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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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꽃이 만발했다.
근처 하천변에서 작은 불꽃축제를 한다기에 남영에게 “가자”고 했다.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 남영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남영은 옷본을 뜨고 있었다.
최근 남영은 옷을 만든다.
최종 목표는 근세 유럽풍의 화려한 드레스.
제대로 된 걸로, 하고 야무지게 말했지만, 어쨌든 독학 중이고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축제 당일 저녁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하천변으로 나갔다. 노점과 인파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걷는다기보다는 떠밀려 다닌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사람이 너무 많네. 그냥 갈까.”했더니 “보고 가자. 불꽃”하고 대꾸해 왔다.
남영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화사한 원피스를 입고 굽 낮은 가죽구두를 신었다. 머리카락은 틀어 올려 핀으로 고정시켰는데 사장님에게 선물 받은 것이라고 한다.
두 달 전 남영은 만 스무 살이 되었다.
같은 날 나는 아버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안부를 전하고 요즘 은숙 씨의 기분과 상태를 얘기하고 남영의 생일축하와 나의 학교생활을 묻고는 마지막으로 선화가 조금씩 안정되고 있다는 소식을 알렸다.
아버지는 선화와 일주일에 한 번 만나고 있다고 한다.
만나서 상담을 한다고 한다.
벌써 6개월이 넘었다고 한다.
나는 그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사람이 너무 착해서 탈이야.’
‘마음이 너무 여려서 탈이야.’
은숙 씨가 아버지에게 가지고 있는 불만과 불안.
그것은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꽤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다.
역시 나는 아버지보다는 은숙 씨를 닮은 듯.
그쪽 유전자를 더 강하게 물려받은 것이 분명하다.
아버지가 전한 소식은 남영에게 알리지 않기로 했다.
영원히, 영원히 비밀.
남영은 아주 가끔 ‘쓰레기’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데 그것은 스스로를 냉소적으로 은유하기 위함이다.
할 수만 있다면 남영의 머릿속에서 이선화라는 이름을 도려내고 싶다.
그러니까 선화에 대한 것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영원히 비밀.
인파에 휩쓸려서 휩쓸리는 대로 걷다가 달려오던 꼬마와 부딪쳤다. 꼬마의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이 남영의 원피스에 뭉개져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버린 남영의 얼굴. 못 먹게 된 아이스크림보다 남영의 눈치를 우선으로 살피다가 울먹이는 꼬마. 꼬마의 어머니가 달려와 죄송하고 연신 사과하는 사이 꼬마는 그만 울어버린다. 차갑게 굳어있던 남영의 표정은 그 사이 묘한 것으로 변해 있다. 화가 난 듯 아닌 듯. 자책 중인 듯 아닌 듯. 조소를 띤 듯 아닌 듯. 쓰레기네, 라고 말할 때의 그 표정.
남영은 스스로를 가해자, 나를 피해자쯤으로 치부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의 남영은 세상에서 가장 순진한 사람인 것만 같다.
시체꽃이 썩은 냄새를 풍기는 이유는 유혹의 대상이 나비나 벌이 아니라 파리이기 때문이다. 고작 파리. 쓰레기도 그래. 쓰레기에 꼬이는 건 파리와 구더기. 바퀴벌레. 겨우 그 따위 것들. 남영이 시체꽃이라면 나는 파리. 남영이 쓰레기라도 나는 파리다. 고작.
불꽃이 터지기 시작하자 인파의 흐름이 멎고 화호성이 터진다. 남영도 울먹이던 꼬마도 밤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든다.
나는 불꽃을 보는 대신 남영을 본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남영의 눈동자에 화려한 불꽃이 피어오른다. 민들레의 씨앗 같고 미모사의 여린 꽃 같은 불꽃이 남영의 검은 눈동자에서 느리게 낙하한다.
꽃으로 치자면.
그래, 꽃으로 치자면 너는 이 세상의 모든 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답고 잔인하고 끔찍하고 생명력 강한 꽃.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오직 나만의 내 전부인 꽃.
꽃이 나를 보기에 꽃에게 입맞춤 했다.
<0과 1의 세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