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175)

 “그건, 참, 어려운 이야기네요….”

텔레포트 기능 따위가 없는 건 한세아도 마찬가지. 자신의 험난한 미래를 상상한 듯 안색이 어두워지는 그녀를 보며 나는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걱정하지 마, 나도 가야 해 씨발.

내 이야기에서 자신의 어두운 미래를 엿봤는지 충격과 공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한세아. 그래도 너는 로그아웃이라도 하지, 나는 꼼짝없이 늪지와 동굴에서 노숙하게 생겼다. 그리 생각하며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한세아의 눈앞에서 손바닥을 짝! 마주쳤다.

 “그건 탑의 최상부를 탐색하는 최상위 모험가들 이야기지. 이제 마법을 배운 초보 모험가가 걱정하기엔 일러. 다음에 써 볼 마법은 매직 미사일이야.”

 “아, 네!”

눈앞에서 큰 소리가 들리고서야 정신을 차리는 그녀. 이제 1레벨 1층에 도달해 튜토리얼을 깨는 주제에 무슨 최상위 컨텐츠에 대한 걱정을 하겠는가. 그런 내 속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스태프를 다시 고쳐 잡은 그녀가 눈을 말똥하게 뜬다.

 “통나무를 가져와서 쏠까요, 아니면 저 짚단에 쏠까요?”

 “내 손바닥에 쏴.”

 “…예?”

물론 총명해진 눈동자가 다시 흐려지는 데에는 1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집게손가락만으로 자기 쉴드를 으스러트렸다는 걸 그새 까먹은 걸까. 마치 '멈춰!' 하고 외쳐야 할 것 같은 자세로 손바닥을 앞으로 내민 채 가만히 있으니 그제야 다시 정신을 차린 한세아.

눈동자가 바삐 움직이는 걸 보니 답답하게 굴다 시청자들한테 한 소리 듣고 있나 보다.

 “그럼, 갑니다! 매직 미사일!”

그렇게 시청자들의 잔소리에 힘입어 침을 꼴깍 삼킨 그녀가 스태프를 내게 겨누고 주문을 외운다. 스태프의 끝자락, 허공에서 등장한 주먹 크기의 반투명한 구체. 마치 낚싯대라도 휘두르듯 스태프를 허공에 휙 휘두르자 매직 미사일이 정확하게 내 손바닥을 향해 달려든다.

첫 마법일 텐데 쉴드도 그렇고 매직 미사일도 그렇고 되게 잘 쓰네, 스킬창 덕분인가?

파앙―

묵직한 감각과 함께 살짝 뒤로 밀려나는 손바닥. 고블린의 돌팔매는커녕 초보 전사의 일격보다 묵직한 수준의 충격이다. 물론 내 손바닥에 생채기를 내기는커녕 피부를 붉게 물들이지도 못한 수준이지만.

 “손바닥 노리고 쏜 거지?”

 “네. 손바닥에 쏴 보라 하셔서.”

 “캐스팅도 빠르고 정확도도 좋네. 쉴드도 매직 미사일도 사용하는 게 엄청 능숙해. 적어도 아군 뒤통수를 후려칠 일은 없겠어.”

 “그, 혹시… 이 이야기도?”

 “맞아. 제어가 잘 안 되는 초보 마법사들은 아군을 가끔 공격하니까. 물론 마법사만의 이야기는 아니고, 실력 없는 궁수나 부무장으로 들고 온 석궁 조작에 미숙한 도적도 아군을 잘 쏘긴 하지.”

팀킬과 프렌들리 파이어를 방지하는 시스템 어시스트 따위 없는 세상. 파티원이 쏘든 몬스터가 쏘든 화살 맞으면 아프고 죽는 건 매한가지다. 전위를 돕겠다고 마법을 쏘다 뒤통수를 후려쳐 파티가 전멸할 뻔한 초보 모험가 파티도 당연히 존재하는 법.

그 때문에 한세아가 배운 스파크 같은 비 공격형 기초 마법이 의외로 쓸만하다. 몬스터들 대부분 무장을 갖춰 입지 않았기 때문에 겨드랑이나 오금 같은 곳을 불꽃으로 틱 지져버리면 공격 마법만큼의 데미지는 줄 수 없지만 자세는 흩트려 놓을 수 있으니까. 복싱 중에 누가 라이터로 겨드랑이털을 태운다면 펀치가 제대로 나갈 리 있나.

급박한 와중 실수로 아군을 지져도 전위는 갑옷을 입고 있으니 불똥에 놀랄 일도 없다. 정말 귀신 같은 재능으로 아군 갑옷과 투구 사이의 목덜미를 지진다면 몰라.

 “나머지 마법은 그냥 바닥을 향해 써 봐.”

빛의 구가 매직 미사일처럼 스태프 위에 등장해 둥실둥실 떠 있는 라이트 마법, 스태프로 겨눈 바닥에 작은 불꽃이 등장해 그을음만 남기고 사라진 스파크 마법, 그을음 위를 겨우 덮을 정도의 물방울이 생겨난 워터 마법.

한세아가 마법사의 재능이 뛰어난 건지, 스킬창의 위력인지 마법 세 가지도 전부 합격점이었다. 위력 같은 건 알아서 스탯 찍고 레벨 업 하면 성장할 테니 중요한 건 컨트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가상현실 게임 속에서 처음으로 마법을 썼는데 에임이 정확하면 합격 아니겠는가.

내가 입바른 소리로 칭찬하는 게 아니란 걸 알아차렸는지 한껏 힘이 들어간 한세아의 어깨. 고블린에게 쫄지도 않고, 마법도 정확히 쏘는 걸 보니 한 5층까지는 올라 가볼 수 있겠는데. 물론 5층이라 해도 그 넓은 초원을 네 번이나 헤매며 올라가야 하므로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마법은 합격. 이제 동료 소집 요청을 해 두고 탑에 잠시 들러볼까.”

 “동료 소집이요?”

내심 파티원을 원했는지 다시 눈이 초롱초롱해지는 그녀. 스태프를 꼭 쥔 채 카운터로 향하는 나를 병아리처럼 줄레줄레 쫓아온다. 뒤따라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엘리스처럼 친분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적당히 얼굴은 아는 사이의 접수원에게 슬쩍 눈인사하며 말을 걸었다.

 “초보 모험가 파티원을 구하고 싶은데.”

 “네, 롤랑 님. 후배를 키운다고 엘리스가 그렇게 떠들던데 정말이었네요.”

 “걔가 수다스럽긴 해도 빈말하진 않지.”

 “마법사분이시니 전위 한 명, 탐색 계열 한 명에 사제 한 분 정도면 될까요?”

나머지는 한 명인데 사제는 한 분인가. 확실히 신전이 아니라 탑을 향하는 고행 사제들은 분이라 존칭해도 모자랄 게 없긴 하지. 접수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서 같이 고개를 끄덕이는 한세아.

카메라가 다른 쪽을 향한 사이 슬쩍 채팅창을 열어보았다.

-제발여기사제발여기사제발여기사

-옆동네 도둑놈은 파티원도 못구하던데

-비키니아머 여전사 나올때까지 숨 참는다흡

-아니 돌팔매 맞아 뒤졌다니까 뭔 비키니 아머임 ㅋㅋ

-한세아 입은 가죽갑옷 꼴 보면 섹시 여전사는 물건너갔어

…왜 갑자기 자신의 판타지 성욕을 폭로하는 대회가 열렸을까.

잠시 훑어만 봐도 머리가 어지러운 채팅창 내용에 제대로 읽어 볼 생각도 하지 않고 곧바로 닫아버렸다. 역시 유용한 건 채팅창보다 방송국 게시판인가. 초인적인 시력으로 중간중간 섞여 있는 다른 방송인 이야기도 보였지만 그닥 영양가가 있진 않았다.

도둑놈이라 부르는 걸 보니 도적으로 진로를 정한 것 같은데, 여기의 도적은 쌍검 극딜러가 아니라 탐색과 함정 해제를 맡은 파티의 길잡이거든. 게임 플레이 첫날부터 자물쇠 따기, 함정 해제, 흔적 추적 등 다양한 기술의 숙련도가 없다면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그 기술이 없으면 동네 농부 A랑 다를 게 없으니까.

 “내가 있으니 전위는 극단적인 방어 담당보다는 공수 밸런스가 있는 쪽으로. 탐색 계열은 가능하다면 도적보단 궁수로 부탁해.”

 “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접수원에게 다시 내미는 금화 한 개. 수고 비용치고는 많은 금액이지만 원래 사회생활이라는 게 윤활유가 있어야 잘 굴러가는 것 아니겠는가. 직업윤리는커녕 인권이라는 단어도 없는 중세 세상이라면 더욱더.

물론 옆에 딱 달라붙어 있던 한세아는 다시 눈동자가 댕그랗게 변하며 놀랄 뿐. 어제 다시 접속해서 마법 테크트리를 시청자들과 함께 짰다면 최하급 마석의 가격도 알아봤겠지. 동전-은화-금화로 넘어가는 전형적인 판타지 게임의 화폐들.

 “저기, 파티를 짜는 비용이 그렇게 비싼가요…?”

최하급 마석 수 백 개를 모아도 손에 쥐기 힘든 게 금화다 보니 벌써부터 금화 두 개를 지출한 한세아가 탑으로 가는 길에 내게 묻는다.

 “아니. 파티를 짜는 비용은 원래 공짜야.”

 “그런데 왜 금화를 내셨나요?”

 “그래야 접수원이 제대로 된 사람을 찾아 주니까. 규칙대로라면 초보 모험가는 그냥 초보 모험가끼리 모일 뿐이야. 농사짓다 전 재산으로 검 한 자루 사서 올라온 농부 전위, 사냥꾼 아버지에게 활 쏘는 법은 배웠지만 몬스터에 대해 모르는 사냥꾼 궁수, 아군 뒤통수에 마법 쏘는 마법사… 물론 마법사가 흔하지는 않지만. 이런 끔찍한 파티가 만들어지는 게 평범한 일이야.”

 “아…!”

내 말에 금세 감을 잡은 한세아. 모험가 길드가 아무리 서류 처리를 하고 초보, 중급, 상급, 최상위로 모험가 등급을 나눈다 해도 결국 손으로 서류를 작성하는 중세 시대의 길드다. 게임 시스템으로 레벨을 분류하고 등급을 정하는 세상이 아니란 거지.

그러다 보니 같은 초보 모험가라 해도 한세아처럼 재능 넘치는 마법사가 있는가 하면, 전위랍시고 검 들고 와서는 고블린한테 쫄아서 살생을 못 하겠다고 울먹거리는 녀석도 있다. 금화는 그런 놈들을 알아서 걸러 달라는 의미로 주는 수고비.

은화도 아니고 월급을 훌쩍 넘는 금화를 팁으로 받았으니 접수원이 알아서 폐급 모험가들을 걸러 줄 것이다. 최소한 혼자 탑에 들어가 최하급 마석을 환전한 기록이 있는 사람들로 모아오겠지. 그게 초보 모험가의 능력을 입증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니까.

 “그러면 사제분은요?”

 “탑에 오르는 사제들은 마법사보다 희귀해. 마법사들은 마석을 직접 획득하고 탑에서 벌어지는 기현상을 조사하고 싶어 모험가가 되는 거지만, 사제들은 오직 신앙심 하나 때문에 모험가가 되는 거니까.”

 “신앙심 때문이요?”

 “도시에는 신전이 있어 병들고 다친 자들을 치료하지만, 탑에는 신전을 지을 수 없으니까 직접 탑으로 나아가겠다는 거야.”

 “아아, 다친 사람들을 위해서 탑을 오르는군요. 대단하신 분들이네요.”

 “그러니 도시에선 사제와 시비가 붙으면 안 돼. 일단 사제랑 안 좋은 일로 엮였다는 점 자체가 엄청나게 평판을 깎아 먹을 테니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사제들이 진짜 신앙심 깊은 사람들이라는 점. 돈 때문에 사람 목숨을 외면하는 다크 판타지식 타락 사제들은 이 세상에 없었다. 하기야 신의 존재가 신성력으로 증명된 세상에서 그런 짓을 할 용기가 있기야 하겠냐마는.

한세아가 게임을 진행하면서 이상한 스토리나 안 열리면 좋겠네.

타락한 교회라던가 부패한 귀족들 같은 귀찮은 놈들 말이야.

마법을 직접 사용할 생각에 들떴는지 탑으로 가는 발걸음도 가벼운 한세아. 의욕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탑 공략에 대한 시궁창스러운 현실을 알게 되어도 포기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아 다행이네.

 “롤랑 님, 그렇다면 다시 탑에 갈 생각이 있으신가요?”

 “당연히 있지.”

네가 가지 않는다면 내가 바짓가랑이 붙잡고 빌어서라도 데려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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