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화 (48/175)

 "그야 당연히 있지? 직접적인 상금은 아니고, 모험가 길드와 제휴를 맺은 연금술사들의 가게에서 포션이나 약재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혜택 같은 것들. …설마 안내를 못 받았니?"

엘리스는 자신이 최근 관심을 가진 귀염둥이 마법사 아가씨에게 길드의 보상을 누락시킨 연놈들을 잡아 조지기 위해 사무실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갔다.

길드의 사무직 주제에 상급 모험가 파티를 상대로 악의를 품고 고의로 입을 닫은 건 아니겠지. 아마 엘리스랑 친하니 알 거라고 지레짐작해서 업무를 미룬 것 같은데. 엘리스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마치 전장으로 향하는 장수 같은 발걸음이었다.

 "무슨 일이야?"

 "별거 아니야. 원래 우리가 받아야 했을 보상…, 롤랑은 알고 있었지?"

 "맞아."

아무것도 모르는 척 테이블에 착석해 질문을 던지자 되려 내게 질문을 되돌려주는 한세아. 모험가 짬밥 10년 차의 상급 모험가가 모르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의심하는지 눈썹이 삐죽 올라가 있었다.

물론 그 올라간 눈썹은 나 때문인지라 피식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그녀가 아무리 눈을 부리부리하게 뜬다 해도 본판은 예쁘장한 방송인 아가씨니까.

 "어…. 왜?"

 "말했잖아, 네가 파티의 리더라고."

사실은 포션 값 할인 따위는 한세아의 퀘스트 창에도 등장하지 않을 사소한 보상이라 알아서 하겠거니 내버려 둔 거지만.

내 능글맞은 대답에 말문이 턱 막혀버린 한세아. 파티의 리더로서 알아보는 게 자신의 역할이었는데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지 삐죽 솟았던 눈썹이 다시 내려간다. 그 모습에 한 마디 정도를 덧붙여 주었다.

 "그래서 너한테 연락이 간 줄 알았지. 보니까 엘리스가 한바탕 뒤집어버리겠네."

 "아, 원래 연락이 내게 오는 거야?"

 "그러라고 있는 길드잖아. 모험가의 권익을 위해 모인 집단인데 혜택이 있으면 당연히 안내를 해 줘야지."

내 말에 그제야 표정을 풀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그녀.

 "야! 거 봐! 롤랑 센세도 내 잘못 아니라고 하잖아. 그래서 만월 늑대 잡았도르 한 번 시전해 줘? 10층 게이트 인증자만 채팅하게 함 해보까?"

시청자들이 어지간히 놀려댔는지 곧바로 내 말을 들먹이며 역으로 협박하는 꼴이 퍽 귀엽다. 세계 1위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미녀 방송인인 만큼, 음습한 인방 시청자들은 그녀를 괴롭히는 걸 즐기고 있을 테니 좀 시달렸겠지.

그렇게 시야 한구석에 의기양양해진 한세아를 담아두고, 마력을 통한 기감으로는 사무실 안에서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엘리스의 고함을 듣고 있으니 파티원들이 하나둘 합류한다.

가장 먼저 온 것은 무뚝뚝하지만 근면 성실한 케이든. 그다음은 한세아와 같은 숙소에서 출발했지만, 시장에 잠시 방문한 그레이스. 마지막으로는 아침에 신전 일을 돕고 오느라 조금 늦는다고 미리 이야기한 아이린.

 "그럼, 모두 모였으니 출발할게요."

 "아, 잠시만 한나!"

테이블에 모여 탐색 중 숲에서 챙길 수 있는 채집물 의뢰는 미리 받아 둔 상황. 다들 모였으니 출발하려는 한세아를 붙잡는 건 문을 벌컥 열고 뛰쳐나온 엘리스, 그리고 함께 끌려 나온 더벅머리의 남성.

모험가 길드 사무직으로서 청결함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그게 전부인 특색 없는 남자. 한세아도 시청자들도 별다른 반응이 없는 걸 봐선 그냥 평범한 사무직 직원인가보다.

 "왜 그래요, 언니?"

 "만월 늑대를 사냥하고 나서 구매한 물품이 있으면 이 녀석, 얼굴 기억해 놨다가 리스트 작성해서 넘겨줄래?"

 "저, 죄송합니다…."

 "네, 뭐. 별로 없긴 한데 적어서 보낼게요."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는 게 아무래도 전달 실수를 한 게 이 남자인가 보다. 그래 봐야 RPG 게이머로서 준비해 들고 다니는 포션 몇 개가 손해의 전부였는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는 한세아.

그런 한세아가 답답하다는 듯 엘리스가 남자직원을 툭 밀어 사무실로 보낸 뒤 성큼 걸어온다. 자연스럽게 한세아의 어깨를 감싸며 귓가에 속닥거리기 시작하는 그녀. 보기에는 참 아름답지만 새어 나오는 목소리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포션, 샀으면, 적당히 세 배 정도로…. 알겠지? 언니가 용돈 주는 거야."

 "…네?"

 "아이, 참. 애가 너무 순진해서 탈이네. 롤랑? 알아서 잘해 줘요."

엘리스의 말에 가장 크게 반응한 것은 힉-! 하고 숨을 들이마시는 아이린. 화전민 마을 출신으로 억척스럽게 살아온 그레이스나, 용병단 밑바닥에서 구르던 케이든과는 전혀 다른 반응.

물론 그 와중에 말뜻을 한 번에 못 알아들은 한세아는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또 달려든 시청자들에게 채팅창으로 와르르 얻어터지기 시작해서 정신이 없어 보인다.

 "저기, 그건 사기가 아닌가요…?"

포션 개수를 늘려봐야 금화도 아니고 고작해야 은화 몇 개에 동전 정도가 떨어질 텐데 무슨 중범죄라도 저지르는 것처럼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는 아이린. 예비 성녀라는 칭호에 걸맞게 심성이 고와도 너무 곱네.

한창 시청자들이랑 말싸움하다 자그마한 아이린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한세아. 그녀 대신 내가 슬쩍 나서 아이린을 달래주었다.

 "사기를 치는 게 아니라, 제때 정보를 알려주지 않은 길드의 성의 표시니까 괜찮습니다."

 "…네?"

 "마음 편히 받을 수 있도록 용돈 운운한 거지, 까놓고 보면 길드가 모험가에게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상황이니까요."

물론 우리 예비 성녀님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기 위한 개소리다. 내가 엘리스랑 알고 지낸 세월이 몇 년이고 길드에 몸담은 게 얼마인데.

금화 단위의 횡령도 아니고 은화 정도는 무슨 자식 저금통에서 동전 빼가는 주부처럼 쓱쓱 꺼내 가도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 게 중세의 길드다운 면모. 신전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모험가 길드가 아니라 신전 이외의 세상은 이렇게 돌아간다.

 "보상비 같은 거네요. 네, 오늘 모험이 일찍 끝나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꼬치를 좀 구매해야겠어요."

 "니들은 하여간, 나중에 채팅 부검해서 뭐 하나만 걸려 진짜…. 꼬치 나쁘지 않네요, 언니. 인벤토리에 담아가면 식지 않으니까 애들이 좋아할걸요."

 "한나 양의 그 인벤토리라는 마법, 참 대단합니다. 용병단의 마법사들이 알았다면 발을 핥아서라도 배우고 싶어 할 텐데."

 "아, 아하하―"

한참 시청자들에게 시달리던 한세아가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우리는 길드를 나설 수 있었다. 웃긴 건 케이든 또한 한세아를 천재 마법사 정도로 인식한다는 점. 그 덕에 저렇게 시청자와 대화하느라 잠시 멈칫거려도 마법사의 기행이거니 하고 넘어가는 모양새다.

레베카가 소개해 준 그 롤랑이 마음에 들어 하는, 마탑에서도 보지 못한 아공간 마법 인벤토리를 사용하는, 모험가 생활 한 달 만에 뿔늑대에게 유효타를 먹이는 마법사 한나. 만월 늑대를 추적하여 도시의 이변을 해결하다.

한세아가 게이머라는 점을 모르는 케이든의 시선으로 보자면 무슨 먼치킨물 마법 소녀 같은 존재네. 물론 인벤토리를 칭찬한다고 좋아할 수 없는 한세아는 어색하게 웃어 보일 뿐.

 "한나 양, 확인되었습니다. 안전한 모험 되시길."

그렇게 게이트를 통해 탑을 모험하고, 순조롭게 13층, 14층을 돌파해 15층에 도달한 나날들. 시청자들도 슬슬 지루함을 느낄 것 같은 반복을 깨트려 준 건 우리를 부르러 온 엘리스였다.

 "저기, 한나? 너희 파티 앞으로 지명 의뢰가 들어왔는데."

 "지명 의뢰라뇨, 엘리스 언니?"

테이블에 앉아 채집 의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엘리스. 평소의 활발한 모습과는 전혀 달리 조심스러운 태도에 한세아가 그녀를 의아하게 바라본다.

 "왕국 동쪽, 콜마르 백작령 쪽 작은 마을에서 들어온 의뢰야. 정확히는… 그레이스가 있는 파티에게 온 의뢰."

 "콜마르 백작령 쪽이면, 내 고향인데…."

 "의뢰 내용은 인근 산맥에 자리 잡은 떠돌이 오크 처치. 마을 사람 몇 명이 이미 당한 것 같아."

이어지는 엘리스의 설명에 그레이스의 안색이 어둡게 변한다. 그레이스의 마을은 화전민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여 악착같이 발전시킨 마을. 그레이스의 아버지 같은 은퇴 레인저나 몇몇 도망친 기술자들이 있다지만 몬스터를 완벽하게 막아 낼 수준은 아니겠지.

내가 그레이스를 만나게 된 이유도 마을 주변에 자리 잡은 몬스터를 처리하러 갔기 때문이니까. 왕국의 수도에서 멀어질수록 몬스터에게 시달리는 게 이 세상의 일상.

 "의뢰 보상은 별거 없어. 솔직히 말하자면 길드 차원에서 의뢰를 거절해도 될 정도거든. 하지만 그레이스랑 아는 사이인 것 같아서 말해 주는 거야."

 "…정말 고마워요, 언니."

예쁘고 잘생긴 건 좋아하는 엘리스다 보니 그레이스를 떠올려 한 번 확인차 물어보려고 온 듯하다. 언니 동생 하는 사이가 된 건 알았지만 고향이 어디인지까지 외우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복잡미묘한 표정이 된 그레이스에게 아이린이 성큼 다가가 양손을 꼬옥 붙잡는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레이스 양. 모험가 길드에 의뢰할 정도라면 마을이 습격당해 큰일이 벌어지기 전이라는 뜻일 테니까요. 저희가 도우러 가면 되는 거예요."

 "그렇겠죠?"

 "그렇습니다. 용병 생활을 할 때 겪은 일인데, 정말 위험하면 모험가 길드를 부르지도 못합니다. 별거 없는 보상이라도 책정해 길드에 의뢰했다는 건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는 거죠."

아이린이 토닥여주고, 케이든이 무뚝뚝한 말투지만 그레이스를 안심시켜주려고 할 때. 한세아의 시선은 엘리스와 그레이스가 아닌 다른 곳, 허공에 못 박혀 있었다.

[방송인 '한세아'의 캐릭터 퀘스트 클리어를 돕자 0/1]

나 또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현실의 중세 화전민 마을이 어찌한 지는 몰라도, 그레이스의 고향은 객관적으로 보면 꽤 성공한 동네라고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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