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4화 (124/175)

 “여, 여종업원분이 남성분을 데려가네요?”

 “뭐, 그런 가게니까.”

그 모습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아이린. 아무리 순진하다 해도 이 가게의 여급들이 매춘한다는 건 비밀도 아니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겠지.

그렇게 한 모험가가 다 먹지도 못한 요리를 테이블 위에 잔뜩 남겨놓고 사라지자 우리 일행들의 술안주는 자연스럽게 그 남자가 되었다. 술에 취한 모습이 꼴불견이라든가, 여급에게 홀랑 벗겨질 미래를 떠드는 게 아니라 내가 내건 의뢰에 관한 이야기로.

 “그러고 보니 골렘의 마석, 아직 밝혀진 게 없죠?”

 “듣기론 내가 길드에 의뢰했더니 마탑도 몇 개 사들였다고 해. 연구는 이제 시작 했을 테니 뭐라도 밝혀내겠지.”

그렇게 별다른 의미 없는 이야기가 마구잡이로 쏟아진다. 이미 분위기에 취했는데 술이 한잔, 두잔 들어가니 술에 익숙하지 못한 일행들이 금세 취하는 건 당연한 이야기.

말없이 고개를 테이블에 처박으려 드는 케이든을 세우고, 배시시 웃으며 여신교의 경전 같은 걸 반복해서 중얼거리는 아이린에게 고인 물을 마시게 하니 정신이 없네. 그래도 다행인 건 그레이스와 한세아는 두 사람에 비해 비교적 덜 취했다는 점.

 “…케이든은 숙소를 모르니 위에 방 하나 잡아주고, 아이린은 신전으로 데려다주면 되겠지.”

 “내가아! 내가, 언니 데려다줄게!”

숙취 디버프는 시야가 일렁거리는 것이라고 말하더니, 알딸딸한 취기는 제대로 구현이 되었나 보다. 말릴 새도 없이 살짝 비틀거리며 일어난 한세아가 아이린을 부축한 채 신전으로 향한다.

그야 뭐, 나와 그레이스가 함께 있는 걸 노린 것이겠지. 이쯤 되면 오기가 약간 생기는데.

여급 하나를 불러 2층의 빈방 하나에 케이든을 대충 처박아 둔 뒤 가게 밖으로 나온다. 노을을 보며 들어왔는데 어느새 높게 떠 있는 달을 보며 찬 바람을 쐬니 슬그머니 팔을 휘감아오는 그레이스.

나 또한 적당히 취기가 올랐겠다, 여자를 안은지 오래되어 카메라가 있든 말든 신경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천천히 그녀와 발맞춰 걸었다. 시발, 플레이어님이 좀 엿보겠다는데 어쩌겠어.

 “롤랑, 어디로 갈까?”

 “…내 숙소로.”

 “…같이?”

팔뚝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만끽하며 밤의 거리를 걷는다. 가챠 캐릭터의 버프 덕일까, 술자리에서 그렇게 술을 마셨는데 그레이스의 몸에서는 고기 냄새나 술 냄새 따위는 나지 않았다.

다만 부드럽고 달콤한 향기만 코끝을 간질일 뿐.

그레이스와 함께 아침을 맞이하고 길드로 향한 다음 날. 한세아가 만면에 미소를 가득 지은 채 함께 길드로 들어오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봤구나. 독한 년.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간에 빈대도 안 남는다고 했던가?

한 번 선을 넘어버린 한세아는 가상현실 포르노에 푹 빠지기라도 했는지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그녀의 카메라 드론이 발정이 난 짐승의 눈동자처럼 나를 주시하기 시작했다고 봐야겠지.

그야 상대가 가상현실의 NPC라면 주저할 게 없긴 하겠지. 단풍잎 세상에서 하루 수천 수만 마리의 몬스터를 사냥하고, FPS 세상에선 부활하는 병사가 되어 적군을 수천 번 쏴 죽이고, 사연을 가진 악당 보스를 아이템을 얻기 위해 수백 번 레이드 하듯이.

게임 속 NPC를 상대로라면 총과 바주카포를 난사해 학살도 벌이고 롤러코스터에 태워 영원히 놀이공원에 감금도 하는 게 게이머인데 고작 엿보기에 죄책감을 느낄 리 있나. 그 덕에 카메라는 마치 섹무새와 비슷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거 야스 각이냐?

당연히 카메라가 말을 할 리 없지만, 무언의 의지가 전해진다고 해야 할까.

그레이스와 단둘이 있을 때만이 아니라 마탑에 방문해 골렘의 마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샤를롯 캐번디시를 만났을 때, 창잡이 릴리 뎁 같이 알고 지내는 여자 모험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진득하게 달라붙는 카메라.

 “자! 오늘은 드디어 30층에 가는 날이네. 황금 골렘을 넘어선 거대 보석 골렘이 나올까, 아니면 골렘과 전혀 관련 없는 동굴의 보스 몬스터가 나올까?”

그렇다고 해서 나의 염원을 이루어 줄 탑 등반에 문제가 생긴 건 또 아니다. 방송이 꺼지면 마치 포르노 사이트를 처음 발견한 사춘기 중학생처럼 구는 한세아지만, 방송이 켜지면 탑 등반 세계 1위를 진지하게 노리는 게이머 겸 방송인 한세아로 되돌아가니까.

그녀가 왜 현실에서 포르노를 즐기지 않고 히어로즈 크로니클에서의 쾌락에 집착하는지, 그것도 하필 내게 집착하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탑 등반에 딱히 방해되는 게 아니라면 이를 아득바득 갈며 막아 세울 필요는 없겠지.

 ‘그래, 시발. 실컷 보고 나 여기서 꺼내줘라….’

살이 뒤룩뒤룩 찐 기분 나쁜 아저씨가 엿본다면 또 몰라, 게임 개발자가 온 힘을 기울여 디자인한 미녀 캐릭터와 버금가는 미녀가 그 상대다.

특수 강도도 얼굴이 예쁘면 천사라고 부르며 무죄를 주장하는 팬클럽이 생기는 게 인간의 본성인데 고작 몰래 엿보는 것쯤이야 참아 넘길 수 있지. 고작 그 정도에 수치심을 느끼고 분노를 하기에는 이 기묘한 판타지 세상에서 10년간 겪은 일이 너무 많다.

그렇게 생각을 놔버린 채 시작된 30층의 공략. 길드의 테이블에 모여 30층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롤랑! 30층의 터줏대감은 어떤 녀석이야?”

 “동굴의 30층에서 나오는 놈은 장님뱀이다. 이름 그대로 눈이 없는 커다란 뱀인데, 시력이 없는 대신 후각이 매우 뛰어나서 멀리서도 사냥감을 포착하고 찾아오지. 아마 그레이스가 놈을 발견하는 것 보다, 녀석이 우리를 발견하는 게 빠를 거야.”

내 설명에 눈을 둥그렇게 뜨는 일행들. 지금까지 모든 몬스터는 예외 없이 그레이스의 탐색에 걸려들었다. 그 덕에 은신하고 있든 자기들끼리 몰려다니고 있든 선공권은 늘 우리가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이야기가 다르다니 놀랄 수밖에.

하지만 당연한 이야기다. 일반 몬스터도 아니고 보스… 아니, 시나리오에 나오는 게 보스라면 장님뱀은 네임드 몬스터지. 언제까지고 유저가 네임드 몬스터를 상대로 스펙상 우위를 점할 순 없지 않겠는가?

태생 5★ 캐릭터가 아무리 사기적이라 해도 풀 파티가 달려들어야 하는 네임드, 보스 몬스터보다 유저의 단일 캐릭터가 강하면 게임의 의미가 없잖아.

 “그러니 장님뱀과의 전투는 피할 수 없어. 녀석은 우리 냄새를 맡고 찾아올 테고, 그레이스가 녀석을 발견하는 건 우리에게 달려드는 와중일 테니까.”

 “놈의 영역에 접근하게 되면 반드시 싸워야 한다는 뜻이군요.”

 “맞아. 우리가 다른 몬스터와 전투를 하는 중에 올 수도 있고, 휴식하기 위해 캠프를 차리는 와중 올 수도 있지. 그러니 다들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다행인 점은 놈이 별다른 능력 없이 튼튼하고 빠르기만 하다는 점이지.”

길이가 대충 8~10m쯤 되는 커다란 뱀. 영화에 나올 법한 거대한 뱀은 냄새를 맡고 인간을 찾아내 그대로 들이 받아버린다. 그 들이받는 힘이 무식하리만치 강하다는 점과 그 뒤 이어지는 죄이기 공격이 아주 강력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무서울 게 없지.

그 커다란 몸으로 쾅! 들이받는 게 무섭긴 하지만 30층에 도달한 모험가의 탱커라면 자세를 낮추고 받아낼 수 있을 수준이거든. 애초에 그걸 못 막아내면 30층에 와서는 안 되는 거고. 게임적으로 생각하면 탱커가 일격을 못 버티면 스펙 부족이라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최초의 그 무식한 돌진만 막아내면 튼튼함과 거대함 말고는 무서울 게 없는 녀석이다. 굳이 말하자면 돌진 패턴이 딱 1회 추가된 골렘 같은 녀석이지. 전위가 제대로 막아 세우기만 하면 별다른 위험 없이 사냥할 수 있는 상대.

 “돌진과 휘감기 말고는 위협적인 게 없이 그저 튼튼한 놈이니까, 길쭉한 골렘을 상대한다고 생각하면 편할 거다. 하다못해 동굴거미나 흡혈박쥐는 머리 위에서 덮치려는 시도라도 하지, 장님뱀은 그런 것조차 없이 우직하게 앞에서 들어오니까.”

 “…그렇게 말하니까 조금 쉽게 느껴지네.”

-길쭉한 골렘 ㅇㅈㄹ ㅋㅋㅋㅋㅋ

-그래서 골렘 마석 아직도 모아놨냐고 335891번 물었다

-이게 태생 6★의 위엄이냐?

-다른건 몰라도 우리파티 데려가면 볼링핀처럼 쓰러질듯

-팩트)어차피 장님뱀 말고 시나리오 보스가 나올 것이다

정보를 원하는 시청자들을 위해, 마치 인터뷰를 하듯 내 앞에 카메라를 세워둔 한세아. 그 덕에 내 설명을 들은 시청자들은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하긴, 10층도 20층도 보스가 나왔는데 30층 보스가 없으면 섭섭하지.

그것도 아래와 달리 정체불명의 떡밥만 흘리고 간 골렘이 21층부터 등장했다면 더더욱. 뿔늑대와 오크 사냥꾼의 강화 버전 만월늑대와 오크 족장이 나온 것처럼 뱀 보스가 나올 것인가, 아니면 떡밥을 뿌리고 간 골렘의 강화 버전 보스가 나올 것인가. 이 두 가지 의견이 채팅창에서 어지럽게 대립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난리 통을 방송인 한세아가 그냥 지나칠 리 없지.

 “자자, 이렇게 시끌벅적한데 오래간만에 판 좀 깔아 볼까?”

-세아랜드 간만에 문 좀 여나? 히어로즈 크로니클에선 처음이네

-그동안 포인트 두둑히 모아놨는데 간만에 ㄱ?

-두둑히(X) 두둑했었던(O)

-아무튼 따면 되는거라고~ 나는 잃지 않는다고~

-간만에 베팅하려니 좀 쫄리네

저쪽 세상에서도 방송을 오래 볼수록 쌓이는 포인트가 있는지 시청자들을 살살 자극해 판을 까는 한세아. 인벤토리를 점검하는 척 홀로그램을 토도독 두드리더니 아주 간단한 두 개의 선택지를 시청자들 앞에 내놓는다.

[30층의 메인 시나리오 보스는?]

1. 장님뱀 등 기존 동굴의 몬스터 종류 - 47.2%

2. 골렘 등 새로운 미궁의 몬스터 종류 - 52.8%

그 즉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분홍과 하늘색 게이지. 워낙 간단한 선택지다 보니 외국인 시청자들도 재미 삼아 포인트를 걸기 시작하는 것 같다. 채팅 사이사이로 번역체 말투나 영어, 러시아어 채팅이 와르르 늘어났거든.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배팅을 하는 시청자들을 보며 한세아가 씨익 웃는다. 마치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다못해 장작을 더하기라도 하려는 듯.

 “아, 그러고 보니 간만에 포인트 도박장 열어서 갱신을 안 해놨네. 포인트 구매 상품에 구독자 이모티콘 이런 거 말고 히어로즈 크로니클이랑 관련된 걸 넣어 볼까? 예를 들자면 전에 했었던 질문권 같은 거.”

-그레이스눈나 쓰리사이즈 질문 가능?

-모험 후에 일행들이랑 친목다지는 영상 풀어달라고

-어느새 언니동생 하는 사이가 된 건지 궁금하긴 해

-내 2156299154포인트를 전부 가져가도 좋아… 사복 보여조 응애…

-다들 시간 빌게이츠들이라 그런지 포인트 징하게도 모아놨네

그렇게 욕망에 가득 찬 포인트가 그득히 쌓이는 것과 동시에 우리는 길드를 나서 탑으로 향하는 게이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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