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6화 (126/175)

-인간지네가 아니라 거미지네 만드는중임? 시벌 거미가 저렇게 뭉치니까 역겹네

-거미 말고 뒤에서 혐오감을 드러내는 눈나마망의 포상을보여죠

-뭐지? 보기 싫으면 돈을 내라는 뜻인가?

[협박에굴하지않는상남자님 5,000원 기부!]

카메라안돌리면니흑역사클립을전부모아서갤에도배해버릴거야

[거미애호가님 10,000원 기부!]

카메라 좀 더 앞으로 보내서 방적돌기 보여줘

 “야! 내가 협박을 한, 아니 애초에 이건 협박에 굴하지 않는 게 아니라 니가 나를 협박하는 거잖아! ……그리고 뒤에 도네 한 놈은 환불해 주고 밴 하는 게 다른 모든 시청자를 위한 일이 아닐까?”

자기들끼리 얽혀서 허공을 붕붕 휘젓는 스물네 개의 거미 다리를 본 시청자들이 1번이니 2번이니 하는 편 가르기조차 잊고 한세아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1찍이니 2찍이니 하며 슬슬 정치 이야기도 나와서 분위기를 환기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생각 없이 행동하는 건지 참 아리송한 모습이야.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노련한 대처가 되었으니 상관없나.

편 가르기에 과몰입한 시청자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한세아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한세아는 그 덕에 욕을 먹으면서도 돈을 뜯어낼 수 있으니 win-win이라고 봐야 할까? 한세아의 카메라 무빙 덕에 혼란에 빠진 채팅창을 곁눈질하며 우리는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텐트는 우리가 칠게, 롤랑이랑 그레이스는 통로에서 망을 봐 줘.”

…아오, 좋게 봐 주려고 하자마자 귀신 같이 저러네.

눈치가 아무리 없는 시청자라 해도 이 정도면 채팅을 보고서라도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그레이스의 마을에서 내가 그녀를 안고 뛰어다닌 것을 시작해 술자리만 있으면 나란히 앉고, 식사 시간에 같이 붙어 다니며, 한세아가 기를 쓰고 나와 그레이스를 한 조로 묶으니까.

물론 우리 파티의 다섯 명을 보면 이렇게 묶는 게 정석적이긴 하다. 탱커와 탐색꾼이 전열, 마법사와 사제와 그녀들을 호위할 검사가 후열.

그래도 저렇게 대놓고 우리 둘이 있으라 한 다음, 카메라까지 붙여버리는 데 수상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눈치가 없다는 수준을 넘어 질병을 의심해 봐도 좋을 단계가 아닐까. 촬영을 안 하면 몰라, 대놓고 카메라를 붙이잖아.

 “근처에 뭐, 탐지되는 게 있어?”

 “음… 이 근처에는 뭐가 없는 것 같아. 어렴풋이 들려오는 소리도 없는 걸 봐선 몬스터가 아예 없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다른 모험가 파티가 지나간 지 얼마 안 되었나 봐.”

그래도 카메라가 있다는 걸 알아차린 듯 어색하게 행동할 순 없지. 철퇴는 잠시 내려둔 채, 방패를 지팡이처럼 짚고 동굴의 저 너머를 바라보았다. 카메라가 우리에게 왔다고는 해도 결국 그레이스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찍으니까.

그 덕에 나는 동굴 통로에서 눈을 떼지 않아도 내 옆에서 나를 바라보는 애틋한 그레이스의 얼굴을 실컷 볼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시청자들과 함께.

-아니 한씨 혼자 게임할 때 뭘 했길래 눈나가 암컷이 되어있음?

-표정만 보고 암컷 ㅇㅈㄹ 어휘력이 시발 ㅋㅋㅋ

-탑 공략이 아니라 고스트 연애왕으로 롤랑 공략하는중인건가

-캐릭터 퀘스트 이후 뭔 일이 벌어졌는데 요모양이지

-수금을 땡기는 동시에 사심도 채우는 뱅송인… 능력도 좋아

 “어허, 더러운 사심이라니. 판타지에는 그에 걸맞은 드라마가 있어야 보는 맛이 있는 거야. 너희도 어? 언제까지 기지개 켜는 모습만 보면서 초성으로 어우야어우야 도배만 할래?”

[HAN3025_9980님 50,000원 기부!]

그렇다면 나에게도 보여주십시오, 당신이 만든 드라마 두 사람의 관계

-얼마나 ㅈ같이 굴었으면 외국인이 번역기 돌려서 도네까지 하냐고

-이게 다 외화를 빨아 먹으려는 수작이었음? 애국세아였네

-K-드라마가 해외에서 그렇게 인기래요 텐련아 너도 한 발 걸치게?

-이제 슬슬 레딧 양키들도 그18이라는 단어를 외우겠는데

-팩트)실제로 한세아는 레딧에서 에이틴 걸이라는 별명이 붙어서 포르노 배우라고 오해를 샀다

 “…크흡.”

 “음? 롤랑, 물 좀 줄까?”

 “아니, 괜찮아. 동굴의 공기는 아무리 마셔도 익숙하지가 않네.”

 “하긴, 습한 데다 퀴퀴하기까지 하니까. 마도구가 아니라 횃불을 들고 다녔으면 거기에 연기까지 맡아야 하는 거잖아? 그래서 다들 마도구나 랜턴이 비싸도 구매하는구나.”

우리 파티의 태생 ★의 합계가 18개라 시팔년이라는 중의적인 뜻이 담긴 한세아의 커뮤니티 별명 ‘그18’이 어쩌다가 ‘포르노 걸’까지 진화한 거지. 그 어처구니없는 시청자 채팅을 보자 포커페이스고 나발이고 웃음이 기침처럼 터져 나왔다.

튼튼한 몸 덕에 평소 잔기침도 하지 않던 내가 쿨럭거리니 그레이스가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오지만, 포르노 걸이라는 단어의 파급력 덕에 카메라 드론에 들키진 않았다.

 “그래도 다음 층인 늪지로 가면 걷는 게 귀찮아지는 대신 공기는 그나마 나아지니까.”

 “그나마 나아진다고? 그렇게 말하니까 되게 불안한데.”

 “퀘퀘하고 눅눅한 동굴의 공기나, 습하고 끈적이는 늪지의 공기나 불편한 건 마찬가지거든. 그래도 늪지는 시야가 동굴보다는 트여 있어서 덜 답답하긴 하지.”

 “거기서도 동굴 ‘보다는’이야?”

내 이야기에 질린다는 듯 이야기하는 그레이스를 보며 살포시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원래 RPG 게임이라는 게 처음 시작할 땐 평화로운 초원이나 마을에서 시작하지만, 후반에 가면 멸망의 땅이니 악마의 차원이니 온갖 흉악하고 끔찍한 필드로 향하지 않던가.

평평한 초원 다음은 나무가 울창한 숲, 그다음은 길이 좁고 어둑한 동굴, 발을 잘못 디디면 수렁에 빨려 들어가는 늪지까지. 듣기로는 내가 가보지 않은 40층 이후는 숨쉬기도 힘든 고원지대라고 하던데.

그렇게 그레이스와 탑의 험난한 지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포르노 걸이라는 별명 덕에 열심히 놀림을 받은 한세아가 심리적 고난 끝에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피워 식사를 준비했다.

 “…롤랑이랑 그레이스도 와서 식사해.”

30층에서의 전투라 해도 장님뱀이 난입하지 않는 이상 적들이 크게 바뀌진 않았다. 숲에서는 단일 개체가 조금 강해지고 끝났다면, 동굴에서는 단일 개체가 강해지면서 머릿수도 늘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동굴뱀이 언제 어디서 난입을 해 올지 모르기에 한세아는 파티의 리더로서 머리를 굴려 한 가지 변화를 주었다.

 “이제 롤랑 말고 케이든 씨가 파티의 전열을 맡는 방식으로 가자.”

 “제가 가장 앞에 섭니까?”

 “케이든과 제가 앞에서 몬스터를 상대하고, 그레이스 언니와 아이린 언니가 후열을 담당하는 거죠. 롤랑이 다른 몬스터를 막아 세우는 중 장님뱀이 오면 귀찮아질 테니, 롤랑을 처음부터 장님뱀 담당으로 빼 두려고요.”

나 대신 케이든에게 전열을 담당하도록 부탁한 것.

태생 4★의 스펙이라면 충분히 전열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장님뱀의 돌진 패턴을 제외한다면. 그건 애초에 검사가 아닌 탱커 직업군이 받아내야 하는 네임드 몬스터의 패턴이니까.

한세아의 의견이 타당하게 들렸는지 군소리 없이 받아들이는 일행들. 하기야 좁은 통로에서 동굴거미나 흡혈박쥐를 사냥할 땐 전위가 할 일이 없었다. 자리만 지키며 한세아가 놈들을 묶고 그레이스가 마무리하는 걸 지켜볼 뿐이지.

전략이 크게 변한 것도 아니고 그저 케이든과 나의 포지션만 변경되었기에 우리는 별다른 문제 없이 30층의 탐색을 시작했다.

 “앞에서 고블린 울음소리가 들려. 아무래도 동굴거미랑 싸움이 붙은 것 같은데?”

 “난입해서 둘 다 쓸어 담죠. 어차피 공터는 한 번 확인해야 하기도 하고.”

멀찍이서 들려오는 키이익- 하는 자그마한 소리. 귀를 기울인 그레이스가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해낸다. 동굴의 좁은 통로를 따라 배회하는 동굴거미가 공터에 자리를 잡은 고블린 무리와 마주한 모양이다.

몬스터끼리 싸워서 죽는다고 해도 결국 바닥에 남아 있는 건 시체가 아니라 마석. 30층에 도착해 하루 푹 쉬었는데 오늘도 전투를 피할 이유는 없지.

검을 뽑아 든 채 성큼성큼 앞으로 향하는 케이든. 지금까지 후열에서 아이린을 보호하고 있었지만, 그다지 그녀가 활약할 일은 없었다. 이끼늑대 같은 놈들과 달리 동굴거미와 흡혈박쥐는 그저 우직하게 앞에서 밀고 들어오는 놈들이었으니까.

고블린이나 코볼트 등 소형 개체와의 난전이 아니라면 검을 쓸 일이 없던 나날들. 실력 있고 무뚝뚝한 모험가를 연기한다 해도 제 실력을 뽐내고 싶은 건 중2병의 속마음 아니겠는가. 몸이 근질근질한 케이든을 필두로 우리는 공터에 진입했다.

아니, 진입하려고 했었다.

드드드득―!

 “잠깐, 이게 무슨 소리지?”

 “왜 그래요, 언니? 동굴뱀이라도 나타난 거야?”

 “그런 것 같은데… 뭔가, 뭔가 이상해.”

갑작스럽게 멈추라는 신호를 보낸 그레이스가 아니었다면.

우리들의 시선을 받은 채 심각한 표정이 된 채 나를 바라보며 굳은 표정으로 무언가 묻는 그녀. 처음 보는 그녀의 심각한 표정에 다들 의문과 긴장감을 품은 채 우리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롤랑, 동굴 뱀에 대해서 다시 설명해줄 수 있어?”

 “길이가 약 8~10m쯤 되는 커다란 뱀. 이름 그대로 시각이 없고 후각이 예민해서 냄새를 맡으면 찾아오는 놈이지.”

 “커봐야 10m란 뜻이지…? 정확하게는, 길이가.”

콰드드드드드득――!

그녀의 질문이 무슨 뜻인지 알려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점점 커지는 굉음. 이 상황에서 무슨 일인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눈치가 느린 사람은 없었다. 굉음으로 그치지 않고 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지며 부들부들 떨리던 종유석 몇 개가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지는 상황.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굉음이 우리를 향하지 않았다는 점. 수십 마리의 고블린과 열댓 마리의 동굴거미의 난투가 우리의 이목을 끌었듯이 저 기괴한 굉음의 이목 또한 끌어버린 모양이다.

 “……소리가 잠잠해지면, 공터로 가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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