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175)

다른 부산물을 전부 챙긴 그레이스와 한세아가 뿔늑대 눈알을 살펴보다 말고 내 쪽으로 시선을 던진다. 호기심으로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이 슬그머니 옆을 바라보는 게, 시청자들도 어지간히 궁금한가 보다.

하기야 플레이어 중 최초로 보스를 사냥… 하는 걸 구경했으니 뭐라도 방송에 내보내고 싶겠지.

 “마력을 머금은 소재니까, 마석 비슷하게 된 거지. 탑에서 나온 부산물은 대부분 그렇게 생겼어. 그게 아니었다면 탑에서 나오는 모험가들이 온갖 더러운 액체로 온몸을 끈적하게 적신 채 나왔을걸.”

 “아아, 그렇구나. 위에 있을 다른 보스 몬스터들의 부산물도 그런가요?”

 “맞아. 20층의 오크 사냥꾼, 30층의 장님 뱀도 부산물이 보석을 닮았지.”

대충 설명해준 뒤 주변을 경계하는 척 채팅창을 켰다. 아니나 다를까 난리가 나서 제대로 읽기도 힘들 정도로 휙휙 올라가는 채팅창. 그나저나 입소문이 어지간히 났는지 영어나 외국어 채팅도 잔뜩 보인다.

-저게 같은 뿔늑대가 맞냐

-맨손으로 방어만 해도 죽는 늑대에게 죽은 그는…

-비비게임즈 먹으면 구독자한테 캡슐 뿌려줘

-휴 끈적한 늑대 눈깔 잔뜩 들고 다닐 줄 알았네 다행이다

-초반 진도 차이가 이렇게 나면 진짜 한세아가 비비게임즈 먹겠는데

신경이 쓰이는 건 늑대에 죽었다는 방송인 이야기. 게임에 꽤 익숙한 사람이 있는지 벌써 10층에 올라와 뿔늑대에 도전했나보다. 그 결과 처참하게 죽었는지 비웃는 채팅이 꽤 많네.

물론 초보 모험가가 뿔늑대를 만나면 죽는 게 당연하긴 하다. 방금 우리를 습격한 녀석처럼 수풀 속에 몸을 뉘이고 기습을 하지 않나, 흔적을 추적당하는 걸 냄새로 눈치채면 크게 돌아서 뒤를 잡는 일도 있거든.

그런 주제에 달려들어서 뿔로 들이박으면 가죽 갑옷은 손쉽게 꿰뚫어버리니 기습을 눈치채고 전위가 방패로 막아 세우지 못하면 파티원 중 하나가 죽고 시작하는 거다. 무슨 RPG 게임의 보스처럼 정정당당하게 정면에서 탱커에게 달려드는 일은 없지.

 “가죽 빼고는 다 모았으니 두어 마리만 더 잡아도 의뢰는 완수하고도 남겠는데요? 다시 주변을 돌아볼게요. 한나, 이거 약효가 어느 정도 남아있어?”

 “음… 한 3시간 정도는 갈 거예요. 냄새가 희미해지기 시작하면 효과가 점점 떨어지는 건 생각해야 하고.”

부산물의 개수를 확인하고 인벤토리에 다 집어넣은 두 여자가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가죽 빼고 다 모았다고 말하는 그레이스의 목소리가 밝다 못해 날아갈 듯하다. 하기야 부산물도 랜덤하게 나오니 잔뜩 나오면 기분이 좋겠지.

한세아, 이상할 정도로 운이 좋은 것 같은데.

교관 NPC는 6★이고 첫 동료는 3★이다. 나와 그레이스 둘 다 한세아가 만날 수 있는 최고 등급인 데다 직업이 겹치지도 않았지. 거기에 의뢰에 필요한 희귀 부산물이 딱딱 맞춰서 전부 드랍되었으니 얼마나 운이 좋은 거야.

 “우리 파티장을 정말 잘 고른 것 같아. 언니랑 꼭 같이 다니자, 응?”

 “악! 언니! 갑옷에 유인향!”

그레이스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한세아를 껴안으려다 필사적인 바둥거림에 막힌다. 가난한 화전민 마을 출신의 그녀로서는 한세아가 인생에 다신 없을 행운의 동아줄처럼 느껴지겠지. 한세아와 만나기 직전에는 그 2★ 여검사 코라랑 파티를 짜고 있었으니 더욱더.

중고 갑옷이지만 꽤 정이 들었는지 제 가죽 갑옷에 유인향이 묻을까 슬쩍 거리를 벌리는 한세아. 포옹이 싫다기보단 갑옷을 아끼려 드는 초보 모험가 특유의 애착을 느꼈는지 그레이스가 느물거리며 한세아를 골려준다.

물론 뿔늑대에게 기습을 한 번 당해보고, 내 고함을 들은 만큼 두 사람의 눈동자는 열심히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한세아가 내 스킬을 확인하고, 게시판에 그 내용이 좀 올라왔으면 좋겠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카메라가 두 사람의 꽁냥거림을 찍는 동안 뒤에서 몰래 게시판과 채팅창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어째 내 악력에 감탄하는 시청자와 뿔늑대에게 죽은 다른 방송인을 놀리는 게시글은 많지만 내 스킬을 분석한 놈은 없네.

지난번에 볼 땐 스탯창을 대놓고 올리던데 스킬은 비공개인가?

볼 수 있는 게 한세아의 방송 화면이 아니라 채팅창뿐인지라 명확하게 알 수 없어 조금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 무렵―

[모험가 ‘한나 파티’의 인원을 늘리자 3/5]

한세아가 마법 5개를 배워온 뒤 잠시 멈췄던 퀘스트가 갱신되었다. 퀘스트에 나온 목표 인원이 5명이라는 건 역시 히로인즈 크로니클의 영향일까. 마침 2명이라면 계획한 대로 보조 전위 한 명, 사제 한 명이면 되겠네. 그나저나 왜 이제야 갱신 된 걸까… 뿔늑대를 잡아야 '한나 파티'로 인정하는 건가? 

 “음, 이 유인향이 고블린도 유인하는 걸까?”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언니한테 대놓고 달려드는 걸 보면….”

그렇게 다음 뿔늑대를 찾아 초원을 돌아다니길 한참. 평소보다 명백히 많은 고블린의 물량에 조금 당황한 그레이스가 주섬주섬 돌팔매용 돌멩이를 주머니에 담으며 한세아에게 묻는다. 아무래도 썩은 고기나 피비린내를 따라 한 유인향이다 보니 고블린에게도 통하나보네.

물론 고블린 따위에게 고전 할 파티가 아니기에 만나는 족족 마석이 되어 한세아의 인벤토리에 들어갈 뿐이다.

한세아가 인터넷 공략을 보고 만든 뿔늑대 유인향은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늘 그렇듯이 저녁 무렵까지 진행한 사냥에서 무려 5마리의 뿔늑대를 추가로 찾아낼 수 있었으니까. 거기에 한세아의 운빨이 적용되었는지 부산물도 두둑하게 얻을 수 있었다.

잘 나오지 않아 가장 희귀한 뿔늑대의 눈이 무려 4개. 하나씩 밖에 드랍되지 않는 뿔도 5개나 나왔고 여러 개씩 나올 수 있는 가죽, 송곳니, 발톱은 열 개가 넘게 얻을 수 있었다. 짧은 사냥과 반대되는 두둑한 부산물들.

 “와, 진짜 수입 차이가 장난 아니네요.”

 “6마리 중 네 마리나 눈알을 준 게 컸지. 거기에 뿔도 다섯 개나 나왔고.”

황금억새와 솜뭉치풀 의뢰에 최하급 마석을 더해 번 돈이 대충 동전 70개가량이라면, 이번 뿔늑대 사냥으로 번 돈은 무려 은화 6개 하고도 동전 32개가량. 동전 632개라고 생각하면 수입이 무려 9배 정도로 늘어난 것이다.

고작해야 한 층 차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격차. 괜히 뿔늑대를 사냥하는 게 초보 모험가가 중급 모험가로 인정받는 길이 아니다. 달리 말하자면 한세아는 3일 차에 초보 딱지를 떼었다는 이야기기도 하고.

 “한나! 어떻게 그렇게 마법을 잘 쏘는 거야?”

술에 불콰하게 취한 그레이스가 그 커다란 가슴으로 한세아를 꾸욱 껴안는다. 실수로 죽이는 일 없이 곱게 손바닥으로 돌진을 막아내자, 한세아가 매직 미사일을 쏴 늑대의 골통을 박살 냈기 때문이다.

거기에 스파크로 뿔늑대의 코를 지져 놀라게 만든 다음 그레이스가 화살로 심장을 노리기도 하고, 고개를 숙이고 돌진하는 뿔늑대의 시야에 라이트 마법을 사용해 휘청거리게 만들기도 했지. 전투만 보면 3일 차라고 믿을 수 없는 실력의 마법 응용력.

 “부산물도 잔뜩 나오고, 우리 복덩이 리더 덕분이야!”

 “에이, 뿔늑대를 추적한 건 언니니까 언니 덕분이죠.”

 “어쩜 말도 이렇게 예쁘게 할까!”

탑에서 나와 정산해보니 그레이스의 수입이 은화 2개가 되었고, 내 몫은 제하고 나눠줬으니 실질적으로는 은화 3개 하고 동전 15개쯤이 된 거다. 4인 파티로 약초 캐고 다녔을 땐 수입은 아무리 많아도 동전 40~50개 선이었을 테니 일당이 6배로 늘어난 것.

가난한 화전민 마을 출신으로 내 얼굴을 다시 보고 싶어 모험가의 도시로 상경한 그레이스다. 그녀의 눈물 나는 지갑 사정을 떠올려보면 한세아가 세상 무엇보다 사랑스럽지 않을까. 직장에서 새 동료를 만났는데 그 동료 덕분에 수당이 6배로 늘어나면 세상 누구라도 좋아하겠지.

 “우리의 천재 마녀 한나양을 위하여―!”

 “아앗, 언니, 쫌!”

그 결과가 목청 높여 소리 지르는 그레이스의 모습이다. 묵직한 가슴을 테이블 위에 턱 올려놓은 채 빈 잔만 허공에 달랑달랑 흔드는 그녀. 왁자지껄 떠들기 바쁘던 다른 손님들의 시선도 은근슬쩍 이쪽을 향한다.

물론 운수 좋은 놈팽이들의 종업원들도 아름답긴 하지만 3★ 가챠 캐릭터와 비교할 수 있는 건 아니지. 내가 테이블에 떡하니 앉아 있어 작업을 거는 놈은 없지만 다들 우리 테이블을 쳐다본다.

 “그리고 우리 기사님도!”

 “기사님이라니, 다른 사람이 들으면 오해한다.”

 “아잇, 내가 기사님이라면 기사님인 거지!”

지난번 술에 취한 척 내 품에 안길 때와는 전혀 다른 그녀. 정말로 취해버렸는지 능글맞고 유쾌한 걸 넘어 귀찮을 정도로 활발해졌다. 그래도 활짝 웃으며 엉겨 붙는 그레이스가 싫지만은 않은지 어찌어찌 받아주는 한세아.

보기만 해도 흐뭇하지만 귀찮게 끼어들고 싶지는 않은 미녀 두 명의 난장판. 말려달라는 듯 나를 바라보는 한세아의 시선을 외면하는 척 시선을 돌려 방송국 게시판을 열어보았다.

―??? : 히어로즈 크로니클은 엄청 어려운 게임이다

―카메라로 보면 존나 살벌하던데

―술 취한 그레이스 마망.GIF

―혹시 이 게임 19금 걸린 이유가

―그래서롤랑스킬이머냐구

가장 이야기가 많이 나온 건 어느 남자 방송인. 뿔늑대한테 죽은 걸 한창 놀려 먹고 있어서 그런지 방송인 이름을 말해주는 놈이 없었다. XXX, ???, 읍읍읍이나 늑대밥, 개밥 따위로 지칭되는 남자.

한세아의 뒤를 바짝 따라오는 사람인지, 아니면 평소 게임 실력이 대단한 사람인지 엄청나게 놀림감이 되어 있는 모양새다. 물론 진지하게 비난한다기보단 죽을 때 지른 비명이 웃겨 밈이 되어버린 상황.

난리가 난 게시글 사이에서 나와 똑같은 호기심을 가진 제목을 눌러보았다.

―그래서롤랑스킬이머냐구

[늑대였던마석.JPG]

[뿔늑대에 꿰여 나뒹구는 김석현.GIF]

물론 다른 4★ NPC 탱커들도 뿔늑대정도는 쉽게 막아세우긴 하는데

롤랑은 왜 맨 손으로 막았는데 늑대가 죽냐구

비비게임즈 이새끼들은 왜 스탯창은 만들고 스킬창은 없어?

┗힘조절 실수래자나 스탯빨이지

 ┖그게 말이 됨?

┖그럼 날아간 고블린은 말이 되고?

┖이 겜 존나 악질인게 스탯만 보여주고 스킬을 안보여줌

 ┖별이랑 스탯 보고 뽑았는데 스킬창에서 또 가챠 돌아감 ㅅㅂ ㅋㅋ

┖석현이는 좀 놔 줘라 ㅋㅋㅋㅋ 저 움짤은 오만데 가따붙이네

방송을 보는 사람이 늘어난 만큼 방송국 게시판을 이용하는 사람도 많아졌는지 댓글이 지난번보다 훨씬 많다. 물론 그 많아진 댓글의 내용 대부분이 김석현이라는 방송인을 놀려 먹는 댓글이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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