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설명을 들어보니 아이린의 재능은 조금 극단적으로 치우쳐져 있다고 한다.
“잔상처가 아닌 것은 곧바로 치료하기도 힘들어하지만, 보호막은 남들보다 좀, 그, 과하게 만들어진다고 할까요….”
설명을 정리하자면 즉발형이 아닌 지속형 도트힐, 상태 이상을 해제하다 못해 면역 버프까지 거는 정화, 마력이 많이 드는 대신 몇 배는 튼튼한 보호막, 그리고 아예 사용하지 못하는 스탯 버프까지.
이거, 법사형 탱커 아닌가?
게이머의 시선으로 보자면 버프기의 부재가 조금 아쉽지만 5★의 스탯을 생각해보면 절을 하며 모셔갈 전열 힐러. 거기에 한세아가 스킬을 쥐여준다는 걸 생각해보면 없던 버프도 생겨날 가능성이 있긴 하지.
하지만 현실성이 가미된 신전의 입장으로 보자면 아이린의 성법은 아쉬운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그 때문에 여신님의 뜻을 알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탑을 올라야 합니다.”
신전의 업무 중 하나는 도시 내부에서의 부상자를 돕는, 일종의 응급실 역할이 있다. 마차에 치였다던가, 탑 내부에서 부상을 입고 겨우 도망쳐 나왔다던가. 응급실에서 필요한 건 죽기 직전의 환자를 곧바로 되살리는 강력한 힐 한 방이지 느릿하게 치료해주는 지속형 치유가 아니다.
보호막 특화 사제인지라 낮은 회복 효율 때문에 일반 시민들을 위한 봉사에는 써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부분은 어차피 다른 사제들이 훨씬 잘하니 마력을 어거지로 때려 박을 수도 없다. 정화 스킬이야 도시에 역병 따위가 돌지 않으면 면역 버프까지 필요할 일도 없고.
예비 성녀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을 정도의 여사제라 그런지, 자신의 강력한 정화와 보호막에 자신감을 표출하기보다는 낮은 회복량에 대한 부끄러움만 느끼는 것 같다. 그런 그녀에게 던져진 한세아의 질문 하나.
“그렇다면, 어째서 저희 파티를… 아, 아니! 싫다는 건 아니구요!”
“어제, 롤랑 님께서 홀로 11층에서 수련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파티를 이끄시는 분께 여쭤보니 이름을 알게 되었지요. 탑의 37층까지 상처 하나 없이 우직하게 돌파하였으며, 탑 밖에서도 무수히 많은 사람을 구했다는 것까지.”
카이트 쉴드를 든 그 탱커 아저씨, 나를 아는 사람이었나. 하기야 중층의 모험가쯤 되면 상급 모험가 대부분을 알고는 있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이 연예인들과 유명 감독의 얼굴을 아는 것과 비슷한 느낌.
탑 밖의 의뢰를 하러 가서 만난다던가, 탑의 최상층으로 물자를 보낼 때 만난다든가 하는 일이 잦으니까.
그나저나 탑 밖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을 구했…긴 하구나. 보상은 짭짤하지만, 사람들이 꺼리는 의뢰를 몸으로 밀어붙여서 해결했으니까. 나야 내 집 마련의 꿈을 품고 노가다를 뛴 상황이지만, 신전에 몸담은 사람으로선 몸소 더럽고 귀찮은 일을 솔선수범하는 모습으로 보였나 보다.
어쩐지 가끔 의뢰 때문에 만나는 사제들이 좀 친절하더라.
“제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말씀드리는 것 같아 부끄럽지만, 그런 분과 함께한다면 미천한 제 성법으로도 여신님의 뜻을 널리 알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치료 능력이 부족하니 다치지 않는 사람과 함께하겠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꽤 양심이 없는 소리처럼 느껴졌는지 새하얀 뺨이 발갛게 물든다. 물론 별이 다섯 개인 사제의 등장에 눈알이 뒤집힌 한세아는 그런 여사제를 달래느라 바쁜 모양새.
“사리사욕이라뇨! 사람마다 잘하는 일이 따로 있는 거고, 현실적인 제약이 있어도 신앙심을 위해 방법을 찾아내시는 중인데 누가 욕을 하겠어요! 사제님이 생각하시기에 여신님께 부끄러운 일이 아니면 된 게 아닐까요?!”
반말과 거짓말을 할 때면 말을 더듬던 한세아가 선거 유세를 시작한 정치인처럼 혀를 놀린다. 행동거지부터 목소리까지 성격이 꽤 소심한 편인지 파티 이적 요청을 하면서 죄를 짓는 것처럼 구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제들이 파티 이적 요청을 하는 일이 거의 없을 뿐이지, 죄를 짓거나 나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그야 모험가끼리도 모였다 찢어지고 싸우고 난리니까. 차라리 사제들처럼 신앙심을 위한 결단이면 또 몰라.
파티의 공금에 손을 댄다던가 파티원끼리 눈이 맞아서 치정 관계가 일어나는 일도 꽤 많다. 칼밥 먹고 사는지라 삼류 조폭처럼 사는 놈들이 잔뜩 있는 모험가 업계에서 여사제는 양반 수준이 아니라 품위 넘치는 공주님이라 불러도 될 정도.
“그런, 가요. 말씀 고마워요.”
“그럼요! 원래 그, 자신의 부족함을 모르는 사람이 인정하는 사람보다 못난 거예요. 아, 못난 건 아닌가?”
나로서도 보호막 특화인 그녀의 합류가 마음에 든다. 다칠 일이 없으면 회복 특화는 쓸모가 없어지거든. 차라리 한세아의 옆에 딱 달라붙어서 보호막으로 버티는 동안 혼자서 날뛰는 게 훨씬 편하지.
아무튼, 횡설수설 난잡한 한세아의 말에 담긴 진심이 느껴졌는지 살포시 웃어 보인 아이린이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이적 신청, 바로 받아들이고 싶은데요. 엘리스 언니! 상관없는 거죠, 저희 파티로 모셔가도?”
“물론이지. 사제님 본인이 원하셨고 별다른 결격 사유도 없으니까. 이전 파티원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건 딱히 강제되는 것도 아니고.”
“아, 그분들께는 어제 설명해 드렸어요.”
그 파티원들은 가챠 캐릭터의 존재를 모르니 아쉬워하면서도 뜻을 존중해 주었다고. 하긴 사제가 스스로 원해서 옮기겠다는데 그걸 억류할 수 있는 놈이 있겠는가. 얼떨결에 인재를 빼낸 모양새가 되었지만, 그 파티의 사정은 알 바 아니지.
좌 한세아, 우 그레이스, 뒤에 엘리스. 얼떨결에 여자들 사이에 파묻힌 아이린이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릴 때마다 세 사람이 열렬한 호응을 보낸다. 한세아는 5★에 눈이 뒤집혀서, 엘리스는 아이린의 미모에 푹 빠져서, 그레이스는 신앙심과 미신에 대한 믿음 때문에.
“그러면 합류도 한 김에, 성법을 확인해 보고 싶은데 어떠십니까.”
소극적인 성격 때문인지 조금 곤란해 보이는 아이린의 모습을 보고 슬며시 수다를 끊어주었다. 파티에 사제가 합류하는 건 언제나 환영할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합도 안 맞춰보고 무작정 탑으로 갈 순 없으니까.
내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한세아. 5★의 힘을 보고 싶은 것인지 기대감이 잔뜩 어린 눈빛으로 아이린의 옆에 착 달라붙는다. 소극적으로 보이는 성격상 이런 관심이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거리는 그녀.
“뒤쪽의 공터로 가서 보호막만 확인해 보죠.”
“네. 어떤 식으로 확인을 하실 건가요?”
회복이 도시의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의 보호막이 탑에서는 통할 거라는 묘한 자신감이 엿보인다. 하기야 그 정도 자존감도 없었더라면 탑에 직접 오르겠다는 마음도 먹지 못했겠지.
다른 접수원에게 짬 처리를 시켰는지 엘리스까지 포함된 일행들이 길드의 공터로 향한다. 어디 가서 보기 힘든 미녀들이 네 명이나 우르르 몰려 있으니 공터에 있던 몇몇 사내놈들이 근육을 과시하는 모양새를 보이지만 시선도 받지 못하는 게 퍽 우습네.
“보호막은 본인에게만 사용할 수 있습니까?”
“네. 저를 기준으로 일정 범위를 지켜줄 수 있어요.”
사정을 설명할 때 보다 또렷해진, 그러나 여전히 작은 목소리로 그녀가 짧은 지팡이를 들어 올린다. 마법사의 스태프보다 조금 짧은 데다 머리 부분에 마정석 대신 종교 심볼이 달린 지팡이.
“빛이여, 가호하소서.”
심볼이 번쩍 빛나더니 마법사의 쉴드와는 조금 다른, 새하얀 빛의 장막이 여자들을 휘감는다. 그레이스, 한세아, 엘리스가 아이린과 거리를 벌린 채 나란히 서 있어도 조금 공간이 남는 커다란 보호막. 빛의 강도도 넓이도 한세아의 쉴드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흠, 이거 대단한데….”
정확히는, 다른 사제의 보호막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빛. 과하게 만들어진다는 말이 허언은 아니었는지 다양한 의뢰를 겪으며 보았던 그 어떤 보호막보다 찬란하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 빛나는 허공을 향해 주욱 내밀어진 내 손.
“음, 어… 어?”
한세아의 쉴드를 검증할 때처럼 검지를 꾸욱 눌러보지만 미동도 없는 보호막. 이게 이렇게까지 단단한 게 말이 되나 싶어 다섯 손가락으로 찰흙에 손가락을 박아넣듯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이게, 뭔?”
그러자 까드드드득하고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미끄러지는 손가락. 마력으로 강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보호막에는 흠집조차 가지 않았다. 조금 전의 악력이라면 어지간한 몬스터의 두개골도 사과처럼 박살 낼 수 있었음에도 흠집조차 없다.
“와아, 매우 단단하네요.”
“이게 사제의 성법. 너무 예쁘다.”
보호막 안에서는 그 일렁이는 빛에 감탄하는 여자들의 얼굴이 보였지만 나는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아이린의 보호막은 내가 주먹에 마력을 둘러 있는 힘껏 후려치기 전까진 흠집도 나지 않았으니까.
쾅! 하고, 마력을 담은 주먹질에 산산이 조각나며 흩어지는 빛의 보호막. 보호막이 부서져도 사제에게는 별다른 피해가 가지 않는지 어리둥절한 눈으로 아이린이 나를 바라본다. 되려 놀라서 호들갑을 떠는 건 한세아와 그레이스.
“꺄악! 뭐, 뭐에요?!”
“아, 잠시 실험할 게 있어서. 다치진 않았죠?”
“네. 보호막이 부서진다 해서 제게 피해를 끼치진 않아요.”
예비 성녀 아이린이라는 캐릭터는 처음 보지만, 그녀의 패시브는 뭔지 알 것 같았다. 아무래도 5★ 이상의 캐릭터는 나처럼 패시브를 하나 들고 시작하는 모양.
이거 그거네, 강철의 성녀 요한나가 가지고 있던 보호막 패시브. 히로인즈 크로니클의 결투장에서 중독, 화상, 출혈 등 다양한 도트딜 캐릭터를 완전히 사장해버린 세기의 미친년.
――일정 수치 이하의 데미지의 완전 무시.
그 롤랑이 주먹질을 해야 부서지는 보호막.
자신의 보호막이 검지손가락으로 꾸욱 눌렸을 때 구멍이 뻥 뚫렸던 걸 기억하는지 한세아의 입꼬리가 내려올 줄을 모른다. 그렇게 히죽 웃는 한세아와 동료가 생겨 아무튼 기쁜 그레이스를 놔 둔 채 나는 고민에 빠졌다.
아이린이 왜 나를 찾아왔을까?
까놓고 말해서 그녀가 말한 ‘다치지 않는 강인한 전사’는 43층에 존나 많거든. 내가 6★이라는 건 나와 한세아만 아는 사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때 나는 유명하긴 해도 저렇게 한 번 봤다고 찾아올 수준은 아닐 텐데.
세간에 알려진 지식대로라면 내가 아니라 43층에 있을 최상위 모험가를 찾아가는 게 맞지 않나? 37층에서 포기하고 내려온 놈이랑, 포기하지 않고 끝끝내 40층을 뚫고 43층까지 간 모험가 중 포기한 놈을 고르는 건 이상하잖아.
“정말 튼튼하네요, 이거!”
“칭찬 감사해요.”
예비 성녀라는 자신의 직책도 숨겼고, 나를 찾아온 정확한 이유도 숨긴 것 같은 상황. 물론 신전에서 온 사람이며, 시스템이 보증한 ‘예비 성녀’니 사악한 계획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다만 신전의 사정인지, 가챠 캐릭터의 서브 스토리인지 궁금할 뿐.
신전에서 나온 사제가, 그것도 성법을 저렇게 아름답게 쓰는 사람이 악인일 리 없다는 건 이 세상의 상식과도 같았다. 조금이라도 타락한 사제들은 이단 심문관의 이름 아래 자정 작용으로 신전 지하에 묻혀버렸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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