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175)

감사 인사를 받으며 계단을 올라가니 보이는 것은 말끔한 복도와 정갈한 나무 문들. 그중 하나의 문만 열려 있어 어디로 가야 할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복도를 걸어 열린 방문 안으로 들어가자 보이는 것은 아주 단출한 방의 풍경.

장식 하나 없이 텅 빈 방 중앙에 덩그러니 놓인 책상 하나와 의자 두 개. 책상 위에 놓인 은쟁반과 안경을 쓴 마법사 한 명.

 “들어가 보세요.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네!”

책상 앞에 놓인 의자가 달랑 한 개였기에 나는 문 앞에서 멈춰 선 뒤 한세아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섰다. 마법사가 될 수 있냐 없냐의 갈림길에 선 게 긴장되었는지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더니 문으로 쏙 들어가는 그녀.

두 주먹 불끈 쥐며 파이팅 포즈를 취하는 순간 정확히 반투명 드론이 그녀와 나를 동시에 담아내는 게, 게임 실력은 몰라도 방송 실력 하나는 프로급이라는 게 느껴진다.

격려해주는 자상한 선배와 파이팅 넘치는 신입이라, 방송을 보는 사람 입장이라면 호불호 없이 편안 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 아니겠는가. 친절한 사람과 노력하는 사람을 싫어한다고 공격할 정도면 세상 모든 걸 혐오하는 분탕 종자겠지.

 ‘마법사, 되면 좋겠네.’

전위의 중갑기사, 후위의 마법사. 밸런스를 생각한다면 탐색 계열의 궁수와 회복 계열의 사제를 데려오면 되고, 화력에 힘을 더 실어 주기 위해 마법사를 하나 더 늘리는 것도 가능하다. 반대로 초보자 때의 경험을 살리기 위해 내가 보조 역으로 빠진 뒤 전위를 늘려 위험할 때만 내가 도와주는 방식도 가능하고.

파티에 내가 참여한다는 전제 조건으로 무궁무진하게 뻗어 나갈 수 있는 조합.

 “우, 끼야아아아앗―!”

머릿속으로 조합을 짜고 있으니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비명. 마탑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화들짝 놀라 문을 벌컥 열고 뛰어들어갔다. 10년 만에 만난 이세계 탈출의 실마리가 비명을 지르는데 어떻게 안 놀랄 수가 있을까?

물론, 당연하게도 위험이 닥쳤다든가 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담담하지만 차갑게 식은 눈으로 한세아를 노려보는 마법사와 양팔을 번쩍 들고 좋아하다가 내 얼굴을 보고 상황을 파악했는지 창피해서 죽으려 하는 한세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올 뿐.

 “…무슨 일입니까?”

 “축하드립니다, 한나 양은 마법사의 자질이 꽤 뛰어나시군요.”

 “아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네, 이로써 검사는 완료되었습니다. 만약 모험가의 길이 아니라 마도의 길을 걸어 나갈 의향이 있다면 언제든지 마탑을 찾아주세요.”

 “저기, 그, 죄송합니다…?”

옆에서 돌고래처럼 끼에에에엑 울부짖든 말든 사무적인 태도의 마법사에게 정중히 인사하자 그제야 상황 파악을 하는 한세아.

 “괜찮습니다. 마법사의 자질이 없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 분들의 난동을 하도 겪어서, 기쁨의 비명 정도는 귀여운 편이죠.”

본인이 어디 동사무소 진상 민원인 비슷한 존재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는지 뺨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그녀. 눈동자가 바쁘게 옆으로 움직이며 입 모양이 꼼질 거리는 걸 보니 시청자들에게 한 소리 듣고 있나보다.

까칠하기로 소문난 마탑의 마법사가 한 번 째려보는 거로 끝나다니, 저리 친절한 걸 보니 한세아의 외모 덕분인가. 마법사의 아쉬움 섞인 권유를 뒤로한 채, 뺨이 발갛게 달아오른 한세아가 후다닥 계단을 내려가다 못해 마탑 지부 밖으로 뛰쳐나간다.

 “마법사의 자질이 있는 사람에게는 두 개의 길이 있어요.”

 “…두 개요?”

그런 그녀를 따라잡은 뒤 카메라 드론에 함께 잡히도록 자연스럽게 발을 맞춘 다음, 얼굴이 아직도 벌건 그녀에게 상냥하게 설명을 시작한다.

 “첫 번째는 마탑의 마법사가 말했던 것처럼 마탑에 들어가는 거죠. 그렇게 된다면 좀 더 세세한 검사를 통해 자질을 정확하게 알아보고, 자질에 맞는 마법사의 휘하로 들어가 교육을 받을 수 있죠. 기사의 종자나 대장장이의 도제와 비슷한 관계가 되는 겁니다.”

 “그럼 두 번째는 모험가겠네요?”

 “맞아요. 다른 방법은 모험가가 되는 겁니다. 연구실이 아닌 탑의 실전에서 실력을 키우고, 모르는 마법적 지식은 모험으로 번 돈을 통해 마탑에서 구매하는 방식이죠. 마탑의 처지에서는 마탑에 들어와도 좋고, 들어오지 않아도 우량 고객이 생기는 거니 좋다는 태도예요.”

마법사의 자질이 뛰어난 사람은 마탑에 들어오지 않아도 그 빠른 성장 때문에 마탑의 VIP 고객이 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자질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은 마탑에 들어가 봤자 사무 노예 1호가 될 뿐이고, 모험가가 되어도 별다른 구매력이 없는 편이다.

자질이 있어도 쿨하게 보내주는 이유는 금전적 이익 때문이라니, 학문을 추구한다기보다는 뼛속까지 이익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마탑의 방식.

 “그래서 한나 양, 어떻게 하실 건가요?”

 “네? …아아, 당연히 모험가죠. 그러려고 이 도시에 왔는걸요!”

손부채질로 뺨을 식힌 그녀가 내 쪽을 바라보며 작게 미소 짓는다. 하기야, 그녀가 방송인이라는 걸 알고 있다면 물어볼 가치도 없는 질문. 그 뻔한 질문을 듣고 미소 지으니 다시 한번 그녀가 입을 연다.

 “그리고 말은 놓으시는 게 어떨까요? …선배님이시니까요!”

그러면서 내밀어지는 손.

 “그래, 알겠다.”

악수를 청하는 건가? 마주 잡으니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오른다.

[방송인 ‘한세아’와 합류하여 파티를 맺자 1/1 ※ CLEAR]

[보상 : 방송인 한세아의 방송국 접속 권한]

방송국 접속… 이게 뭐야?

한세아와 악수를 하니 퀘스트가 클리어되었고 이상한 보상을 받았다.

[방송인 ‘한세아’와 합류하여 파티를 맺자 1/1 ※ CLEAR]

[보상 : 방송인 한세아의 방송국 접속 권한]

한세아의 방송국이라니, 아마 진짜 방송국이 아니라 인터넷 게시판 같은걸 방송국이라고 부르는 것이겠지.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접속해 보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하는 방법을 모르는 데다 눈앞에서는 촬영용 드론이 나를 집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과도한 경계심일지도 모르겠지만 괜히 허공에 눈동자 뒤룩뒤룩 굴리다 촬영되어서 의심을 사는 일이 없는 게 좋겠지. 나 또한 한세아의 눈동자 움직임을 보고 상태창인가, 채팅창인가~ 하면서 생각하고 있으니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여자를 상대로 한 집념 넘치는 또라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일본에서는 아이돌 셀카의 눈동자에 비친 잔상을 보고 집을 찾아낸 스토커가 있었고 한국에서도 다양한 변태들이 여자 방송인 상대로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뜯고 씹고 맛보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한세아 정도의 미녀라면 그런 변태가 여러 명 붙어 있어도 이상할 게 없지.

 “저한테 마법사의 자질이 있다면, 이제 뭘 하면 되나요?”

 “모험가 길드로 돌아가서 가벼운 호신술 정도를 배우고… 탑 1층으로 체험을 한 번 나가 볼 거야.”

 “호신술이요?”

 “모험가가 된 마법사들은 늘 소규모 파티로 탑 내부를 돌아다니니까 스태프를 봉처럼 사용하는 호신술을 배워야 해. 마법사의 마법은 무한이 아니니 마력을 아껴야 할 상황이 있거든. 예를 들어서 빈사 상태의 몬스터가 최후의 발악으로 전열을 뚫고 후열로 달려들 땐 곧바로 대응하기 힘들지. 거기에 정말 죽기 직전의 상대라면 마력 낭비가 되니 파티원이 마무리할 때까지 잠시 저지하는 용으로 간단한 봉술을 배워 두는 거야.”

예전에 한 초보자 파티는 고블린 몇 마리에게 후열을 급습당하자 패닉에 빠진 마법사가 봉을 휘두를 생각도 못 하고 준비하던 마법을 난사해 도와주려던 동료를 노릇하게 구워 버린 일도 있었다.

알고 지내는 상급 모험가가 지도역으로 있을 때여서 죽지는 않았지만, 안면이 노릇하게 익어 버린 전사와 죽음의 위기를 겪은 마법사가 사이좋게 트라우마를 얻고 시골로 내려갔다 했던가. 초보 모험가, 그것도 마법사가 포함된 파티에게 중견급 모험가들이 술자리에서 늘 떠벌리는 유명한 이야기다.

그리고 첫날부터 탑에 슬쩍 가 보는 건 너무 빠르지만 어쩔 수 없다.

[한세아와 파티를 이룬 채 1층에서 최하급 마석 획득 0/10]

새로운 퀘스트가 등장했으니까.

보상이 뭔지도 알려주지 않는 불친절하고 단출한 퀘스트 창. 하지만 저게 헛것이 아니라 실제로 진행되는 퀘스트 창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무시할 순 없었다. 보상을 확인할 순 없었으나 눈앞에서 홀로그램 글자가 꾸물꾸물 바뀌며 갱신되는 건 확인했으니까.

그렇게 마법사가 왜 스태프로 봉술을 익히는지에 대한 설명을 대강 끝마치자 다시 길드의 뒤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끌고 와 박아둔 통나무는 누가 건드리지 않았는지 그대로 굳건히 박혀 있는 모양새.

 “음, 이 통나무를 두드리면 될까요?”

 “그 전에 기본적인 장비부터 챙기자.”

 “장비요?”

 “그래. 준비해 둔 장비가 있다면 모를까, 초보 모험가를 위한 중고 장비들이 창고에 있으니 그걸로 모험을 시작한 다음 돈을 모아서 새 장비를 구하는 게 좋지.”

 “와~ 모험가 길드는 초보 모험가에게 되게 잘 대해주네요.”

실상은 중고 장비를 이용한 모험가 길드와 대장장이 길드의 담합이지만. 모험가들 대부분이 초급에서 중급으로 넘어갈 때 대대적인 장비 갈이를 시도하는데, 이 때 처분이 곤란한 중고 장비를 길드에서 구매하는 것이다.

 “물론 대여 형식이라 기간은 좀 짧지. 충분한 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면 새 장비를 맞추는 거고, 아니면 중고 장비를 구매해서 더 좋은 장비를 얻을 때까지 버티는 일도 있고.”

물론 대부분의 초보 모험가들은 중고 장비를 그대로 구매하게 된다. 시골에서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올라온 촌뜨기들이 삐까뻔쩍한 새 장비를 풀세트로 맞추는 게 가능할 리 없잖아. 게임이 배경인 주제에 이상한 곳에서는 현실적이란 말이지. 그 덕분에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는 가장 간단한 시장 논리가 완성되는 것이지만.

그렇게 말한 뒤 통나무 앞에서 멀뚱멀뚱 서 있는 한세아를 잠시 기다리게 한 뒤 카운터로 향했다.

 “창고 좀 쓸게.”

 “아까 보니까 나갔다가 오던데, 예쁜 후배한테 장비 좀 사 주는 거 아니었어요?”

 “마탑 다녀온 거야. 마법사의 자질이 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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