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화 (34/175)

아이린의 말에 애매한 표정으로 시선을 교환하는 여자들. 지난번 모험가 강도 때도 그렇고 모험가의 탑은 이게 문제다. 오르고 내리는 시간이 있다 보니 바깥에 한 번 나오면 다시 들어가기 애매하단 말이지.

물론 탑 안에서 노숙을 한다면 지금 들어가도 상관없겠지만 노숙을 하기에는 타이밍이 애매하다. 아이린이 파티에 들어온 첫날이자 마탑에 만월 늑대의 흔적을 맡긴 날이니까. 돈이 궁핍한 상황이라면 늦은 밤까지 초원에서 머무르겠지만 우리 파티는 나라는 물주가 있어서 주머니가 두둑한 상태.

 “저어, 시간이 남는다면 신전에 들러주시겠어요?”

 “신전이요?”

그 애매한 시선들을 눈치챘는지 아이린이 여전히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린다. 당연하게도 방송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한 한세아는 기쁘게 반기는 모양새. 그레이스도 모험가 도시의 커다란 신전에 호기심을 좀 느끼는 것 같다.

 “롤랑 님의 파티를 수소문하다 보니 신전의 사제님들께 이야기를 좀 많이 하게 되어서요. 뿔늑대로부터 사람들을 구해준 인사를 하고 싶다는 사제님도 계시고, 제 억지를 받아들여 준 걸 감사히 여기는 사제님도 계세요.”

 “에이, 억지라뇨. 저희 파티가 사제님을 모셔오려고 길드에 수소문 중이었는걸요.”

파티원들이 딱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말을 이어나가는 아이린과 귀한 5★를 달래는 한세아. 숨기고 있는 ‘예비 성녀’ 타이틀과 관련이 있는 건지 아니면 종교인답게 타인의 일에 관심이 많은 것인지 아는 사제들에게 우리를 소개해 주려는 것 같다.

파티원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사례하겠다는데 내뺄 이유도 없으니 한 번 찾아가 볼까.

마탑이 다양한 마도구를 만들어내고, 연금술사들이 약초를 정제해 포션을 만들어 판다면 신전의 판매 물품은 당연하게도 성수. 마시는 것만으로 모든 게 싸악 나아버리는 만병통치약은 아니고, 신성력과 함께 성법을 식수에 담아낸 게 성수다.

쉽게 말해 휴대용 힐, 휴대용 정화, 휴대용 버프 같은 느낌. 사제 없이 바깥 의뢰를 맡을 때 아주 유용하게 써먹었었지.

 “아이린 양, 곧 저녁 식사 시간인데 신전에 있을 아이들을 위해 시장에서 뭘 좀 사가는 건 어떨까요.”

 “아, 그래도 될까요? 롤랑 님이 음식을 나눠준다면 아이들이 정말 기뻐할 거에요.”

기왕 이렇게 된 거 뽕을 뽑을 생각으로 의견을 제시하자 양손을 마주 잡으며 기뻐하는 아이린. 기본적으로 신전이 고아들을 돌보는 역할도 맡고 있다 보니, 애들 밥 사주는 게 호감작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거든.

고아들을 돌보는 아주머니들이, 후원금 내고 애들 밥 사주는 사람을 싫어할 리 있나. 이야기를 나눠 시장행을 결정하고 테이블에서 일어나니 아이린뿐만 아니라 다른 두 명의 시선도 초롱초롱 날아든다.

 ‘좀 찔리긴 하네.’

성직자들이 부패하거나 타락하지 않아서 그런지 신전의 재정이 좀 빠듯한가 보다. 애들이 먹어봐야 얼마나 먹고, 고아 애들에게 먹을 걸 사준다 해서 뭐 얼마나 비싼 걸 사주겠는가. 한 덩이에 은화를 몇 개씩 내야 하는 스테이크를 잔뜩 사줄 리 있나.

초보자용 여관의 음식보다는 조금 더 질 좋은, 딱 자유민 가정식 정도의 빵과 야채 스튜 따위를 나눠줄 텐데도 저런 눈으로 바라보다니. 효율이고 뭐고 간에 양심이 좀 찔리니까 음식 재료를 좀 많이 싸 들고 가야겠네.

 “한나, 인벤토리에 자리 좀 있나?”

 “자리야 넉넉하지. …아, 이럴 때 신전에 은혜 좀 베풀어 두는 거지. 물론 내 돈이 아니라 롤랑 센세 지갑으로 베푸는 인심이긴 한데 아무튼 인벤토리 제공하잖아. 그렇지, 그리고 지금 5★ 사제님이 파티에 합류했는데 반나절 봉사하러 가는 게 대수야?”

 “그럼 시장에 가서 빵이랑 밀가루, 야채, 고기 좀 사서 가면 되겠네.”

 “신전의 견습 사제 님들이 자주 가는 가게가 있어요. 그곳으로 안내하면 될까요?”

한산하기 그지없는 느지막한 오후의 시장 거리. 모험가들이 쏟아져 나올 시간이 아니고, 부지런한 시민들이 장을 볼 시간도 아닌 애매한 시간. 한 푼이라도 더 벌어먹으려는 상인들의 호객행위가 거리에 울려 퍼진다.

거리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건 당연하게도 아이린. 시장 거리의 사람들이 세 여자의 범상치 않은 외모에 눈을 크게 뜨다가도, 정갈하게 차려입은 수녀복에 급히 정신을 차린다. 몸매를 훤히 드러내고 다니는 모험가라면 몰라 수녀에게 희롱성 짙은 시선을 날릴 용기가 없을 테니까.

그렇게 거리를 걷다 보니 묘하게 시끌벅적한 거리에 도착했다.

 “아이고, 수녀님 나오셨네. 이런 시간에 오다니 뭐 급한 물건이라도 있남?”

신전의 견습 사제들이 자주 온다더니 사제복을 보고 능글맞게 말을 거는 통통한 아줌마. 덩치도 키도 꽤 큰 데다 뺨에는 살이 퉁실하게 올라온 게 평범한 시민은 아닌 모양. 호기심을 느껴 드론 카메라를 피해 채팅창을 켜 보니 ㅋ 초성으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ㅋ의 파도 사이로 보이는 단어는 1★ ‘후덕한 제빵사’ 요한나.

 ‘전투 캐릭터가 아니어도 별은 붙는 건가.’

팔라딘, 예비 성녀, 견습 레인져 다음으로 만난 가챠 캐릭터가 제빵사라니. 시청자들이 웃는 이유를 좀 알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나무 작대기를 든 꼬맹이들이 빵집 앞을 지나가며 소리 지르는 게 보인다.

아까부터 묘하게 소란스러운 것 같더니, 애들이 전부 이쪽 골목에서 놀고 있었구나.

 “안녕하세요, 요한나 아주머니. 신전에 있는 애들 저녁거리를 좀 사러 나왔어요.”

 “이 시간에 저녁거리를? 신전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 아니죠?”

 “안 좋은 일이 있는 건 아니에요. 신전에 방문하시는 분이 아이들에게 먹을 걸 사 주고 싶어 하시는 거지.”

 “어머머! 좋은 일 하시는 분들이네. 여신님께서도 좋아하실 거에요.”

호들갑스러운 웃음소리와 함께 가게 안으로 쏙 들어가는 제빵사 아줌마. 열린 문 사이로 고소한 빵 내음을 맡고 있으니 내 옆으로 한세아가 슬쩍 다가온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거리를 뛰어다니던 애들이 전부 빵집 앞으로 우르르 몰려온 상황.

열 댓 명이 우르르 몰려와 포위한 모양새라 부담감을 좀 느꼈나. 무슨 일인가 싶어 뒤돌아 한세아 앞을 가로막듯 섰다. 어리고 약하다 해서 전부 선한 건 아니니까, 소매치기 같은 녀석들이 섞여 있을 수 있거든. 물론 인벤토리를 건들지는 못하겠지만.

그러자 한 걸음 앞으로 나와 나를 올려다보는 덩치 큰 녀석.

골목대장인가?

 “무슨 일이냐?”

 “아저씨, 아저씨는 모험가라서 막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죠?”

 “음?”

 “거짓말하지 마! 하늘을 날아다니는 건 마법사란 말이야!”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잠시 멈칫거리니 자기들끼리 말싸움을 시작하는 꼬맹이들. 아무래도 내가 뿔늑대 사건 때 지붕을 박차고 허공으로 도약하는 걸 목격한 모양이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사를 봤다는 꼬맹이와 하늘을 나는 건 마법사라고 반박하는 꼬맹이의 치열한 다툼.

일행들이 따스한 눈으로 나와 꼬맹이들을 바라보는 게 등 뒤로도 느껴진다. 한세아의 편안한 게임과 방송 각을 위해 조금 오버해서 날뛰었더니 길거리의 꼬맹이부터 귀족들까지 소문이 안 퍼진 곳이 없네.

 “나는, 하늘은 못 날아.”

 “봐! 못 난대잖아!”

 “아니야! 진짜 날아다녔다니까!”

 “나는 게 아니라 뛰어다니거든.”

광대가 된 기분으로 빵집 앞에서 허공을 향해 풀쩍 뛰어올랐다. 애들과 일행 앞에서 거리를 박살 낼 순 없어 지붕에 겨우 닿을 정도의 가벼운 점프. 하지만 가벼운 갑옷 차림으로 그만큼 뛴 것 자체가 신기한지 애들이 눈을 빛내며 왁자지껄 떠들어댄다.

그 눈빛에 재촉당해 몇 번이고 가게 앞에서 펄쩍펄쩍 뛰고 있으니 딸랑거리는 문소리와 함께 밖으로 나온 제빵사 아줌마.

 “에구머니나! 뭐, 뭐 하시는 거예요?”

자기 가게 앞에서 사지 멀쩡한 남자가 지붕 높이까지 제자리 뛰기를 펄쩍펄쩍 뛰고 있으니 어지간히 놀랄 수밖에. 너스레 떨던 말투 대신 화들짝 놀라 자연스럽게 존댓말을 내뱉으니 큽, 하고 뒤에서 웃음 참는 소리가 들린다.

……나중에 그레이스랑 술 마실 일 있으면 반드시 혼내준다.

그래도 애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시끄럽게 설명을 해 줘서 곧바로 이해한 모양새. 힘을 가진 모험가가 애들 말도 잘 들어줬다는 점에서 호감도를 산 것 같았다. 물론 어여쁜 미망인도 아니고 이런 아줌마의 호의는 그다지 필요 없어.

 “이 정도면 네 사람이 들고 갈 수 있을 거예요. 저 총각은 힘이 참 강해 보이니, …까?”

 “이 정도면 다섯 포대는 더 들어갈 것 같네.”

 “빵만 먹일 거 아니잖아. 스튜 재료도 좀 싸 들고 가야지.”

 “아, 그러네.”

그래도 한세아가 다짜고짜 빵 봉투를 인벤토리에 처박은 덕분에 관심이 전부 그녀에게 쏠려서 다행이다.

빵과 야채, 고깃덩어리를 인벤토리에 담아 들고 어둑하게 해가 지기 시작하는 거리를 걷는다.

조용한 거리… 라고는 못 하겠네. 빵집 앞에서 놀던 애들이 신전에 위탁된 고아들인지 다 같이 우르르 몰려가고 있거든. 물론 그 녀석들의 관심은 전부 한세아가 흡수한 상황. 아주 높게 풀쩍풀쩍 뛰는 남자보단, 무수히 많은 빵과 야채를 허공 속에 집어넣은 미녀 마법사에게 더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이야기.

 “누나! 누나는 마법사예요?”

 “바보야! 여자는 마법사가 아니라 마녀거든?”

 “마녀는 이야기 속에 나오는 나쁜 마법사잖아! 이 누나는 매부리코도 아니고 혹부리 할멈도 아닌걸!”

신전과 뒷골목을 오가는 고아들이다 보니 마법사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한 모양새다. 한세아는 조금 귀찮아 보였지만, 아무리 NPC라 해도 시청자 앞에서 애들을 밀어낼 순 없었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어울려 준다.

그래도 그 어색한 웃음에 상황을 파악한 그레이스와 아이린이 도움을 줘서 질문의 집중포화에서 벗어나긴 했네.

애들 목소리가 워낙 시끌벅적한지라 신전의 뒷문에 도착할 무렵에는 보육 담당 사제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아이린의 하얀 수녀복과 달리 때가 타지 말라는 듯 새카만 사제복을 입은 사람들. 아이들을 한 명씩 살펴보며 수를 센 남자가 다가와 아이린에게 인사를 한다.

 “음? 탑에 가신다고 하더니 일찍 돌아오셨군요, 아이린 님. 뒤에 계신 분들은 일행분들이신가요?”

 “네. 제 파티원 분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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