뀌에에에에엑―!
귀신을 본 어린아이처럼 혼비백산해서는 바닥을 나뒹굴며 비명을 지르는 오크 주술사. 그 못생긴 얼굴에 눈물이 주륵 흐르는 걸 보니 측은한 마음이 들 정도다.
“좀 더 덩치가 크고 피부색도 좀 다른 것 같은데… 저러고 있으니까 좀 불쌍하네. 아, 혹시 그 영화 알아? 영화 리뷰어가 올렸던 것 중에 자기 주변에 다가온 생명체가 죽기 시작하는 영화 있던데 그거 생각난다.”
-스킬 하나 쓰니까 장르가 바뀌네
-이젠 뛰지도 않고 다 죽여버림
-방송볼때마다 6★ 배알꼴려뒤지것다잉
-확실히 색도 짙고 문양도 다르고 아래도 두둑한듯
-오크들 빤스대신 바지좀 입혀주면안되냐 진짜루
관찰하는 척 바닥을 나뒹구는 오크 주술사를 조심히 들어 올려 카메라 앞에 들이민다. 확실히 색도 덩치도 문신도 다른 녀석이네. 오크들의 피부가 짙은 녹색이라면 이 녀석은 어두운 갈색이 섞인 수준으로 피부색이 훨씬 어둡다.
“들어 와! 정리 끝났어!”
더 관찰해야 마법사도 아닌 내가 뭘 알겠는가. 어느 짓궂은 시청자의 채팅 때문에 눈에 들어오는 건 더러운 가죽 빤스 뿐인데. 따라서 소리를 크게 쳐 목책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일행들을 안으로 불러들였다.
문은 이미 내가 부숴둔 상태라 아주 손쉽게 오크 부락 내부로 진입해 오는 일행들. 그 와중에 메이드 마리는 바닥을 나뒹구는 오크의 부산물들을 챙기기 시작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내 쪽으로 망설임 없이 직진하는 게 내 손에 잡혀 있는 오크 주술사가 신기한 모양. 하기야 산 채로 몬스터를 붙잡고 있는 꼴을 어디 가서 볼 수 있겠는가.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오크 주술사는 반항할 기력도 없는지 축 늘어진 상태.
“잠시만 붙잡고 있어 주세요, 롤랑. 문신이 조금 다른 것 같아서 기록해두고 싶네요.”
“그 정도야, 뭐.”
샤를롯이 내 손에 붙잡힌 오크 주술사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이 일행들은 텅 비어버린 오크 부락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안전지대처럼 넘쳐나는 목재로 지은 오두막이 가득한 마을.
물론 오두막 내부에 고기나 가죽 따위가 쌓여 있는 일은 없었다. 20층의 숲에서 백날 사냥을 해 봐야 짐승들은 고기와 가죽 대신 마석을 남기고 사라질 테니까. 대신 가끔 보이는 모험가의 피 묻은 장비들이 일행들의 안색을 어둡게 만들 뿐.
고블린에게 당하는 모험가가 있듯이 오크에게 당하는 모험가도 있는 거지. 피 묻은 갑옷과 금 간 투구 따위를 보면 내용물이 어디로 갔을지는 뻔하다.
“롤랑, 마을 안쪽에 누군가 있는 것 같은데.”
“안쪽에?”
그렇게 오두막을 뒤지다 갑자기 귀를 쫑긋 세우는 그레이스. 그 이야기를 듣자 메이드 마리가 귀신같이 다가와 주머니에서 밧줄을 꺼내 들고선 오크 주술사를 꽁꽁 묶는다. 지능이 높은 만큼 헛된 반항은 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기력이 다한 것인지 얌전히 축 늘어져 있는 녀석.
무슨 누드모델 스케치하듯 오크 주술사의 문신을 그리기 시작한 샤를롯과 마리, 그리고 호위를 자처한 케이든을 놔두고 그레이스의 등 뒤를 따라간다. 샤를롯의 중얼거림이 퀘스트를 진행하게 했듯 이번에는 그레이스가 퀘스트를 진행하게 했으니까.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오크 사냥꾼을 확인해 보자]
[오크 사냥꾼들이 정보를 전달하는 부락이 있다. 이곳의 주술사는…?]
[특이한 오크 주술사가 다스리는 부락. 내부에 누군가가 감금되어 있다.]
“감금이라니, 오크한테 누가 납치라도 당한 거야?”
-롤랑도 납치당하더니 오크도 납치를 하네
-오늘 테마는 납치물임?
-오크한테 잡혀있는 누군가? hoxy…?
-퀘스트가 좀 음습한 구석이 있네용
-음습한건 채팅창을 도배하는 시청자들이 아닐까?
그레이스가 탐지하고 한세아가 퀘스트 창으로 확인한 상황. 그녀의 뒤를 따라 가장 커다란 오두막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주술사의 오두막은 딱 봐도 ‘주술사’라는 세 글자가 떠오르는 모양새였다. 말린 약초와 나뭇가지가 벽에 걸려 있고 마석 몇 개가 나뒹굴며 커다란 냄비가 모닥불의 잔해 위에 걸려 있는 널찍한 공간.
하지만 감금되어 있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아 주변을 둘러보자 귓가에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려온다.
“…기, 누구….”
“아래인가.”
발밑에서 들려오는 아주 작은 목소리. 그와 동시에 탁, 탁하고 무언가 둔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아주 미약한 힘으로 문이나 창살 따위를 두들기는 것 같은 맥 빠진 소리였다.
내 중얼거림에 오두막 바닥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는 일행들. 고작해야 오크가 만든 오두막이기에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는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제 딴에는 최대한 숨긴 건지, 아니면 숨길 생각도 없었는지 약초 선반을 밀어내니 토굴의 입구가 드러났으니까.
“롤랑, 오크가 원래 이렇게 땅굴을 잘 파?”
“목책을 세운 것도 그렇고, 바깥의 녀석들보다 손재주도 좋은 것 같은데.”
“일단 어두우니까, 라이트 마법 사용할게.”
제대로 된 공구도 없이 목책을 세우고 오두막도 지었는데 덩치 커다란 오크들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비스듬하게 파여 있는 토굴쯤이야 어떻게든 만들었겠지. 한세아가 지팡이 위로 만들어낸 빛 구슬을 횃불 삼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투박하지만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는 통로는 우리가 들어와도 흙 천장이 무너지거나 흔들리는 일은 없었다. 마을 밖까지 연결된 건 아닌지 얼마 걷지 않아 보이는 토굴의 끝.
감옥 같은 느낌으로 만들었는지 막다른 길에 나무 창살을 박아 넣은 게 전부인 단출한 모습이었다. 모험가가 아니라 어디 시골 농부나 동네 꼬맹이만 데려와도 탈출할 수 있을 수준의 간단한 감옥.
“모험가, 입니까…?”
문제가 있다면 그 나무 창살 너머에 있는 여자의 상태가 아주 심각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폭력에 당했다던가 오크에게 윤간을 당했다던가― 하는 의미가 아니다.
“세상에… 한나 양? 인벤토리에서 그릇을 꺼내주시고 물을 조금만 만들어 주시겠어요?”
퀭하게 패인 눈 밑과 가뭄이 일어난 논밭처럼 잔뜩 갈라진 입술. 피골이 상접했다는 말이 이보다 어울리기 힘든 꾀죄죄한 몰골은 그녀가 이 토굴 안에서 얼마나 오랜 기간 굶주렸는지 나타내고 있었다.
하기야 짐승을 잡아도 고기가 나오지 않는 탑의 내부에서, 포로에게 제공할 수 있는 식사가 어디 있겠는가. 먹을 게 있다고 하면 바깥에 있던 피 묻은 장비의 주인들뿐이겠지.
제대로 된 사정은 모르지만, 상황은 대충 파악이 된다. 모험가들은 오크의 한 끼 식사가 되어 사라졌고 이 여자만이 토굴에 감금당한 거지. 똑똑해진 오크가 음식을 제공했다 해도 인육을 입에 댈 순 없어서 제압당한 채 계속 굶주린 거고.
하지만 여기서 생기는 의문이 참 많다.
“이 여자는 누구인데 이렇게 감금당한 걸까요?”
“애초에 오크가 여자를 감금하고 건드리지 않은 게 더 이상한데.”
“확실히, 폭력의 흔적 따위는 없어요. 그저 식사하지 못해 쇠약해졌을 뿐이네요.”
오크는 참으로 본능에 충실한 몬스터다. 오크 전사들이 하는 꼬락서니만 봐도 알 수 있지. 눈앞에 적이 있으면 가장 가까운 적에게 달려들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자는 원시인이나 짐승에 가까운 모양새.
그 폭력적인 본능이 있는 놈들이 여자를, 생포해서, 건드리지 않고, 감옥에 감금해 뒀다고? 하나의 문장에서 몇 개나 되는 모순이 발견되는 거야. 심지어 다른 모험가들은 날름 잡아먹었으면서.
장비는 전부 벗겨버렸는지 얇은 옷을 입고 있는 여자. 굶주려 퀭한 모습이지만 그 미모의 편린이 남아 있다는 걸 보면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크가 헐벗은 미녀를 건드리지 않고 감금만 해 둔다고?
“일단 데리고 나가자. 아이린, 들고 옮겨도 상관없지?”
“네. 아주 기초적이지만 신성력을 흘려보냈으니 안아서 옮기는 것 정도는 괜찮을 거예요.”
아이린의 확답을 듣고 여자를 품에 안은 채 토굴 밖으로 나간다. 주술사는 샤를롯이 관찰 중이고, 전사와 사냥꾼의 부산물은 마리가 전부 챙겨서 인벤토리에 넣었지. 거기에 인질로 잡혀 있던 정체불명의 여자까지 구했으니 더 확인할 건 없겠지?
그렇게 품 안에 여자를 안고 나가자 샤를롯이 화들짝 놀라 이쪽을 향해 후다닥 달려온다. 오크 주술사보다 오크가 생포한 여자가 더 궁금할 수밖에 없긴 하지.
그 덕에 밧줄로 묶인 오크 주술사는 자연스럽게 케이든이 챙기게 되었다. 관찰만 한 건 아닌지 어째 더 상태가 나빠져서는 반항은커녕 곧 죽을 것같이 색색 숨을 몰아쉬는 주술사.
“확인할 건 전부 확인했고, 목책과 오두막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 징표를 남기면서 안전지대로 돌아가자.”
“그게 좋겠어요. 이 자매님이 정신을 차리는 게 가장 중요할 테니까요.”
“하긴, 왕국의 여기사가 어째서 탑에 들어왔는지 궁금하긴 하네요.”
“…여기사?”
안전지대로 돌아가자는 내 말에 가장 빠르게 반응한 것은 아이린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샤를롯의 말에 토굴에 들어갔던 사람들의 눈동자에 의문이 서린다. 모험가가 아니라 여기사라니, 그걸 어떻게 안 거지?
“아는 사람입니까?”
“아뇨. 모험가들 장비 사이에 왕국 기사의 보급형 갑옷이 섞여 있어서 추측 해 본 거예요. 모험가 중 미녀 한 명을 남겨 놨다기보단, 모험가는 다 잡아먹고 기사 한 명만 남겨 뒀다는 게 더 신빙성 있으니까요.”
왕국의 여기사라니, 왜 오크한테 붙잡혀 있는 거야?
꽤 커다란 오크 부락을 무너트려서 그런지, 아니면 오크 주술사를 짐짝처럼 질질 끌고 가서 그런지 안전지대로 복귀하는 중에는 딱히 오크를 만나지 않았다. 기절한 미녀와 기절한 오크를 질질 끌고 가는 우리를 신기하게 구경하는 모험가들을 몇 명 만났을 뿐.
덕분에 기절한 여자와 오크를 가지고 애먼 짓을 하려는 변태처럼 보일 뻔했지만 뒤따라오는 일행 대다수가 여자인 데다 수녀복 차림의 아이린이 있어 다행스럽게도 시비가 걸리는 일은 없었다.
“흔적은 제가 남기겠습니다. 용병단에서 배워 둔 게 있으니까요.”
“부탁해, 케이든.”
오크는 내가 둘러메고, 여기사로 추정되는 여인은 메이드 마리가 업은 뒤 나무 밑동에 흔적을 남기며 도착한 안전지대. 조금 특이한 색깔의 오크 주술사를 질질 끌고 와서는 기절한 여자를 치료하기 시작하자 경비병들이 당황스러운 눈으로 우리를 쳐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