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화 (44/175)

그 안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건 네모난 턱이 인상적인 덩치 큰 남자. 각진 턱에 빼곡히 들어찬 턱수염과 덥수룩한 구레나룻, 빨갛고 검은 체크 무늬 셔츠에 짙은 고동색 가죽 멜빵 바지까지.

 “저기요, 그때 그 복합궁 아직 있죠?”

 “그거? 아직 안 팔렸지.”

…진짜 만화에서 볼 법한 나무꾼 캐릭터잖아.

한세아가 와서 확인했으면 아마 2★ ‘나무꾼’ 럼버잭 뭐 이런 칭호가 아닐까. 가게 주인이 커튼처럼 매달린 가죽을 헤치고 기다란 활을 들고나오는 모습을 보니 도시가 좀 재밌게 변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털보 나무꾼에게 미노타우로스의 뿔로 만든 합성궁을 구매하고 저녁까지 데이트를 이어나간 다음 날.

 “…실례합니다, 한나 양의 파티가 맞으신지.”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차림의 소년이 우리를 찾아왔다. 사람 좋은 아이린마저 잠시 주춤거리게 할 정도로 로브로 온몸을 감춘 남자. 깊게 눌러 쓴 후드 때문에 얼굴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후드 아래에서 흘러나오는 앳된 소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당장 경비병을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수상한 차림새였다.

패에는 겉멋용 문양을 음각하고, 특별 제작한 장비로 몸매까지 드러내는 게 모험가다. 화려한 외형은 유명세가 되고 유명세는 개인 의뢰라는 이름으로 돈이 되는 게 모험가거든. 그러니 도시 한 복판에서 이렇게 꽁꽁 싸매면 수상할 수밖에.

 “레베카 님의 추천으로 오신 분인가요?”

 “네.”

그렇기에 대화를 주고받는 건 파티의 리더이자 현대인의 감각을 가진 한세아. 판타지 세상의 주민이 보기에는 현상 수배범부터 온갖 범죄자를 떠오르게 만드는 패션이지만, 한세아에게는 그냥 꽁꽁 싸맨 캐릭터도 있구나~ 하고 넘어갈 일이다.

테이블의 빈자리에 앉고 나서야 후드를 걷어 올리는 소년. 새하얀 피부에 갈색 곱슬머리의 잘생긴 얼굴이 드러나자 한세아의 표정이 오묘하게 뒤바뀐다. 기뻐하는 것 같으면서도 당황하는, 뭔가 안면 근육이 고장이 난 것 같은 기묘한 표정.

그 요상한 반응에 후드를 눌러 쓰고 있던 남자애도 당황했는지 한세아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아, 아뇨. 생각보다 어려 보여서 놀랐을 뿐이에요. 듣기로는 혼자 14층까지 갔다고 들었는데….”

거짓말은 여전히 못 하는 한세아. 그녀의 수상쩍은 반응에 슬쩍 채팅창을 열어보니 상상하지도 못한 내용으로 난리가 나 있었다. 5★이라서 놀란 게 아니라――

-비비게임즈 꼴잘알ㅋㅋㅋㅋㅋ

-남장여자는 단발이 국룰이거든요

-카메라 바로 목에 들이대는거 봐라

-목젖 있는데 어떻게 여자?

-대충 마법의 힘이라는 뜻

눈앞의 소년이, 사실 소녀라는 점에서.

후드를 걷어내며 드러난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와 중성적으로 아름다운 외모. 앳된 목소리와 더하면 그냥 사춘기가 막 지난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데. 역변하기 전, 소년과 청년의 사이에 있는 어린 미소년.

 “네. 레베카 님의 용병단에 있다 추천을 받아 오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탑의 14층까지 올랐으며 20층까지 간 건, 제 실력이 아니라 용병단의 보급을 위해 동행만 한 일이었습니다.”

 “저희 파티는 11층부터 시작해 합을 맞추며 차근차근 탑을 오를 생각이에요. 여기 계신 롤랑 님의 지도를 받을 생각이고요.”

 “그 부분도 설명을 들었습니다. 파티의 전위로서 지도를 받을 수 있다면….”

아무리 살펴봐도 여자애라는 걸 알아차릴 수 없는 수준인 걸 봐선 변장 수준이 아닌데. 상급 모험가의 감각을 속일 정도로 정교하고 비싼 마도구를 사용 중인가. 그래봤자 플레이어의 시스템 창은 속이지 못한 모양이지만.

그렇게 4★ ‘검의 공녀’ 케이든이 자연스럽게 우리 파티에 합류하게 되었다. 물론 남자던 남장여자던 파티가 모험하는 일에는 별문제는 없겠지. 예비 성녀도 있는데 공녀가 별 대수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했다. 사실 이 세상은 게임이고, 내 앞에는 플레이어가 있고, 나는 갑자기 NPC가 된 상황인데 남장 여자 따위가 큰 문제일 리 있나.

 “그러면, 오늘부터는 10층으로 향하는 게이트를 사용해서 11층으로 직행할 거다. 이야기해 둔 것처럼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면 나는 전투에 직접 나서지 않을 거고.”

대화를 마친 한세아에 이어 내가 입을 열었다. 순식간에 내게 향하는 네 쌍의 시선. 미리 설명해 둔 세 명의 파티원은 물론이고 레베카의 소개로 온 케이든도 별다른 불평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공녀라는 칭호에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일까 봐 걱정했는데, 정체를 숨기고 용병단 밑바닥부터 구른 짬밥이 있어서 그런지 잘 녹아드는 모양새.

 “투구사슴이나 이끼늑대같은 중형 몬스터가 단독으로 돌격해 올 경우, 적당히 붙잡아 둘 생각이야. 완전히 고정해 두는 게 아니라 가끔 흘리기도 할 테니까 긴장을 너무 풀지 말고.”

설명을 대충 끝마친 다음 길드 테이블에서 일어나 미리 봐 둔 의뢰 몇 개를 챙겨 탑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탑이 아니라 마탑이 만들어 둔 게이트를 향해. 케이든의 합류를 기다리느라 조금 늦은 출발이 되었지만, 게이트를 생각해보면 실제 사냥 시간은 훨씬 늘어나겠네.

가장 앞에 선 건 장비를 제대로 갖춰 입은 중무장 전사인 나. 그 뒤를 따라오는 건 금속과 가죽이 뒤섞인 경갑 차림의 한 손 검사 케이든. 거기에 마법사 로브와 사제복 차림의 한세아와 아이린, 새 활의 시위를 점검 중인 그레이스까지.

초보 모험가 수준을 벗어났다는 듯 모험가 티를 팍팍 내며 걸으니 시선이 모인다. 미남 미녀만 모여 있는 데다 다른 모험가가 좀 뜸할 시간이니 시선이 모일 수밖에.

 “저기, 롤랑. 투구사슴이나 이끼늑대가 공격해오면 막기만 한다며.”

 “음, 그런데?”

게이트가 슬슬 눈에 보일 무렵 뒤에서 한세아가 말을 걸어온다. 아무래도 내 패시브 스킬을 알고 있는 만큼 신경이 쓰이는 모양.

그레이스나 아이린이 보기에는 37층까지 오른 전사가 너무 약한 뿔늑대에게 힘 조절을 잘못했다고 생각하겠지만, 한세아가 보기에는 패시브 스킬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몬스터가 픽 쓰러져 죽는 상황이다.

 “처음 만난 뿔늑대는 맨손으로 죽였는데 그다음부터는 잘 붙잡은 게 신기해서. 정말 힘을 빼고 붙잡는 거야?”

NPC에게 직접적으로 ‘너 패시브 왜 안 터짐?’이라고 질문할 순 없으니 어떻게든 돌려서 말하는 그녀. 말하면서도 조금 답답한지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게 보인다. 하기야 반사뎀 패시브가 있는 데 뿔늑대를 붙잡는 게 신기하게 느껴지겠구나.

그러니 그녀가 의문을 해소할 수 있게 나도 적당히 돌려서 대답해준다.

 “처음에는 마력으로 강화한 채 벽처럼 막아 세웠더니 반탄력에 죽은 거야. 그래서 다음부터는 부드럽게 안아 드는 것처럼 붙잡는 거고.”

실제로 내 패시브는 공격당하면 데미지를 되돌려주는 판정. 다르게 말하자면 공격 자체가 없으면 되돌려주는 반사 데미지도 없다. 뿔늑대의 돌진을 아기 안아 들 듯 부드럽게 잡아버리면 죽이지 않고 생포할 수 있다는 거지.

 “그게 가능해…?”

 “고작 뿔늑대인데 뭘.”

아무리 10층짜리 몬스터라 해도 어지간한 오토바이 정도는 되는 게 뿔늑대의 돌진이다. GIF로 박제되어버린 방송인들처럼 사람 하나는 가볍게 꿰뚫어 죽이는 돌진. 전위가 막아 세우지 않으면 한세아의 쉴드도 당연히 뚫릴 거다.

그걸 무슨 피구공 잡듯 받아낸다니 신기하게 느껴지나 보다. 이야기를 듣던 케이든도 신기한 건 마찬가지였는지 슬쩍 대화에 끼어든다.

 “뿔늑대를 맨손으로 붙잡으신다구요?”

 “뭘 놀래. 레베카 그 여자는 더 이상한 짓도 하고 돌아다닐 텐데.”

 “그건, 그렇네요.”

용병단 신입인 케이든과 용병단 대장인 레베카. 그리고 그 레베카의 동료였던 나. 그런 식으로 엮인 상황이다 보니 케이든은 자연스럽게 우리 파티원들에게 존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장님이 소개해 준 사람들 같은 느낌이니 당연하려나.

4★인 만큼 검술에 대한 재능과 실력이 있지만, 아직 20층 너머는 보지 못한 케이든. 그래서 그런지 30층 너머의 상급 모험가들이 어떤 초인인지 제대로 감을 잡지 못한 모양이다.

딱히 모험가가 아니더라도 왕국의 유명한 기사들 등 마력으로 육체를 강화할 수 있는 초인들은 게임 스킬이 없어도 미쳐 날뛰는 게 가능하다. 신장 5m를 넘는, 코끼리보다 더한 덩치들과 근력으로 싸우는 게 가능하니까.

톤 단위의 몸무게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불을 뿜는 와이번, 갑옷을 입은 기사를 모기 때려죽이듯 손바닥으로 짓눌러 죽이는 오우거, 땅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것만으로 작은 마을을 매몰시키는 자이언트 웜….

그런 불합리할 정도로 강력한 생물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이 세상의 인간은 기이할 정도로 강력하게 진화했다. 거기에 한세아가 접속하며 별이 붙기 시작했으니 더 강해졌으려나.

 “우리 파티의 조합을 보면 모험가로서 가장 이상적인 조합이야. 공격과 방어를 전담하는 두 명의 전위, 숲을 탐색할 궁수와 아군을 보호할 사제. 그리고 다방면으로 아군을 지원할 수 있는 마법사까지.”

 “네.”

 “그렇죠.”

게이트 앞에는 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아무래도 지나갈 때마다 돈을 걷어야 하니 무작정 들어갈 수 있는 탑의 입구와는 달리 사람이 밀리는 모양. 마탑에 돈을 지불하지 않을 뿐이지 인파를 무시하고 새치기를 할 권한은 아닌 만큼, 기다리는 사이 잠시 설명을 이어나간다.

 “그러니 개인의 기량을 늘리는 데에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아군과 합을 맞추는 쪽에 신경을 써 봐. 이상적인 조합인 만큼 탑의 고층을 공략할 때까지 모두가 함께할 가능성이 크니까.”

한세아가 6★인 나와 5★인 아이린을 내다 버릴 리 없고, 4★인 케이든도 버프를 생각해보면 끝까지 데려갈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바뀔 가능성이 있는 건 고작해야 3★인 그레이스 정도.

하지만 그레이스는 탐색꾼이지 전문적인 전투 요원이 아니다. 내게 스킬을 지정해 준 것처럼 그레이스의 스킬을 지정해 줄 수 있다면, 그레이스도 끝까지 데려갈 가능성이 있다. 내가 6★인 만큼 탱킹과 딜링을 둘 다 담당할 수 있으니까.

메인 탱커이자 메인 딜러라는 불합리한 캐릭터가 하나. 서브 탱커인 아이린, 서브 딜러인 케이든과 한세아. 이런 조합을 생각하면 그레이스는 패시브부터 모든 스킬을 전부 탐색으로 가득 채우는 편이 좋아 보이니까.

물론 내 개인적인 의견이고 한세아는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모험가 '한나 파티'의 인원을 늘리자 5/5 ※ CLEAR]

[보상 : 방송인 한세아의 방송국 게시글 작성 권한]

…어쩌면, 그녀의 생각을 내가 유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고요한 숲의 정적을 깨는 나뭇가지 바스러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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