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175)

 “우와…. 근데 이건 왜 가져 오신 거예요?”

사람보다 굵고 긴 통나무를 한 손으로 질질 끌고 온 게 신기해 보였는지 입을 쩌억 벌리는 그녀. 주먹을 망치 삼아 통나무를 퉁퉁 두드려 바닥에 대충 박아 넣고 난 뒤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일단 한나 양이 쓰는 무기를 볼 생각이니까요.”

 “…아, 제 무기요?”

 “네. 평소 사용하던 무기가 있나요? 아니라면 원하는 직군의 기초적인 무기술을 배워도 좋구요.”

 “그게에…….”

눈동자가 또 돌아가는걸 보니 별생각 없이 왔나 보네.

곁눈질할 생각도 없는지 허공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모습이 그녀가 얼마나 당황했는지를 알려주는 것 같아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물론 이 타이밍에 웃으면 제 무기도 모르는 초보 모험가를 비웃는 싸가지 없는 꼰대가 될 뿐이니 웃을 순 없지.

 “가장 보편적인 건 역시 검이겠죠. 아무래도 쓰는 사람이 많다 보니 널리 퍼지기도 했고.”

게임이 배경이라서 그런지, 원래 중세가 그런지는 몰라도 모험가 중에는 검을 쓰는 사람이 많은 게 이 세상의 특징이었다. 창은 대부분 군대에서 쓰는지라 개인이 몬스터를 사냥할 때 쓰는 게 아니라, 무슨 6m짜리 10m짜리 장창으로 거대 몬스터를 토벌하는 데 쓰이거든.

 “그… 마법사는 어떻게 되나요?”

 “마법사요?”

검이 흔하다면 가장 희귀한 건 마법사. 그런 마법사에 대한 질문이 한나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마법사는 모험가 길드가 아니라 마탑 지부가 따로 있어요. 그곳에서 마법에 대한 재능을 인증받는 거죠.”

이 또한 모험가를 꿈꾸는 이라면 어디 산골에 처박혀 살던 청년도 알 수밖에 없는 상식. 주문쟁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다더라~ 같은 소문은 엄청나게 퍼져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판타지 소설을 좀 읽었다 해도 짐작할 수 있는 내용 아닌가.

아마도 한세아가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아무래도 딱 하나.

 ‘게임, 이제 오픈했구나.’

사전 정보가 단 하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

이미 오픈을 한 게임이라면, 한세아가 후발주자라면 채팅창에 훈수를 두는 시청자로 가득했겠지. 마법사는 마탑에 가야 하는데 그것도 모르냐~ 하면서 쥐똥만 한 지식으로 어깨를 활짝 펴는 무뢰배들이 인터넷 세상에 어디 한 둘인가.

 ‘방송인 한세아는 선두주자야. 시청자들의 기본적인 질문이 우수수 쏟아진 것도 그래서였나.’

알파 테스든, 방송인 특혜든 다른 사람들과 동시에 시작한 상황이던 정보가 없는 건 확실하다. 망상일지도 모르지만 내 눈앞에 뜬 튜토리얼 퀘스트 또한 게임 오픈과 동시에 이루어졌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마법사의 재능을 가진 사람은 아주 적어요. 어지간한 고등급 파티가 아니면 마법사를 찾아보기 힘든 점도 그때문이고.”

 “아아…, 그렇군요.”

내 대답에 약간 시무룩해지는 그녀. 게이머로서 마법사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지 어깨와 목에서 힘이 주욱 빠지는 게 명확하게 보인다.

이러면 일정을 좀 바꿔야겠는데.

 “원하신다면 마탑을 먼저 방문해볼까요? 마법사의 자질이 있다면 마법사가 되는 게 파티를 구성할 때 제일 좋으니까요.”

 “그래도 되나요!?”

 “당연하죠. 검을 잡고 전위로 등록했는데 나중에 마법사의 자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한세아가 마법사가 된다는 점은 내게 이득밖에 없었다. 퀘스트 내용상 그녀가 아무리 실력이 없다 해도 따라다녀야 할 것 같으니, 차라리 몸 쓰는 전위보단 마법사가 좋겠지. 전사만 두 명 있는 것보단 전사와 마법사가 있는 게 밸런스 적으로도 좋고.

튜토리얼 퀘스트가 대놓고 파티를 짜라고 말했으니, 내가 그녀와 함께한다는 가정하에 파티 조합을 짜는 게 맞았다.

 “그러면… 번거롭게 해서 죄송하지만 마탑에 먼저 가 보고 싶어요.”

 “알겠습니다. 죄송할 게 뭐 있나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한세아의 방송 스타일을 모르니 일단 호감작을 좀 하는 느낌으로 정중하게 대하며 다시 뒤돌아 길드 건물 밖으로 나섰다. 거리에 가득한 모험가들을 지나 마탑으로 향하니 명백하게 변하는 거리.

낡은 갑옷과 검 따위로 무장한 꾀죄죄한 사람들 대신 로브 차림의 멀끔한 안경쟁이들의 비율이 명확하게 높아진 것이다.

모험가 거리에는 하급 모험가들이 많다. 마도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초보 모험가들. 개울물에서 오물 따위는 씻어내지만, 청결과 미용을 위해 몸을 씻지는 못하는 모험가들이 많다. 그런 곳에서 누구나 뜨신 물로 매일 샤워하고 입욕제와 샴푸와 향수 따위를 쓰는 마법사들의 거리로 왔으니 느낌이 확 바뀔 수밖에.

 “와 여기는 정말… 거리가 멋지네요!”

꾀죄죄한 모험가들이 가득한 거리에서 마석 가로등에 포장도로까지 있는 깨끗한 마법사의 거리로 오니 신기하다는 듯 눈을 빛내는 한세아. 하긴 아무리 판타지를 좋아한다 해도 목욕도 못하는 지저분한 초보 모험가보단 로브를 쓴 멋진 마법사를 동경하는 게 사람 심리 아니겠는가.

 “저기 새하얀 건물이 마탑 지부입니다. 다른 도시의 마탑들은 이름에 걸맞게 탑을 쌓아 올리지만, 이 모험가들의 도시에서는 저런 모양으로 지었죠.”

 “마탑인데 탑이 아니라니, 왜 그런 거죠?”

 “모험가의 도시에 있는 ‘탑’은 부정적인 이미지도 잔뜩 가지고 있으니까요.”

촌놈 살해자, 과부 제조기, 얼뜨기들의 무덤. 탑의 절반 정도는 사람 사체로 만들었다고 봐도 될 정도로 많은 죽음을 10년간 봐 왔지.

내 씁쓸한 웃음에 대충 이해가 갔는지 고개를 끄덕거리는 한세아.

그녀의 앞에는 새하얀 큐브 같은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자동으로 열리는 목제 미닫이문을 신기하게 구경하는 한세아. 반투명한 드론이 바삐 날아다니며 자동문부터 다양한 마도구가 가득한 마탑 지부의 로비를 촬영하는 동안 나는 곧바로 카운터로 향했다.

마탑이지만 카운터 쪽의 생김새는 모험가 길드와 별다를 게 없는 1층의 풍경.

카운터가 있고, 미녀 접수원이 있고, 마탑에 일을 보러 온 사람들이 잔뜩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나마 다른 점이라고는 의뢰 게시판에 덕지덕지 붙은 지저분한 종이가 없다는 점과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조용하다는 점.

 “어떤 일로 방문하셨나요?”

카운터에 앉아 있는 건 역시나 금발 벽안의 미녀였다. 모험가든 마법사든 길드의 높으신 분들이 금발 페티쉬가 있는 건지, 아니면 게임사에서 NPC 모델링 돌려쓰기를 한 결과인지는 잘 모르겠네.

 “마법사의 자질을 알아보고 싶어 왔습니다.”

 “네에, 저분이신가요?”

 “네. 접수 부탁드립니다.”

내 얼굴을 알고 있는지 내가 아니라 곧바로 한세아를 쳐다보는 마탑의 접수원. 의뢰 때문에 하도 오갔더니 이런 부분에서는 좀 편리하긴 하네. 카운터에 금화 하나를 스윽 내밀자 곧바로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금화를 내밀고 서류를 받는 걸 카메라로 목격했는지 후다닥 달려오는 한세아.

 “어어… 검사는 유료인가요?”

 “네. 마법 적성을 알아보기 위한 시약 값과 도와주실 마법사님에게 사례금을 지급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모험가 길드의 엘리스가 서글서글한 미녀라면 이쪽은 눈초리가 날카로운 고압적인 미녀. 당연한 걸 물어본다는 듯 딱 잘라 말한 접수원이 카운터에 갖춰진 나팔 축음기 비슷하게 생긴 기구를 톡톡 두드리더니 작게 중얼거린다.

 “적성 테스트 원하시는 손님, 한 분 계십니다.”

모험가 길드에서는 말똥 냄새 나는 시골 촌뜨기들이 낡은 양피지에 쓰여 있는 글씨도 잘못 읽어서 문제인데, 마탑에서는 마이크와 스피커처럼 보이는 마법 물품을 사용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큰 격차인가.

그 점은 한세아도 느꼈는지 불친절한 접수원의 태도에도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카운터 안쪽의 마도구를 구경한다.

 “저쪽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눈을 빛내는 한세아에게 말을 걸며 부드러운 손짓으로 카운터 뒤편의 계단을 가리켜 알려주는 접수원. 일종의 축객령처럼 느껴졌는지, 아니면 마법사가 되고 싶다는 열망 때문인지 고개를 작게 끄덕인 그녀가 후다닥 계단으로 향한다.

 “저기, 롤랑 님?”

 “예.”

 “그, 검사비는….”

그렇게 앞장서서 계단을 올라가던 한세아가 발걸음을 천천히 늦추며 내게 말을 걸어온다. 상급 모험가인 내게는 술안주값으로 쓸 푼돈이지만, 초보 모험가에게는 목숨을 걸어도 벌 수 없는 게 금화. 아무리 게임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다 해도 커다란 금화는 비싸게 느껴질 수밖에 없겠지.

 “갚으라고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앗, 그래도 되나요? 너무 민폐인 게 아닌지….”

게임 시작한 지 30분 만에 빚을 진 느낌이 그다지 좋지는 않은지 안색이 어두워지는 그녀. 볼 게 없는 계단 대신 내 쪽을 촬영하는 드론을 보며 살짝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한나 양이 마법사의 자질이 있다면 인재를 영입하는 비용이고, 자질이 없다면 나중에 상급 모험가가 되어 저처럼 초보 모험가를 도와주면 되니까 손해 볼 게 없는 거죠.”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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