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5화 (125/175)

20층의 숲의 공기를 아쉽다는 듯 들이마시다 진입하게 된 21층. 골렘을 찾는지 벽면에 고개를 처박은 모험가 몇 파티를 지나 위를 향해 계속해서 움직였다.

 “어째 만나는 모험가마다 골렘을 찾고 있는 것 같네.”

 “음, 아마 나 때문인 것 같은데.”

 “어…, 왜? 골렘은 엄청나게 잡기 어렵잖아. 거기에 재수 없으면 몇 시간이나 걸리고. 의뢰랑 비교한다면 그다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닌 것 같은데.”

만나는 모험가마다 그 꼴이다 보니 가장 먼저 모험가의 기척을 느끼는 그레이스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의문을 표한다. 내가 골렘의 마석을 구매했다지만 골렘 자체의 단단함이 있어 그다지 매력적인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 하나 보다.

우리 파티도 나와 한세아의 마법이 없다면 바위 골렘을 상대할 수 없으며, 강철 골렘은 상급 모험가 정도가 와야 파괴할 수 있는 수준이니까.

 “그건 돈만 생각했을 때의 이야기니까.”

 “아아, 마탑 때문이지? 엄청나게 사들인다고 그러던데.”

내 짧은 대답에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는 그레이스. 이때 정답을 말한 것은 등 뒤에서 끼어든 한세아였다. 아무래도 인벤토리에 모아둔 마석 때문에 마탑에서 정보를 좀 구해본 것 같네.

 “맞아. 내가 처음 발견했고, 상급 모험가가 개당 10골드씩 주고 수집하는 특이 마석이라는 인식이 퍼졌거든. 바위 골렘의 마석이 10골드라면, 강철 골렘의 마석은 그보다 비싸야 한다는 게 당연한 상식이고.”

마석이 하나에 10골드! 라고 하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가격 측정이지만, ‘상급 모험가가 21층에서 세계 최초로 발견한, 색이 다른 마석’ 하나에 10골드! 라고 말을 하면 희소성 때문에 말이 된다.

거기에 강철 골렘의 ‘세계 최초로 발견했는데 색도 다르고 모양도 보석처럼 다듬어진, 상급 모험가가 와야 얻을 수 있는 마석’은 개당 10골드를 훌쩍 넘어버린 상황.

특히 마탑의 마법사들은 논문을 위해 새로운 연구 주제에 목이 마른 광인들의 집단. 세계 최초로 발견된 특이한 마석을 구매하는 것에 일말의 주저가 없다. 내가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통 크게 첫 가격을 잡은 게 일종의 바람잡이 역할이 된 것이지.

 ‘30층에서 마석이 필요가 없으면 엘리스를 통해서 마탑에 12골드씩 받고 다 팔아버려야지, 원.’

한세아의 인벤토리에 내가 되팔지 말라고 한 골렘의 마석이 대략 50개 정도 쌓여 있는 것은, 딱히 노린 게 아니다.

그저 인맥을 사용할 생각이 가득할 뿐.

한편, 만나는 모험가들이 동굴 벽에 고개를 처박고 있든 말든 시청자들의 모든 관심은 오롯이 포인트 도박에 쏠렸다. 아무래도 21층에서 30층까지 올라가는 것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배팅의 기회가 계속 열려 있어 이야기가 나오는 모양.

 “30층까지 간다면 하루가 아니라 이틀을 탑 안에서 보내야 할지도 모르겠네.”

 “올라가는 데 하루, 내려오는 데 하루, 30층을 탐색하는 데 하루. 의뢰를 많이 받으면 그보다 오래 머무를 생각도 해야 할 것 같아.”

시청자들이 난잡하게 떠들거나 말거나 30층으로 향하는 여정은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게이트에서 통로로 직진을 할 수 없는 동굴의 특성상 강제로 돌아가야 하는 일이 자주 있으니까.

그렇게 미니맵 확인과 탐색을 위하여 내 등 뒤에 나란히 선 한세아와 그레이스. 아직 30층이 아녀서 그런지 긴장을 살짝 푼 채 등 뒤에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눈다. 좁은 동굴의 외길에서 내가 앞을 틀어막아서 그런가 탐색은 하고 있지만, 목소리에 긴장감은 전혀 없는 두 사람.

그런 느긋한 두 사람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듯 동굴 길에서는 그 흔한 고블린도 한 마리 나오지 않아 평화롭게 탑을 오를 수 있었다.

 “어우…. 오래 걸으면 내가 지금 평지에 있는지, 아니면 이게 오르막이나 내리막인지 구분이 안 되네.”

-진짜 동료가 다 미녀라서 봤지 시커먼 남정네들이랑 저길 걷는다? ㅋㅋ 바로 구독 취소

-카메라 앞에 비추지 말고 앞에서 뒤로 눈나마망 얼굴 보여줘

-그래서 케이든 남장은 언제벗김?

-아씨 어두운동굴 계속보고있으니까 뭐 꾸물대는것처럼 환각보일라함

-RPG겜 할때 필드 반복은 그닥 신경 안썼는데 가상현실 되니까 좀 ㅈ같긴하네

평화롭다고는 해도 비좁고 어두운 동굴에 대한 불만은 잔뜩 나왔지만. 어둠 속에서 걷는 사람도 힘들지만, 그 시커먼 어둠을 몇 시간이고 봐야 하는 시청자들도 눈의 피로를 호소하는 상황.

방송의 분위기를 한 번 환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한세아가 슬그머니 나를 불러세운다. 하기야 전투가 없어서 발걸음을 서두른답시고 좀 오래 걷기는 했지. 시청자들이 아니라 내게 한 말인 줄 알고 반응할 뻔했네.

 “롤랑? 우리 잠시 쉬었다 가는 게 어때?”

 “흠, 오래 걷기는 했네. 마력으로 마킹해둔 장소 중에 쉴만한 곳 있어?”

 “조금만 더 가면 양 갈래 길이 나오는데 왼쪽이 막다른 길이야.”

나름 모험가로서의 경험이 쌓여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막다른 길에서의 휴식을 주장하는 그녀. 모험가라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세아는 모험가보다 방송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가 이런 사소한 것도 성장한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꾸물거리는 어둠 속에서 잔뜩 뿔이 난 시청자들에겐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사회에 불만이 좀 많은 시청자가 있었는지 포인트 배팅을 하다 말고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했거든.

 “어허, 포인트를 걸라고 했지 누가 싸움을 걸라고 했어? 간만에 하우스 좀 열어주니까 아주 정신을 못 차리지? 결국, 30층에 도달하면 누구 말이 맞는지 어련히 드러날 텐데 뭣 하러 채팅창을 흐려.”

막다른 길을 등지고 적당히 평평한 곳에 모포를 깔고 앉으니 자연스럽게 앓는 소리가 나오는 일행들. 그 사이로 한세아가 피곤하지도 않은지 입을 열심히 움직여 시청자들을 훈계하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다.

방송할 땐 저렇게 시청자들을 쥐락펴락하는 프로페셔널한 전문 방송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다, 전투할 때도 모험가 평균 이상의 컨트롤 실력을 지녔으면서 그 속은 관음에 미쳐있는 음습함 가득 이라니.

인간은 입체적이라는 말을 온몸으로 주장하는 것 같지 않은가?

약간의 소란 속에서 휴식을 마친 우리는 30층을 향하여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30층이라 해도 극적으로 바뀐 건 없네.”

 “똑같은 동굴이니까. 몬스터 말고 바뀌는 게 없어서 몇 층인지 헷갈린 적도 많아.”

그레이스의 감상대로 그녀들이 처음 와 보는 30층은 그다지 볼 게 없었다. 동굴은 여전히 어둑하고 공기는 퀴퀴하고 눅눅했으며 통로는 비좁았으니까. 가상현실 게임이 아니라 PC 게임이었다면 배경 복붙이나 몬스터 돌려막기 논란이 있을 수준.

그러거나 말거나 시청자들은 이제 곧 누가 포인트 빈털터리가 될지에 모든 신경이 쏠려 있는 것 같았다. 시야 한구석에 띄워 둔 한세아의 방송 창이 엄청나게 활발해졌거든.

채팅으로 싸우는 악질 시청자들도 있었지만, 시청자 대부분은 끝없이 이어지는 동굴의 어둑한 화면을 보고 잠시 다른 짓을 하고 있었나 보다. 그러다 30층에 도달했다는 한세아의 목소리에 후다닥 돌아온 거지.

그런 한세아에게 슬쩍 시선을 보내니 내 시선을 알아차린 그녀가 자연스럽게 파티의 리더로서 명령을 내리기 시작한다.

 “올라오는 데 시간을 많이 썼으니 주변을 탐색하는 걸 우선으로 하죠.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할 장소를 찾고, 본격적인 탐색은 내일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면 전투도 최대한 회피할까?”

 “네, 언니. 30층에는 장님뱀이 난입해 올 수 있다고 했으니 거점으로 삼을 수 있는 공터나 막다른 길을 찾은 다음, 그곳으로부터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죠.”

불합리한 내용은 딱히 없는 정석적인 오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횃불형 마도구를 든 나와 내 곁에 서 있는 그레이스를 바라본다.

마력으로 마킹이 되지 않은 미지의 계층, 그러니까 한세아의 미니맵을 아직 사용할 수 없는 곳에서는 오롯이 그레이스의 감에 의지해야 하니까. 잠깐의 의견 교환 끝에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우리 일행들.

그런 우리를 구경하는 시청자들이 미지의 30층에 대한 기대감을 다양하게 표출하기 시작했다. 가장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역시나 30층의 네임드 몬스터인 장님뱀.

[남부도시용병발닦개님 10,000원 기부!]

불침번 서다 인터넷 하느라 장님뱀 발견 못 하고 리셋하면 십만 원

-제발텐트치기전에 장님뱀난입

-근데이거 밤에 방송끈상태로 뱀잡는거아님?

-도네한샛기 백퍼 불침번설때 인터넷보다 기습당했구만

-야너두?야나두 현실성때문인지 바깥 NPC들은 야습졸라잘함 10련들

-그래서 기어다니는 길쭉한 골렘 ㅇㄷ?

전투 중 난입할 수 있으며, 야영지 인근을 지나다니다 냄새를 맡고 찾아올 수 있다. 그 뜻은 순조롭다 못해 평온하기까지 한 한세아의 방송에 처음으로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레이스와 아이린을 눈나, 마망이라 부르며 간이며 쓸개까지 다 빼줄 것 같이 구는 시청자들이지만 일단 한세아가 고생하는 모습은 또 보고 싶다는 거지. 예쁘고 착해서 마음을 줬다 해도 결국은 가상현실 속 NPC. 한세아가 고생 끝에 누군가 죽거나 다치더라도 리셋만 하면 살아날 테니까.

그런 흉흉하면서도 나사 하나는 빠진 것 같은 시청자들의 채팅 속에서, 우리 앞에 나타난 첫 번째 적은 동굴거미의 무리였다.

 “앞에 있는 건 동굴거미… 그런데 30층이라 그런지 수가 좀 많네. 발소리를 들어보니 대략 12마리쯤 되고 피해 갈 수 있는 길이 없어. 싸워야 해.”

 “그러면, 내가 먼저 마법을 사용해서 놈들을 떨어트릴게.”

 “길이 좁으니 제가 나설 순 없겠군요. 혹여나 위로 올라와 접근하는 놈이 있다면 제가 담당하겠습니다.”

짧게 의견을 교환한 뒤 앞으로 나아가자 내 귀에도 들려오는 가드득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 동굴거미의 뾰족한 다리가 동굴의 벽면과 천장을 긁어내는 특유의 소리가 좁은 통로를 꽉 채우고 있었다.

동굴거미 두 마리도 나란히 있기 힘든 좁은 통로에 12마리씩 뭉쳐 있으니 징그러움이 배가 된 기분. 마법을 맞고 떨어진 세 놈이 뭉쳐 길을 막아버리니, 이 정도로 좁으면 사냥하기는 편하지만 보기에는 좀 더 괴롭다.

 “우와… 이 정도면 자기들끼리 얽혀서 아예 못 움직이는 거 아니야?”

 “으음, 진짜 징그럽긴 하다. 앞에 놈들은 길을 막게 놔두고 뒤부터 쏠게. 시체가 사라지면 다가올 것 같아서 기분 나빠.”

짧게 스킬 명을 외친 한세아가 제 마법이 이루어 낸 광경을 구경하며 나와 비슷한 감상을 말한다. 비좁은 통로에 뚱뚱한 배 부분이 덜걱 걸려 길쭉한 다리를 마구잡이로 바둥대는 거대한 거미의 모습.

나와 한세아 말고도 뒤에서 경계 중인 일행들도 혐오감을 느끼기엔 충분한 모습이었다. 그 기분 나쁜 모습을 혼자 볼 수만 없다고 생각한 걸까? 방패를 들고 통로를 막아선 내 어깨너머로 휙- 날아가는 카메라 드론.

-텐련아 그걸 왜 클로즈업하는데

-어우 거미다리 얽힌거 봐라 무슨 돈벌레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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