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175)

한세아에게도 내 강함을 각인시키면서,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강함의 증명. 그런 고민을 하며 모험가 패를 만지작거린다. 화살표를 보는 척 채팅창을 다시 한번 엿볼 수 있도록.

-롤랑센세 순식간에 30만 원짜리 차력쇼 광대행

-힘자랑도 뭐가 있어야 하지 잔디 뜯기 쇼 같은 걸 하겠냐?

-형님 그냥 갑옷 벗고 몸매 자랑은 안 됨?

-근데 세아쟝 발차기 맞고 자빠지는 고블린 상대로 힘자랑하면 되려 쪽팔릴 텐데

-상급 모험가 가오가 있지 1층에서 뭘 보여줌

좀 이상한 채팅이 섞여 있지만 내 생각과 비슷한 내용의 채팅들. 그렇게 화살표를 보는 척 채팅창을 계속해서 훔쳐보다 빠르게 지나간 한 가지 의견을 확인했다. 한세아도 다른 시청자들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내 눈에는 확실히 들어온 채팅.

 “으음, 이런 걸 보여주면 좀 웃기긴 한데.”

 “뭔가요?”

30만 원 미션은 놓치기 싫었는지 떡밥에 반응하는 물고기처럼 후다닥 내게 다가온다.

 “때마침 고블린이 한 마리 더 등장했으니 보여줄게.”

 “네!”

슬라임이라면 물컹해서 잡기 귀찮고, 뿔토끼나 뿔여우였으면 동물 학대처럼 보여 애매했겠지만 마침 등장한 건 못생긴 난쟁이 괴물 고블린. 허리춤의 철퇴를 꺼내 들기는커녕 경갑의 건틀릿까지 벗어버린 맨손을 뻗자 뒤에서 흡! 하고 놀라 숨 들이켜는 소리가 들린다.

케야아악!

자신을 붙잡는 내 손에 뾰족한 돌멩이를 휘두르는 작은 괴물. 물론 10년간 레벨링을 한 6★ 탱커의 피부에는 흠집도 낼 수 없었다. 돌멩이를 휘두르고, 할퀴고, 깨무는 등 뾰족한 이빨과 발톱으로 난동을 피워도 생채기가 나기는커녕 붉게 긁힌 흔적도 없는 새하얀 손등.

 “어, 괜찮으세요?”

 “10층 이하의 몬스터 사이에선 갑옷 벗고 낮잠도 잘 수 있어.”

 “우와….”

묘한 감탄성을 뒤로한 채, 나는 그대로 팔뚝에 힘을 줘 투포환을 던지듯 고블린을 저 하늘 높은 곳으로 던졌다.

게에―야아―갸아악!!

카메라가 각도 참 잘 잡았네.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한세아를 스튜가 맛있는 숙소에 데려다준 뒤 나도 내 숙소에 처박혔다. 방송을 끄고 로그아웃을 했는지 채팅창은 들어갈 수 없었지만, 한세아의 방송국 게시판은 내가 보여준 모습에 열광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롤랑 임마 돌개이네 이거ㅋㅋ

―오늘자 크로니클 최고 명장면.GIF

―전생했더니 고블리이이이이이이이인

―큰 웃음 주신 고블린좌에게 조의를 표하시오

―6★ 존나 쎄긴 하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채팅 중 ‘한세아를 출구까지 던져서 보내라’라는 내용을 읽고 즉흥적으로 실시한 고블린 차력쇼. 도플러 효과를 몸소 보여주는 듯 날아가면서 아스라이 멀어진 고블린의 울음소리가 꽤 웃기게 들렸는지 벌써 합성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원래대로라면 맥주 따위를 마시며 심심하게 누워 있을 시간에 시청자들이 열심히 글을 쓰는 인터넷 게시판을 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큰 웃음 주신 고블린좌에게 조의를 표하시오

[고블린 날아갈 때 터진 도네이션.GIF]

[고블린 영정사진 합성.JPG]

좋은 고블린이 있다면 날아다니는 고블린 뿐이다

┗죽은 고블린이 아니라?

 ┗저 정도면 죽은 고블린이지

┗한 100m 날아간 거 같은데 살아있으면 고블린이 아닐 듯

대충 딴 누끼로 엉성하게 만들어진 합성 사진과 추천을 유도하는 다양한 개드립들. 체구가 작다 해도 어린아이 정도, 대충 30kg은 될 난쟁이를 한 손으로 던져 시야 밖으로 날려버린 게 어지간히 임팩트가 컸나보다.

그렇게 낄낄 웃으며 다양한 게시물을 보니 가상 현실 캡슐이 나온 다른 차원의 세상도 내가 살던 10년 전의 현대와 비슷한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게시판을 둘러보며 나에 관한 이야기를 감상하고 있으니 어느새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 어둑한 밤이 찾아왔다.

 ‘내일은… 기초 마법이랑 파티원 찾기 정도인가.’

최하급 마석 10개를 가지고 탑 밖으로 나오게 되니 그제야 갱신된 퀘스트. 파티를 짤 땐 악수를 받아야 하더니, 최하급 마석 10개 획득은 안전하게 탑 밖으로 나와야 하는 둥 무언가 기준이 있는 듯했다.

아마 한세아의 게임 시스템 기준이겠지?

악수하면서 파티 신청 버튼을 자연스럽게 눌렀다던가, 탑 밖으로 나와야 모험의 보상이 정산된다던가 하는 식으로.

[한세아에게 기초 마법 학습시키기 0/5]

기초 마법이야 하루 만에 뚝딱 익히기 힘들지만, 한세아라면 하루 만에 전부 익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초 마법의 종류야 당연히 5가지가 넘는데 알아서 좋아 보이는 걸 적당히 고르겠지. 인벤토리에 미니맵까지 있으니 스킬창 같은 거로 뚝딱 배울 가능성도 크고.

파티원 찾기는 마법을 익히고 나서부터 꾸준히 하면 된다. 사람이라는 게 어디 가챠 게임 뽑기처럼 뿅! 하고 주점에서 튀어나오는 게 아니니까. 초보 모험가 중 싹수 있는 녀석들을 골라내야 하니 파티원을 찾는 건 의외로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내가 직접 찾는 건 아니고, 엘리스에게 장래가 유망해 보이는 초보 모험가가 있는지 물어보는 방식이지만.

으음, 그러고 보니 엘리스한테 약속한 달달한 디저트도 있지. 한세아에게 기초 마법서를 사 주는 김에 새로 열었다는 카페도 가면 되겠다.

10년 만에 느끼는 현대의 향기에 게시판을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하지만, 방송이 종료되어서 그런지 글이 작성되는 속도가 느려졌다. 아무리 날밤을 새워도 체력이 온전한 초인적인 몸이라 해도 컨디션은 유지해야겠지.

그렇게 홀로그램 게시판을 치우고 침대에 머리를 기댄 뒤 내일 아침을 기대하며 눈을 감았다.

이번 퀘스트 보상, 뭐가 나올까.

한세아는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을 믿을 수 없었다.

 ‘6★이란 게, 있어?’

운동 방송과 게임 방송을 동시에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인인 그녀. 그 때문에 방송용으로 진행하는 RPG, FPS 등의 게임 외에도 서브 컬쳐 모바일 게임을 다양하게 즐겼기에 히어로즈 크로니클에 대해 대충 예측을 할 수 있었다.

파티를 짜서 탑을 올라야 할 것이고, 몸으로 뛰는 만큼 편의성은 개나 줬을 것이며, 장비를 얻고 동료를 모집할 땐 운에 따른 요소가 많을 거라고. 히어로즈 크로니클의 제작사 BB 게임즈가 공략 1위에게 게임사를 온전히 넘기겠다는 충격 발표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설레발을 치며 머리를 맞대었던가.

그래도 수많은 예측 중 6★에 대한 의견은 존재하지 않았다.

한세아가 즐겨왔던 다양한 가챠 게임은 3★, 4★이 최고등급 SSR인 경우가 대다수였으며 5★까지 존재하는 게임도 6★은 진화와 각성을 통해 도달하는 만렙 캐릭터의 등급이지, 뽑았을 때의 최초 등급이 아니었으니까.

―어떻게 캐릭터 시작 등급이 6★

―한세아가 뽑은 거 남캐인 거 빼고 완벽한데?

―이러면 한세아가 BB게임즈 먹냐?

―될놈될 인생 좆같네 누군 3★인데 누군 6★이고 시발

캡슐에서 나와 포근한 침대에 누워 스마트 폰으로 인터넷에 한세아는 자신의 이름을 검색한다. 방송인으로서 에고 서칭이 독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오늘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가챠 픽업만 성공해도 자랑하고 싶은 게 사람인데 세계 최초의 가상현실게임에서 세계 1위 픽업에 성공해버린 상황.

익명의 뒤에 숨어 내뱉는 욕설과 패드립과 성희롱까지 지금만큼은 승자에 대한 찬미로 보일 수준이다.

―게임 밸런스 개박살 난 것 같은데?

[3★ ‘듬직한’ 한스 스탯창.JPG]

[4★ ‘근위기사’ 윌리엄 스탯창.JPG]

[6★ ‘팔라딘’ 롤랑 스탯창.JPG]

비교하기 쉬우라고 방송인들이 만난 NPC 중 일부러 탱커만 골라서 찍어옴. 스탯창 잘 읽어보면 3성이랑 4성은 대충 체력이 20% 정도 차이나거든? 근데 4성이랑 6성은 체력이 두 배 차이임 시발 ㅋㅋㅋ

┗전 세계 유일등급이 조스로보이냐?

 ┗국내도 아니고 세계 유일임?

 ┗해외에서 6성 뽑았으면 벌써 뉴스 떳겠지

┗와 시발 대놓고 비교하니까 정신이 어지럽네

평소에도 운동 방송을 하면 운동이 아니라 노출로 시청자를 꼬셨다느니, 게임 방송을 하면 실력이 아니라 여캠빨로 떴다느니 하는 악담이 얼마나 많던가. 하지만 히어로즈 크로니클을 진행하니 그런 인신공격적인 내용은 대부분 사라졌다.

사람들의 관심이 전부 NPC들에게 쏠려버렸기 때문이다.

클로즈 베타 따위 없이 전 세계 동시 오픈을 한 게임인 만큼 정보가 많지는 않지만, 죽자고 달리는 동업자나 게이머들 덕분에 어느 정도 정보가 모이는 상황. 도시에 들어오면 처음으로 플레이어에게 접촉하는 NPC는 3★ 이상. 이후 게임을 플레이하며 모험가 파티를 짜다 보면 만나는 사람들은 초보 모험가답게 1~3★.

그에 비해 한세아에게 말을 걸고 상냥하게 이끌어주는 선배 모험가 롤랑은 무려 6★.

키도 크고, 어깨도 듬직하고, 외모만 봐도 BB게임즈가 혼신의 힘을 다해 모델링 한 것처럼 잘생긴 얼굴이다. 솔직히 말해 ‘팔라딘’이라는 칭호가 없었다면 모험가 도시에 놀러 온 판타지 세상의 왕자님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요즘 게임 NPC 외모 수준

―우리가 판타지 세상에 가야 하는 이유.JPG

―이 사람 누구야? 혹시 아이돌임?

당장 인터넷의 몇몇 유머 사이트에는 벌써 그녀의 방송 캡쳐본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RPG가 아니라 미연시라느니, 저 모델링으로 가상 남자 친구를 만들어 달라느니, 가상 현실 게임 속 NPC가 아니라 아이돌 지망생이 아니냐는 오해까지 사고 있었다.

 ‘진짜 잘생기긴 했지….’

운동 방송도 함께하는 한세아로서는 자신의 잘 가꿔진 미모와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 덕분에 외형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지만… 돌아다니는 사진을 보면 그 자신감이 빠르게 사그라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