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는 일사천리. 한세아에게 미안할 정도로 간단하게 사건이 끝나버려서 경비대에 갈 일도 생기지 않았다. 발목이 부러진 놈들이 탑 입구에서 꿈틀거리고 있자 뿔늑대 때문에 순찰하던 경비대원들이 접근해 온 것이다.
“롤랑 님이시군요! 지난번 사건 때는 신세를 좀 졌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탑에서 모험가를 살해한 강도들입니다. 본인들 말로는 산적 출신이라 현상금이 있다던데요.”
“아아, 그렇군요! 현상금 확인 뒤 길드 편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온갖 귀찮은 절차가 있어야 한다. 일단은 도시 내부에서 일어난 폭력 사태에, 증거도 증인도 없이 상급 모험가가 사람을 쥐어박아 불구로 만든 뒤 끌고 온 상황이니까. 하지만 그 모든 건 경비대원의 호의로 말끔하게 처리된다.
뿔늑대 사건이 빠르게 처리되지 않으면 왕창 깨지는 것은 당연히 경비대. 도시 내부의 치안을 담당하는 조직이다 보니 높으신 분들의 내리 갈굼이 우수수 쏟아질 뻔한 걸 내가 막아 준 것이다.
거기에 귀족들도 내 이야기로 어깨를 으스대느라 경비대에 튄 불똥이 없다시피 한 상황. 이런 상황에 모험가로서의 명성이 더해지니 간단한 조사 따위는 산적 놈들의 인권과 함께 가볍게 무시되는 것이다.
[플레이어 한세아 님이 6★ 팔라딘 롤랑의 첫 번째 스킬을 선택하였습니다]
[첫 번째 스킬 : 「방패술의 달인」이 활성화됩니다]
…근데 뭐야 이건.
내 스킬을 한세아가 선택한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산적들을 넘기고 길드로 천천히 걸어가는 중 골목길에 잠시 들어가 게시판을 열었다. 경비대에 가 보고 싶어 기대하는 한세아에겐 조금 미안하게 되었네.
길드에서 나를 기다리는 김에 내 스킬을 시청자들에게 공개한 뒤 선택했는지 채팅창도 게시판도 난리가 나 있었다. 나도 몰랐던 내 스킬을 가지고 엄청나게 떠드는 시청자들. 이쪽 세상에도 나무위키 비슷한 게 있는지 문서 비슷한 게 벌써 만들어져 있었다.
일단, 뿔늑대를 만난 날 활성화 된 것 같은 패시브는 「불굴의 기사」. 효과는 두 가지로 받는 피해량의 50%를 조건 없이 감소시키며, 근접한 적에게 내 체력과 방어력에 비례한 데미지를 반사한다는 내용이었다.
‘…한 장에 85만 원을 태웠던가. 태울 만했네.’
풀돌도 아니고 1뽑 천장 기댓값이 100만 원인 이유가 있었구나. 어처구니가 없어 잠시 10년 전 손가락을 벌벌 떨며 뽑기 버튼을 눌렀던 기억이 뇌리에 떠오른다. 히로인즈 크로니클 이 새끼들은 돈독이 오른 걸까 밸런싱 능력이 밑바닥인 걸까.
둘 다겠지?
그다음은 한세아가 고른 첫 번째 스킬 「방패술의 달인」. 이름만 보면 패시브 스킬인데 액티브 스킬이라며 친절하게 주석을 달아 둔 게 보인다. 효과는 스킬 사용 시 짧은 시간 동안 모든 공격을 반격한다고 적혀있네.
…그걸 어떻게 하는 거지?
┗모든 공격을 반격한다는 게 무슨 뜻임?
┖아마 원거리 공격도 반격할 듯
┗그럼 존나 사기 스킬 맞잖아
┗한세아가 욕먹는게 다른 스킬도 너무 좋았음
┗ㄹㅇ 뭘 골랐어도 욕은 먹었을거 같은데
┗스킬 목록만 봐도 눈물이 나오네 이게 6★?
누구한테 배운 것도 아니고 몸으로 때우면서 익힌 방패술인데 어쩌겠는가?
내가 가진 의문점을 똑같이 가졌는지 우르르 달린 수십 개의 댓글.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한세아를 만날 때까지 반격이나 반사뎀 따위의 기술이 없었다. 고블린의 돌팔매가 날아오든 아룡종의 브레스가 날아오든 막아내고 버틸 뿐이었지 방패로 원거리 반격을 어떻게 해.
읽을 만한 정보를 전부 읽고서 골목길에서 나와 천천히 길드 쪽으로 향한다. 내 스킬에 대한 정보는 찾았으니 시간도 때울 겸 추천이 많은 게시글을 둘러보았다. 방패술을 고르느라 한세아가 포기한 스킬을 가지고 떠드는 애들이 많네.
한세아가 읽지도 않고 지나간 ‘위협적인 포효’가 광역 디버프인가 광역 도발기인가를 가지고 싸우는 애들도 있고, 파티에 사제가 들어올 텐데 자힐기가 있어야 한다 아니다로 싸우는 애들도 있었다.
아마도 평행세계 비슷한 세상이지만 한국인의 게임에 대한 열정은 그대로인가.
“아, 왔…, 그 강도들은?”
“탑 입구에 있던 경비대원들이 곧바로 끌고 갔어.”
“그러네, 아까 순찰 돌고 있었지.”
게시판을 읽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길드. 신경줄이 굵다고 해야 할지, 깡이 좋다고 해야 할지 태연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한세아가 나를 반겨준다. 게시판이야 둘째 치고 채팅창은 아까 보니 포기한 스킬 때문에 난리가 났던데 그냥 무시해 버리는 모양새.
채팅 관리자가 실시간으로 욕설과 비난을 제재하고 있다지만 마음이 쓰일 텐데,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모습이 참 방송인으로서 대단한 것 같긴 하네.
“현상금은 경비대에서 파악해 길드 편으로 보내주기로 했어. 중급 모험가 수준이면 두 사람 장비는 바로 살 수 있겠는데.”
“벌써 중급 장비를?”
내 말에 화들짝 놀라는 그레이스와 한세아. 그야 그럴게, 식비와 숙박비는 내가 대신 지불하고 있으니 뿔늑대를 사냥해 번 돈이 고스란히 저축되는 상황이다. 하루에 은화를 몇 개씩 벌고 있지만 나가는 돈이라고는 그레이스의 화살 구매 비용 정도가 끝. 아, 한세아가 만든 뿔늑대 유인향 재룟값도 있구나.
따라서 우리 파티의 자금 저축력은 어지간한 파티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만월 늑대의 부산물을 판매한다면 두 사람 모두 중급용 장비를 쫙 맞춰 입어도 될 정도.
‘그래도 만월 늑대가 큰돈은 주지 않겠지.’
그레이스에겐 만월 늑대 가죽이 몇십 골드를 넘어 백 골드 가까이 된다고 말했지만, 우리 손에 그 돈이 들어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 게임 밸런스적으로 문제가 좀 많아 보이니까.
한세아가 아닌 다른 플레이어라면 하루에 필드에서 잘 벌면 은화 한 두개를 벌 텐데, 첫 보스몹이 하루 벌이의 1,000배 값어치를 지닌 아이템을 드랍한다?
현실이라면 길 가다 로또 맞는 사람 정도지만 게임 내부에서라면 스토리가 박살 날걸. 아마 마석 정도만 주고 부산물은 없지 않을까. 그리고 그 마석으로 10층으로 직행하는 게이트 같은 게 열리는 거지.
“왜 그래? 경비대가 그렇게 궁금했어?”
“아, 언니이. 좀 궁금하긴 했는데 괜찮아요.”
“사양할 거 없어. 궁금하면 가 보면 되는 거지. 경비대가 무슨 접근 금지 구역도 아니고.”
게임 밸런싱과 숏컷에 대한 행복한 망상을 하고 있으니 갑작스럽게 진행된 두 사람의 대화. 하긴, 저녁 식사를 하고 헤어지기에는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상황. 하루 치 수입이야 현상금으로 메울 수 있지만, 한세아의 비어버린 방송 시간은 메울 방법이 없었다.
그 때문인지 천생 방송인인 한세아는 자신을 어르고 달래주는 그레이스의 말에 눈을 반짝 빛내며 내 쪽을 바라본다. 아무래도 치안을 담당하는 곳이다 보니 경찰서처럼 용건 없이 찾아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 모양. 한세아의 옆에서 그레이스가 어떻게든 해 달라는 눈빛을 내게 보낸다.
“아까 잡은 산적들에게 확인할 게 있다고 말하면 들여 보내줄걸.”
“우리가 뭘 확인해?”
“그건 지금 만들면 되는 이유고. 엘리스? 강도질하던 중급 모험가 잡았는데 패 좀 확인해 줘.”
해가 지지도 않았는데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던 우리 파티가 궁금했는지 슬금슬금 다가오던 엘리스가 미간을 팍 찌푸린다. 물론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흉악해 보이기는커녕 귀여울 뿐이었지만 후폭풍은 감당하기 싫어 곧바로 말을 덧붙인다.
“경비대 관련 일은 내가 처리할게. 지난번 배상 서류 건에 더해서 뚱카롱에 조각 케이크도 사 올 거고.”
“내 것만 사 올 건 아니죠?”
“그래, 다른 접수원 줄 것도 사 올 테니까.”
확실한 보상을 약속하자 배시시 웃어 보이며 내가 꺼내든 모험가 패를 챙겨가는 그녀. 그 모습을 본 한세아가 슬그머니 다가와 내게 귀엣말로 속삭인다. 모험가 길드의 접수원이 일할 때마다 꼬박꼬박 뭘 뜯어가는 게 생소한 모양.
“그, 강도를 잡았으면 패를 확인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모험가 패, 이거 출구 찾는 용도 외에는 겉멋이라니까. 확인한다고 말을 해도 본인 패인지 아닌지는 증명할 방법이 없지.”
“그러면 뭘 확인해 준다는 거야?”
“우리 이야기를 다 들었으니까, 경비대에 들어갈 구실을 만들어 주겠다는 거지. 딱히 의미는 없다지만 공문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
엘리스가 모험가 길드 접수원의 인장을 서류에 딱! 찍어주면서 ‘이 패는 도난된 패로 추측됩니다’ 따위의 의견을 적어주면 된다. 어차피 처형하거나 감옥에 가둘 강도들이니 사소한 명분만 있으면 잠시 보고 올 수 있으니까.
탑 내부에서 강도질로 먹고사는 놈들이 무슨 빽이 있겠는가. 경비대도 대충 처형할 생각이 가득할 테고, 나도 놈들이 가진 사연을 구구절절 들을 생각이 없는데.
‘경비대 들렀다가, 디저트 배달하고, 일찍 헤어져서 스킬 연습 좀 해 봐야겠다.’
타이밍 좋게 일정이 비었으니 스킬 연습을 해 볼 생각을 하며 엘리스에게 서류 한 장을 받아들었다. 열린 문틈 사이로 보이는 사무실 내부의 접수원들. 방긋 웃는 눈웃음에는 달콤한 디저트에 대한 갈망이 어려있다.
하도 엘리스에게 부탁을 많이 하다 보니 롤랑이 뭘 시킨다 = 롤랑이 간식을 사 온다 이런 공식이 그녀들의 뇌리에 각인된 것 같네.
그래도 사무실 안의 접수원들은 길드의 얼굴마담인 만큼 하나같이 미인들뿐. 속내가 좀 있다지만 미녀가 살갑게 대하는 걸 싫어할 남자는 없다. 문틈 사이로 슬쩍 눈인사를 건넨 뒤 길드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이제 문 부수지 말아요!”
“수리비 바가지 무서워서 안 부숴!”
엘리스의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친 뒤 거리를 걸으니 슬그머니 달라붙는 두 여자. 한세아는 내게 궁금한 게 있는 것 같고, 그레이스는 그런 한세아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하기야 그레이스에겐 한세아가 경비대를 구경하고 싶어서 찡얼거리는 것처럼 느껴졌겠지.
아직 해가 떠 있는 만큼 한산한 거리. 모험가들이 한창 탑 안을 헤맬 시간인 만큼 비어있는 거리를 걸으며 한세아가 입을 연다.
“부탁한 주제에 이런 말 하면 좀 그런데, 엘리스라는 분이 서류를 막 만들어도 상관없어?”
슬슬 반말이 익숙해진 모양인지 자연스럽게 말을 놓은 모양새. 내 품 안에 있을 길드의 서류가 신경 쓰이는지 눈동자가 힐끔힐끔 움직인다. 하기야 현대 사회인에게 있어 공문서는 위조할 경우 징역형을 받는 범죄 행위니까 궁금할 수밖에.
하지만 이곳은 밸런스 박살 난 모바일 게임을 배경 삼은 중세 판타지 세상.
“엘리스가 만들면 그게 길드의 입장이야. 진짜 이상한 서류 아니면 대부분 상관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