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붕대를 감은 중년 남성 모험가와 양 뺨이 상기된 청년 모험가. 화면 속에서 남자가 등장했다는 점에 아쉬워하는 시청자들이었지만 이어지는 증언에 곧바로 채팅창이 달아오른다.
바위 골렘 다음에 강철 골렘과 황금 골렘이 나오다니, 지금까지 한세아가 한 뻘짓이 얼마나 우스운가.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참 하이에나 같은 녀석들이야. 골렘을 주저 없이 박살 낸 건 한세아가 아니라 나라는 점 또한 그들에게 있어선 중요하지 않다.
“안녕, 롤랑.”
“안녕하십니까.”
방송을 보며 평소보다 느긋하게 걸어오니 나보다 먼저 길드에 도착해 있는 일행들. 이후 한세아까지 와서 테이블에 앉자 가장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 의외로 아이린이었다.
“어제 신전에 들어온 모험가들은 오늘 아침에 전부 나가셨어요. 부상 후유증도 없다며 마탑으로 간다고 말씀하시고 나가시던데요.”
“마탑인가, 확실히 이야기할 만하겠군요.”
“황금 골렘으로부터 문양이 뻗어 나갔다면, 명백히 마법사의 영역일 테니까.”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 뒤 언제나처럼 탑을 탐험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슬픈 중년 마법사를 위한 이끼 채집은 추가 물량을 부탁받았고, 길드에서는 이끼와 함께 채집할 수 있는 광석과 버섯 의뢰를 수주했다. 장비를 점검하고 한세아의 인벤토리에 있을 캠핑 도구와 식재료를 확인한 뒤 허리춤에 걸린 랜턴과 모험가 패 또한 확인했다.
그렇게 언제나처럼 시작되는 모험.
“오늘은 어제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21층에서 골렘을 찾아본 뒤, 골렘을 상대로 시간을 끌어 볼 예정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강철 골렘이 나온 뒤에는 바위 골렘을 처리해도 황금 골렘이 등장하는 것 같아.”
“나중에 등장한 녀석만 붙들고 있으면 더 강하고 새로운 골렘이 나오는 방식이라… 되게 독특하고 흥미롭군요.”
모험가 길드를 나서 일행들과 함께 탑으로 향했다.
…동료들이 너무 강해서 퀘스트가 정상 진행이 안 되는 RPG 게임이라니. 히어로즈 크로니클 게시판에서 왜 한세아의 별명이 18로 굳어지는 중인지 대충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고.
마음 같아서는 곧바로 기믹을 발견해 골렘을 발견해 10분간 버틸 생각이었지만….
“그 많던 골렘이 다 어디로 갔을까? 설마 21층에 있는 골렘은 다 잡았나? 22층에 가자고 해야 하나?”
[오늘의속담사전님 10,000원 기부!]
가는날이장날, 개똥도약에쓰려면없다, 또뭐가있지
“니가 물어보면 어떻게 해? …근데 저 두 개 뜻이 좀 다르지 않아?”
한세아가 절찬리에 놀림을 받는 그대로, 그 수상한 벽면 패널이 보이질 않는다. 하기야 신전에 실려 갔던 그 모험가 파티도 모험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발견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루에 한 개 찾으면 많이 찾는 거니, 오늘은 못 찾을 수도 있겠는데?
동굴거미 무리를 사냥하고, 벽을 살펴보다 이끼를 채집하고, 코볼트 무리를 만나 전투를 벌이며 동굴의 어둑한 길을 걷기를 한참.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두근거리던 일행들의 눈이 실망으로 가득 찰 즈음 환호성에 가까운 그레이스의 목소리가 동굴에 울려 퍼진다.
“차, 찾았다!”
바닥에서 솟아오른 얇고 넓은 석순 뒤에 있어 못 보고 지나칠 가능성이 큰 위치. 석순 그림자 너머에 있음에도 역시 궁수는 탐색꾼이라는 듯 귀신같이 찾아낸 그레이스. 그녀의 활약에 점점 식어가던 채팅창이 활기를 되찾는다.
-역쉬눈나다, 믿고 있었거등요
-한세아 개빠졌네 미리 찾아놓고 방송키던가
-황금 골렘까지 20분남았나 가속은 안됨?
-버티기 던전 존나 극혐인게 스펙 좋아도 시간 다 채워야함
-기다리다 숨막혀 뒤지겠으니까 빨리 진행좀
한세아 또한 시청자만큼 기대하고 있었는지 거의 달리다시피 앞으로 튀어나와 그 넓적한 패널을 향해 손바닥을 뻗는다. 이제는 동굴처럼 익숙해져 버린 마력의 패턴이 벽면을 타고 퍼져나가 미로가 생성되도록.
마력이 퍼져나가자 석순과 종유석이 녹아 사라지듯 천장과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고 벽면의 울퉁불퉁한 바위가 매끈하게 변한다.
“이제 골렘만 만나면 되네. …만날 수 있겠지?”
“지난번에 두 시간 가까이 골렘을 찾아 돌아다녔던가?”
“으윽, 말이 씨가 된다는데 그런 말 하지 마.”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중얼거린 그레이스에게 툭 던지듯 현실을 일깨워주었다. 미로가 등장하는 것도 랜덤인데, 골렘과 만나는 것 또한 랜덤이거든. 미로의 중앙에 있다든가 숨은 표식이 있으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건 발견하지 못했다.
애초에 미로의 지형도 다 파악 못 했으니까 만날 때까지 싸돌아다녀야 하는 게 현실. 불길한 미래를 상상했는지 듣기 싫다는 듯 귀까지 막는 그레이스를 보며 흐흐- 웃고 있자 등 뒤에서 한세아가 나를 툭 후려친다.
“롤랑, 진짜 불길한 이야기 좀 하지 마….”
“뭐, 걷다 보면 언젠가는 만나겠지. 언젠가는.”
“아, 진짜아―!”
패널에 마력을 보내고 있으면서 이쪽이 하는 말을 들은 걸까. 아무래도 똥손이라 불리기까지 하다 보니 게임과 관련해서는 미신을 꽤 믿는 모양.
하기야 히로인즈 크로니클을 비롯해 다양한 게임의 유저들, 특히 뽑기가 메인 콘텐츠인 가챠형 캐릭터 수집 게임을 하는 유저들은 미신에 진심인 편이었지. 역사의 위인을 모에화한 뽑기 게임의 유저들은 묘지나 유적지, 박물관에 가서 인증하는 기행도 벌이는 수준이니까.
물론 나는 그 돈으로 뽑으면 진즉 나온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언제나 부족한 건 행운이었지 지갑이 아니었으니까.
“골렘이나 찾으러 가자. 너무 불길한 소리는 하지 말고, 앞장서.”
생각보다 미신을 많이 믿는지, 아니면 똥손들 특유의 촉이 왔는지 농담 한 번에 입이 비죽 나와서는 투덜거리듯 말을 하는 한세아. 그녀의 재촉 아닌 재촉에 다들 얼굴에 미소를 한가득 품으며 자연스럽게 미로를 헤쳐나간다.
몬스터도 함정도 없이 어딘가에 있을 골렘을 찾아야만 하는 지루한 여정이 이어지고―
“드디어 나왔네. 진짜 한 시간을 찾아 헤맬 줄이야.”
“이게 다 롤랑 때문이야.”
한 시간에 걸쳐 시청자들에게 온갖 구박을 다 들은 한세아의 앞에 드디어 시커먼 바위 골렘이 모습을 드러냈다.
※
모험가들의 이야기는 거짓이 아니었다.
“이렇게 보니까 골렘이 불쌍하네요.”
“저것도 이렇게 팔다리를 전부 떼어버릴 생각이야?”
미로를 한참 걷다가 드디어 발견하게 된 바위 골렘. 쓰러트리지 않고 10분을 버틴다는 조건은 너무나도 쉬웠다. 애초에 내가 나서지 않아도 5분 안에 쓰러트릴 수 있는 적인데 고작 10분을 못 버티겠는가.
단단한 것 빼면 그 어떠한 강점도 없는 놈인지라 저렇게 된 거지. 팔다리 없이 바닥을 나뒹구는 바위 골렘으로부터 시선을 떼고 강철 골렘을 바라보았다.
처음 바위 골렘이 등장했을 때 10분이라는 시간을 위해 우리 일행들은 온갖 다양한 실험을 시도해보았다. 마력을 뿌려보기도 하고, 등판이나 몸체 어딘가에 뭘 넣는 구멍이 있는지 찾아보기도 했다.
“전투 경험은 나중에 쌓고, 저것도 제압한다.”
“괜찮겠어? 내가 배운 마법은 대지 계열뿐이라 금속은 조작 못 해.”
“저 정도는 그냥 힘으로 잡을 수 있어.”
그러다 계속 버둥거리는 게 귀찮아 팔다리만 부숴버렸지. 관절 부분에 한세아의 마법을 걸고, 내가 방울토마토 꼭지를 따듯 바위 골렘의 사지를 뽑아 버린 것이다.
부위 파괴 기믹이 존재하기에 팔과 다리는 부숴버려도 골렘의 몸체는 멀쩡한, 그러니까 체력이 100%인 상황. 바위 골렘이 살아만 있으면 시간이 카운트되는지 10분이 흐르자 어둑한 미로 저편에서 그어어- 하는 소리와 함께 강철 골렘이 뚜벅뚜벅 다가온다.
눈대중으로 보면 바위 골렘보다 훨씬… 까지는 아니고 살짝 덩치가 큰 녀석. 시커먼 바위 골렘과 달리 몸체의 색이 차가운 회색 계열이다.
“조금 크고 매끈해서 붙잡기 귀찮을 것 같은데, 괜히 때렸다가 부서지면 또 동굴을 헤매야 하니까 조심해야지.”
-조심해야지(몬스터가 유저를)
-혹시 탑이라는 게 모험가로부터 숨어 사는 마왕의 은신처임?
-아무리 봐도 롤랑이 침략군인데 이거;;
-4★따리 칼질엔 흠집도 안나는데 그걸 맨손으로 찢어발기네
-곰은 사람을 찢는데 롤랑은 골렘을 찢네
내 말에 반응하는 건 바닥에 나뒹구는 바위 골렘을 10분간 동정하던 시청자들. 참으로 예술적인 딜각을 만들어내는 놈들인지라 골렘에게 감정 이입을 한 채 한세아를 놀려 먹고 있더라. 바위 골렘의 자갈 같은 마누라와 조약돌 같은 자식이니 뭐니 하면서.
허공을 보며 웃음을 터트리는 꼴을 보여줄 뻔해서 웃음을 애써 참아내고 느릿한 강철 골렘을 향해 나 또한 걸어갔다.
성인 남성이 가볍게 달리는 수준의 속도니 모험가들이 도망을 치긴 쉽겠네. 별다른 원거리 공격 능력도 없으니 등을 돌리고 전력으로 질주하면 골렘들을 따돌릴 수 있다는 뜻. 그러니 어제 그 모험가들이 한 대 처맞고 도망칠 수 있었나.
“우와, 골렘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면 롤랑에게 실례일까?”
“으음, 불쌍한 건 아니지만 뭐랄까… 신전의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처럼 보이네요. 불경한 공간에서 이렇게 마음이 풀어지면 안 되는데.”
패턴 또한 똑같은지 내 앞에 서자 묵직한 주먹을 들어 올려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는 강철 골렘. 바위 골렘과 똑같은 자세, 똑같은 궤적으로 머리를 노리는 주먹이 망치처럼 떨어져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