 보스 몬스터를 찾아다니는 장면은 넘겨도, 보스 몬스터를 몰고 공터로 오는 장면은 방송을 하고 싶은 모양이다.

하기야 초거대 괴수를 유인해서 달려오는 갑옷 기사라니, 인간형 거대 로봇만큼 흥미를 자극할 수밖에 없는 장면 아닌가. 방송 귀신 한세아가 그런 귀중한 장면을 포기할 리 없지. 거기에 내가 보스를 유인하는 장면은 몇몇 시청자들에겐 아주 중요할 테니까.

-머야 롤랑 어디감?

-보스몬스터 와꾸 확인하러감

-데려오는게 귀찮아서 죽이고 마석만 들고오는 거 아니지?

-나는 이 로봇의 구매를 원합니다 어째서 이것은 판타지 게임

-제발 초거대비얌 한 마리 데려와주세요 롤랑행님

1번이냐 2번이냐, 동굴의 몬스터냐 미로의 골렘이냐 어느 쪽이 30층의 보스일지 자신의 방송 시청 포인트를 전부 배팅한 시청자들이 슬슬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으니까. 아무리 한세아가 진압하고 이야기를 돌린다 해도 포인트를 올인한 시청자들이 계속 조용할 리 있나.

그 덕에 한세아의 채팅창은 로봇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번역 말투가 절반, 포인트 배팅에 대해 떠드는 한국인 시청자들이 절반가량으로 반반씩 나뉘어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래도 이야기의 빈도는 로봇에 관한 게 더 많은 상황.

아무래도 판타지 장르라는 점에서 막연한 거부감을 느끼던 사람들도 꽤 있는데, 골렘을 발전시키고 발전시키다 보면 저런 탑승형 골렘까지 만들 수 있다니까 흥미를 느낀 사람이 꽤 많은 것 같다.

―한세아 방송 레딧에 존나 퍼짐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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