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175)

박제가 되어 버린 병신을 아시오? 한낱 게임 따위에 열을 올리다 목숨을 잃어 버린 병신 말이오.

자조적으로 낄낄 웃으며 작게 뇌까리자 의아한 시선이 날아든다. 그야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니 시선이 모일 수밖에. 시선이 모여도 다들 술을 퍼먹는 중이라 그런지 시선이 잠시 쏠릴 뿐 술을 빼앗거나 말리러 드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시선이 아무리 모여도 술기운에 뇌가 뒤죽박죽 섞여 버린 나는 유쾌하게 중얼거리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이하늘, 25살, 모바일 게임 신규 픽업 캐릭터가 남자라고 커뮤니티에 욕설 섞인 장문의 글을 작성한 직후 심장마비로 사망. 세상 어느 대문호를 데려와도 이보다 우스꽝스러운 문장을 자아낼 수 없을 것이다.

집착의 시작은 별 게 아니었다. 22살의 가을, 전역하는 날 어느 모바일 게임이 출시된 걸 알게 되었을 뿐이니까. 우연이라기보단 인연에 가까운 모양새에 까까머리였던 나는 주저 없이 게임을 다운로드 받았다.

히로인즈 크로니클인가하는 이 모바일 수집형 게임은 딱 봐도 씹덕을 노리고 만든 게임이었다. 게임 캐릭터의 8할이 여캐였고, 그나마 있는 남캐는 3★ 이하의 재료용 캐릭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쌔끈한 여캐로 파티를 짜고, 화끈하게 벗긴 스킨을 수집하는 미소녀 수집형 턴제 RPG 모바일 게임. 낯짝이 어지간히 두꺼워도 명작이라고 부르긴 힘든 게임이었다. 각종 버그에 서버는 끊기고 랭킹 산정에 오류가 있거나 이벤트가 취소되고―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건 명작이 아니라 명화라는 말에는 모두가 공감했다는 점.

오타쿠를 타게팅 한 만큼 일러스트와 캐릭터 모델링에 모든 걸 쏟아부은 게임이었거든. 그쯤 되니 유저들도 서버가 터질 때마다 분노하기는커녕 사죄 차원으로 게시되는 특전 일러와 사죄 스킨에 관심을 가졌지.

사죄 스킨만 모아도 메인 파티와 서브 파티까지 풀로 돌릴 수 있다는 점이 참 좆같긴 했지만, 뭐 어떠랴. 겨울에 터지면 산타 걸 스킨을 뿌리고 여름에 터지면 비키니 스킨을 뿌렸는데.

문제가 있다면 아트팀의 발가락 때보다 못한 밸런스팀이겠지. 아니, 이 새끼들이 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회사에 밸런스팀 같은 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바니걸보다 강한 간호사복보다 강한 산타걸보다 강한 카우걸보다 강한 비키니보다 강한 신규 등장 캐릭터, 기간 한정 픽업 이벤트!

개발진의 인심이 뱃살만큼 두둑한지 어째 신규 캐릭터가 나올 때마다 스탯에 군살이 덕지덕지 붙어서 나오지 않던가. 그만큼 가슴도 커졌으니 좋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건 소수의 의견.

 '내 에리카 살려내 씨발련들아!'

 '애정으로 키우고 성능으로 묻었다.'

 '가진 재화 다 꼴았는데 이튿날 상위호환이 등장하는 건 머임?'

 '같은 태생 5성인데 스탯이 씨발 별 하나 차이가 나는데 정상이냐?'

미소녀 여캐가 있다면 과몰입 씹덕이 있는 게 세상의 순리 아니던가. 자신이 아끼던 캐릭터의 완벽한 상위호환이 등장하여 랭킹판을 뒤집어엎는 걸 누가 반기랴. 물론 나는 거기서 화를 내진 않았다.

나는 특정 캐릭터 하나에 목을 매달진 않고, 현질로 인권캐를 수집하는 콜렉터형 흑우였으니까.

에리카보다 강한 세리카가 나오면 둘 다 뽑는다. 메인 탱커 0티어가 바뀌었다면 걔도 뽑는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지만 나는 가랑비가 아니라 개울물에 몸을 던져 넣은 수준으로 현질을 박았다.

월급을 꼴아 박고, 취미였던 식도락 여행을 줄이고, 옷 살 돈으로 가챠를 돌린다. 취미는 모바일 게임, 특기는 신규 캐릭터로 덱 최적화하는 공략 올려서 특급 흑우라고 욕먹기.

아아, 썩 괜찮은 인생이었다.

마지막 패치가 있기 전까지는.

히로인즈 크로니클의 캐릭터는 별의 개수로 등급을 나눴다. 최소치 1★은 태생 1성, 최소치 5★는 태생 5성. 모두가 승급을 통해 평등하게 6★ 만렙을 찍는다고 해도 태생에 따른 스탯 차이는 극복할 수 없었다. 심지어 태생 5성 사이에서도 신캐가 더 스탯이 높았으니 지랄 맞은 밸런스는 누가 와도 쉴드를 칠 수 없었다.

[EVENT! 찬란하게 빛나는 6개의 별!]

문제의 패치는 신규 캐릭터 출시 이벤트였다. 태생 6★으로 시작해 7★으로 넘어가는 신캐가 등장한다니, 대체 기존의 캐릭터들은 어찌 되려고.

XX맘 따위로 불리는 열성 팬부터 박살이 난 밸런스의 파편이라도 움켜쥐려는 나 같은 공략러까지 모두 목에 핏대를 올린 채 비난의 여론을 형성했다. 오른손으로는 타자를 치며, 왼손으로는 지갑의 잔탄을 확인하면서 말이야.

아무리 욕해도 나올 건 나오니까 일단 신규 캐릭터는 뽑아야지, 존나 강할 테니까. 모두가 똑같은 생각하고 있었을 거다. 그러니까 이 새끼들이 이딴 패치를 반복하는 거고.

패치 직후, 후회는 하지만 망설임은 없이 결제창으로 손이 간다. 평소 이용하는 공략 사이트를 미리 켜 둔 채 스마트 폰을 꾸욱 눌렀다.

터치 몇 번에 허공으로 사라지는 오만 원, 십만 원, 이십, 삼십, 씨발, 새끼들아―

평소보다 재수가 없던 건지, 태생 6성은 태생 5성보다 등장 확률이 낮은 것인지 85만 원을 꼴아 박고 나서야 번쩍번쩍 빛나는 무지개색 별을 볼 수 있었다. 4성 이하는 은색, 5성은 금색이더니 6성은 무지개인가.

아냐, 그래도 게시판에서는 기댓값을 100만 원으로 잡아놨으니까 나는 15만 원 이득 본 거야. 개발진의 모친과 함께 가챠 천장도 사라진 게임이니까.

번개가 번쩍거리고 하늘에서 내려온 별이 캐릭터의 흐릿한 실루엣을 휘감는다. 마치 마법 소녀의 변신장면을 연상케 하는 고품질의 애니메이션. 찬란한 금발, 새하얀 피부, 맑고 영롱한 푸른 눈동자,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목소리.

밸런스 붕괴를 불러일으킬 태생 6성 픽업 캐릭터가 드디어 내 계정에 강림하셨다.

딱 한 가지의 문제점을 가지고.

 "왜, 남캐가…?"

사죄로 뿌린 여름 비키니 스킨 때문에 유두 스티커 역바니걸 스킨을 대신 판매하려다 검열펀치 처먹은 새끼들. 이런 새끼들이 어디서 남녀평등 같은 못돼먹은 사상을 주입 당했을까? 그런 고민을 하며 하루 100회 감사의 5700자 펀치를 작성해 매크로를 통해 매일매일 올리다 심장마비로 사망.

그 뒤 눈을 떠보니 히로인즈 크로니클의 세계더라.

정확히는 히로인즈 크로니클의 세계가 뒤섞인 짬뽕 세계더라. 어디서 본 것 같은 RPG 게임 설정이 이 대륙에 은근히 녹아들어 있었거든.

그거야 뭐, 중요한 게 아니었다.

찬란한 금발, 새하얀 피부, 호수처럼 맑고 영롱한 푸른 눈동자, 떡 벌어진 어깨와 조각 같은 몸매, 그리고 거유 대신 덜렁이는 거근까지. 솔직히 말하자면 육체 하나는 완벽했으니 이 몸이라면 어디에 던져놔도 살아갈 자신이 있었다.

근육질의 몸은 스탯의 현실 반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건틀릿을 착용한 채 손아귀에 힘을 주면 바위에 손가락 자국을 낼 수 있는데 악력이 몇 kgf인지 짐작도 안 되더라. 거기에 기본 스킨인 듯한 갑옷과 투구, 커다란 방패와 철퇴를 츄리닝처럼 편하게 입고 다니며 전력으로 달리면 마차랑 비슷한 속도로 지치지 않고 뛸 수 있고.

이런 몸으로 현대 사회에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훤칠한 얼굴만으로 모델이든 방송이든 인생 쉽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외모. 튼튼하고 건강한 데다 아름답기까지 한 근육질의 육체. 현대 사회였으면 일반인 신분이라 해도 팬클럽을 가질 수 있을 외형인데 얼마나 쉽고 편하게 살아가겠어.

물론 판타지 세상이라 해서 이 외모가 쓸모없는 건 아니었다.

몸뚱이만 있고 돈은 없는 시절, 수프만 시켜도 고기 조각을 덤으로 주는 여관의 여급부터 시작해서 뭣도 모른 채 헤맬 때 도와 준 모험가 여선배들까지. 10년의 삶 동안 외모 덕을 본 횟수는 감히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으니까.

그래, 10년.

이 빌어먹을 판타지 세상에서 튼튼한 몸뚱이에 나약한 멘탈로 바닥을 개 같이 구르며 10년. 칼질이라곤 닭 모가지도 못 비틀어본 비실비실한 사회인이 철퇴로 오크 대가리를 뚝딱뚝딱 박살 내는 베테랑 전사가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 사람이 살다 보면 어떻게든 되더라.

끝내주는 외모빨과 스탯 버프가 적용된 재능 넘치는 육체 덕분에 살아남은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정신적인 부분 만큼은 참 고생 많이 하면서 적응했지. 이제는 부러진 팔다리에서 삐져나온 뼛조각 정도는 농담거리로도 못 삼을 정도로 익숙해졌으니까.

그래도 한평생 전쟁터 같은 곳에서 지낼 생각은 없다. 모험가로 유명해졌으니 골드를 바짝 벌어서 한탕 챙긴 다음, 모험가들의 입버릇처럼 어디 터 좋은 곳에서 농장이나 여관 따위를 하는 은퇴 생활을 만끽할 생각이다.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와아, 저 높은 탑 좀 보세요. 1세대라 해서 조금 불안 했는데 이런 게 구현되다니, 진짜 외계인이라도 잡아서 고문 중인 거 아니야?”

깨끗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천 갑옷차림의 여성. 땟물이 구질구질한 중세 농노들과 비교되는 새하얀 피부에 잘 관리된 기다란 머리카락.

 “오오, NPC들도 엄청 많네요. …아! 그런 단어 직접 쓰면 안 된다고 했죠. 흠흠, 롤플레잉 확실히 시작할게요!”

그리고 머리 주변을 빙빙 도는 반투명한 카메라와 함께하는… 인터넷 방송인이.

 “흠흠, 이곳이 창공의 탑으로 유명한 모험가들의 도시로군요!”

꿈도 희망도 없는 판타지 세상에 떨어진 지 10년.

[방송인 ‘한세아’와 합류하여 파티를 맺자 0/1]

첫 퀘스트가 시작되었다.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때문에 술기운이 뇌에서 싸악 도망친다.

내가 10년간 겪은 이 세상은 고작 가상현실 게임 따위가 아닌 끔찍한 전쟁터였기 때문이다. 상처를 뚫고 튀어나온 뼛조각, 흘러내리며 악취를 풍기는 내장, 산 채로 몬스터에게 뜯어먹히는 초짜 모험가― 이게 다 게임의 배경이라고?

[방송인 ‘한세아’와 합류하여 파티를 맺자 0/1]

하지만 눈앞의 홀로그램은 사라지지 않는다. 허공의 반투명한 드론형 카메라를 향해 눈을 부라리는 어여쁘게 생긴 여자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곳이 모험가 길드에서 검증한, 마법적인 안전지대가 아니었다면 나는 내 눈을 의심하며 내 손등을 단검으로 찍어 버렸을 거다.

 ‘환각이 아니야.’

안전지대를 믿고 잔뜩 취할 정도로 들이켠 술에 마약이 들어 있을 가능성은 당연히 0%. 강인한 육체가 정신을 흐릿하게 만드는 알코올을 싸악 몰아내며 빠릿빠릿하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환청도 당연히 아니고, 나 말고 다른 연놈들도 저 여자, 한세아를 쳐다보고 있다.’

자기 치기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늙은 모험가의 그윽한 눈빛, 벗겨 먹기 좋아 보인다고 생각하는 어중간한 놈들의 탐욕 어린 눈빛, 거리의 여자 모험가들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미모에 성욕을 느끼는 음흉한 눈빛.

중견 이상의 모험가들이 휴식을 위해 널브러져 있는 게 이 안전지대다. 여기에 있는 모험가가 집단으로 미쳐서 같은 환각을 보는 사건이 아니라면 한세아라는 여자는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의 인물.

그렇다면 나는 당연히 그녀와 파티를 맺어야 했다.

1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끝에 처음으로 등장한 게임 시스템이다. 내가 왜 이 세상에 이 몸으로 떨어졌는지 곧바로 밝혀낼 순 없겠지만 뭐라도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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