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화 (41/175)

마력 운용의 효율과 육체의 과부하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무식하리만치 마력을 때려 박은 철퇴 내려찍기.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린 팔을 마치 채찍처럼 내리친다. 팔꿈치가 원심력에 뽑혀나갈 듯 뻐근해지고 휘둘러진 손목에서 까드득 뼛소리가 들릴 정도로.

 “――라고, 만월 늑대 한… 방……. 너, 미션 이거 환불 안 된다.”

뿔을 부수고 두개골을 날려버린 뒤에도 힘을 잃지 않은 철퇴가 바닥을 내리치자 사방팔방으로 튀어 오른 흙덩이가 아이린의 보호막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시체가 사라지니 피투성이가 될 일이 없다는 점에서 탑은 참 좋은 공간이야.

 “어, 아무튼, 10층 보스 만월 늑대 클리어… 네.”

만월 늑대였던 것이 사라지고, 만월 늑대가 있던 초원이 공터가 된 풍경.

한세아를 제외한 우리 파티원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만월 늑대가 사라진 초원에는 구슬픈 뿔늑대 울음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보름달이 사라지고 태양이 다시 떠오른 초원. 처참하게 파헤쳐져 속살을 드러낸 공터에서 적당히 뿔늑대를 처리하고 있으니 사방팔방 흩어진 모험가들이 모여든 것이다. 최소 20층에서 활동하는 모험가들이 마법사에게 고용된 상황. 평소보다 수가 좀 많다고 해서 그 아득한 층수의 격차를 몬스터 따위가 이겨낼 리 있나.

초원 한구석에서 치솟은 흙 기둥과 굉음은 일종의 축포와 마찬가지였다. 하루 만에 끝나버린 원정대가 대규모로 출몰한 뿔늑대의 부산물로 수입을 한탕 땡겨 먹을 수 있는 축포.

 “그으, 롤랑 님? 다음번이랄 게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예, 뭐. 알겠습니다.”

그렇게 북적북적 모여든 모험가들 사이에서 어색한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거는 마법사 하나. 모험가들이 우르르 몰려와 뿔늑대 잔당을 처리하는 동안 마법사들은 다 같이 초토화된 공터를 뒤지는 중이었다.

이유는 흩날리며 주변을 다 덮어버린 흙더미 사이로 사라진 만월 늑대의 부산물 때문.

…시체가 남지 않아 피범벅이 될 일이 없는 건 좋지만 충격파 때문에 부산물이 날아가는 건 마음에 들지 않네. 상대가 보스 몬스터라고 손에 힘이 과하게 들어간 건 사실이지만 부산물이 흙에 묻혀버릴 줄은 몰랐지.

 “아, 하나 찾았다!”

 “나도…, 아니다. 이건 그냥 뿔늑대 부산물 같은데?”

대학원생 비슷한 처지의 수습 마법사들이 흙바닥을 기어 다니며 부산물을 찾아다니자, 마음씨 착한 아이린도 한 손 거들겠다고 고운 손으로 바닥을 헤집는 중이다. 예비 성녀가 불쌍한 사람 돕겠다고 바닥을 기다시피 돌아다니는 데 파티원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예비 성녀의 보호막이 흙 폭탄 정도는 너끈히 막아냈지만, 괜히 옆에 있던 뿔늑대 중 몇 놈은 자갈에 맞아 죽었는지 만월 늑대와 뿔늑대의 부산물이 섞여 있는 상황. 땅을 파면 돈이 나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한세아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진다.

 “아, 역시, 만월 늑대 부산물은 싹 다 판매 불가형 퀘스트 아이템 같은데. 마탑이 싸그리 수거해가서 10층 게이트 만들면 남는 게 하나도 없을 것 같아. 니들도 만월 늑대 잡고 번 돈으로 장비 맞추겠다는 그런 망상은 멈춰야 할 것 같은데….”

역시 가져다 팔면 금화 몇백 개가 너끈히 나올 부산물을 플레이어에게 줄 리가 없지.

나름대로 일확천금의 꿈을 꾸고 있었는지 입술이 댓발 튀어나와서는 시청자들에게 꿍얼거리는 모습.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지만 행동은 보이기에 옆을 지나가던 아이린이 조심스럽게 한세아에게 말을 건다.

 “저어, 한나 자매님? 많이 힘드시면 마차에 돌아가서 잠시 쉴까요?”

 “아뇨! 괜찮아요.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어, 깜짝 놀라서 그런 거예요. 나는 언제쯤 저렇게 강해질 수 있나 해서…, 헤헤.”

얼떨결에 5★ 힐러님에게 꼽을 준 모양새가 되자 필사적으로 둘러대는 한세아의 모습.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흙바닥에서 뿔늑대 부산물을 잔뜩 캐온 그레이스가 슬그머니 한세아에게 물건을 넘긴다.

그러더니 미안함을 떨쳐내지 못하는 아이린과 필사적으로 웃어 보이는 한세아를 뒤로 한 채 그레이스가 내게 다가온다.

 “저기, 롤랑. 원래 이렇게까지 강했어…?”

 “강하니까 왕국 외곽을 돌며 몬스터 퇴치 의뢰를 받았지.”

 “아니이,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지. 마을에 가끔 토벌을 돕기 위해 오던 기사들이랑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해 보이는데.”

지금만큼은 탐색꾼 그레이스가 아니라, 화전민 마을의 소녀 그레이스라는 듯 칭얼거리며 슬쩍 달라붙는 그녀. 부끄러움이 약간 뒤섞인 눈동자를 보자 대충 감이 잡히는 부분이 있었다.

 “왜, 마을에서는 내가 목숨을 건 사투 끝에 너희 마을을 지켜냈다고 들었어?”

 “…아, 진짜.”

히죽 웃으며 질문을 던지자 정곡을 찔렸다는 듯 부루퉁해지는 얼굴. 마을을 떠나 모험가가 된 것, 나를 보자마자 파티에 들어온 것, 술에 취한 척 나를 덮쳐버린 것.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행동력에는 사랑뿐만 아니라 부채의식 같은 것도 섞여 있었나 보네.

그래도 싫지는 않은 듯 팔뚝을 툭툭 건드리고 다시 흙바닥에 시선을 내리꽂고 발로 흙을 뒤적이는 그레이스.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않은 채 그녀의 곁에서 나도 바닥을 뒤져보았다.

 “만월 늑대의 부산물, 전부 수거한 것 같아요―”

한세아가 스태프를 번쩍 들어 올린 채 선언할 때까지.

퀘스트 창으로 확인했는지 확신에 가득 차 더 이상의 부산물은 없다고 선언하는 그녀. 그녀의 말을 들은 젊은 수습 마법사들이 흙바닥에서 허리를 펴고 일어나 밝게 웃는다. 무슨 탄피 줍는 것도 아니고 부산물 찾아 땅을 파헤치다 해방되었으니 기쁠 수밖에.

물론 저들이 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한세아가 열심히 모은 만월 늑대의 부산물로 10층과 도시를 연결하는 게이트를 만들어야 할 테니까.

게임인 이상 만들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리 없을 테고, 빨리 만들려면 인력이 과도하게 동원돼야 하는데… 마탑에서 동원할 인력이 쟤들 말고 어디 있겠어. 몇몇은 자신들의 미래를 눈치챘는지 허리를 펴자마자 얼굴이 죽상으로 되돌아간다.

 “전부 찾은 거야? 나 좀 보여줘.”

 “그래요, 언니. 마탑이 연구용으로 싹 다 가져갈 거긴 한데, 주기 전에 구경은 해도 되겠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슬그머니 다가가는 그레이스. 이에 아이린 말고도 근처에 있는 마법사들과 모험가들도 슬그머니 이쪽을 구경하기 시작한다. 부산물이란 게 남 보여준다고 가치가 내려가는 게 아니니 인벤토리에서 과시하듯 스윽 꺼내는 한세아.

사람 팔뚝만 한 크기의 뿔 조각, 수정구처럼 보이는 눈알, 한 뼘은 될 법한 송곳니와 그보다 커다란 발톱. 뿔늑대의 부산물이 수정 조각처럼 보인다면 만월 늑대의 부산물은 어디 부티크 같은 곳에 명품으로 전시되어도 속아 넘어갈 수준.

그 아름다운 자태에 구경꾼들의 입이 헤― 하고 벌어진다.

 “뭣들 하고 있어? 만월 늑대를 처리한 한나 양이 뒷수습까지 전부 해야 하나?”

 “아닙니다!”

 “그래, 얀슨. 원정은 하루 만에 끝났지만, 연구는 끝난 게 아니지. 협회에 제출할 논문을 첨삭 받고 싶으면 지금부터 바로 준비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모험가분들, 마탑은 만월 늑대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뿔늑대의 부산물을 비싸게 구매할 생각이지 평범한 뿔늑대 부산물까지 웃돈을 얹어 주고 구매할 생각이 없다오.”

성큼성큼 다가온 노인 하나가 말 몇 마디로 모두를 쫓아낸다. 고용된 모험가들은 사방팔방 흩어진 뿔늑대들을 눈에 불을 켜고 추격하기 시작했고, 얀슨이라 불린 마법사는 한세아로부터 만월 늑대의 부산물을 받아 챙긴다.

 “흠흠, 좋아. 게이트의 이론은 이미 준비되어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한나 양. 이제 남은 건―”

아까 마차 안에 있던 노인 중 하나였는지 모험가와 마법사들을 쫓아내고선 한세아에게 착 달라붙어 입을 열기 시작하는 노인. 그의 눈동자에 깃든 것은 늙은이의 음흉한 성욕 따위가 아닌 형용할 수 없는 마법사만의 무언가.

순식간에 울상이 되는 한세아를 보고 슬쩍 채팅창을 열었다가 5초도 되지 않아 종료했다. 기존의 시청자와 유입된 시청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불타는 이모티콘을 도배하고 있었으니까. 초인의 시력이고 나발이고 읽을 글자가 없는 수준.

도네이션으로 유료 찬스 타임을 사용한 것까진 좋았지만, 그 이후에 이어진 마법사식 수다에는 시청자들이 적응을 못했나 보네. 하긴, 그 친화력 좋고 능글맞은 그레이스도 여관에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탈출했었지.

 “아, 저기…. 아, 롤랑! 모험가 길드에 보고하러 가야죠?”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 한세아가 애타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겨우 지어낸 거짓말을 내뱉는다. 만월 늑대가 토벌되었으며 그 부산물을 마탑이 전부 구매했다는 걸 따로 보고할 이유가 없는데.

그 울상이 된 얼굴이 퍽 귀여운지라 마음 같아서는 조금 골려주기 위해 모른 척할까 했지만… 마음에 걸리는 건 시청자들의 채팅.

탑을 등반하는 동안 마차 안에서 무슨 지랄이 벌어졌길래 기존 시청자는 물론이요 외국인으로 보이는 아이디들도 불태우는 아이콘을 도배하고 있는 거야. 채팅을 제재당할지라도 방송을 보는 게 금지되는 건 아닌지 진짜 미친 듯이 달려드는 시청자들.

 “그래. 모험가 길드에 보고도 해야 하고, 아이린이 돌봐주는 아이들을 생각해보면 바로 신전에 가는 것도 좋겠어. 금방 끝났으니, 괜한 걱정 하지 않도록 말이야.”

 “그, 한나 양은….”

 “아, 그러네요. 만월 늑대의 부산물은 보여줄 수 없지만, 이야기를 들려주면 다들 좋아할 거에요. 안 그래도 신전 뒤편의 골목에서 뿔늑대가 나와 아이들이 잔뜩 겁을 먹었거든요.”

 “…그, 어쩔 수 없겠구먼.”

아무리 뻔뻔한 노인네라 하더라도 아이린의 해맑은 미소 앞에서는 무력화되는 건가. 여사제가 신전에 있을 고아들을 위해 한세아를 데려가겠다는데, 거기에 감히 강짜를 놓을 순 없겠지.

이러면 오늘 저녁도 술 파티가 아니라 신전에서 보내게 되겠네. 물론 한세아는 마법사들과 같이 있느니 애들 앞에서 광대가 되는 걸 기꺼이 선택했다. 아이린의 팔을 놓치면 마탑으로 끌려간다고 믿는 것처럼 착 달라붙어서.

 ”어머, 많이 무서웠나 봐요. 하긴 저도 보호막을 덮치는 흙의 파도를 봤을 땐 깜짝 놀랐으니까요.“

 ”네, 네. 그러니까 빨리 내려가는 게 어떨까요….“

생각해보니 샤를롯도 그렇고 마법사들은 하나같이 수다스러운 면모가 있는 건가. 10년간 모험을 하며 만났던 마법사들을 생각해보면 대충 7~8할가량은 수다스러운 것 같은데.

……그나저나 시청자 이 새끼들은 너무 욕망에 솔직한 거 아닌가. 한세아가 아이린의 팔뚝을 붙잡고 발걸음을 서두르자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아이린의 몸매. 두껍고 평평한 수녀복이 슬쩍 잡아 당겨지니 강제로 그 풍만한 몸매가 드러나게 된 모양새.

그레이스에게 밀리지 않는 수준의 커다란 가슴이 뒤로 슬쩍 당겨진 수녀복에 의해 출렁거리자마자 궁금해서 다시 열어본 채팅창의 불꽃 아이콘이 순식간에 하트 아이콘으로 바뀐다.

진짜, 존나 솔직해.

한세아가 마법사들의 수다를 피해 신전으로 도망친 날, 고작해야 하룻밤 사이에 참으로 많은 일이 벌어졌다.

가장 커다란 변화라 하면 아침 댓바람부터 웅장하게 우뚝 서 있는 석재 게이트겠지. 마법의 힘인지 시스템의 힘인지 하룻밤 만에 뚝딱 만들어진 커다란 게이트. 사람은 물론이요 원정대의 마차도 너끈히 집어삼킬 커다란 크기.

 “그래서, 만월 늑대의 토벌 보상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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