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과 일훈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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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숙 씨는 나를 가리켜 ‘애어른’이라고 하고 아버지는 나를 가리켜 ‘자랑스러운 아들’이라고 한다. 교사들에겐 ‘훌륭하고 바람직한 학생’이고 동급생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자 ‘질시의 대상’이다.
내 생각에 나는 그냥 ‘징그러운 놈’이다. 반 친구들을 단지 ‘동급생’이라 부르는 것부터, 스스로를 ‘선망의 대상’이자 ‘질시의 대상’이라고 뻔뻔하게 말하는 것부터.
학교에 다니는 것이 사실은 재미없지만 그렇다는 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나는 가끔보다 조금 더 자주, 스스로에게 주입시킨다.
‘너는 그냥 운이 좋은 거야. 운빨 타고난 징그러운 놈일 뿐이야.’
개선 장군 비니키우스의 등 뒤에서 ‘메멘토 모리’를 외치던 노예처럼.
그런 주문을 스스로에게 건다는 것 자체가 그냥 재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게는 필요하다. 그런 경각심이.
각 학교에 한 명쯤은 있다는 전설적인 선배의 소문.
수학 시간에 잠만 자다가도 문제 풀이를 시키면 백발백중.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맨날 놀기만 하는데 시험만 치면 전교 1등. 악기도 척척 운동도 척척 게임도 척척. 대강만 배워도 뭐든지 척척.
그건 내 얘기다. 아니, 경각심을 조금만 풀어도 내 얘기가 될 수 있다. 나는 수업 시간에 졸지 않고 시험공부도 철저히 한다. 뭐든지 처음 배울 때는 진지하고 성실하게 임한다. 노력 없이 무언가를 거저 얻는 그런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그런 사람이 되어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 따윈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평범한 것’에 대한 선망이 있다.
이것 역시 재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최근, 신기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생겼다. 그것은 남영. 최남영이다.
새 학년이 되어 남영은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다. 같은 반은 아니고 교실 하나를 건너뛴 3반.
남영은 성실한 학생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체력이 약한지 수업시간에 자주 졸고 그래서 자주 혼이 나는 듯. 체육시간에도 주로 벤치 행.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매점에 가는 일도 없는 것 같고 점심 급식도 대충대충 먹는 둥 마는 둥.
내가 그 모든 걸 알고 있는 이유는 ‘남영이 신경 좀 써줘.’라는 아버지의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개인적인 관심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남영은 친부의 시신과 아흔여섯 시간을 함께 보낸 아이니까.
학생들은 모르지만 3반 담임을 비롯해 교사 몇은 남영의 사건을 알고 있는 듯하다.
뭐 당연하겠지만.
아무튼 그런 남영이 중간고사에서 전교 5등을 했다. 반에선 1등을 한 모양으로 같은 반 학생들이 놀라자빠졌다는 소문이다.
남영이 이전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다는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때고. 우리 학교로 전학 온 후에 보인 태도는 온통 불성실, 불성실의 점철. 시험공부를 하는 기색도 전혀 없었다. 하교를 하면 제 방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았는데, 아주 가끔 욕먹을 각오를 하고 노크를 하면 자고 있거나 영화를 보고 있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거나. 내 방엔 무슨 볼일이냐는 듯 흘끔 보기나 하고. 들어가도 되냐고 물으면 ‘뭐 하러?’하고 귀찮은 티나 내고. 다른 여자애들은 내가 말만 걸어도 좋아 죽는데.
하긴, 남영은 여러모로 평범하진 않지.
각 학교에 한 명쯤 있다는 전설적인 선배.
남영이 졸업을 하고 몇 년쯤 지나면 우리 학교의 전설은 최남영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틀 전, 3반이 체육하는 걸 봤다. 마침 자습시간이기도 했고 창가 자리이기도 했으니 문제집을 푸는 틈틈이 운동장을 내다봤다.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만 주로 보이던 남영이 수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50미터 달리기를 하고 있었는데 남영의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쟀다. 6초. 스톱워치가 아니라 정확하진 않겠지만 어쨌든 6초대. 체육 선생도 놀란 모양인지 남영을 불러 뭐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잘 달리는데 그동안 꾀병 부린 거 아니냐, 라든가 육상 안 해볼래? 라든가 그런 말을 하고 있겠지.
키도 작은데 6초대라니 대단하네.
손가락으로 샤프를 돌리며 멍하니 지켜보고 있는데 남영이 문득 고개를 들어 이쪽을 봤다. 눈이 마주친 것 같아 손을 흔들었더니 무반응으로 무시하듯 다시 내려지는 얼굴.
차가워, 최남영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 진짜 예쁘다.’
지난번 그렇게 말했을 땐 사과처럼 빨개졌으면서.
*
평범한 것을 선망하면서 평범하지 않은 것에 호기심을 가지다니, 모순이다.
모순이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호기심은 밝은 노랑, 밝은 노랑과 어울린다고 말했던 여자애가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잠깐 짝이었는데 속이 안 좋은 걸 억지로 참다가 코로 토하는 기행을 저질러버린, 안타까울 정도로 수줍음이 많았던 애다.
그땐 그게 무슨 소리야, 했었는데 지금은 무슨 소린지 이해한다.
달걀의 노른자처럼 밝은 노랑이던 나의 호기심이 요사이 검정으로 물들고 있다.
검정은 불안, 불안의 색이다.
며칠 전 주말에 이런 일이 있었다.
은숙 씨의 부탁으로 화단에 물을 주고 있는데 테라스 너머 응접실 저편을 가로지르는 남영이 보였다.
“최남영, 너도 와서 도와!”
별다른 기대도 없이 한 번 쿡 찔러나 보는 심정으로 큰소리로 외쳤다.
무시하고 갈 줄 알았더니 뜻밖에도 남영은 빈 물뿌리개에 물도 채우고 꽃잎에 닿지 않게 살살 물도 뿌리면서 이것저것 묵묵히 돕기 시작했다.
남영이 그렇게 순순했던 이유를 유추해보자면 ‘밥값’, 아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동안 관찰했던 데이터를 바탕으로 남영이 되어 생각해 봤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거실 쪽 복도에 있는 애들한테도 줘야 돼.”
빈 물뿌리개를 내밀며 말하자 남영은 설핏 인상을 찌푸리며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는 듯이 나를 봤다.
“화분 말이야.”
“그걸 왜 애들이라 그래.”
“의인화를 모르네.”
모를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한 번 놀렸다.
“징그럽게.”
“이게 징그러워?”
“징그러워.”
“왜?”
“징그러우니까.”
징그러우니까 징그럽다니 그거야말로 무슨 소리야 싶었는데 남영은 빼앗듯 내게서 물뿌리개를 가져가 수도에서 물을 받았다. 늦봄의 내리쬐는 햇볕이 따가웠는지 한쪽 눈가를 찡그리며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베이지색 반팔 티셔츠에 하얀 반바지를 입고 있는 남영은 피부가 너무 하얘서 푸르스름하고 창백해 보였다. 반소매 아래 가느다란 팔뚝, 마찬가지로 반바지 아래 가느다란 다리. 그러나 50미터를 6초대에 주파하는 튼튼하고 날렵한 다리.
푸르스름하고 창백한데도, 꼬챙이 같이 마른 몸인데도, 예쁘다고 생각했다. 멍하니.
살짝 얼이 빠진 채였던 것 같다. 커다란 물뿌리개를 양손으로 들고 테라스를 지나 응접실로 들어가던 남영이 손잡이를 놓쳤는지 발을 헛디뎠는지 물뿌리개 가득 담겨 있던 물을 쏟고 말았는데, 그 모습을 얼이 빠진 채 보고 있다가 ‘실내에 있는 화분은 작은 분무기를 쓰면 되는데’하고 뒤늦게 깨달았다.
자책하며 가까이 가서 보니, 응접실 안쪽으로 쏟아진 물이 흥건했다.
“깜빡하고 말 못 했는데 안쪽 화분은 그냥 분무기로 뿌리면 돼. 미안, 내가 할게.”
사과하자 남영이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어디 다친 덴 없어?”
묻고는 급한 김에 티셔츠를 벗어 바닥을 대충 훔치기 시작했다.
“뭐 하러 닦아?”
가만히 서서 나를 지켜보던 남영이 뜻밖에도 질문을 했다.
그것도 한 번에 못 알아먹을 질문을.
“어?”
“뭐 하러 닦냐고. 그냥 두면 마를 텐데.”
질문이 아니라 트집…… 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한 트집이라고. 저 따위 걸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다곤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대꾸했다.
“그렇게 치면 다 똑같잖아. 뭐 하러 사냐? 그냥 있으면 죽을 텐데.”
반쯤은 토라져서, 또 반쯤은 라임을 맞춘답시고 농담으로.
그런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후회했다.
남영의 앞에서 ‘죽음’을 말해도 되나 싶었던 것이다. ‘죽음’을 이런 식으로 말해도 되나? 이렇게 가볍게, 이렇게 퉁명스럽게, 이렇게 ‘네가 먼저 잘못 했어’라고 탓하는 식으로.
시선을 들자, 남영과 눈이 마주쳤다.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는 고요한 눈동자.
바닥을 닦느라 꿇어앉은 자세도 그렇고 떳떳하지 못한 마음도 그렇고 마치 죄인이 된 것만 같은데, 남영이 불쑥 말했다.
“그러게, 왜 살까? 지겹기만 한데.”
심장이 철렁 했다.
화가 나서 쏘아붙이는 게 아니라, 빈정거리는 것도 아니라, 지기 싫어서 그냥 해보는 말도 아니라, 진심이라서. 진심인 게 따끔할 정도로 피부에 와 닿아서. 그래서 심장이 철렁, 하고 들썩였다.
그대로 나를 지나쳐 응접실을 빠져나가는 남영의 뒷모습을 보면서 무슨 말인가를 더 하려다가 말았다. 하려던 말을 목구멍이 아프도록 그냥 꿀꺽 삼켜버렸다.
나는 그런 말을 하려던 게 아니야. 그런 뜻으로 그 말을 한 게 아니야. 사는 게 지겹다니, 왜 그런 말을 해. 나는 잘 모르니까, 네가 아는 걸 나는 모르니까, 그래서 사는 게 지겹다는 네 말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말이야, 사는 건 지겹기만 한 게 아니고, 그냥 있어도 사람은 그리 쉽게 죽지 않아.
쉽게 죽지 않아.
말할 수 없었다.
사람이 쉽게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아는 아이에게는 할 수 없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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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송일훈이 귀찮다.
미친 듯이 귀찮게 굴고 있다.
새 학년이 되면 거치는 과정들이 있다. 일,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기. 이, 과목마다 찍혀서 수시로 혼이 나기. 삼, 수업을 안 들으므로 질문을 받아도 침묵으로 일관하기. 사, 반에서 문제아로 찍히기. 오, 급우들로부터 은근한 따돌림을 받기. 육, 수행평가는 되도록 신경 쓰기. 칠, 중간고사 전날쯤 벼락치기하기. 팔, 성적이 나온 날 모두의 경악한 얼굴 보기.
나는 그 바보 같은 얼굴들을 보기 위해 벼락치기를 하는지도 모른다. 별다른 즐거움이 있는 건 아니고, 일종의 냉소다.
이 냉소는 일 년에 한 번. 1학기 중간고사 때만 허락된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성적발표까지 있고 나면 반에서 내 주위의 공기만 묘하게 변한 것이 느껴진다. 무관심과 비웃음이라는 다소 밍밍한 것이 악의와 호의라는 제대로 진하고 독한 것이 되어 주변을 가득 채운다.
나를 둘러싼 시선은 대부분 그렇다. 극명하게, 악의이거나 호의이거나. 대체로 악의 쪽이 8할 내지 9할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눈치를 보면 보는 대로 보지 않으면 보지 않는 대로 나는 어딘가 미묘하게 세상과는 어긋난다. 항상 그래 왔다. 눈치를 보나 보지 않으나 똑같다면 눈치를 보지 않는 쪽이 백배는 낫다고 판단한 것이 열두 살. 열두 살의 여름.
그 여름부터 이런 생각으로 살고 있으므로 구겨진 것이든 끈적한 것이든 뾰족한 것이든 악의라면 그 무엇이든 충분히 감수할 수 있고 또 감수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송일훈이 방해가 된다.
같은 반에 의진이라는 여자애가 있다. 나 같은 문제아는 주름 하나 못 잡을 정도의 문제아. 방과 후에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남자애의 등에 매달려 오토바이를 타고 성인남자의 자취방을 들락거리는 류의 문제아.
최근 그 애는 공부할 마음이 들었는지 어쨌는지 빈번히 문제집을 들고 찾아와 내게 질문을 한다.
귀찮게.
귀찮아서 대충 답해주기를 몇 차례, 몰라서 모른다고 하기를 몇 차례, 드디어 오늘 그 애가 폭발했다.
“야, 내가 니 라이벌로 보여?”
무슨 뜻인지 몰라서 잠자코 있었다.
“너 지금 내가 너 이겨먹을까 봐 공부 안 가르쳐주는 거잖아.”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싶어 또 잠자코 있었다.
“재수 없게 내숭 까서 일등 먹더니, 눈에 뵈는 게 없냐? 어? 말해 봐. 니 눈엔 나도 니 라이벌로 보이냐고!”
“안 보여.”
“씨발, 근데 왜 맨날 모른다고 하고 제대로 안 가르쳐줘?”
“난 시험 전날에 벼락치기 해. 그래서 시험기간 아니면 잘 몰라.”
“씨발년아, 뻥치지 마.”
“거짓말 아니야. 그리고 너 이러는 거, 되게 귀찮아.”
“씨발…… 이게 지금 뭐래? 말 걸어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주제도 모르고 귀찮대!”
뭐에 흥분했는지 갑자기 눈을 치켜뜬 의진이 책상을 발로 차며 소리를 질렀다.
제대로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가 뭔가 잘못 말했거나. 의진이 뭔가 잘못 알아들었거나. 그 뭔가는 아마 귀찮다는 말이었을까. 귀찮다는…… 그 말이 그렇게 기분이 나쁜 걸까. 네가 기분 나쁘니까 나는 그 말을 하면 안 되는 걸까. 귀찮아도 참고, 또 참고, 다르게 둘러말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또 찾고, 그렇게…… 그게 쉬운 사람이 있고, 그게 쉽진 않아도 가능한 사람이 있고, 그게 쉽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은…… 그런 사람도 세상엔 있는 건데…….
그런 생각들을 하는 와중에 답답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남색 교복 치마를 내려다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는데, 어느 순간 예상치도 못하게 따귀를 얻어맞았다. 연속으로 두 대나.
때린 사람은 당연히도 의진이었고, 의진은 가쁜 숨을 쌕쌕 내쉬며 “재수 없게 한숨 쉬지 마! 썅년아!”하고 소리쳤다.
“뭐 하냐.”
맞은 뺨이 아픈지는 모르겠고 뜨겁긴 해서 손바닥을 가져다 대보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정수리로 뚝 떨어졌다.
익숙한 여유와 익숙한 장난기.
올려다보니 복도 쪽 창틀에 양팔을 걸친 일훈이 웃는 듯 마는 듯 묘한 표정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10분도 채 남지 않았건만 열린 창을 타넘은 일훈은 반 애들이 보는 앞에서 의진의 따귀를 때렸다. 연속으로 두 대나.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얼굴로 기계 같이 일정한 동작으로.
송일훈은 학생들 사이에서 또 선생들 사이에서 종종 이름이 오르내리곤 했는데 열에 아홉은 미담에 관한 것이고 열에 하나는 시기질투일 정도로 평판이 좋았다. 그런 일훈에게 뺨을 맞은 것이 납득되지 않는지 의진의 커다란 눈은 더욱 크게 뜨여 느리게 깜빡였다.
“때리면 맞는 거야.”
평소와 같은 듯 다른 말투로 일훈이 조용히 말했다.
“씨발…… 너 뭔데?”
여전히 혼란스러운 듯 잇새로 내뱉은 의진의 목소리가 와들와들 떨리고 있었다.
“욕한 만큼 욕먹는 거고, 때린 만큼 맞는 거야. 꼭 지금 아니더라도. 나중에라도.”
“씨발! 너 뭐냐고! 너 얘 알아? 아냐고, 이 새끼야!”
“알아. 최남영, 내가 아는 애니까, 또 건드리면 너 이 학교 못 다녀. 너 같은 앤 정학 먹이기도 쉽고 전학 보내기도 쉬우니까.”
얼굴이 시뻘개져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의진을 등지고 내 정수리를 스치듯 한 번 쓰다듬은 일훈이 그대로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 모든 광경을 숨죽이고 지켜본 학생들은 교실 이곳저곳에서 웅성웅성 떠들기 시작했다. 분을 참지 못해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고 만 의진의 울음소리가 신경질적으로 고막을 때렸다. 머뭇머뭇 다가온 같은 반 여자애가 “1반 송일훈이랑 무슨 사이야?”하고 조심스레 물었다. 나는 말없이 책상에 엎드렸다.
머리가 아팠다.
‘욕한 만큼 욕먹는 거고, 때린 만큼 맞는 거야.’
열다섯 살이 되는 동안 나만큼 욕먹은 인간도 드물 텐데…….
그럼 난 대체 얼마나 많은 욕을 했던 거야, 전생에…….
씨발…….
씨발…….
씨발이라고, 마음속으로 여러 번 중얼거렸다.
*
할머니는 나를 ‘이년’, ‘저년’ 아니면 ‘썩을 년’이라 불렀고, 가끔은 ‘지 애미 잡아먹고 태어난 년’이라 불렀다.
내가 태어난 날, 엄마는 죽었다고 한다.
이런 기억이 있다.
목욕탕에 관한 기억.
여섯 살, 아니면 일곱 살이었을 것이다. 할머니와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이나 열흘에 한 번 동네 목욕탕에 갔는데 할머니도 나도 사실은 목욕탕을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지도 않는데 목욕탕에 간 이유는 당시엔 집이 너무 좁아서. 집이 너무 좁아서 욕실도 없었고 화장실도 터무니없이 작았다. 그래서 목욕을 하려면 목욕탕에 가야만 했고 할머니는 그렇게 싫어하는 목욕탕을 일주일에 한 번이나 열흘에 한 번 꼴로 손녀의 팔목을 움켜쥐고 묵묵하고도 악착같이 다니곤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책임감 하나만큼은 있었던 셈인데, 바로 그 책임감에 눌려 본인의 행복은 파기해버린, 나로선 이해 못할 사람이었다.
기력이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나이 탓도 있었겠지만 천성이었다고 생각한다. 기력이 없어도 할 일은 해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었으므로 할머니는 해야 할 모든 일을 짜증과 악에 받쳐 그 힘으로 근근이 해내곤 했고, 목욕도 그중에 하나였다.
아주 작은 목욕탕이었다. 할머니는 목욕탕에 한번 들어가면 밖에 나가지 못하게 했는데, 문을 자주 여닫으면 훈김이 달아나고 밖의 찬 공기가 들어온다는 것이 이유였다. 동네 아이들이 벌거벗은 채 자주 밖을 나다니면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차곤 했다.
나로 말하자면 아주 얌전했다. 부글부글 끓는 할머니의 짜증이 언제 터질지 몰라 눈치만 보고 있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할머니의 목욕이 끝날 때까지 온탕에서 가만히 기다렸다. 못 견딜 정도로 숨이 막히면 탕에서 나와 할머니 옆에 얌전히 앉아 있었고 한 번 더 들어갔다 나오라는 할머니의 명령이 떨어지면 군말 않고 다시 탕으로 들어갔다. 냉탕은 금지였다. 절대로 절대로 들어가선 안 되는 곳. 온탕에서 때를 불린 게 죄다 소용없어진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그렇게 온탕과 할머니의 옆을 왕복하며 할머니가 할머니의 몸을 다 밀 때까지 약 한 시간여를 기다린다. 밖에 나가는 것은 금지. 냉탕에 들어가는 것도 금지. 뜨거운 습기에 숨이 막히고 목이 마르고 가끔은 어지럽지만 그래도 참아내는 것이다. 참아내지 못하면 할머니가 도깨비처럼 화를 내니까. 그 화는 하루 내내 어쩌면 다음 날, 그다음 날까지 이어지니까.
그날, 그날은 너무나 힘이 들었다. 습하지 않은 찬 공기가 간절했다. 물 한 모금이 너무 마시고 싶었다. 문밖에 정수기가 있으니까 아주 잠깐만 나갔다 오면 어떨까 싶었다. 할머니 몰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할머니는 마침 고개를 숙이고 다리를 밀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시야를 벗어나도록 최대한 멀리 돌아서 욕탕 입구에 다다랐다. 문을 막 열려고 할 때 불호령이 떨어졌다.
“도둑괭이 같이 어딜 살금살금 가!”
놀라서 돌아서는 순간 미끄러졌다. 바닥에 머리를 세게 찧었는데 아주 잠시, 3초 정도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았다. 눈을 떠보니 살집이 푸근한 아주머니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얘, 괜찮니?”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데 뒤에서 뻗어 나온 우악스러운 손이 나를 휙 돌려세웠다.
“이년은 누굴 닮아 이렇게 사람 애를 먹여!”
한 손으론 내 팔을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론 내 등을 때리면서 할머니가 크게 소리쳤다.
“내가 이년 때문에 제 명에 못 살지! 어? 제 명에 못 살아!”
할머니가 거친 손바닥으로 등을 내리칠 때마다 귓속이 웅웅 울리고 속이 메스껍고 눈앞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할머니, 그만 하세요.”
“어머, 얘 머리에서 피나는 거 아니야?”
“할머니, 그만 좀 해요. 피나는 거 안 보여요?”
고개를 숙이자 바닥 저편에 고여 있는 핏물이 보였다.
핏물은 반들반들하게 젖은 타일을 따라서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물감이 번지듯 흐르고 있었다.
“씻으러 왔으면 조용히 씻고만 갈 것이지, 뭔 오지랖들이 이렇게 많아!”
할머니가 모질고 독하게 소리쳤다. 남 일에 상관 말고 당신들 할 일이나 신경 쓰라고.
“오지랖이 아니라, 지금 애 머리에서 피가 철철 나잖아요, 할머니!”
할머니 못지않게 언성을 높인 한 아주머니가 내 뒤통수에 젖은 수건을 가져다 댔다. 병원에 가야 되는 거 아니냐고, 뭐 저런 할머니가 다 있냐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박쥐의 날갯짓처럼 사방에서 수군수군. 습기로 가득한 목욕탕 안은 그 소리들로 웅웅, 웅웅, 웅웅…….
나와 할머니를 가운데 두고 반원으로 사람들이 둘러섰다. 개중엔 나이 지긋한 노인도 있었고 젊은 새댁도 있었고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애도 있었고 나보다 어린 남자애도 있었다.
모두가 나와 할머니를 보고 있었다. 이상하다는 듯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불쌍하다는 듯이. 경악과 비슷할 정도의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고 기억한다.
나는 내 머리에 수건을 대고 있는 아주머니의 손을 힘차게 뿌리쳤다. 한쪽 귀퉁이가 붉게 물든 하얀 수건이 목욕탕 바닥에 척 하고 달라붙듯 떨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때리기를 멈춘 할머니의 손. 그 손을 붙잡았다.
“집에 가자. 다음에 와서 씻자.”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고는 할머니와 함께 대충 몸을 헹구고 목욕용품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할머니가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름이 깊게 진, 할머니의 오목한 눈. 그 눈은 이해할 수 없는 뭔가를 들여다보듯 경계심을 담고 서늘했다. 사람이 아닌 다른 무엇을 보는 듯한 눈.
“이년은 어떻게 된 게 울지도 않아.”
울지 않은 건 울고 싶지 않았기 때문. 울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기 때문. 눈가가 뜨거워지지도 마음이 북받치지도 서럽지도 않았기 때문.
나는 다만,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 불편했다. 그들이 할머니의 심기를 거스르고 그 불똥이 내게 튈 것을 염려했다. 그들의 걱정이 진짜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서 그게 귀찮았다.
‘있잖아, 정말 나를 걱정한다면 나를 당신 집에서 살게 해줄 거야?’
물었다면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
변태. 흔히 변태라고 불리는,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는 남자들. 그러나 알고 보면 놀랍도록 평범한 남자들.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한국 땅에 살면서 그들의 타깃이 한 번도 되어보지 않은 여자들이 드물 거라고 생각하지만, 유난히 그들의 레이더에 잘 걸리는 여자들, 아니, 사람들이 있다.
뭐가 문제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뭔가가 있나? 얼굴이나 몸에서 뭔가가 흘러나오나? 냄새라도 나나? 하고.
이를테면, 전혀 예쁜 얼굴이 아닌데, 납작하고 볼품없는 몸인데, 그런데도 그들의 먹잇감으로 자주 낙점되는 나 같은 사람 말이다.
쉬워 보여서? 만만해 보여서? 순순해 보인다거나 순진해 보인다거나, 아니면 변태들만 가지는 이해 못할 공통된 취향이라도 있어서?
정신을 어디다 빼놓고 다니는 거야, 하고 일훈은 화를 냈다. 어제, 버스에서.
그래. 이것은 변태에 관한 이야기이자 일훈에 관한 이야기. 최근 미친 듯이 귀찮게 굴고 있는 송일훈에 관한 이야기다.
어제 방과 후, 버스를 탔다. 아빠의 유품 몇 가지를 받으러 오라는 철물점 장 씨 아저씨의 연락을 받은 지 2주가 넘어가고 있었다.
처음 전화를 받았을 당시, 그냥 버려도 된다고 말했으나 그건 안 된다, 싫다는 게 아저씨의 완고한 입장이었다. 아저씨는 버리려거든 네가 버려라, 라고 말했다. 장 씨 아저씨는 철물점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갈 거라고 했다. 가게 물건들을 처분하는 와중에 아빠의 옷가지 몇 벌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네가 못 올 것 같으면 내가 그쪽으로 가도 된다. 그렇게 말하는 장 씨 아저씨에게 내가 가겠다고 말한 것이 2주 전.
버스는 붐볐고 앉을 자리는 없었다. 손잡이를 잡고 서서 이리저리 사람들에 치이며 멍하니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창밖만 고집스럽게 보고 있었지만 버스 뒤쪽 구석에 일훈이 있다는 건 계속 의식하고 있었다. 등하교는 따로. 학교에서 알은척은 금지. 내가 정해둔 규칙은 며칠 전 우리 반에 난입해 소동을 벌인 일훈 때문에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이미 깨졌으니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최근 일훈은 학교 복도에서 어쩌다 마주치면 인사를 건네고 등하교도 묘하게 나와 같은 시간에 하고 있다. 그리고 어제는 노골적으로 나를 따라와 같은 버스를 탔던 것이다.
계속 무시하는 중이었다. 말을 걸어도. 자꾸만 자꾸만 나를 따라다녀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훈은 모범적이고 이상적인, 훌륭한 학생. 그런 훌륭한 학생은 불우한 이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듯. 오지랖이 넓으면 밟힌다는 자명한 사실을 모르는 듯.
훌륭한 학생이란 바보. 바보를 일컫는 말인데 송일훈은 그걸 모르네.
냉정해져서 냉정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일훈과 눈이 마주쳤다. 모른 척 무시하자 일훈도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몇 겹이나 되는 사람들의 벽을 사이에 두고도 그게 보였다.
목적지까지 반 정도 갔을 무렵 앞 좌석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하차 버튼을 눌렀다. 다음 정거장에서 할아버지가 내리면 저 자리는 비겠지. 저기에 앉아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으로 할아버지의 앞에 가서 섰다.
할아버지가 힐끔 나를 보는 게 느껴졌다. 힐끔 한 번 보고, 또 힐끔 보고. 그다음엔 유심히 보고. 결국 말을 걸었다.
“학생, 몇 살이고.”
대답을 하지 말까 하다가 경험상 더 귀찮아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중2요.”하고 대답했다.
“글나. 우리 손주랑 나이가 같네.”
여기까지만 보면 흔한 할아버지. 어디에나 있는 보통의 할아버지. 손자와 비슷한 또래의 여학생을 보고 반가워 말을 한 번 붙여보기도 하는 정다운 할아버지.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처음엔 손등을 살짝 쓰다듬는 식으로.
“니 보니까 우리 손주 생각이 나네.”
그런가 보다 했다. 대꾸 없이 가만히 있었더니 할아버지의 손은 금세 대담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칠고 축축한 손바닥이 손등에서 팔목으로 팔목에서 팔뚝으로 뱀처럼 타고 올라왔다. 힘을 줘서 주무르고, 문지르듯 쓰다듬고. 그러면서 점점 더 위로. 점점 더 위로.
“이리 와.”
등 뒤에서 튀어나온 단호한 손이 불현듯 나를 잡아챘다. 할아버지로부터 떨어진 나는 그 손에 이끌려 뒤쪽 구석으로 가서 섰다.
지나치게 멀끔해서 나와는 다른 의미로 인간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송일훈. 평소와 다름없는 그 애의 옆모습이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숨결도 거칠었다. 아플 정도의 악력으로 나를 쥐고 있던 그 애의 손이 떨어져 나가자 팔목에 하얗게 손자국이 생겼다.
정면을 주시하며 무언가를 참는 듯하던 일훈이 문득 말했다.
“아까 그 사람, 나쁜 사람이야.”
아주 중요한 걸 가르쳐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그래.”하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런 건 내가 더 잘 알아, 라고 속으로 의뭉스럽게 생각하면서.
“너는……”
말을 하다 말고 잠시 숨을 고른 일훈이 나를 봤다. 너는 어째서 그런 것도 모르냐는 듯이. 그런 것도 모르는 네가 원망스럽다는 듯이.
“너는 정말이지…… 정신을 어디다 빼놓고 다니는 거야.”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기며 한숨을 내쉬듯 화를 냈다.
나는 정신을 빼놓고 다니지 않는다.
언제나 제정신이야.
하지만 그 말 대신 무심히 다른 말을 했다.
“빈자리 나면 좀 알려 줄래.”
일훈은 미간에 주름을 잡고 한동안 나를 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고는 잠시 뒤, “알았어.”하고 대꾸했다.
그 순한 대꾸를 들으며 순진하네, 하고 생각했다.
내가 그 할아버지 앞에서 잠자코 있었던 이유는 그 할아버지가 조만간 내릴 걸 알아서. 할아버지가 내리면 그 자리는 내 게 되니까.
난 그냥 다리가 좀 아팠을 뿐이다. 변태 새끼가 변태 짓 좀 한다 한들 앉을 자리가 더 중요했을 뿐.
너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뿐인 얘기. 그뿐인 얘기일 뿐.
*
철물점 장 씨 아저씨에게 받은 아빠의 유품은 쥐색 트레이닝 상하의 한 벌과 목 부분이 늘어난 흰색 티셔츠, 그리고 시큼한 냄새를 풍기며 썩어가는 트렁크 팬티 한 장이었다. 종이백에 아무렇게나 넣어온 그것들을 해 질 무렵 공터에서 아무도 모르게 태웠다.
오지랖이 넓으면 밟힌다고 장 씨 아저씨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오지랖이 넓으면 밟히고 밟히면 넘어진다. 넘어지면 다쳐. 다치는 거야.
아저씨는 다칠까 봐 두려운 사람처럼 자주 어깨를 웅크리곤 했는데, 그날, 물건들이 빠져나가 텅 비어버린 철물점 안에서도 그랬다.
“네 아빠 유품은 네가 챙겨라. 버리려거든 네가 알아서 버리고. 난 그런 건 영 찜찜해서…….”
그렇게 말하는 장 씨 아저씨는 어깨를 잔뜩 웅크린 채 내가 아닌 허공을 보고 있었다.
우스울 정도로 겁이 많고 허공을 보고 말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는 사람.
그 사람은 죽은 아빠의 거의 유일한 친구였다.
물건을 받으러 철물점에 들어가면서, 그리고 물건을 받아 철물점에서 나오면서, 바로 옆의 비어있는 점포를 쳐다봤다. 스치면서 무심히. 그러나 유심히. 지난 몇 개월 동안 계속해서 비어있었을 작고 허름한 점포.
그곳은 아빠가 생전에 화방을 하던 자리였다.
나를 따라 철물점 앞까지 왔다가 다시 나를 따라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던 일훈도 나를 따라 빈 점포를 쳐다봤다.
아니. 나를 봤다. 나를 보다가 창에 비친 나와 눈이 마주쳤다.
오지랖이 넓으면 밟히고 밟히면 넘어진다고 장 씨 아저씨의 입버릇대로 그 애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넘어지면 다쳐, 하고.
동창들 모임에 간다고 아주머니가 외출을 했던 날이 있었다. 주말의 기나긴 오후를 일훈과 나, 단둘만이 남아 보냈던 날. 화단에 물을 주는 일을 돕다가 실내에 물을 쏟고 말았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물을 쏟고 잠시 무력감에 잠겨있었을 때, 일훈이 벗은 티셔츠를 손에 쥐고 물을 닦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갑갑해졌다. 갑갑해져서 갑갑해진 이유를 생각하다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 무심코 뱉은 말이 이것.
‘뭐 하러 닦아? 그냥 두면 마를 텐데.’
하고 싶은 말이 그게 아니었다는 건 만 하루가 지나서야 깨달았다.
이미 하루가 지나고 말았으니 깨달아 봐야 소용없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그날 내가 정말로 묻고 싶었던 것은 이것.
‘내가 쏟은 건데 왜 네가 닦아?’
그리고 이것.
‘남의 일을 왜 네가 옷 벗고 나서?’
그리고 또 이것.
‘너 그러다 큰일 난다.’
말해주고 싶다고 생각만 하지 말고 정말로 말해줄 걸 그랬다고 후회 비슷한 것을 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주 뒤. 기말고사를 며칠 앞둔 찌는 듯이 무더운 날이었다.
일훈이 따라붙을까 봐 일부러 먼 길을 돌아 집에 왔는데 일훈이 없었다.
“일훈인, 같이 안 왔니?”
아주머니가 내다보며 묻기에 “네.”하고 건성으로 대답하고 말았는데 일훈은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연락도 없이 늦을 애가 아니라며 아주머니는 밥도 먹지 않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보기 시작했다.
“곧 오겠지. 너무 걱정 마.”
안심시키려는 듯 아저씨가 말했지만 오히려 아주머니의 화만 돋우고 말았다.
“지금 걱정을 안 하게 생겼어요? 늦으면 늦는다고 꼬박꼬박 전화하는 앤데 연락이 없잖아요.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일훈이도 이젠 그럴 나이가 됐지. 마냥 애도 아니잖아.”
“애가 아니라니? 당신한텐 아니어도 나한텐 아직 애예요!”
전화기를 들고 주방 여기저기를 서성이는 아주머니와 그런 아주머니 때문에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저씨 사이에서 나는 마지막 밥 한술까지 꼭꼭 씹어 삼킨 후에야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오후 8시.
중학교 2학년짜리 아들이 집에 오지 않는다고 안절부절못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유난스럽게 키우니까 애가 바보가 되는 거라고 삐딱하게 생각했다.
아주머니에 대해서도 일훈에 대해서도 사실은 잘 알지 못하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9시가 넘어갈 즈음, 반쯤 정신이 나간 아주머니가 아무래도 신고를 해야겠다며 아저씨를 닦달하고 있을 무렵에야 일훈은 돌아왔다. 언제나 그렇듯 방문을 꼭 닫고 침대에 누워있던 나는 아주머니의 새된 고함소리를 듣고 일훈이 돌아왔다는 걸 알았다.
“너 이게 무슨 꼴이야!”
“누가 이랬어! 어디서 이랬어!”
“병원부터 가자. 괜찮긴 뭐가 괜찮아? 너 엄마 속상해 죽는 꼴 보고 싶어 이래?”
“이거 놔요! 지금 침착하게 생겼어요? 애 꼴을 보고도 그 말이 나오냐고!”
숨이 넘어갈 듯 소리치는 아주머니의 목소리와 뭐라고 조곤조곤 말리는 아저씨의 목소리 그리고 너무 작아 잘 들리지 않는 일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잠이 들었다.
잠이 들면서, 큰일이 났나 보다 했다. 큰일은 큰일인데 아주 큰일은 아닌가 보다 했다. 어쨌든 돌아왔으니 된 거라고 그런 생각을 했는데…… 다음 날 아침, 일훈의 얼굴을 보고는 ‘이게 뭐야’하고 조금 놀라고 말았다.
광대에 멍이 들고 입술이 터지고 왼쪽 얼굴 전체가 팅팅 부어오른 일훈은 나를 보고 “좋은 아침”하고 인사했는데, 인사하고 씨익 웃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이가 하나 없었다.
웃을 때마다 예쁘게 드러나곤 하던 일훈의 송곳니가 하나 빠져있었다.
왼쪽 위 송곳니. 그 자리가 텅 비어있었다.
“이빨 하나 어쨌어?”하고 물었더니 “빠졌어”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왜?”하고 물었더니 “싸우다가.”하고 별일 아니라는 듯 또 대꾸했다.
“누구랑?”하고 물었을 때는 말없이 나를 빤히 보기에 “뭘 봐?”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나한텐 관심 없는 줄 알았지.”
“관심 없어.”
“있잖아.”
“없어.”
“거짓말.”
“말 돌리냐?”
그냥 물은 건데 일훈은 “응.”하고 내게서 시선을 돌렸다.
“말 돌리는 거 맞으니까 그만 물어.”
평소와 같이 가볍고 장난스러운 말투. 그럼에도 난감한 기색이 읽혔다. 일훈의 옆얼굴과 어깨와 등줄기 같은 곳에서.
묻지 말라는 사람한테 굳이 캐물을 호기심도 인정도 없어서 관뒀다. 그래도 결국은 알게 됐다. 알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일훈이 싸웠다는 사람, 일훈을 그렇게 만든 사람은 우리 반에 있었으니까.
의진이 같은 애는 건드리는 게 아니라고 교실 구석에서 남자애들이 숙덕였다.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그 계집애가 무서워서는 아니라고 했다. 계집애가 깡이 세 봐야 얼마나 세겠냐고, 같이 몰려다니는 애들이 떼로 덤벼도 하나도 안 무섭다고 했다. 무서운 건 의진이 같은 애들 뒤에 있는 남자들이라고 했다. 미성년이 아닌 성년남자들. 여중생 데리고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떡도 치고 시시덕거리며 나쁜 짓도 시키는 정신 나간 어른들.
일훈은 의진의 남자친구와 그 남자친구의 친구들에게 끌려가 맞은 거라고 했다. 의진의 남자친구는 스물둘 먹은 PC방 알바라고 했다. 주말에는 배달도 뛰는데 배달 음식 빼돌리다 걸려서 최근에 잘렸다고 했다. 일훈이 너덜너덜하게 맞고 들어온 지 사흘도 지나지 않아 그 소문이 학년에 쫙 퍼졌다. 그러니 나만 모를 수는 없었다. 알게 되었으니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넘어지면 다친다고 말해 줄걸. 너 그러다 큰일 난다고 말해 줄걸. 미리 말해 줄걸.
이러니저러니 해도 일훈은 나를 맡아준 사람의 아들.
내게 처음으로 ‘너 예쁘다’고 말해준 남자애.
‘예쁘다’는 말로 ‘못생겼다’는 말을 지워준 사람.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오지랖 좀 그만 부리라고, 그 말을 하려고 일훈을 빤히 보고 있었다. TV 앞에 앉아 조이스틱을 들고 있는 그 애 옆에서. 용건 있다는 낌새를 팍팍 풍기면서.
뜬금없이 말을 꺼내도 될까 그래도 제대로 알아들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일훈이 문득 말했다.
“안 아파.”
시선은 여전히 TV 화면에 고정된 채였다.
“진짜 하나도 안 아파.”
“누가 물어봤어?”
넘겨짚는 것 하나도 참 뻔뻔한 애네 싶었다.
“난 또 물어보려는 줄 알았지.”
그렇게 말하곤 나를 향해 씨익 웃는데, 송곳니 빠진 자리가 드러났다.
일훈은 오늘 아주머니와 함께 치과 두 곳을 다녀왔다. 한 곳에선 임플란트를 권했고 다른 한 곳에선 브릿지를 권했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치과 몇 군데를 더 가보고서 결정해야겠다고 아저씨에게 말했다. 말하면서 내내 심란한 눈으로 일훈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아주머니는 요즘 일훈의 얼굴을 보며 자주 한숨을 쉰다. 한숨을 쉬며 “속상해 죽겠어.”라거나 “저 예쁜 얼굴을…….”하고 말한다.
아주머니의 심란한 얼굴을 떠올리고 있어서일까. 저절로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게임을 하는 중간중간 나를 힐끔힐끔 보던 일훈이 갑자기 또 씨익 웃었다. 웃으니까 또 송곳니 빠진 자리가 드러났다. 일부러 저러는 거지 싶었다. 이빨 빠진 게 유세냐 싶기도 했다.
“못생겼어.”
그러자 일훈은 더 크게 웃었다. 씨이이익 하고.
“못생겼다는데 왜 웃어?”
“그냥. 웃음이 나서.”
그냥은 무슨. 못생겼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지 않으니까 웃음이 나는 거겠지.
일훈을 잘 알지 못하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 게 한 가지 있긴 있다.
송일훈이 지나칠 정도로 뭐든 다 가진 아이라는 거.
내 앞에 앉은 여자애는 일훈을 두고 외모 압살 성격 압살 공부 압살 운동 압살이라고 했다.
압살이라니. 그런 강한 어감의 단어를 쓰기에 일훈은 그리 강하진 않지. 싸움은 못하니까.
“이렇게 된 거, 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
“뭐, 얻어터진 거?”
빈정거리듯 물었으나 일훈은 개의치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때린 만큼 맞았으니까.”
그러고 보니 그랬지.
일훈이 그런 말을 했었다.
‘욕한 만큼 욕먹는 거고, 때린 만큼 맞는 거야.’
그 말을 떠올리자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해. 네가 봤어? 욕한 만큼 욕먹는지 때린 만큼 맞는지 네가 봤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지가 그런 말할 주제나 되나 싶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속에서 삐딱한 것이 치솟아 삐딱하게 물었다.
“너, 평생 그러고 살 수 있어?”
“뭘?”
“송곳니 없이, 평생 그러고 살아야 되는데도 웃을 수 있냐고.”
오지랖 좀 그만 부리라고, 나답지 않게 오지랖을 떨려고 했던 애초의 목적을 잊고 그렇게 집요하게 물었다.
조이스틱을 움직이던 일훈의 손이 멈추더니 고개가 갸웃하고 기울어졌다.
“글쎄.”
잠시 생각하다가 “궁금해?”하고 물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시험해 볼까?”
마치 시험하듯 물었다.
날 보는 일훈의 눈을 잠자코 들여다보다가 무심한 듯 대답했다.
“그러든가.”
어차피 말뿐일 거라고 생각했다.
*
정학을 받은 의진은 여름방학 때까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들리는 말로는 전학을 갈 거라고 했다. 정학 먹이기도 쉽고 전학 보내기도 쉽다는 일훈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는 게 판명됐다. 그리고 또 하나…….
일훈은 송곳니가 빠진 채 여름방학을 맞았다. 검진을 받으러 주기적으로 치과에 가긴 하겠지만 보철 치료는 받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성인이 될 때까지…… 라는 것은 아주머니의 말로 일훈은 내게 귓속말로 성인이 돼도…… 라고 넌지시 일러주었다.
일훈의 왼쪽 송곳니 자리는 공간유지장치만 끼운 채 뻥 뚫려있다. 입을 조금 크게 벌리거나 활짝 웃으면 그 자리가 보였다. 이빨 하나 빠졌다고 잘생긴 얼굴이 못생겨지는 건 아니지만 조금 바보 같아 보이긴 했다. 친구들에게도 가끔 놀림당하는 모양인데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속상해 하는 건 아주머니뿐이다. 아주머니는 치아를 깎지 않고 할 수 있다는 메릴랜드 브릿지인가 뭔가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걸 임시로 하고 있다가 성인이 된 후에 임플란트로 바꾸면 된다는 거였다. 일훈을 볼 때마다 그 얘기를 꺼내는 통에 나까지 본의 아니게 의료지식이 쌓이고 말았다. 일훈은 그런 아주머니에게 “은숙 씨, 난 지금이 좋아.”하고 능글맞게 대꾸했다.
일훈은 가끔, 아니 자주, 아주머니를 ‘엄마’가 아닌 ‘은숙 씨’라 부른다.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물어보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일훈이 ‘은숙 씨’라 부르면 눈을 흘기면서도 내심 좋아하는 눈치다. 아마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상대가 좋아할 만한 걸 해주는 것. 일훈은 그것에 특화된 인간이다. 최근 그것을 통감하고 있다.
좋아하는 것이 딱히 없는 내게도 일훈은 어떻게든 좋아할 만한 것을 해준다. 식사를 끝내고 물을 마시려고 하면 교묘하게 물잔을 밀어준다든지, 풀려있던 운동화 끈이 어느 날 보면 말끔히 다시 묶여 있다든지, 나를 따라다니면서도 딱히 말을 걸어오진 않는다든지…….
“왜 따라다녀?”라고 물은 적이 있다.
“따라다니는 거 아닌데.”
“따라다니는 게 아니면 뭔데?”
“같이 다니는 거.”
“누구 마음대로?”
“내 마음대로?”
한낮의 뙤약볕 아래였다. 지글지글 끓는 태양 때문에 정수리가 뜨거웠다.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는 보도 위에서 일훈과 마주 보고 선 채 미지근하게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너 돌았냐?”
“보통은 나 좋아하냐고 묻지 않냐.”
싱긋 웃는 얼굴이 하도 시원해 보여서 말문이 막혔다. 뻔뻔한 사람은 더위를 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그 생각 때문에 억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벌써 말했겠지.”
초면에 그것도 부모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너 진짜 예쁘다’ 따위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놈이니까.
“그런가?”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일훈을 내버려두고 돌아섰다.
“그만 따라다녀.”
“따라다니는 거 아니라니까.”
냉큼 달려와 나란히 걸으며 “같이 다니는 거야.”하고 유치하게 고집부렸다.
빨리 걸으면 똑같이 빨리 걷고 뒤돌아 걸으면 똑같이 뒤돌아 걷고 뛰면 똑같이 뛰었다. 그러는 동안 뭔가 바보 같아졌다. 성가시고 바보 같고 왜 이러나 뭐하는 놈인가 그런 생각들…….
십오 년 동안 살면서 여러 사람을 봤지만 이런 사람은 또 처음이라서. 호의를 보이는 것 같긴 한데 그 호의라는 것이 어쩐지 가볍고도 맹렬해서. 가볍다는 것과 맹렬하다는 것이 왠지 어울리지 않아서. 어울리지 않아서. 그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송일훈과 나는.
“넌 왜 사는 게 지겹다고 생각해?”
묵묵히 따라 걷던 일훈이 불쑥 물었다.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었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이 나지 않아도 내가 한 말이 분명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사는 게 지겹다고.
“몰라. 이유 없어.”
이유는 없다. 태어났을 때부터 그랬으니까. 기억에 남아있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무료했다. 하루는 길고 시간은 더디고 세상은 시끄럽고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좋아지는 것도 싫어지는 것도 없었다. 왜냐고? 모른다. 나도 모르게 이미 그렇게 되어 있었다. 누가 좀 가르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이젠 아무래도 좋다. 그냥 그런 거라고 납득했다. 이렇게 고장 난 채로 태어나는 사람도 세상엔 있는 거라고.
“이유가 없으면 안 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런 대꾸 없는 일훈에게 차갑게 물었다.
이유가 없으면 안 되지, 라고 하면 잔뜩 비웃어주려고 했다. 오만한 놈, 하고. 네가 뭔데 안 된다는 말 따위를 하는 거야, 하고. 네가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함부로 말하는 거 아니야, 하고.
그런데 일훈은 이렇게 말했다.
“이유가 없으면 안 될 이유는 없지.”
장난처럼 가볍게. 그러고는 날 보고 씩 웃었다. 끓어오르는 뙤약볕 아래 싱그러운 미소. 송곳니 하나가 빠져 있어 바보 같은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