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175)

 “…네. 반드시 갚겠습니다.”

케이든이 부탁한 재료는 돈으로 환산하면 엄청나게 비쌌다. 롤랑이 존재하지 않는 한세아 파티라면 거의 몇 달에 걸쳐 모두가 마음을 모아 자금을 준비해야 할 정도로.

중급 모험가 중 베테랑만이 발 디딜 수 있는 위험 구역에서, 일정 레벨 이상의 실력으로만 탐지해서 찾을 수 있는 결정들. 그리고 상급 모험가가 아니면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곳에서 찾아내는 채집물들까지.

그렇게 비싼 인력이 찾아낸 걸, 더 몸값이 비싼 마법사와 연금술사가 제련해야 한다. 재료비도 장난이 아닌데 인건비는 더욱 비싸지. 하지만 반대로 말한다면, 상급 모험가들은 전부 그 비싼 돈을 주고 장비를 풀세트로 맞추는 놈들이다.

재료가 비싼 만큼 상급 모험가들이 모험으로 벌어들이는 돈도 엄청나니까.

 “그나저나, 탑에서는 무슨 일 없었어?”

 “예. 첫 불침번을 선 다음 날, 피로로 인해 전투 컨디션이 약간 무너졌던 것 말고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다들 수면이 부족한 상태에서의 전투는 겪어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군요. 그 외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 그러면 내일 길드 안에서 보자고.”

흔들리는 눈동자로 보고하는 케이든의 말을 듣고 다시 몸을 돌렸다. 한세아에게 아쉬움을 심어주고 케이든에게 마음의 빚을 지워둔다 해도 한 번에 전부 해결될 리 있나.

이런 건 차근차근 진행해 나가야지.

[한세아 님의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한세아_집 나간 롤랑센세의 귀환! (ง˙∇˙)ว]

익숙한 길을 걸어 길드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나무문을 활짝 열자마자 눈에 보이는 건 입구를 대놓고 촬영하고 있는 드론. 그 뒤로 보이는 건 테이블에 앉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파티원들.

한 손을 번쩍 들어 올린 모습이 마치 소풍날을 고대하던 어린아이처럼 보인다. 아니면 산타클로스가 부른 이름에 대답하는 어린이 정도? 살랑살랑이 아니라 파닥파닥 흔들리는 손이 그녀의 심정을 나타내고 있다.

 “롤랑!”

-센세 보니까 좋아 죽죠?

-방송주인 돌아오셨다 여캠 치워라

-까비이걸돌아오네 안돌아올줄알았는데

-아 롤랑이 없으면 방송을 못해요

-개잡주코인 되는 줄 알았는데 이게 사네

인터넷 창으로 시야 한구석에 방송을 켜 둔 상태라 예상은 했다지만 한세아의 반응은 생각보다 격렬했다. 고작해야 한두 번의 밀당으로는 별 반응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인터넷 방송인의 감각은 내 생각과 조금 다른 모양.

손을 파닥파닥 흔드는 모습에 옆에 있던 그레이스가 화들짝 놀랄 지경이니 말 다 했지. 아마 지금쯤 그레이스의 머릿속에선 사랑과 전쟁 비슷한 스토리가 쫘라락 흘러가고 있을 것 같네.

옆에서 놀란 눈으로 쳐다보거나 말거나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겨주는 한세아. 그 모습에 나도 손을 설렁설렁 흔들어주며 테이블에 가 앉았다.

 “오랜만에 얼굴 보네. 숙제는 잘 풀었고?”

 “1박 2일로 탑에서 야영한 다음, 컨디션을 위해 하루 쉬는 걸 반복했어. 실수한 것도 없고 전투에서 다친 사람도 없으니까 19층 정도는 완전 정복이지.”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는 한세아의 말에 뒤에 있던 그레이스와 아이린의 고개가 끄덕끄덕 작게 흔들린다. 두 사람도 반복된 야영 덕분에 모험가로서의 자신감이 조금 오른 모양. 슬쩍 케이든에게 시선을 보내니 맞다는 듯 그녀도 작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인다.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멤버지만 나를 제외한다면 가장 실전 경험이 많은 것이 케이든. 검의 공녀인 그녀의 시점으로 본 파티원들이 궁금해 입을 열었다.

 “케이든, 네가 보기에 세 사람은 어땠지?”

 “예. 어제 말씀드린 대로 첫 불침번 이후의 컨디션 난조를 제외한다면 별다른 흠을 지적하기 어렵습니다. 굳이 지적하자면 아이린 양이 앞에 나설 때 과하게 긴장한다는 점 정도?”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던 케이든이 곧바로 입을 연다. 얼떨결에 지적을 받은 모양새가 되었지만, 딱히 기분 나쁜 기색은 없는 아이린.

전위가 있을 때 보호막을 사용해 아군을 보호하는 것과 전위가 없어 자신이 보호막을 사용해 앞을 가로막는 건 느낌이 좀 다르긴 하지. 그것도 투구사슴 같은 게 달려들 때 혼자 길을 막아야 한다면 더욱더.

 “몬스터 앞에 직접 서게 되니 조금 무서웠어요….”

 “그렇다고 해서 몸이 굳거나 성법을 펼치는 게 늦지는 않았습니다.”

부끄럽다는 듯 뺨을 살포시 붉히는 아이린과 황급히 덧붙이는 케이든. 그레이스와 한세아는 아직 나쁜 습관이랄 게 없는 모양이다. 하긴 내가 봐도 두 사람의 전투는 딱히 지적할 만한 게 없긴 해.

나도 케이든도 궁술과 마법에 대해서는 문외한. 따라서 평가의 기준을 집단 전투에서의 합 같은 거로 잡아야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부분에서는 언제나 평균 이상을 보여주는 상황이니까.

 “다들 익숙해졌다니 마음이 놓이네. 오늘도 야영 준비가 되었다면 20층으로 갈 생각인데, 어때.”

숙제로 내준 야영에 대해 가벼운 감상을 듣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전위가 한 명 없으니 난전 때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더 활발해서 귀찮다던가, 몬스터의 돌진을 전위가 붙잡아 주는 것과 보호막으로 막아내는 것의 차이점 같은 것들.

결국, 돌고 돌아 방어형 전위의 필요성과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일종의 롤랑 찬양 시간이 되어버린 것 같아 기분이 묘해진다.

-방송인이라 그런지 빠는 솜씨가 ㅓㅜㅑ

[관리자에 의해 삭제된 채팅입니다]

-지금부터 롤랑 찬양을 시작합니다

-이거 그 북쪽에서 한다는 사상검증임?

 “어허, 우리 센세 음해하지 마세요.”

그건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온갖 이야기가 중구난방으로 튀어나온다. 낫과 망치를 들고 있는 콧수염쟁이부터 미사일을 잘 쏠 것 같은 삼단 뒷목 돼지 새끼까지. 세상이 조금씩 변했어도 역사의 주요 인물까지 변한 건 아닌 건가.

아무튼, 개드립으로 붉게 물들어버린 채팅창을 뒤로한 채 일행들과 함께 길드를 떠나 게이트로 향했다.

 “롤랑, 이번에 북쪽에 다녀온 게 케이든 씨의 갑옷 때문이라며?”

 “그래. 상급 모험가한테 의뢰를 맡겨야 하는 품목이 있어서 내가 다녀왔지.”

길을 걸으며 나누는 이야기 대부분은 내가 다녀온 북쪽의 이야기. 다들 모험가의 도시밖에 모르는 상황이니 왕국의 북쪽이 어떤 곳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왕국 동부의 시골 출신인 그레이스도, 도시의 신전에서 나고 자란 아이린도 모르는 미지의 장소. 거기에 한세아 또한 북쪽에 대해 모르는 건 마찬가지다. 게이머들이 도시 밖으로 뛰쳐나갔다 해도 춥고 험한 북쪽에 제대로 터 내린 사람은 극소수니까.

돈도 벌지 않고 도시 밖으로 뛰쳐나가 용병이 되든 떠돌이가 되든 일단 돈이 없으니 노숙을 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노숙을 하면 추위 때문에 골병들고 얼어 죽게 되니 대부분 따듯한 곳에서 머무를 수밖에.

이 게임의 현실성이란 그런 것이다. 서바이벌 게임처럼 허기와 갈증 게이지 바 따위는 없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머무르면 육체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는 방식. 그리고 그걸 알몸 노숙 따위로 알아내는 게 게이머들이고.

…하여간 미친놈들이 참 많아.

 “그러면 케이든 씨의 갑옷은…?”

 “이제 재료를 구했으니 수리를 해 줄 수 있는 장인을 찾아야지. 케이든, 생각해 둔 사람이 있어?”

 “예. 레베카 님의 소개로 알고 지내는 대장장이가 한 분 계십니다.”

대화를 나누며 모험가의 인파가 가득한 거리를 지나 게이트 안으로. 이제는 슬슬 얼굴이 눈에 익었는지 마법사가 모험가 패를 보는 둥 마는 둥 우리를 보내준다.

그렇게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비치는 초원을 걷는다. 고블린 이하의 몬스터는 이제 무시하고 지나칠 레벨. 오크 사냥꾼을 사냥하러 가는 파티가 고작 병약한 고블린 따위를 상대할 이유는 없다.

랜턴을 들고 통로를 향해 직진하며 덤벼들지 않는 몬스터는 무시. 그래도 가끔 경로상에 딱 숨어 있는 뿔늑대가 부산물과 마석을 뱉어내고 사라진다.

[시청자의별을빨아들인한세아님 10,000원 기부!]

롤랑센세를 갑옷한테 빼앗길거야? 빨리 갑옷확인ㄱㄱ

 “그 마법 갑옷, 궁금한데 볼 수 있을까요?”

 “예. 어차피 수리하면 모험을 할 때 입고 다니게 될 테니까요. 모험이 끝나면 수리를 맡길 생각인데 그때 보시겠습니까?”

수풀 속에서 도약하는 뿔늑대 정도는 이제 위협도 안 된다는 듯 태연하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일행들. 하기야 이끼늑대를 수십 마리 잡았는데 뿔늑대에 놀라는 것도 우습지.

단순한 육체의 스펙은 10층의 네임드인 뿔늑대가 더 뛰어나지만, 은신 능력은 털가죽에 이끼를 붙이고 어둑한 그림자 속에 숨은 이끼늑대가 더 뛰어나다. 몇몇 인터넷 경험담처럼 제대로 된 탐색꾼 없이 11층에 발 들였다가 호되게 당한 게 아니라면 놀랄 이유가 없지.

그렇게 초원을 지나 숲으로 올라가는 통로 앞에서 슬쩍 내 곁으로 오는 그레이스.

 “롤랑, 그래서 북부는 어땠어?”

 “차가운 맥주가 맛있었다.”

 “가서 술만 마시고 온 거야?”

 “고기도 엄청나게 먹었지.”

북부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슬쩍 내 곁으로 다가오자 그 뒤로 아이린이 슬그머니 다가온다. 인터넷 따위가 없는 세상이다 보니 내 경험담이라도 듣고 싶은 모양. 음유시인이 하나의 직업인 이 세상에선 자연스러운 반응이려나.

물론 카메라 드론을 통해 우리를 구경하는 시청자에겐 다른 의미로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아이린마망 슬쩍 달라 붙는거 넘모 귀엽고

-마법 갑옷 말고 북부 이야기 해 달라고

-지금 화내는샛기들 다 부러워서 배아파 뒤질 예정~

-롤랑시점으로 19금 달고 팔면 바로 산다

-저기만 두근두근 탑미연시 찍고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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