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철하고 무뚝뚝한 일류 모험가를 연기하는 케이든조차 입술이 살그머니 벌어질 정도로 몰입하고 있으니 말 다 했지. 그렇게 묘한 긴장 속에서 골렘과 한세아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리는 미궁의 수호자. 허나 그대들이 어디로 침입했는지 알 수가 없군》
“미궁이라니? 여기는 탑인데.”
-이건 또 무슨 떡밥이래
-아뇨 뚱인데요
-골렘쉑 팔다리 다 뜯길까봐 협상 테이블 들고오네
-탑, 마왕, 미궁 나올거 다 나오네 게임계의 짬통인가?
-이 와중에 골렘 목소리 뭔데…
《아니, 이곳은 미궁이다. 우리가 수호자로 임명받아 평생을 지켜 온 장소》
“그 미궁이라는 게 탑이랑 연결되어 있다니까?”
-얘는 왜 황금대가리를 상대로 토론을 시작함?
-아니 시발아 이겨먹으러 들지 말고 정보를 얻으라고
-왜 컨텐츠가 스토리 감상에서 골렘 납득시키기로 바뀜?
-딱 봐도 수금각이네 시청자들 꼴받게해서 도네 유도하는거네
-치과 가서 진료비 낼래? 아니면 여기에 도네해서 이빨 건강 유지할래?
[어떻게별명이그18님 10,000원 기부!]
아가리에 지퍼 채우고 골렘 설명을 듣자 개PPAK통련아
아득바득 이를 가는 시청자들을 무시한 채 대화를 나누는 한세아. 그렇게 골렘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보니 문득 생각난 게 있었다. 경계하는 척 한세아의 방송창과 인터넷 창을 보고 있었는데… 슬슬 황금 골렘이 등장한 지 10분이네.
홀로그램 창에서 시선을 떼고 골렘을 바라보며 슬쩍 한세아의 곁으로 다가갔다. 다들 골렘의 이야기에 푹 빠진지라 명백히 긴장이 풀어진 모양새. 애초에 양팔을 잃어 다리만 남은, 느려터진 골렘이 무얼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을 하는지 다들 자세가 느슨해지고 긴장감이 풀린 게 보인다.
양팔을 잃은 골렘이 무얼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세상을 침공한 마왕 때문에 만들어진, 최후의 보―》
“마왕? 거기도 마왕이 침공했다는 거, 어, 어어어?”
“여신께서, 가호하시길!”
바로, 자폭이다. 애초에 대화하는 도중 이야기가 끊기고 내부에서부터 밝은 빛이 터져 나왔으니 자의에 의한 자폭은 아닌 것 같지만.
콰아앙―
동굴에 메아리치는 폭음과 함께 골렘의 황금 몸체가 마력 폭탄이 되어 번쩍거리는 불빛과 함께 강력한 폭발을 일으킨다. 시청자들을 위해 시스템 창을 만지고 있었는지 허공에 슬쩍 손가락을 꼼질대다 반응도 못 한 한세아.
다행인 점은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그저 듣기만 하던 아이린이 곧바로 반응해 보호의 성법을 펼쳤다는 점이려나.
굉음과 함께 일어난 뿌연 먼지가 사라지자 눈앞에 드러나는 건 박살이 난 미로. 바위 골렘을 처리했을 때처럼 매끈한 벽면이 다시 동굴의 거친 재질로 되돌아가기 시작한다. 보호막이 걷히자 먼지 속에서 어색하게 눈을 내리깐 일행들이 내 주변에 슬그머니 모여든다.
“내가 무슨 말 하려는 지, 알지?”
“…네.”
“아무리 상대가 이성이 있고 대화가 통한다지만, 너무 방심했어. 적어도 몸을 빼거나 반응 정도는 했어야지.”
곧바로 반응한 아이린을 제외하고선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는 그녀들. 이런 걸 보면 역시 5★은 별값을 한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사제가 민첩형 검사와 탐색꾼 궁수보다 반응 속도가 빠른 걸까.
아니면 탑의 존재라 해서 불경하다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은 건가?
그렇게 황금 골렘은 21층에선 풀 수 없는 떡밥과 열쇠 모양 마석 하나를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러면 내가 10골드 15실버씩 주고 산 바위 골렘의 마석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거야?
―(스압) 대략적인 스토리 요약.txt
[여신이 등장한 한세아의 방송 화면.JPG]
[황금 골렘과 대화를 나누는 한세아.JPG]
일단 그18 방송에서 본 내용 토대로 살을 덧붙인 거고
그 때문에 일부분은 클리셰적인 뇌피셜이지 오피셜이 아님.
[확대하여 가슴골이 부각된 여신.JPG]
축복받은 숲에서 등장하는 여신이 탑에 대해 말해주는데
여신이 만든 세상 바깥에서 갑자기 쳐들어온 게 마왕임.
이세카이에서 넘어온 마왕이 여신의 나와바리를 침략하는 중이고
그 침략을 위한 전초기지가 게임의 주 무대인 탑인 거지.
[더욱 확대하여 가슴만 보이는 여신.JPG]
여신은 유일신이자 창조주답게 생명의 여신 같은 느낌으로
몬스터 또한 여신의 피조물이라 신성력에 치유를 받음
전에 인기 글 갔던 언데드 아니면 몬스터도 힐이 된다는 글처럼.
하지만 마왕은 여신과 반대되는, 뭐라 해야 할진 모르겠는데
아무튼 짝퉁? 도플갱어? 기생수처럼 사람 몸 차지하는 거?
아니면 해외 공포 영화에 사람 잡아먹고 사람인 척하는 외계인 같이
생명체를 모방하지만 생명체가 아닌 종족에 가까움.
그래서 탑의 몬스터는 바깥의 몬스터를 따라 하지만 시체가 없다.
여신피셜 마왕의 목적은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대지라 했으니
아마 탑 바깥의 생명체를 다 처먹고 마석 뱉는 몬스터로 대체할 생각으로 보임
[자폭하는 황금 골렘.JPG]
그리고 이번 21층에 등장한 골-든 자폭병.
탑에서 미로를 찾는 게 낡아서 치매에 걸린 게 아닌가 싶지만
골렘도 마왕의 침공 운운하는 걸 보면 대충 클리셰적인 게 하나 떠오름
[스스로를 최후의 보루라 주장하는 황금 골렘.JPG]
이 마왕이라는 게 히어로즈 크로니클에만 온 게 아니라
다른 세상도 침략해서 처먹고 복제를 한 상태로 다닌다는 것임.
21층 동굴 속에서 개 뜬금없이 미궁이 나오는 것도
마왕쉑이 골렘이 수호자인 세상 날로 먹었다가 생긴 일 같음.
세 줄 요약
1 마왕은 여러 차원을 침략하여 수집하고 다닌다
2 마왕한테 메차쿠챠 당하면 마석호문클루스 같은 비생명체가 됨
3 탑 내부엔 덜 소화된 다양한 이세카이가 이벤트처럼 등장할 것 같음
┗이세카이 여러개면 이벤트 만들기도 쉽긴 하겠네
┗미궁 나왔다고 바로 이세계라 단정짓네
┗ㄹㅇ 판타지적으로 생각하면 과거 황금기의 유산일 킹능성은?
┗그럼 마왕의 2차 침공인데 그럼 신성력포대자루가 말을 했겠지
┗주머니보다 크다고 포대자루인거임? 미친새낀가 ㅋㅋㅋ
┗왜 마왕의 침공을 막기 위해 싸이버거가 필요하다고 말 안함?
┗마왕으로부터 세상을 구하려면 많은 싸이버거가 필요합니다
‘다양한 이세계라… 설득력이 있네.’
히어로즈 크로니클 게시판에 올라온 장문의 인기 글. 서로 누가 맞네 아니네 뇌피셜이네 망상이네 하며 수백 개의 댓글이 지저분한 싸움을 시작했지만 나는 글 작성자의 추측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히로인즈 크로니클을 배경 삼아 만들어진 히어로즈 크로니클이니까 그런 쪽으로 드리프트를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거든.
한 60층에 갔더니 갑자기 폐허가 된 도시가 등장하고, 거기에서 동료 추가 영입 이벤트가 벌어지면서 5★ 멸망한 세상의 안드로이드(여성형) 이런 게 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히어로즈 크로니클의 개발자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히로인즈 크로니클이란 그런 게임이었다.
아무튼, 여캐를 팔기 위해 온갖 차원이 뒤섞이는 젖팔이에 진심인 게임.
“롤랑, 식사 준비가 다 되었어요.”
“그래, 고마워.”
“별말씀을요. 경계를 서는 것보단 요리를 하는 게 훨씬 편하고 즐거운걸요.”
장문의 글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으니 고소한 향기와 함께 등 뒤에서 아이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황금 골렘을 처치… 했다기보단 이야기를 듣다 말고 떠나보낸 뒤, 탑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고블린과 코볼트 무리가 동굴의 광장에서 시끄럽게 깩깩거리고, 동굴거미와 흡혈박쥐가 그 커다란 덩치로 비좁은 통로를 틀어막은 상황.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끔 등장하는 패널에 마력을 흘려 넣어 봤지만 나오는 것은 바위 골렘과 강철 골렘뿐. 우리와 이야기를 나눌 정도의 지성을 지닌 황금 골렘은 그렇게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마석은 어디에 쓰는 걸까? 전에도 말했지만, 색이 빨간색이잖아. 분명 동굴 맵에서 사용을 할 것 같은데. 황금 골렘이 주고 간 열쇠 모양 마석은 누가 봐도 문을 열 때 써야 할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