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무슨 일이야, 잭슨?”
“상급 모험가 롤랑 님의 요청으로 모험가 길드와의 연락을 해야 합니다.”
“마탑이 아니라, 모험가 길드?”
“내려와 계신 안테노르 님께 사정을 설명하러 제 동료가 연구실로 향한 상태입니다.”
편안한 자리에서 꿀을 빨고 있는 만큼 직책이 꽤 높은 마법사인지 경비병이 깍듯하게 사정을 설명한다. 상급 모험가 패와 본 적 없는 몬스터의 부산물을 증거로 제출하였으며 고위 마법사 안테노르와 알고 지내는 사이다… 하고.
마법사들은 이런 게 좀 귀찮다니까. 모르는 일이 벌어지면 일단 설명을 전부 듣고 나서야 움직이려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안테노르 그 영감님 연구실에 부산물을 던져 넣으라고 조언한 건데.
지금쯤 내 모험가 패와 부산물을 들고 간 경비병은 우리 파티가 성벽 밖에 등장한 시점부터, 한세아가 인벤토리에서 부산물을 꺼낸 뒤 건네준 것까지 시시콜콜하게 전부 설명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설명이 끝나면 오크 전사의 부산물과 오크 주술사의 부산물을 살펴보고 나서 나를 찾아오겠지.
“흐음… 알겠습니다. 모험가 길드로 바로 연락하도록 하죠.”
지금 눈앞의 마법사가 경비에게 설명을 다 듣고 나서야 통신용 수정구에 손을 올린 것처럼.
마탑의 고위 마법사 안테노르, 시청자들에겐 5★ ‘진리의 탐구자’ 안테노르.
새하얀 수염이 인상적인 노인네는 여러 의미로 독특한 인물이었다. 물론 세상 모든 마법사는 독특하고 기이한 면이 있지만, 이 영감님은 한술 더 뜨는 사람이라는 뜻이지. 연구하고 싶다면서 탑의 최상층에 처박혀 있는 기행 하나로 모든 게 설명된다.
인간적으로는 모난 점 하나 없지만 정신병에 가까운 호기심과 집착이 무서울 지경인 마법사. 평소에는 그저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보이지만 호기심에 불이 붙는 순간 눈이 뒤집혀버리는 광인.
“롤라앙! 뭘 발견한 것인지 설명 좀 해 주게!”
자유 도시의 돈 많고 힘 있는 길드들이 귀족과 신전에 꿀리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탑의 고위 마법사는 귀족에 버금가는 권위를 지녔다. 하지만 안테노르는 연장자로서의, 고위 마법사로서의 체면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지난번 모험가 길드 내부에서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후줄근한 옷차림. 지엄한 고위 마법사는 온데간데없고 후줄근한 차림으로 공원 벤치에 앉아 있어야 할 것 같은 노숙자 영감이 내게 달려든다.
“이번에는 무얼 들고 온 겐가? 탑 내부에서 새로이 출현한 몬스터라니? 어째서 이놈들은 죽어서 마력으로 이루어진 팔찌 따위를 남기는 거지? 차라리 뿔늑대처럼 이빨 따위의 신체 부위를 남기고 사라지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나? 거기에 오크 주술사가 건축적인 소양을 가지고 있던가? 목책과 오두막이라니?”
“아, 제기랄…. 어디 도망칠 생각 없으니 이것 좀 놔요.”
희번덕거리는 눈동자에 한세아가 뒤로 슬금슬금 물러난다. 지난번 마법사들과 함께 마차에 탔을 때도 그 고생을 했으니 무서울 수밖에. 안테노르의 떠벌림에 시청자들도 ‘저런 5★은 좀….’ 하며 배부른 투정을 부리고 있다.
길드 테이블에 모여있던 휘황찬란한 사람들을 보고 영입 뇌피셜을 굴리며 행복회로를 굴리던 과몰입 시청자들조차 꺼리는 게 안테노르라는 뜻이지. 방금 내 멱살을 붙잡고 토해낸 수다만으로 이미 시청자들은 질색한 모양이다.
-수염난 노인네 치우고 우리눈나데려와
-거 한씨 카메라 좀 제대로 돌립시다
-이렇게까지 징그러운 5★이 또 있을까?
-뭐 했다고 채팅창 민심이 박살이 났어 ㅋㅋㅋ
-한세아가 마법사 고른게 진짜 신의한수네
말없이 내 뒤에 서서 카메라로 안전지대 내부를 촬영하던 한세아. 슬쩍 시선을 돌려 그녀와 방송을 한 눈에 담았더니 내 시선을 받은 그녀가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게이머로서의 한세아가 불길함을 감지한 모양.
“여기 우리 파티 리더 겸 마법사가 있으니까 이 사람한테 설명을 들어요. 나는 모험가 길드 사람이랑 통신하러 가야 하니까.”
“로, 롤랑?!”
“오오, 그러고 보니 이쪽은 만월 늑대를 찾아낸 유망한 마법사 한나 양 아닌가. 지난번 마법에 대해 새로운 식견을 보여주어 다른 고위 마법사들이 자네를 좋게 본 모양이야. 역시 이야기가 나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군. 오크 전사와 주술사를 찾아낸 기분이 어떤가? 탑에 들어와서 연구를 해 볼 생각이 드나?”
-마법사는 마법사가 상대해야지 ㅋㅋㅋ
-카메라는 롤랑쪽에 붙여다오
-음소거 해 두고 화장실 다녀와야 하나
-헬스장 다녀오면 설명 거의 끝나겠지?
-6★도 못버티는 5★ 아가리딜링 ㅋㅋ
입을 쩍 벌리고 배신감에 몸부림치는 한세아지만 어쩔 수 없다. 한 번 붙잡히면 호기심을 해소할 때까지 놓지 않는 영감이거든.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는 게 비유가 아니라 진짜라고.
지난번에는 용병들한테 물어볼 게 있다면서 레베카한테 달라붙었는데, 성질이 난 레베카가 주먹을 휘두르자 쉴드로 몸을 보호한 채 용병단의 의뢰에 따라붙을 정도로 집착이 심하다.
용병단이 처리해야 할 몬스터를 마법으로 대신 사냥해 줬고, 이동 속도도 마법으로 늘려 줬으며, 해야 할 자질구레할 일을 고위 마법사의 권위로 해결해 줬으니 남는 시간 동안 자기 옆에서 설명 좀 하라는 의미로.
그때도 레베카가 제 부하 중 하나를 설명 겸 수다 담당으로 안테노르에게 던져주고 나서야 해방될 수 있었지.
“…안테노르 님은 가셨습니까?”
“우리 파티 리더랑 같이 있으니까, 빨리.”
파티를 지도하는 상급 모험가로서 뼈 아픈 희생을 발판삼아 마법사를 재촉한다. 같은 안전지대에 있는 만큼 고위 마법사 안테노르의 집착을 몸소 체험한 적 있는지 갑자기 빠릿빠릿해진 수정구 담당 마법사.
수정구를 통해 모험가 길드에 연락을 보냈지만, 모험가 길드가 현대의 군대도 아니고 5분 전투 대기 부대 같은 게 있을 리 있나.
연락을 넣어둔 뒤 기다리는 사이 연구실에서 뛰쳐나온 안테노르에게 한세아가 잡혀가는 걸 문 너머로 생생히 목격한 마법사가 침을 꼴깍 삼키며 다시 수정구를 붙잡는다. 안테노르는 활자 중독 비슷한 설명 중독 같은 느낌.
고위 마법사로서 촌구석 무지렁이의 말도 귀담아듣는 겸손함이 있지만, 문제가 있다면 정말 그 모든 설명을 ‘들으려’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여기서 붙잡히면 이 마법사도 오늘 아침에 먹은 아침 반찬부터 수정구 만지는 습관까지 다 말로 풀어서 설명해야 할걸.
《롤랑? 안전지대에서 보고할 게 있다던데―》
“그래, 나야 엘리스. 귀찮은 일이 좀 벌어졌거든?”
《뭔데 그렇게 불안한 말을 꺼내?》
수정구가 번쩍이며 통신 담당자의 목소리 대신 엘리스의 목소리를 토해낸다. 그 새 소식을 들었는지 길드의 수정구 담당자 옆자리를 꿰찬 모양. 이야기를 진행하려는 데 오두막의 문이 열리고 슬그머니 케이든이 안으로 들어온다.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암살자라도 된 듯 조용히 문을 닫고선 구석에 처박히는 케이든. 그 모습을 본 수정구 담당 마법사가 느릿하지만 조심스럽게 움직여 문에 나무 걸쇠를 턱 하고 올려둔다.
“20층에 새로운 몬스터가 등장하기 시작했어. 오크 주술사와 오크 전사들. 문제는 이 오크 놈들이 숲속에 목책을 건설하고 주변을 순찰하기 시작했다는 거야.”
《목책을 세웠다고? 규모가 어느 정도인데?》
“무리를 지어 등장하는 고블린의 배는 될걸. 거의 수십 마리가 모여있던데.”
《그게 정말입니까?!》
《아, 진짜!》
수 십마리씩 등장한다는 말에 엘리스 곁에 있던 마법사가 화들짝 놀라 대화에 끼어든다. 모험가 파티는 기본적으로 4~5인으로 이루어진 상황. 투구사슴이나 오크 사냥꾼 등 중형 몬스터 한 마리, 또는 많으면 열 마리 남짓하게 나오는 고블린과 코볼트 등 소형 몬스터 무리를 처리하기 가장 효율적인 머릿수기 때문이다.
머릿수가 넷보다 적으면 난전에서 불리하고, 다섯보다 많으면 중형 하나를 처리하는 데 손이 남아돌게 되고 수익도 쪼개지거든.
그런 소규모 파티를 이룬 모험가들 앞에 중형 몬스터로 분류된 오크 수십 마리가 가득 차 있는 오크 부락이라니? 실수로 마주하는 순간 사냥꾼과 사냥감의 처지가 순식간에 뒤바뀌게 되는 거지.
이 상황을 보고하러 갔는지 침묵하는 수정구를 뒤로 한 채 케이든을 바라보았다.
“…다른 일행들은?”
“안테노르 님께서 차 한 잔 대접하시겠다고 연구실로 초대하셔서, 따라갔습니다.”
“너는, 왜?”
“…저는 지난번 용병단에 있을 때 차를 충분히 얻어 마신 경험이 있거든요.”
케이든도 레베카 곁에 있다가 탑 내부에서 안테노르를 만난 적 있나? 알겠다고 고개를 작게 끄덕인 뒤 슬쩍 한세아의 방송을 켜 봤다. 자신만 죽을 순 없다고 생각했는지 카메라를 내 쪽에 보내지 않은 그녀의 방송.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안테노르의 연구실 안에 미녀 셋이 나란히 테이블에 앉아 있다.
커다란 원목 테이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찻잔, 벽을 가득 채운 책과 서류와 실험용 마도구, 인자하게 웃는 새하얀 수염의 마법사 노인. 카메라를 통해 본 방송 화면은 참 따듯하고 부드러운 분위기.
“그래, 오크 사냥꾼은 이미 겪어 본 모양이구먼. 사냥꾼과 전사, 주술사의 마력적 차이가 느껴졌는가? 주술사가 전사를 부린다던데 지휘에 따르는 사냥꾼은 본 적 없고? 롤랑이 목책을 부숴버렸다고…. 흠, 놈들이 목책을 세우는 장면은 보지 못했나? 간단한 건설기구를 만들었는지 밧줄로 세웠는지 몸으로 때웠는지 말이야. 아아, 걱정 말게. 못 봤어도 이미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다네.”
물론 오디오가 함께하는 순간 따듯하다 못해 고막에 비벼지는 언어가 불을 붙이는 모양새다. 마음씨 고운 아이린은 노인의 질문에 최대한 상냥하게 대답을 하지만, 한세아와 그레이스는 표정이 딱딱히 얼어붙는 게 보이네.
그 폭력적인 언어의 흐름 속에서도 꿋꿋하게 카메라는 세 미녀와 노인네를 굳이 번갈아 비춘다. 물론 입을 열 때마다 카메라가 향하니 화면의 지분율의 80%는 늙은 마법사의 얼굴이 차지한 상황.
-개1새1끼야 제발 좀 카메라 끄라고
[관리자에 의해 삭제된 채팅입니다]
-혹시 마법사님이 94년도의 LA에서 오셨나요?
-이상하다 음소거를했는데 시끄러워요
-신성력(물리)에 이은 마법(음파)인가?
[점심나가서먹은님 10,000원 기부!]
롤랑한테 처맞고 우리한테 화풀이하지 말고
[갈비찜레시피님 5,000원 기부!]
소갈비는5cm정도로토막내찬물에담궈핏물을제거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