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175)

 “어머? 예쁘기만 한 신입이 아니었네요. 지금부터라도 잘 보여야겠네.”

여전히 카운터에 있던 엘리스가 예쁘게 눈웃음을 짓는다. 원래대로라면 서류 몇 장 정도 작성해 물품 반출 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이래 봬도 도시에서 유명한 상급 모험가. 거기에 길드 접수원과 친분이 있다면 그 정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다.

내가 의뢰 한탕 뛸 때마다 벌어다 주는 수수료가 이 초보자용 중고 장비 수십 개보다 비쌀 테니까.

 “서류 처리는 부탁 좀 할게.”

 “말로만요?”

 “후배한테 뭐 먹일 때 같이 챙겨줄 테니까.”

 “상점 거리에 새로운 카페가 생겼다는데, 거기가 여자 모험가들에게도 인기가 참 좋대요.”

배시시 웃으며 열쇠 하나를 건네주는 그녀. 한세아 호감작에 도움이 되는 정보에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열쇠를 건네받았다.

뭐, 낡은 물건만 가득한 창고는 볼 것도 없으니 빠르게 골라서 갈까. 여성 특유의 가녀린 체구를 가졌으니 사이즈가 작은 가죽 갑옷 세트에 특색 없는 길쭉한 스태프 하나. 멋이라곤 하나 없지만 뭐 어쩌겠는가.

초보자 장비로 멋 부린 새끼들은 다 몬스터 똥이 될 뿐인데.

10년이나 모험가로 굴러먹다 보면 별의별 인간 군상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야기 속 영웅 기사를 동경해서 망토를 고집한 촌뜨기가 덤불에 망토가 걸려 그대로 토막이 난 사례부터 마법사랍시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 로브 차림으로 탑을 오르다 돌팔매 세례에 척추가 아작난 초보 마법사까지.

노출할 수록 방어력이 높아지는 법칙 따위 없는 세상이니까.

창고에 있던 천을 보자기 삼아 장비를 싸 들고 공터로 돌아가니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나를 바라보는 한세아. 중고 장비에 뭐 저리 기대를 하는지 약간 부담이 될 수준이었다.

 “일단 적당한 사이즈로 챙겨 왔고… 대장장이들이 손질했다지만 중고 장비니까 너무 기대하진 마.”

 “네!”

그냥 갑옷 자체가 신기한 것인지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한세아가 낡은 천을 무슨 산타의 선물처럼 풀어헤친다. 거기서 나오는 건 당연하게도 멋 따위 신경 쓰지 않은 가죽 갑옷. 그래도 상태가 가장 좋은 녀석을 골라온 지라 기름을 먹어 반질반질하게 손질된 녀석이다.

현실이라면 가죽 갑옷은 천 갑옷과 철 갑옷에 다양하게 밀리는 장점 없는 애물단지지만 이곳은 판타지 세상, 그것도 게임이 배경이 된 세상이다. 가축을 잡지 않아도 가죽을 주는 몬스터가 잔뜩 있으니 천 갑옷에게 생산성으로 밀리지 않고, 마나가 존재하므로 방호력도 챙길 수 있게 되었으니까.

 “네가 마법사가 아니었다면 천 갑옷 위에 가죽 갑옷을 덧입어야겠지만, 마법사니까 천 갑옷까지는 입지 않아도 될 거야.”

가죽 갑옷인지라 전신을 칭칭 싸매지 않아 드러난 부위가 있지만, 마나가 존재하는 세상인 만큼 그 정도는 모험가의 마력으로 때울 수 있었다. 후열에 있을 마법사니 쉴드 마법을 믿어도 좋고, 불의의 습격에 급소가 날아가는 것만 막으면 되니까.

얼굴이 패션의 완성이라는 말처럼 초보자 장비처럼 보이는 천 옷 위에 가죽 갑옷을 걸쳐 입으니 게임 광고에 나올 법한 어여쁜 여전사처럼 보였다.

 “불편한 부분은 없지?”

 “네! 눈썰미가 좋으신가 봐요, 몸에 딱 맞는데요!”

…체형에 맞게 조절하지 않았는데 게임 시스템 때문에 갑옷이 알아서 조절된 건가?

방송 용어가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는 부분부터, 나는 볼 수 없는 스탯창 따위나 촬영용 드론 카메라가 있다는 것까지. 나는 강인한 육체를 근간으로 시궁창을 체험했는데, 한세아는 게임 시스템의 어시스트를 받아 판타지 라이프를 만끽하는 것 같았다.

하긴, 중급 이상의 모험가 장비만 봐도 게임 세상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게 이 세상이니 당연한가. 초보자야 고블린의 독침이나 돌팔매에 맞아 죽을까 봐 천 갑옷에 투구까지 꽉 채워 입어 탈수 증상과 싸우는 게 일상이라지만 중급 이상부터는 멋지고 예쁜 장비를 사용한다.

당장 내 갑옷과 방패만 해도 휘황찬란하게 고급스러운 문양이 음각된 마법의 갑옷이니, 뭐.

 “나도 봉술은 자세히 모르니 정확한 자세는 나중에 중급 모험가를 고용해 배우는 거로 하고 무기와 갑옷을 좀 길들인 다음 탑에 들어가 볼까.”

 “네, 알겠습니다!”

 “저기, 실례합니다.”

우월한 육체 능력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찍어 누르는 게 원툴인 중장갑 탱커에게 섬세한 봉술 숙련도 따위가 있을 리 있나. 그리 생각하며 통나무 앞에서 어깨를 들썩들썩 자세를 잡는 한세아를 바라보고 있으니 누군가 말을 건다.

아까부터 이쪽을 열렬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던 대머리 망치 전사.

 “롤랑 님, 봉술 사범을 구한다고 들었습니다만.”

한 손 둔기에 커다란 방패, 절그럭거리는 판금 갑옷, 험악한 인상과 어울리지 않는 수줍은 표정.

 “제가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 어떠신지요? 아, 보상을 바라는 건 아닙니다!”

―내 팬인가.

이야기 속 기사를 너무 동경해 망토를 고집하다 죽어버린 초보 모험가가 있듯, 사람들은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선망하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모험가가 선망하는 대상은 당연하게도 상급 모험가들이다.

탑을 정복하기 위해 자신들은 상상도 못 할 아득한 상층부를 공략하는 상급 모험가들. 검 한 자루 들고 인간보다 아득히 강한 괴물의 목을 베어내고, 마법으로 괴물의 군세를 패퇴시키는 초인들.

그중에서도 나, ‘팔라딘’ 롤랑은 팬이 꽤 많은 편이다.

그 이유는 좀 다양한데… 첫 번째는 당연하게도 우월한 외모. 동화 속 왕자님같이 생긴 금발 벽안 근육질의 미남 기사로 살아보니 여성 모험가들에게 있어 동경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우습게도 따라 하기 쉽다는 점.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검술이나 무시무시한 화력을 자랑하는 마법사가 아닌, 우직한 전위라는 게 의외로 팬이 많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눈앞의 이 중급 모험가 대머리 망치 전사처럼.

 “평소에도 늘 롤랑 님의 활약상을 듣고 있었습니다!”

방패와 철퇴를 들고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불굴의 전위. 성능 하나는 게임 아이템 급인 마법 갑옷을 입고 우월한 신체 능력을 믿어 기술 하나 없이 몸으로 때우다 보니 내게 붙은 낯부끄러운 수식어였다. 방구석에 처박혀 게임만 하던 인간으로서 무기술을 배울 엄두가 나지 않아 육체의 재능만 믿고 몸으로 버티다 보니 그 우직함에 반한 남자들이 늘어난 것이다.

인권은 개나 줘버린 중세 시대에서 10년의 세월 간 파티원을 버리고 도망친 적이 한 번도 없어 생겨버린 팬들이라 볼 수 있었다.

그야 이 세상이 게임이란 걸 모를 땐, 목숨 걸고 무모한 도전을 하기 싫어 임시 파티원들과 적당한 선에서만 사냥해서 위험한 곳까지 가지 않아 버리고 도망칠 일 따위가 없었을 뿐이라서 그랬다. 탑의 꼭대기에 오른다고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으니 목숨을 건 도박을 하기는 싫었거든.

 “그러면, 부탁 좀 하지.”

 “예! 마법사라고 들었으니, 간단하게 봉 쥐는 법과 찔러서 밀어내는 것만 가르치겠습니다.”

 “다 듣고 있었군?”

 “헤헤, 그, 평소 워낙 존경하는 분이시다 보니.”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부탁하자 얼굴이 환하게 변하는 그. 수업료를 내지 않았다 해도 그에게는 이득이라 볼 수 있었다. 그 ‘팔라딘’ 롤랑에게 부탁을 받고 미녀 모험가의 봉술 스승이 된 것이니까.

한동안 쉬고 있던 나와 만났다던가, 그런 내가 새로 키우는 초보 모험가라던가, 그 초보 모험가가 끝내주는 미녀라던가. 술자리에서 허풍 좀 섞으면 석 달은 공짜 술을 마실 수 있는 이야깃거리들.

 “그러면 부탁하지. 나는 내 장비를 좀 챙겨와야겠어.”

 “예!”

 “장비요? 아, 네!”

두 사람의 눈이 내 일상복 차림으로 향한다. 그야 무장 다 풀어두고 술이나 마시다 뛰어 왔으니까 장비를 챙기러 가야겠지. 기합 바짝 든 신병처럼 우렁차게 대답한 두 사람이 통나무 앞에서 무언가 숙덕거리기 시작한 걸 두고 길드 밖으로 나왔다.

숙소로 가서 장비를 챙기는 김에 그 방송국 접속 방법도 찾아봐야지.

초인적인 육체의 힘을 이용해 거의 날아가듯 숙소를 향해 뛰었다. 봉 잡는 법이랑 찌르기 연습을 한다 해도 한 시간, 두 시간씩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 고작 1층 가는데 완전 무장을 할 필요는 없으니 장비는 적당히 챙기고, 곧바로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는 침실에 처박혔다.

[한세아와 파티를 이룬 채 1층에서 최하급 마석 획득 0/10]

눈앞에 보이는 홀로그램은 새로 갱신된 퀘스트 창뿐. 스탯창이라던가 시스템 오픈이라던가 하는 걸 열심히 중얼거렸어도 반응은 없었다. 이러니까 이 세상에 떨어진 첫 1년이 떠오르네. 그때 나 도와주던 모험가가 죽는 걸 보고 패닉에 빠져 숙소에서 상태창이니 로그아웃이니 열심히 외쳤었는데.

 “방송국 접속.”

추억에 빠져 다양하게 중얼거리다 보니 정답을 찾았다. 보상이 한세아의 방송국 접속 권한이라더니, 정말 방송국 접속이라고 말하면 되는 것이었나.

―엄마난커서한세아가될래요

―얼마 지르면 시작 NPC 6★으로 시작함?

―한세아 레전드.JPG

―이쯤되면 국내 원탑 아님?

―마차 타고 리세하는거 의미 있냐?

단촐한 퀘스트 창 대신 보기만 해도 어질어질한 제목들이 주르륵 뜬다. 방송국이란 게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통합 게시판에 한세아와 관련된 이야기가 올라오는 건가. 어색하게 허공을 꾸욱 누르자 마우스 클릭이라도 된 것처럼 바뀌는 홀로그램.

―얼마 지르면 시작 NPC 6★으로 시작함?

[4★ NPC 스탯창.jpg]

마차 타고 도시 들어오면 모험가 길드에서 첫 동료 만나는 것까진 알겠는데 왜 나는 저런 형님 안 나오고 이상한 아저씨가 나옴?

└ 기만자련이라 비추 박음

└ 4성이면 절을 하고 받아 처먹어야지

 └ ㄹㅇ 갤 보니까 70%는 3성따리 스타트던데

└ 금발여기사쟝 아니라서 6성도 안부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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