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 (40/175)

하기야 이 넓은 초원에서 보스몹까지 랜덤 출현하면 골 아프지.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모험가들과 텐트 안으로 각종 시약 따위를 옮기는 마법사들. 원정대 캠프보다는 무슨 과학자들 모여 있는 연구 기지 같은 느낌이네.

 “털이 가리키는 쪽으로 가면 되나?”

 “응, 그리고 그건 만월 늑대의 흔적만 찾아 주는 거니까….”

 “매복한 뿔늑대는 따로 확인해야겠네. 저 앞 수풀에 한 마리.”

자연스럽게 뒤로 빠지는 그레이스를 지나쳐 펄쩍 뛰어드는 뿔늑대의 골통을 부숴버렸다. 듣기로는 이번 원정에서 나온 뿔늑대 부산물 또한 마탑이 일괄 구매를 한다던데 진짜 장비 살 돈은 마련되겠네.

수정구를 든 그레이스가 멈춰서서는 이상하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 모습에 그레이스의 뒤를 따라 걷던 우리도 그녀의 곁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야?”

 “이거, 빛나고 있어….”

아무래도 퀘스트 목표 지역에 도착했는지 번쩍거리기 시작하는 수정구 안의 만월 늑대 부산물. 은빛으로 빛나던 털이 무슨 전구의 필라멘트라도 된다는 듯 발광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들 아름다운 은빛의 자태에 시선을 빼앗길 때, 오직 한세아만이 다른 곳을 향해 눈을 돌린다.

그 모습에 그레이스와 아이린 또한 눈치를 채고 한세아를 향해 시선을 보낸다. 파티 중 유일한 마법사니 그녀의 의견이 듣고 싶겠지.

 “만월 늑대의 흔적이 아주 강하게 남아 있나 봐. 원정대의 사람들을 불러 모을까? 아니면….”

 “탐색을 계속하자. 사람들이 몰려오면 놈이 도망칠 수도 있어. 차라리 먼저 추적을 하고 사후 보고를 하는 게 낫다.”

 “그렇지?”

탐색을 계속 하자는 내 말에 표정이 활짝 피는 걸 보니 이게 정답이었나. 당차게 고개를 끄덕거린 한세아가 수정구를 양손으로 들고 방향을 조금 꺾어 나아가기 시작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점점 밝게 빛나기 시작하는 만월 늑대의 부산물.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니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초인의 육체가 피부로 받아들이는 이질감. 수백 번은 넘게 오간 초원의 공기가 아닌 다른 곳의 공기. 걸을수록 그 감각이 선명해지는지 잠시 뒤에 그레이스가 목소리를 한껏 낮추며 입을 연다.

 “공기가, 달라졌어. 밤의 초원이 가까워지나 봐.”

그 말에 슬쩍 한세아를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내 시선을 이해 못 한 채 의아하게 나를 마주 바라보는 그녀였지만, 아무래도 판타지에 좀 빠삭한 시청자 하나가 도네이션으로 훈수를 뒀는지 움찔거린 뒤 입을 연다.

 “지금부터는 롤랑이 선두에 서는 게 좋겠어. 선두에서 롤랑이 만월 늑대에 대응하고, 후열에서 그레이스 언니가 뒤로 돌아오는 뿔늑대가 있는지 탐색해 줘. 아이린 님은 뿔늑대나 만월 늑대가 등장하면 보호막을 우선 사용해서 후열진을 보호해 주세요.”

 “그래, 알겠다.”

 “네, 알겠어요.”

맨 앞에는 수정구를 받아 든 나, 중간에는 한세아와 아이린, 맨 뒤에 그레이스. 뿔늑대의 기습 정도는 그레이스가 충분히 알아차리고 대처할 수 있으니 뒤는 괜찮겠지. 그녀 정도의 실력이면 뿔늑대를 견제하며 아이린의 곁으로 도망칠 수 있을 테니까.

남들은 평균 3★ 정도로 잡으러 오게 될 몬스터니, 5★과 6★이 있는 우리 파티는 걱정할 게 없겠지. 내가 걱정하는 건 다른 부분.

 ‘이거, 일격에 죽여버려야 하나?’

지난번 만월 늑대와 만났을 때 대충 감이 왔다. 맨손으로는 힘들지만, 철퇴를 들고 와 무식하리만치 마력 강화를 때려 박으면 일격에 죽여버릴 수 있다는 전사의 직감. 그 때문에 나는 두 가지 길에서 고민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만월 늑대를 내가 일격에 때려죽이는 것.

퀘스트를 초고속으로 클리어하고, 세계 1위를 유지하게 해 주는 6★ 팔라딘 롤랑의 뽕 맛을 한세아와 시청자들에게 맛보게 해 주는 것이다. 방송인으로서 게이머로서 한세아가 탑의 등반을 포기하지 않게 해 줄, 시식 코너의 샘플 같은 느낌.

두 번째는 패시브를 생각해 내가 만월 늑대를 붙들어 두는 것.

나를 방패 역할로 생각한다면 우리 파티는 기형적으로 방어 능력에 치우쳐져 있는 상황이다. 탱커에 보호 사제로 이루어진 파티니까. 그레이스는 실력 좋은 탐색꾼이지만 좋은 딜러라고 보기에는 어렵지.

이런저런 고민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머리 쓰는 데 소질이 없으니 그냥 말해버리자고.

 “한나, 물어볼 게 있는데.”

 “어떤 거?”

 “만월 늑대, 내가 일격에 때려죽여도 상관없나? 마법사로서 관찰을 위해 시간을 끌어야 한다던가.”

생각지도 못한 내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그녀. 한세아뿐만 아니라 그레이스와 아이린도 화들짝 놀라 내 쪽을 바라본다. 초보 모험가와 신전에서 나고 자란 여사제답게 상급 모험가가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나 보네.

편의상 내가 소드마스터라 부르는, 검술의 달인들처럼 내 철퇴를 흘릴 줄 아는 존재만 아니면 누구나 골통을 까부술 수 있는 게 롤랑이라는 모험가다. 거죽이 두꺼워 기사들이 꺼리는 오우거 같은 놈도 정강이를 부수고 다리를 꺾어 대가리를 깨버릴 수 있는 수준.

설마 10층의 보스 따위가 바깥의 최고 위험 등급 몬스터에 비견될 리 있겠어.

 “바로 죽여, 몬스터잖아. 부산물만 있으면 연구 자료로서 충분할걸?”

이런 내 질문에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곧바로 대답하는 그녀. 새카만 눈동자가 또렷하게 나를 바라보는 게, 시청자들의 의견 따위를 듣지도 않은 모양새다. 스킬을 고를 때도 그렇고 뭔가 정하면 되게 뚝심 있게 밀고 나가네.

물론 아예 무시할 순 없는지 곧바로 입을 다시 연다. 나를 향해서가 아니라 시청자들을 향해서.

 “파티에 5★도 아니고 6★이 있는데 최대한으로 써먹어야지, 안 그래? 니들도 운 좋게 5★이랑 게임 시작했으면 그 위주로 파티 짤 거 아니야. 탱커 계열이니까 언젠가 딜이 부족해진다고? 그렇게까지 미래를 보느라 지금 엉뚱한 짓 하면 시간 낭비지. 효율 추구하다 진행도 1위 타이틀 뺏길 일 있어?”

아무튼, 1등으로 쭈욱 달리기 위해 효율을 따지고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현재를 달리겠다는 한세아의 선언.

 “전에 정리했던 것처럼 최대한 빙결이나 전격 계열로 가서 CC 셔틀 할 거니까 이 부분은 훈수 안 받아요. 솔직히 말해서 반사뎀 패시브만으로 10층 뿔늑대 일격사 시키는 캐릭터보고 딜부족 운운하는 건 양심이 좀 없지.”

말하는 걸 들어보니 게임에 접속하지 않았을 때, 방송을 키고 시청자들과 함께 육성 루트를 짠 것 같았다. 확실히 내 전투 스타일을 생각해보면 화력 위주의 마법사보단 상대방의 발을 붙잡고 늘어지는 마법사가 있는 게 편하지.

탑의 37층까지 오르면서 내 철퇴에 박살이 나지 않던 놈은 없거든. 단단하기로 소문 난 오우거 골통도 부수는 철퇴다. 유효타만 들어간다면 공격력이 부족한 일은 없겠지. 이제 10층 보스 잡는데 먼 미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70층, 80층의 보스를 걱정하는 것도 웃기고.

수다를 떠느라 바쁜 한세아와 달리 긴장감에 침을 꼴깍 삼키는 아이린과 그레이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완전히 상반된 소리를 들으며 앞으로 나아가자 어느 순간 코끝에 훅하고 짐승 노린내가 밀려들어 온다.

 “준비해, 뭐가 있다.”

 “…네.”

긴장감에 가득 찬 아이린만이 내 말에 작게 대답하고, 나머지 둘은 말없이 아이린의 양옆에 나란히 선다. 뒤에는 뭐가 없다는 확신과 앞장선 나에 대한 믿음이 가득 찬, 일말의 고민도 없는 움직임.

만월 늑대의 부산물이 빛나다 못해 수정구가 마치 전구처럼 번쩍거리기 시작할 무렵―

 “어?”

 “아, 어두워졌어요.”

수정구가 마치 섬광탄처럼 한번 밝게 빛난다. 그 과도한 빛에 눈살을 찌푸릴 무렵 어느새 바뀌어 있는 주변 환경. 밝게 빛난 뒤 찾아오는 어둠이라, 연출 하나는 제대로 만들어 놨네.

나는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마력으로 눈을 보호했지만 후열의 세 여자는 그 정도의 노하우와 실력은 없어 눈을 질끈 감은 상황. 눈을 감았다가 뜨니 세상이 낮에서 밤으로 뒤바뀌었으니 놀랄 법하지.

우―우우우우우――

 “…놈이다.”

발목까지 오던 이름 모를 들풀들은 어느새 무릎까지 올 높이로 자라 있었다. 태양 대신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이 내려다보는 밤의 초원. 지난번 뒷골목에서 만났던 은색의 만월 늑대가 그 커다란 몸을 이리저리 뒤틀며 한 걸음씩 다가온다.

달빛을 받아 빛나는 아름다운 은색 털과 커다란 덩치, 기사의 랜스처럼 우람하고 뾰족한 뿔.

한낱 몬스터라고 믿을 수 없는 압박감에 등 뒤에서 흐읍, 하고 숨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온다. 귀를 뒤흔드는 늑대 하울링 소리와 비명을 지르듯 성법을 발동시키는 아이린의 뾰족한 목소리까지.

 “야, 잠깐, 이 타이밍에 미션은, 뭐어――”

 “여신이시여 가호하소오오――”

깊게 들이마신 숨을 내뱉는 대신 마력을 전력으로 일으켰다. 예민해진 감각에 밀려 들어오는 과도한 정보들.

한 걸음, 파티원의 목소리가 아스라이 멀어지며 귓가에 목소리 대신 바람 갈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 바람 사이로 들려오는 만월 늑대의 그르렁거리는 숨소리와 수풀에 엎드려 있는 뿔늑대의 숨죽인 호흡 소리까지.

두 걸음, 그 고요한 짐승들의 숨결 너머로 파여버린 땅에서 튀어 오른 자갈의 소리가 들려온다. 위협적으로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는 흙덩이와 자갈들, 풀잎 사부작거리는 소리. 화들짝 놀란 뿔늑대들이 무릎까지 온 풀을 헤치고 벌떡 일어나는 소리.

세 걸음, 코앞까지 다가온 만월 늑대의 아가리가 마력을 가득 품고 쩌억 벌려진다. 무슨 뿔 달린 늑대 새끼가 아가리로 브레스 비슷한 걸 쏘려고 하는지 날카로운 송곳니 앞에 모여드는 마력.

하지만 무의미한 발악이다.

마력을 다룰 줄 알았지만, 부하를 이끌고 다니지만, 보스 몬스터의 지능으로도 알 수 없었던 딱 한 가지. 탑의 37층을 돌파한 6★ 가챠 캐릭터가 얼마나 강력한지 뿔 달린 늑대의 대가리로는 절대 알 수 없겠지.

 “흐으으읍―!”

적을 기죽게 하는 기합성도 없고 누군가의 검술처럼 거창한 기술 이름도 없었다.

다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 목숨을 지켜준 딱 한 가지의 반복 동작이 만월 늑대의 앞에서 벌어졌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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