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1화 (111/175)

-마탑 돌아가는 꼴 보면 스트레스는 이빠이 받긴 하겠다

-내가미안해잘못했어머리똑바로감을게간지럽다고막긁지않을게돌아와줘모발아

길드를 통해 의뢰를 넣지 않는 건, 그런 이유였나….

나와 케이든, 아이린은 그다지 변한 게 없었다. 케이든의 검술은 장비의 문제가 아니라 적응의 문제였고 아이린의 성법은 장비에 좌지우지되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마탑에서 받은 보상과 금화로 구매한 장비는 대부분 그레이스와 한세아의 것.

한세아가 받게 된 것은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붉은 마법사의 망토였다. 초보 모험가가 겉멋에 취해 고블린 밥이 되기에 딱 좋은 게 망토였지만, 21층의 모험가가 고작 망토 자락에 걸려 넘어질 리 없겠지.

 ‘망토에 뭔 스탯이 덕지덕지 붙어 있긴 한가 본데… 저 짧은 걸 밟고 넘어질 일은 없겠지.’

그레이스가 받게 된 것은 마법이 걸린 반장갑과 화살통. 난전 중 화살이 미끄러지지 않게 해 주는 기능과 화살촉에 시약을 발라주는 기능이 있다며 한세아와 그레이스가 황급히 시장에 가서 연금술사에게 화살촉에 바를 포션을 몇 종류 구매해왔다.

 “다들 푹 쉬었지? 한나에게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탑의 마법사에게 채집 의뢰를 받은 게 있어. 그러니 오늘도 21층을 돌며 사냥과 채집을 병행할 거다. 한나의 새로운 마법도, 그레이스의 화살도 시험해 봐야 하니까.”

 “게이트가 벌써 지어진 거야?”

 “듣기로는 협상을 하면서 미리 지어놨다던데. 마석만 꽂으면 바로 활성화되도록.”

이번에도 역시 유저를 위한 것인지 퀘스트 보상을 수령한 지 꼴랑 하루 만에 뚝딱 지어진 20층 게이트. 관리를 위함인지 10층으로 향하는 게이트의 옆에 지어졌는데, 이게 은근히 걱정된다.

10층, 20층을 넘어 100층까지 간다면 게이트가 대충 9~10개. 이 게이트들을 어떻게 짓고 어떻게 관리하려나. 게이트를 지을 공간이 잠시 걱정되었지만 그건 게이트로 돈을 버는 마탑이 알아서 할 이야기다.

길드에서 적당한 채집 의뢰를 몇 개 더 수주한 뒤 우리는 길드를 나섰다. 20층의 게이트 소식이 벌써 퍼졌는지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모험가들.

 “저길 봐, 저 여자들이….”

 “벌써 두 번째인가. 행운 따위가 아니라 실력이라는 뜻이겠지?”

 “파티에 빈자리가 없는 게 좀 아쉽네.”

20층 게이트로 향하는 모험가들은 전부 중급 모험가인 만큼 한세아의 얼굴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 애초에 검은 머리의 미녀가 흔한 것도 아닌데, 검은 머리 미녀가 회색 머리 미녀와 꽁꽁 싸맨 미녀 수녀님과 함께 걸어가니 알아보기도 쉽겠지.

게이트가 개방된 첫날이라 그런지 은근히 많은 사람과 함께 발맞춰 도시를 걷는다. 건실한 시민들은 제 가게 문을 열고, 모험가들은 탑과 게이트를 향해 흘러가는 아침의 일상.

게이트 앞을 지키고 있는 마법사에게 한나의 패를 확인시킨 뒤 익숙하다는 듯 게이트 안으로 진입한다. 도시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고, 다시 숨을 들이켜자 코끝을 간질이는 청량한 숲의 공기.

지난번 다녀온 축복받은 숲과는 비교도 할 순 없지만, 동굴과 비교하자면 여기가 천국이다.

 “흐으- 공기 좋네. 미리 숨 좀 잔뜩 쉬어놔야지.”

 “동굴의 공기에도 익숙해지는 게 좋아. 그다음은 늪지인데, 거기도 공기가 축축해서 숨쉬기 좋은 건 아니거든.”

 “으엑, 너무 희망을 꺾는 이야긴데 그건….”

눅눅하고 퀘퀘한 공기를 떠올렸는지 울상이 된 그레이스. 자연스럽게 앞장서는 그녀를 뒤따라가며 방패를 고쳐잡았다. 20층에서 21층을 향해 가는 그 짧은 거리일지라도 언제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그렇게 가는 길목에 엎드려 있던 이끼늑대를 두 마리 잡고 별다른 일 없이 21층으로 향했다. 달라진 점이라면 게이트 덕분에 아주 이른 시간에 21층에 진입한다는 것과 한세아가 새로운 마법을 배웠다는 점이려나.

 “진형은 지난번처럼 유지하자. 새로운 장비랑 마법에 익숙해져야 하니까 21층에서 더 올라가진 말고 게이트 주변을 돌아다니며 길을 각인할 거야.”

 “한 번 지나온 길은 기록할 수 있다고 했던가?”

한세아의 가벼운 브리핑과 함께 지난번과 다른 방향을 향해 내가 앞장섰다. 한 손에는 방패, 다른 손에는 횃불형 마도구. 은은한 불빛이 어둡기 그지없는 동굴을 미약하게나 밝히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준다.

아무래도 한세아는 스킬을 실험할 겸 21층의 게이트 주변을 갱신할 생각인가 보네.

키보드와 마우스로 플레이하는 게임이 아닌 만큼 동굴의 모든 곳을 직접 걸어가 미니맵을 100% 갱신할 순 없지만, 20층에서 21층으로 올라오는 게이트 주변은 확실히 밝혀 두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와, 근데 초원도 숲도 그렇지만 동굴 분위기 장난 아니다. 이런 퀼리티로 공포 게임 만들어졌으면 방송인들 막 공포 게임 방송하다가 진짜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사람 나오는 거 아니야?”

-거대박쥐랑 거대거미만 해도 충분히 무서웡

-ㄹㅇ 여기서 몬스터가 아니라 귀신이 나오면

-외계인납치고문의 결과라 그런지 장난 아니긴 함

-궁수나 도적 없이 왔다가 머리위로 거미가 툭 떨어지면 ㄷㄷ

-최초의 가상현실겜이 판타지라 진짜루 다행임 ㄹㅇ

케르르륵―

동굴 저 너머에서 고블린 무리가 동굴거미 무리라도 만났는지 기묘한 메아리만이 울려 퍼지는 와중 시청자들과 수다를 떠는 한세아. 아무래도 주변이 어두컴컴하다 보니 긴장감을 떨쳐내기 위한 것인지 입이 멈추질 않는다.

하기야 공포 영화는 가짜라는 걸 알면서 봐도 스크린이나 화면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되지 않던가.

피부로 감촉이 느껴지고, 코끝으로 퀴퀴한 공기가 밀려 들어오고, 동굴 저 멀리에서 코볼트나 고블린의 단말마 같은 게 짧게 울려 퍼지며 오감을 자극하는 데 현대에서 곱게 자란 여자가 긴장하는 건 당연한 이야기.

 “저 앞에, 동굴거미의 무리가 있어. 수는 대략 일곱 정도.”

 “이번에 새로 배운 마법을 먼저 쏴 볼게. 화살은 내가 마법을 쓴 다음에 쏴 줘.”

 “알겠어.”

갈림길을 몇 번이고 지나 처음으로 만나게 된 것은 또다시 동굴거미.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좁은 동굴 천장에 전부 달라붙을 수 없어 세 마리는 바닥에, 두 마리는 벽에, 나머지 두 마리는 천장에 달라붙은 모양새였다.

허여멀겋고 기다란 다리가 다각다각 움직이며 동굴 벽을 긁어 묘한 소음을 내자 여성진의 얼굴이 기묘하게 찌푸려진다. 1m짜리 허여멀건 거미가 기다란 다리를 움직이는 모양새는 공포는 몰라도 혐오감을 끌어내기에 충분했으니까.

 “―에어 블래스터!”

-나중에 그냥 폭렬마법도 쓰셈

-이거볼떄마다 마법사안하기를 잘했다고생각해

-황혼보다어두운자여피보다붉은자여

-너무 생략하는거 아니냐 틀딱쉑아

-생략한다고 딴지거는거면 다 외운 틀딱이라고 인증하는 거 아님?

무영창 시스템 따위는 없는지 얼굴이 벌게진 채 새로 배운 스킬의 이름을 외치는 한세아. 순수한 마력의 덩어리였던 매직 미사일과는 달리 어둠 속에서 눈으로 확인하기도 힘든 바람의 덩어리가 동굴 천장을 긁으며 앞으로 날아간다.

퍼- 엉―

초급 마법과는 격이 다른 중급 마법의 위력. 바람의 덩어리가 거미의 몸체에 직접 때려 박힌 것도 아닌데 휘몰아치는 돌풍이 천장과 벽면에 있는 거미들의 외피를 긁으며 바닥으로 떨어트린다.

역시, 마법사 하면 화력이지. 동급의 캐릭터 중 화력 하나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직업이 마법사 아니겠는가. 같은 원딜이라고 궁수한테 데미지로 밀리면 누가 마법사를 하겠어?

 “지들끼리 엉켰다!”

 “저 정도면 전부 화살로 처리할 수 있죠?”

 “그야 당연하지.”

천장에서 아래로 뚝 떨어진 동굴거미와 벽면을 타고 미끄러져 굴러떨어진 녀석들. 덩치가 1m에 다리도 길쭉한 놈들 일곱 마리가 그 좁은 동굴 바닥에 뭉치게 되니 난리가 났다. 서로를 깔아뭉개고 다리끼리 얽히고….

확실한 건 정말 보기에 징그럽다는 거지.

그 모습을 본 그레이스가 황급히 나서 활시위를 당기자 어깨너머로 휙휙 지나가는 화살이 깔끔하게 거미의 집게 턱을 부수고 머리에 박혀 든다. 어린 시절부터 사냥꾼으로서 숲에서 뛰놀았다 해도 저건 좀 징그러울 수밖에.

 “저 정도면 화살촉에 시약을 바르지 않아도 되겠는데.”

 “대신 마력 소모가 훨씬 크네. 대충 매직 미사일의 2배가 넘을 정도?”

 “파괴력은 한 5배는 되어 보이니까 상관없지, 뭐.”

 “고블린이나 코볼트를 만나면 사용하지 말아야겠다.”

커다란 덩치로 깔아뭉개는 것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는 동굴거미들은 별다른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일곱 개의 마석으로 변했다. 중층의 모험가를 넘어트릴 수 있는 강력한 힘과 가죽 갑옷은 가볍게 뚫는 집게 턱과 독침이 있다 해도 접근을 할 수 있어야 써먹지.

인간이 도구를 사용해 저보다 강력한 짐승들과 맞서 싸웠듯, 잘 짜인 모험가 파티의 위력은 이토록 대단했다. 6★ 탱커고 5★사제고 간에 일단 마법사 하나에 궁수 하나가 아무 피해 없이 몬스터 한 무리를 사냥할 수 있으니까.

 “마석 챙기고, 이동하자. 마력은 문제없지?”

 “고작 한 번 썼는데 뭘. 연속으로 사용한다면… 다섯 번 정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 망토가 마력을 충당해 주거든.”

마력을 전부 사용한다면 지쳐 쓰러지겠지만 중급 마법을 연속으로 다섯 번이라, 생각보다 강한데? 평범한 마법사들이 왜 공격 마법이 아닌 걸 섞어서 사용하겠는가. 플레이어가 느낄 수 있는 뽕 맛을 위해서인지 일반적인 마법사보다 월등한 능력치다.

하긴 하나부터 열까지 별 붙은 동료에게 맡기기만 하면 성미에 안 맞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판타지 세상에서 모험하는 데 본인의 힘으로 쟁취해야 의미가 있지.

동굴거미는 바닥에 떨어트려서, 흡혈박쥐는 날갯짓을 방해해 그레이스가 마비 화살로 몸통을 노릴 수 있도록. 새로 익힌 마법을 사용하며 우리는 21층의 게이트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이번 채집 의뢰, 이런 이끼를 말하는 건가? 색상이나 특징을 구체적으로 들은 건 없고?”

 “다양하게 사용해 볼 생각인지 그냥 이끼를 채집해 달라고 하던데.”

마석과 이끼를 인벤토리에 한가득 챙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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