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6화 (76/175)

20층의 호송을 담당하는 건 당연하게도 중급 모험가. 그들이 위로 올라가는 통로로 마중을 나간 뒤 30층의 안전지대에서 상급 모험가에게 인수인계하겠지. 그러니 20층에서 대규모로 등장한 오크 수십 마리에게 식량 마차를 털리는 건 불가능하지 않다.

 “1층에 내려간 김에 애들 먹일 맥주랑 내 술, 담배도 잔뜩 주문했는데 날이 지나도 마차가 안 오더라고? 그래서 내가 내려왔더니 뭐? 오크한테 마차를 털려? 이 씨발, 개새끼들이 계약을 좆으로 보나….”

그리고 굶주린 짐승이 흉포해지는 건 당연한 이야기. 영역을 침범당했고, 제 것을 빼앗긴 데다 잔뜩 굶주린 5★의 빨간 머리 짐승이 하나.

아무래도 좆된 것 같은데.

…나 말고, 오크가.

20층에 오크 부락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건 생각보다 큰 문제였다.

수십 마리의 오크는 파티를 짜고 돌아다니는 중급 모험가에게 위협적이겠지. 하지만 중급 모험가 수준의 탐색꾼이라면 소란스러운 오크 부락의 기척을 감지하고 피해 갈 수 있다. 문제는 조용히 피해 갈 수 없는 사람들.

그러니까 상층으로 향하는 보급 마차에 문제가 생긴다.

마차가 이동하는 만큼 숲길을 개척하며 최대한 넓고 평평한 곳으로 이동하는 대규모 원정대. 십여 대의 마차가 숲을 뚫고 지나가는 데 소란이 벌어지지 않을 리 없다. 그리고 그 소란스러움을 오크들이 감지 못할 리 없고.

 “생각보다 일이 커지네…. 솔직히 머릿수만 많고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머릿수가 많아서 문제인 거지. 물자를 운송하는 건 효율을 따져야 하니까.”

식량과 식수를 운송해서 위로 배급하는 게 전부 돈 문제다. 1골드 어치의 보급을 하며 10골드의 경비를 지출할 순 없다는 거지. 케이든이 20층까지 짐꾼으로 겪어 본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다.

뿔여우와 고블린으로부터 식량을 보호하는 데 중상급의 용병을 쓸 이유는 당연히 없다. 투구사슴의 돌진을 막아내는 데 30층 이상의 상급 모험가를 데려올 이유도 없고.

10층까지 갈 때는 초보 모험가가, 20층까지는 중급 모험가가, 30층을 넘어서부터는 상급 모험가가. 길드의 이름으로 모험가를 고용하는 일종의 복지 혜택 겸 효율을 추구하는 인선 배치라는 거지.

하지만 여기에 오크 부락이라는 변수가 더해진 게 아주 커다란 문제다.

 “흐음, 분발하지 않으면 위험하겠는데.”

 “위험하다니, 오크가?”

 “아니, 우리 주머니가 위험하지.”

내 엉뚱한 말에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탑에서의 모험에는 익숙해졌지만, 아직 모험가의 삶에는 익숙해지지 못한 햇병아리다운 반응. 그나마 용병 경험이 있는 케이든이 가장 먼저 눈치를 챈다.

 “그러고 보니, 레베카 님이 화가 잔뜩 나셔서 20층에 계셨죠.”

 “맞아. 그 성질머리를 생각해보면 곱게 위로 올라가진 않을걸? 20층을 전부 뒤집어엎는 한이 있어도 자기 술 찾으러 갈 거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 알아차린 케이든과 달리, 아직도 맹한 표정으로 상황 파악을 못 하는 한세아. 그런 그녀를 위해 쉽고 간단하게 간추려서 이야기해 주었다.

 “만월 늑대를 잡아서 이득을 본 것과 달리, 이번 사건에서는 레베카가 보상을 홀랑 챙겨갈 수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막타 스틸 같은 느낌으로.

내 말에 그제야 이해를 했는지 눈이 화등잔만 하게 뜨이는 그녀. RPG 게임에서 NPC에게 보스 막타와 보상을 뺏길 거라는 생각 자체를 못 하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이곳은 현실성을 주장하는 가상 현실 게임.

분노한 레베카가 오크 보스 모가지를 쳐버리면 마탑과 길드에서 주는 혜택은 플레이어인 한세아가 아니라 레베카 용병단이 차지하게 된다.

이게 키보드와 마우스로 두들기는 MMORPG 게임처럼 보스전에 들어간다고 막 포탈이 열리고 새로운 필드가 생기며 길이 막히는 건 아니니까. 사실상 만월 늑대도 내가 일격에 처리해서 그렇지 다른 모험가들도 접근할 수 있는 상황 아니었던가?

 “아니, 진짜로, 잠깐만? 지금 5★ 캐릭터한테 메인 퀘스트 보상 먹튀 당할 수도 있다는 거 아니야? 경쟁자가 5★이라고?”

-롤랑인맥에 이런 부작용이

-주변에 별이 너무 많아도 이렇게 되네ㅋㅋㅋㅋ

-응 20층 게이트는 요금 꼬박꼬박 내고 타~

-뜻밖의 스피드런

-이거 막타뺏겨서 리트하는각 보이는데?

[20층퀘스트보상도둑레베카님 1,000원 기부!]

레베카한테 퀘스트 보상 뺏기면 삼만원

화들짝 놀란 한세아가 시청자들에게 불안감을 호소하지만 짓궂은 시청자들이 들어줄 리 있나. 오히려 놀려 먹을 생각이 가득해져서는 레베카가 얼마나 강할지 자기들끼리 망상을 하기 시작했다.

5★답게 레베카는 강하다. 게임에 비유하자면 나는 퓨어 탱커고 레베카는 근접 딜러, 칼챔이라 불러야 할 사람이니까. 전에 보니까 칼질을 하다 필요하면 아가리에 오러를 두르고 이빨로 목덜미도 깨물던데.

몬스터가 사람을 물어뜯는 게 아니라, 사람이 몬스터 목덜미를 물어뜯어 죽이는 걸 봤으니 짐승 같은 년이라는 이미지가 뇌리에서 벗겨지질 않는 거다. 아무튼, 그렇게 온갖 무기로는 부족해서 온몸에 오러를 두르고 싸우니 나보다 몬스터를 빨리 잡을 수밖에.

 “솔직히 만월 늑대를 사냥한 보상 덕분에 우리 파티의 주머니가 두둑한 거야. 그리고 다른 모험가들과 용병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지. 돈맛을 보고 싶으면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해.”

 “확실히 눈독 들이는 모험가들이 꽤 있습니다.”

 “아, 맞아. 우리 파티에 들어오고 싶다던 모험가들도 꽤 있더라.”

 “진짜예요, 언니?”

 “그럼. 상급 모험가가 안정적으로 이끄는 파티에, 만월 늑대 사건을 해결한 마법사도 있잖아. 게이트 이용비도 내지 않는 건 아침마다 사람들이 봐서 알고.”

오늘의 한세아는 놀람 담당인가. 그레이스의 설명에 불안감도 잊고 신기하다는 듯 설명을 듣는다. 객관적으로 볼 때 우리 파티는 아주 훌륭한 우량 매물이라 볼 수 있으니 당연한 이야기. 게이트 이용비가 무료인 것부터 최고의 파티라고 할 수 있다.

안전이 보장되어 있고, 노동의 강도가 적은데 수입은 올라가며 인맥까지 갖춰진 직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수준을 벗어나 이제 노후를 설계할 단계에 온 중급 모험가들에게 있어 한세아의 파티는 꿈의 직장이라는 단어로도 표현 못 할 무언가에 가깝다.

 “아무튼…. 그렇게 되었으니 오늘은 1층으로 나가 탑에서 장기적으로 머무를 준비를 해 올 생각이야. 길드에 요구해서 20층 이곳을 거점으로 삼은 다음, 한나의 인벤토리에 식재료를 잔뜩 담아와서 장기 탐색을 시작하자고.”

 “장기 탐색이라… 나쁘지 않군요. 탑의 상층을 생각한다면 결국 겪어야 하는 일이니까요.”

케이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일행들. 만월 늑대 덕분에 한몫 챙겼다는 건 몸으로 만끽하고 있지 않던가. 마법이 부여된 장비에 무료 게이트 이용권까지. 오크를 상대하자는 말에 거부감을 느낄 리 없었다.

한세아는 게이머라서, 아이린은 예비 성녀라서, 케이든은 정체를 숨긴 공녀라서. 파티원들을 보면 가장 명분이 적은 게 화전민 마을 출신 그레이스인데 그 부분은 지난번의 캐릭터 퀘스트가 해결해 준 상황.

 “엄청 커다란 오크 같은 게 있으려나?”

 “어쩌면 병사와 기사의 차이처럼 갑옷을 입고 전투 기술이 뛰어난 오크 대장이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오크 말고 다른 몬스터가 오크를 다스리는 일은 없나요? 신전의 기록에서는 떠돌이 오크가 고블린 들을 부하 삼았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그건 바깥의 떠돌이들이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손을 잡은 경우입니다. 탑 내부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렇군요.”

한세아도 퀘스트가 ‘오크 왕국’이라는 건 알아도 보스몬스터의 정체는 모르는지 일행들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텐트가 아니라 마도구가 잔뜩 있는 오두막에서 하루 푹 쉰 뒤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든든히 채웠으니 컨디션이 좋을 수밖에.

오크가 많아졌다지만 그만큼 소란스러워져서 그런지 귀찮은 전투를 피해 통로로 직행. 오크 부락의 등장은 오직 20층에 한정된 일인지 19층의 숲은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숲을 지나 초원을 건너 게이트의 흔적으로 와 드디어 마주하는 바깥 공기.

 “후우, 똑같은 태양인데 기분이 다르네.”

 “그러게요.”

늘씬한 팔을 쭈욱 뻗어 기지개를 켜는 그레이스를 배경 삼아 한세아가 시청자들과 다시 수다를 떤다. 탑 밖으로 나오는 길에 아무런 일이 없다면 좋은 일이지만, 시청자들은 보는 맛이 없어 심심할 테니까.

대화의 주제는 당연하게도 마주하게 될 20층의 보스 몬스터. 그레이스와 아이린과 케이든이 추측하며 대화를 나눴던 것처럼 시청자들과 한세아도 보스 몬스터의 정체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오크 왕국인데 왕이 나오지 않을까? 오크 킹이라, 이렇게 말하니까 보스가 너무 강한 것 같기도 하고.”

-근데왕국이라며 나온게 뭣도없긴해

-퀘스트 이름이 낚시일 킹능성도 있다

-아무튼 오크가 나오겠지 머

-뭐가 나오든 레베카한테 먹히는거 아님? 강제 스피드런행인가

-오늘 하루 식량 사는 중에 보스 목 따이면 재밌겠네

 “어허, 니들은 은근히 나 망하라고 기원을 한다? 설마 하루 만에 보스 목이 따이겠어. 그러면 플레이어가 보상을 못 먹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게임이 너무 재미가 없는데.”

티카티카 이야기를 나누는 한세아에게 다가가 톡톡 어깨를 건드렸다. 얼마나 카메라에 집중했는지 내가 다가오는 것도 눈치를 못 채네.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는 모양새에 씨익 웃으며 모르는 척 말을 이어나간다.

 “뭐야, 왜 그렇게 놀라?”

 “으아, 아하핫! 별 거 아니야, 오크 생각을 좀 하느라.”

조금 많이 놀랐는지 특유의 어색한 거짓말을 내뱉는 그녀. 채팅창이 순식간에 비웃음으로 가득 차니 스스로도 창피한지 아랫입술을 꾸욱 깨무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이러니까 자꾸 놀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채팅창에 있는 짓궂은 시청자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합리화를 하며 한세아를 불러 세운 이유를 말해주었다.

 “같이 시장이나 가자. 인벤토리에 건량을 꽉 채워두는 게 좋겠어. 마법을 쓰면 얼마나 더 옮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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