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5화 (95/175)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옷!”

 “무슨 일이시죠?”

 “수, 숲에 들어가실 땐, 흐악, 이걸 가지고….”

헥헥거리는 병사가 내민 것은 모험가의 증표 비슷하게 생긴, 검과 방패가 음각된 금속 패.

어지간히 급히 달려왔는지 숨을 몰아쉬느라 패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질 않는다. 마음씨 착한 일행들이 병사의 이어질 설명을 기다려주자 얼굴을 시뻘겋게 붉힌 상태로 설명을 이어나가는 병사의 모습이 안쓰럽다.

 “숲에서 나오실 때, 이쪽으로 무조건 돌아 나오시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숲을 둘러싼 모양새로 병사들이 거주하고 있으니 어디로 향하시든 간에 이 패를 제출하시면 됩니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가, 감사하긴요. 제 업무인걸요.”

감사 인사를 하고 패를 받아드는 한세아의 사무적인 미소에 인중을 헤벌쭉 늘리는 병사. 군인이라는 게 중세 판타지나 현대나 별다를 게 없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숲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긴 그레이스가 앞장서며 나와 나란히 걷고, 나머지 일행들이 뒤따라 오면 케이든이 호위하는 모양새. 모험가가 되어 파티를 짠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익숙하고 노련한 모습이다.

 “자! 서브 퀘스트 시작이고, 퀘스트 목표는 축복받은 숲에서 오크의 흔적을 탐색하는 거네. 진행도가 퍼센트로 표현된 걸 보니 미니맵을 밝히다 보면 채워질 것 같아. 오크가 있을지 없을지는 나도 모르겠네. 퀘스트 창에서는 그냥 ‘숲을 탐색하자’라고 되어 있거든.”

그렇게 한세아의 설명과 함께 우리는 막사를 지나 숲 안으로 들어갔다.

…무언가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는 케이든과 함께.

축복받은 숲은 말 그대로 축복을 받은 숲이었다.

 “…이게 숲이라면, 탑 내부에 있는 건 마굴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은데.”

 “이게 여신님의 은총….”

나무는 우거졌지만, 통행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오솔길을 걷는 기분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빽빽한 나뭇가지는 무성하게 하늘을 가렸지만, 잎사귀 사이로 따스한 햇볕이 내려와 시야가 환히 트여 관리가 잘 된 공원처럼 느껴지네.

거기에 숨을 들이쉴 때마다 상쾌한 공기가 폐부를 가득 채우고 귓가에는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오니 몬스터가 등장하는 우거진 숲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저 열매들, 전부 식용 열매인데… 좀 알이 굵네? 채취해도 상관없나?”

 “세상에, 산딸기 덤불에도 신성력이 미약하게 서려 있네요.”

나무 열매를 쪼아 먹는 자그마한 새, 보석 같은 산딸기가 가득한 덤불, 나뭇가지를 타고 오가는 다람쥐 따위의 자그마한 소동물까지.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디즈니 영화에 나오는 공주님의 숲 같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일행들이 워낙 미녀다 보니 새끼 사슴 같은 것만 다가오면 딱 맞겠는데.

-다람쥐? 도토리? 넥읍읍? 잡으면 경험치? 뿌?려?

-탑의 숲도 멋졌는데 여기랑은 비교가 안되네

-시발 뇌가 게임으로 찌들어서 동물보면 사냥부터 생각하는 놈들이 있어

-갑자기 분위기 힐링게임

-신성력이 가득한 숲에 오래 머물면 버프같은거 받나?

 “아이 씹,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다람쥐를 잡아 죽이자는 말이 나와? 진짜 뇌수까지 0과 1로 이루어진 거야, 뭐야?”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시청자들은 탑 밖에서의 사냥에 대해 궁금해할 뿐이었다. 워낙 현실적으로 자유로운 게임이다 보니 탑이 아니라 바깥에서 시작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거든.

병사로 입대해서 기초 무술을 배우는 플레이어부터 용병단에 들어가 전쟁터로 향한 플레이어까지. 그러다 보니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 한세아의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의 머릿속은 흉흉하기 짝이 없다.

영화 속 CG보다 아름다운 숲을 보고선 하는 말이 다람쥐 죽이면 경험치를 주냐는 질문이라니, 참….

 “작은 동물들이 사람을 겁내지 않는 걸 보면 주변에 딱히 오크가 있을 것 같지는 않네.”

 “그런 것도 알 수 있나요?”

 “네, 뭐. 동물들도 학습이라는 걸 하니까요. 사냥꾼이 자주 다니는 길목이나 덫과 올무 정도는 기억하거든요. 사람한테 겁을 먹지 않는다는 건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사냥꾼을 못 본 거죠.”

채팅창에서 살벌한 대화가 오가는 동안 그레이스와 아이린이 도란도란 대화를 나눈다. 하긴 오크가 이 근처에 있었으면 덤불이 헤집어져 있고 토끼나 다람쥐 따위가 숨어서 다니겠지. 흔적을 지울 생각을 하지 않는 무식한 놈들이니까.

평화로운 숲속의 모습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는지 탐색보다는 소풍에 온 것처럼 표정이 밝은 일행들. 소곤거리며 잡담을 나누지만 딱히 위기감 따위는 느껴지지 않아 제지하지 않았다.

방심한 것처럼 보여도 오크가 이쪽을 알아차리기 전에 그레이스가 먼저 탐지 할 테니 상관없겠지.

 “일단 미니맵 밝히니까 2%쯤 찼네. 조금씩 차다가 어디 위치로 가면 한 번에 훅 차는 방식인가? 또 지팡이 들고 그레이스 언니 옆으로 가야겠네…. 롤랑이랑 그레이스 두 사람 붙여두려고 했는데, 까비.”

그렇게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등 뒤에서 한세아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필이면 한세아의 방송 대신 웹 서핑을 조금 하고 있었는데 퀘스트 창을 열어 본 모양.

나와 그레이스의 커플링에 수상할 정도로 진심이 된 한세아가 뒤에서 고민하는 동안 일행들은 숲의 오솔길을 걷는 중 자연스럽게 넓은 공터에 진입했다.

시야가 시원하게 확 트이는 둥글고 넓은 공터. 시야를 가리는 나뭇가지 없이 탁 트인 하늘에서 한 줄기 햇볕이 내리쬐는 게, 버섯집 같은 걸 하나 딱 두면 동화책의 삽화로 쓸 수 있을 모양새였다. 당연히 오크 따위의 흔적은 하나 찾아볼 수 없는 평화로운 공간.

 “일단 이런 공터를 마력으로 표시를 좀 해 둘게.”

 “오래 걸리면 잠시 휴식할까?”

 “어? 어어, 아니,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아.”

슬그머니 지팡이를 들고 공터의 중앙으로 나아가는 한세아. 당연한 이야기지만 스태프 끝에 마력을 미약하게 모으는 저 행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퀘스트 창에서 공터에 도착하자 퀘스트 진행도가 10% 정도 확 차올랐을 뿐이지.

그래도 일행들 속인답시고 생각은 좀 했는지 지팡이 끝에 마력은 담았네. 굳이 스킬 이름을 외쳐야 발동이 되니까, 마력만 모으고 외치지 않으면 마력이 응집된 걸 응용한 것 같다.

-게임 실력이 아니라 사기를 치는 실력만 늘어나네

-지팡이들고 쇼하는게 어디 교주님같으셔요 ㅎ

-퀘스트창이라는이름의권능

-공터 하나 10%에 걸어다니면 쬐끔 차니까 대충 8공터임? 자고와도 되것네

-근데 공터8개 다뒤졌는데 암것도안나오면 산책시뮬레이션이잖아.

평화로운 분위기에 일행들의 분위기는 느슨하게 풀어졌지만, 채팅창의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감탄을 한다 해서 그게 5시간, 10시간 내리 이어질 순 없으니까.

산새와 작은 동물들이 아름답게 뛰노는 풍경은 좋지만, 정작 숲에서 오크가 등장하지 않으면 방송을 보는 반나절 내내 나무 구경만 하다 끝나게 된다. 시청자들이 반길 리 없고 한세아로서도 탐탁지 않은 흐름이지.

보고 있던 동영상을 대충 닫아버리고 다시 한세아의 방송 창을 켜자 채팅창이 산책 시뮬레이션이니, VR 등산기니 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에이, 설마 아무런 일 없이 숲을 확인했다~ 이러겠어? 한 50%쯤 되면 뭐라도 하나 튀어나오겠지. 이제 10% 채웠는데 벌써부터 너무 설레발 떨지 마.”

지팡이를 들어 올린 채 시청자들과 소통을 하는 한세아도 약간 불안한 얼굴이다. 숲의 분위기를 보면 수풀 속에서 아기 사슴 밤비 따위가 튀어나올 것 같지 오크 따위가 나올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그녀의 불안감을 귀신같이 감지한 시청자들 또한 설득력 없는 한세아의 말을 비웃을 뿐이었다.

 ‘진짜 아무것도 안 나오나…?’

불길한 상상이 현실이 되어간다고 해야 할까, 퀘스트 10%가 20%, 30%를 넘어 점점 차오르는 동안 만난 것은 몬스터가 아닌 작은 동물들뿐. 다람쥐, 토끼, 사슴, 깃털이 화려한 작은 새, 이빨도 없는 실뱀―

해가 중천에 떠서 네 번째 공터에 앉아 식사를 준비할 때까지 만났던 모든 것 중, 가장 위험했던 게 윙윙거리는 벌집이었다.

 “숲이 참…, 평화롭네. 오크는커녕 대형 동물이나 육식 동물의 흔적도 보이질 않아.”

 “그러게요. 의뢰를 나온 게 아니라 여행을 온 것 같아요. 이런 숲이라면 아이들이 들어와서 놀아도 문제가 없을 텐데.”

 “그러니까 왕족들이 병사들까지 사용해서 지키는 중이겠지. 꽤 오래 걸었는데도 되려 몸이 상쾌한 것 같아.”

오늘 하루 방송을 말아먹을까 봐 조금 불안해하는 한세아와 달리, 탁 트인 공터에서 불을 피우고 점심을 준비하는 일행들의 표정은 해맑기 그지없었다.

몬스터를 사냥하는 걸로 먹고 사는 모험가라 해도 본질은 아리따운 여인들. 달콤한 마카롱을 먹고 수다를 떨고 쇼핑을 하는 걸 즐기듯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귀엽고 작은 동물을 구경하는 데 기분이 나빠질 리 없지.

지금도 호기심 많은 다람쥐 몇 마리가 겁도 없이 아이린에게 슬그머니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스튜에 넣을 콩과 곡물가루의 냄새 때문인 것 같은데 코를 씰룩거리며 주저 없이 어깨 위로 올라타는 다람쥐.

 “어머? 이 녀석들,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사람에게 익숙한가 본데요?”

 “으음, 숲에 요양차 온 귀족 아가씨들이 돌봐준 경험이 있으려나?”

배시시 웃는 아이린의 어깨 위에서 열심히 콩을 갉아 먹는 다람쥐. 그 평화로운 풍경에 다들 긴장이 느슨해졌지만, 그레이스가 벌떡 일어나면서 순식간에 상황이 바뀐다.

 “누군가 수풀을 헤치면서 오고 있어.”

하필이면 식사를 할 때 누군가 왔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공터에서 만나는 게 오히려 편하다고 생각 해야 할지 모르겠네. 그레이스가 내려 둔 활을 쥐고 수풀 너머를 노려보자 일행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다.

나 또한 내려두었던 무구를 집어 들고 앞으로 나선 상황. 일단 상대가 오크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지만, 긴장을 풀지는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이 숲에 오크가 아닌 누군가가 있다면 임무를 수행 중인 기사 혹은 요양 온 고위 귀족들뿐이다. 하지만 한세아의 서브 퀘스트를 생각한다면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 벌어질 수 있지.

추장 오크가 피라미드를 사용해 차원 문을 열고 왕국의 축복받은 숲을 침공한 게 상식적인 일은 아니니까. 여기사를 범하지 않는 오크라든가, 차원 문을 사용하는 오크라니. 정리해서 말하니까 더 이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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