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과 일훈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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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죽었다. 1월의 청명한 아침. 잠에서 깨어 거실로 나가보니 소파에 웅크려 잠든 아빠가 자는 듯이 죽어 있었다. TV가 켜진 채, 소파 밑엔 비어버린 맥주캔 서너 개가 뒹굴고 있었다.
처음엔 ‘죽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알지 못한 채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식탁에 앉아 씨리얼을 먹었다. 씨리얼을 먹으며 이불도 덮지 않고 잠든 아빠를 간간이 바라봤다.
추운가? 라고 생각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라고도 생각했다.
가게 문 안 열 건가?
오전 11시가 지났을 때, 안 열 건가 보다고 짐작했다. 그러고도 일곱 시간이 더 지나서야 아빠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침부터 정오를 지나 저녁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뒤척이지 않았으니까. 손가락 발가락의 위치가 묘하게 그대로인 것 같았으니까. 1분 동안 꼼짝 않고 지켜봐도 숨 쉬는 기색이라곤 없었으니까.
굳이 손을 대어 확인하는 절차는 거치지 않았다. 그런 용기를 끌어모으지 않고도 확신할 수 있었다. 작년 9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할머니의 시신을 봤었다. 지난 크리스마스, 또또가 죽었을 때도 개의 사체를 봤었다.
봤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본 적이 없었어도 알 수 있었을지 모른다.
베란다 창 너머로 이미 어둠이 깔려있었다. 보일러를 틀지 않아 집 안 구석구석에 냉기가 돌았다. 두꺼운 양말을 신고 있는데도 발바닥을 타고 냉기가 올라왔다. 아빠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어쩌지?’라고 생각했다. 전화를 걸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전화를 걸어 아빠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랬던 것처럼 병원에서 장례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걸.
하지만 왠지 전화를 걸고 싶지가 않았다. 밖은 벌써 어두웠고 하루 종일 영화를 봤던 탓에 정신이 조금 멍했다. 피곤했다. 피곤하고 귀찮았다. 지금 전화를 걸면 사람들이 들이닥칠 것이고, 그러면 오늘 밤엔 잠들지 못할 것만 같았다. 삼일장을 치르겠지. 친척도 없으니 장례를 도와줄 마땅한 어른도 없겠지. 내가 해야 할 테지. 그런 생각들이 혈관을 돌며 세포 하나하나에 독을 실어 날랐다. 왜 독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독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왜 나쁜지 모르겠지만 나쁜 생각인 것 같았으니까. 아무튼…….
내일 하자.
그렇게 작정하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눈을 꼭 감았다. 벽 너머에 아빠의 시신이 있다는 사실을 잊으려 애썼다. 추워서인지 어깨가 덜덜덜 떨렸다. 전기장판 스위치를 올리고 다시 이불을 덮어썼다. 눈을 감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이 다들 죽어버리는구나. 또또도 아빠도. 너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다들 가버리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자 조금 슬퍼졌다. 아빠가 죽어서 슬픈지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슬픈지, 어느 쪽의 슬픔인지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잠이 들었다.
‘내일 하자’는 다짐은 몇 번이나 반복되어 결국, 아빠의 시신과 나흘을 함께 있었다. 방학이었으므로 나흘 내내 한 시도 떨어지지 않은 셈이다. 외출도 하지 않았으니까.
이제 그만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결심했던 건 시신이 부패하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겨울이라 기온이 낮았고 보일러도 틀지 않았지만 그래도 실내였고 생명이 빠져나간 육체는 미생물에 대한 저항력이 전무했다.
119에 걸어야 하나 112에 걸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119에 걸기로 했다.
통화대기음을 들으며 시체란 음식물쓰레기와 비슷하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아무 뜻 없이, 아무 감정 없이, 그냥 문득 떠올라서였다. 전화를 끊고 나서는 이제부터 고아원에 가는 건가, 하고 또 한참을 생각했다.
열다섯 살.
고작 십오 년밖에 살지 않았는데도 아주 오래 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심리 상담 센터를 운영한다는 아저씨는 아빠의 고향 친구의 동생이라고 했다. 장례를 치른 후, 나는 이곳저곳에 불려 다니기 바빴는데 그중 한 곳이 바로 아저씨의 심리상담소였다.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을 그런 때 그런 식으로 만나게 된 것. 우연치고도 신기한 우연이었다. 아저씨는 나의 심리 상담을 담당한 것을 계기로 내 신변을 위탁받기로 했다. 즉,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아저씨의 집에서 아저씨의 가족과 함께 살게 된 것이다.
고아원이나 시설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에 우선 안도했지만 동시에 꺼림칙한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이렇게 대화하자.”
아저씨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그 말은 두고두고 네가 정말로 정상인지 확인하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정상의 기준과 범위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지만 내 생각에 나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조금 별난 구석이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미친 사람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 검사 결과도 그렇게 나왔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주 뒤에서 수군거렸다.
시체랑 같이 살았대. 세상에 나흘이나 그랬다네. 열다섯이면 사리분별 못할 나이도 한참 지났잖아. 멀쩡하게 학교 잘 다니고 공부도 잘 한다며?
가을바람에 불안하게 뒤채는 낙엽처럼, 수군수군. 수군수군.
그게 그런 식으로 화제가 될 일인가.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닌데.
아빠의 돌연사는 뇌출혈이 원인이었고 건강하던 사람이 그렇게 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화젯거리가 될 만하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바로 당신이나 당신 가족 일이 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말해주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을 것 같았으니까. 소용없는 일에 에너지를 쓰는 건 낭비다.
아, 그러고 보니 돌아가신 할머니도 가끔은 그랬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처럼 나를 바라보곤 했다.
너 같은 게 정말로 내 손녀가 맞냐?
딱 그런 얼굴로. 사람을 사람 아닌 다른 무엇으로 보는 듯한 얼굴로.
종종 그런 얼굴로 나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그런 얼굴로 나를 보지 않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아빠. 초등학교 1학년 때의 담임. 옆집 살던 꼬마. 그리고 아저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아저씨는 상담 내내 단 한 번도 그런 얼굴로 나를 보지 않았다.
‘어른들에게 바로 알리지 않은 이유가 있어?’라는 질문에 ‘어쩌다 보니……’라고 말끝을 흐렸을 때도. ‘아빠 돌아가신 걸 알았을 때 기분이 어땠어?’라는 질문에 ‘영화를 네 편이나 보고 난 후라 그냥 멍했어요.’라고 무심히 대답했을 때도.
속마음이야 어떻든 그런 얼굴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장점이다. 나는 아저씨의 그 장점을 높이 평가했는데 알고 보니 아저씨의 엄청난 장점은 하나가 더 있었다.
바로 부자라는 것.
처음 아저씨의 집에 갔을 때 정원이 넓어서 놀랐다. 현대식으로 지어진 이층집이 무슨 미술관처럼 우아해서 놀랐고 외관 못지않게 고급스런 내부에도 놀랐다. 그리고 하나 더.
아저씨의 아들.
아저씨의 아들은 그 집에서 가장 놀라운 점이었다.
“최남영? 난 송일훈.”
알려주지도 않은 내 이름을 부르고 곧이어 자기소개를 한 소년은 허리를 살짝 굽혀 내 얼굴을 깊숙이 들여다봤다. ‘깊숙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정말로 깊숙이 깊숙이 마치 들어오기라도 할 것처럼 그렇게 나를 쳐다봤기 때문이다. 고개를 길게 빼고 깊숙한 우물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그 모습이 하도 골똘하고 진지해서 나는 조금 주눅이 들었다. 기세에 눌렸다고 해야 할까. 좀처럼 만나보기 힘든 타입이라고 해야 할까. 무례한 행동인데도 별달리 무례하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그것이 그 애가 두르고 있는 어떤 기세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고 해야 할까. 아니, 아니…….
뭐가 아니냐면 솔직히 말해 그 애는 좀 지나치게 멀끔했다. 아저씨에게 나와 동갑인 아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멀끔한 남자애일 거라곤 상상하지 않았었다.
어떻게 멀끔하냐면 지나치게. 얼마나 멀끔하냐면 지나치게. 그냥, 모조리, 무조건, 지나치게.
굽혔던 허리를 펴고 눈가에 장난스런 미소를 띠는 그 애를 보는데 지나치다, 지나치다, 지나치다는 단어만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거기까지였다면 놀랍긴 했어도 그 집에서 가장 놀랍진 않았을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그 집엔 놀라운 게 많았다. 놀랍도록 넓고 예쁜 그 집의 정원, 놀랍도록 부드럽고 푹신한 그 집의 소파, 놀랍도록 맛깔스럽게 차려진 그 집의 저녁 식탁, 놀랍도록 진부한 태도로 나를 맞아준 그 집의 아주머니.
아주머니는 나를 경계하면서 경계하지 않는 척하느라 몹시 애를 쓰는 기색이었다. 탐탁지 않지만 아저씨의 뜻이니 어쩔 수 없이 따른다는 듯한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가시 돋친 태도.
평범하고 투명한 사람이었다. 나를 싫어하는 것 같지만 해를 끼칠 것 같진 않은 사람.
이 집에서 사는 동안 아주머니와 부딪칠 일은 최대한 피하자. 그렇게 생각했다. 집은 숨바꼭질을 해도 될 만큼 술래잡기를 해도 될 만큼 넓으니까. 그 집에서라면 숨바꼭질을 해도 술래잡기를 해도 술래가 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뛰는 걸 싫어하지만 왜 싫어하나 싶을 만큼 잘 뛰니까. 몸집이 작아 어디든 숨을 수 있으니까. 몸을 구겨 상자에도 들어갈 수 있으니까. 바퀴벌레처럼 납작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하며 저녁 식사를 했다. 속마음을 잘 숨긴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는 아저씨와 속마음을 숨길 수 없어 곤혹스러워하는 아주머니와 그들의 지나치게 멀끔한 아들과 함께. 성인이 될 때까지 앞으로 오 년, 앞으로 오 년,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보기도 하면서.
모든 것이 지나친 남자애의 진짜 놀라운 능력은 저녁 식사가 끝난 후, 후식으로 나온 과일을 먹고 있을 때 마치 마법처럼 발휘되었다.
조명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골드키위 한 조각을 입안에 넣고 씹었을 때, 어금니에 뭉개진 과육 사이로 침이 한가득 고여 든 순간,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애가 대뜸 내 오른쪽 볼을 꼬집었다.
“너 진짜 예쁘다.”
남자애의 돌발 행동이 기괴하게 여겨질 정도로 충격적이었고 남자애의 입에서 흘러나온 모종의 형용사를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으므로 나는 잠시 가만히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남자애는 나와 같은 열다섯 살이었고 열다섯 살 남자애는 사춘기라는 몹쓸병을 앓고 있는 게 보통이었고 그 병을 앓고 있는 남자애는 절대로 부모님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처음 보는 동갑내기 여자애에게 그런 말과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예쁘지 않았다. 예쁘지 않은 것뿐만이 아니라 못생겼다. 할머니로부터 ‘왜 이렇게 못생겼냐. 누굴 닮아 못생겼냐.’는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날마다 듣고 자랐고 그래서 알게 모르게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예쁜 것 앞에선, 그게 사람이든 물건이든 동물이든 나도 모르게 기가 죽어버리는 것이다. 어째서 그렇게 되어버리는지 모르겠지만 매일같이 들은 ‘못생겼다’는 말은 마치 저주처럼 인체에 작용하는 모양이었다.
하여간 그래서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았고, 그래서 가만히 있었던 것인데, 그런 나를 보고 남자애는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한 것인지 또 한 마디를 더 했다.
“꼬집어도 가만히 있네. 진짜 인형 같다.”
나는 순간 정신이 들어 소리라도 지를 것처럼 거세게 남자애의 손을 쳐냈다. 얼굴에 열이 오르고 그 열 때문에 머리 위로 김이 날 것 같았다. 당황스러웠고 왜 당황스러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 움직이네.”
“좀 닥쳐줄래.”
“송일훈, 또, 또, 장난친다. 엄마가 그러지 좀 말랬지!”
조용하게 중얼거린 내 목소리는 주방에서 나오던 아주머니의 화급한 외침에 묻혀 사라졌다.
아, 장난이구나. 납득하자 얼굴로 몰린 열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장난이구나. 그래, 장난이겠지. 왜 그런 장난을 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그보다 왜 장난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주머니는 테이블에 수정과를 내려놓으며 남자애를 흘겨봤고, 나는 남자애로부터 더욱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남영이 방에 도배를 새로 할까 하는데, 좋아하는 무늬나 색상 있니?”
TV를 보고 있던 아저씨가 생각났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좋아하는 무늬도 색상도 딱히 없으므로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좀처럼 생기지 않는 이상한 아이, 그게 나였으니까.
설혹 있다 해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집에서 내 것은 어차피 아무것도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게 보름 전의 일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임시 거처에서 아저씨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오늘부터 아저씨네에서 아저씨의 가족과 함께 살게 될 것이다.
그 놀라운 집에서.
그 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이 ‘송일훈’이라고 결론 내리게 된 연유와 시점. 그것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는데, 나는 그 집을 다녀가고 일주일이 넘어서야 ‘그 애’가 정말 놀랍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날 이후 나에게서 외모 콤플렉스가 사라졌기 때문에. 예쁜 것을 볼 때면 늘 따라붙던 ‘너는 못생겼다’는 할머니의 저주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대신에 예쁜 것을 볼 때마다 그 애가 떠오르게 된 것이다.
‘너 진짜 예쁘다’던 사춘기 소년의 목소리나 갑작스레 볼을 꼬집던 손가락의 감촉 같은 것.
그게 장난이든 아니든, 진심이든 아니든, 그런 종류의 것은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에 작용하는 모양이므로 어쨌든 그 애는 의도치 않게 나에게 마법을 부린 셈이다.
1
무려 나흘이라고 했다. 죽은 아버지의 시신과 한집에 있었던 것이.
죽은 아버지의 시신 곁에서 먹고 마시고 잠을 자며 보낸 시간이 어림잡아 아흔여섯 시간. 그런 애가 우리 집에 들어와 함께 살게 될 거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아버지가 그 말을 꺼냈을 때 은숙 씨는 ‘그걸 왜 당신 혼자 결정해요?’하고 언성을 높였다. ‘생각만 해도 소름끼쳐!’라고도 했다. 아버지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남영인 착하고 불쌍한 아이야.’하고 말했다.
은숙 씨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라 함은 그 애가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있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 혹은 노파심이다. 이를테면 어떤 트라우마 같은 것. 트라우마에 따른 특정한 인격장애 같은 것. 트라우마 없이도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날 수 있는 불온한 결핍 같은 것. 친부의 시신을 곁에 두고 아흔여섯 시간이나 버틴 여자아이를 정상이라 보기에는 아무래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외로웠던 걸까?
그렇게 짐작해본다. 하지만 단순히 그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엔 여기저기서 들은 얘기가 나도 꽤 있었다. 그 아이의 사건은 지역에서 꽤 유명한지 SNS에서도 화제였으므로.
울지 않았다고 한다. 우는 모습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했다. 시종 담담하게, 가끔 한숨을 내쉬고 몹시 피로해 보였다고. 목격자의 말이라고 하는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직접 보게 됐을 때 확인하고 싶었다. 실례라고 여겨질 정도로 뚫어지게 그 애를 바라보고, 그렇게 바라봐서 그 애의 표정을 관찰하려 했다.
그런데 바라보는 동안 관찰해야 한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니, 무엇을 관찰하려 했는지를 잊어버리고 말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키가 작았다. 그래서 귀엽다는 게 처음으로 든 생각. 왠지 모르게 겁을 먹고 있는 것 같다는 게 두 번째로 든 생각. 순도 높은 내향적인 성격 같다는 게 세 번째로 든 생각. 이래서야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울지도 못하겠구나, 라는 게 네 번째로 든 생각. 앞으로 잘해줘야겠다는 게 다섯 번째로 든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그날, ‘잘해줘야겠다’는 그런 막연한 생각만으로 ‘예쁘다’는 말을 했던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애가 정말로 예쁘냐…….
이건 좀 애매하다.
객관적인 미의 기준으로 따졌을 때 예쁜 축에 속하는 얼굴은 아닐 것이다.
객관적인 미라니.
나는 그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객관적인 미 같은 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미의 기준은 죄다 주관적일 뿐이니까.
그래서 주관적인 미의 기준으로 예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겠다.
굴곡 없는 얼굴은 작고 동그랗고, 코와 입도 작고 동그랗고, 외까풀의 눈은 가늘고 길다. 콧등엔 연한 주근깨가 잔뜩 박혀 있고 피부는 희고 말랑하다. 피부가 말랑하다는 건 실제로 만져봤으니까 알고 있다. 똑 떨어지는 단발에 눈썹은 숱이 너무 적어서 멀리서 보면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생긴 인형이 있지 않나? 저녁 식사를 하는 중간중간 그 생각에 골몰했다. 결국 어떤 인형이었는지는 기억해내지 못하고 말았지만 찾아보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날, 내가 남영에게 했던 말은 은숙 씨의 지적대로 ‘장난’만은 아니었다. 장난기가 어느 정도 담겨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어쨌든 진심이 담긴 장난이었던 거다.
하지만 나의 진심은 그 애에게 조금도 전해지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저녁 내내 그 애가 나에게 한 말이라곤 ‘좀 닥쳐줄래’ 그 한 마디뿐이었으니까.
*
남영이 머물게 될 방에 도배를 했다. 그것이 일주일 전.
파스텔그린 색의 벽지는 내가 골랐다. 은숙 씨는 남영을 받아들이는 것에 동의를 했으면서도 도배를 하는 내내 한 번 거들떠보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고집스럽고 유치한 행동.
고집스러운 건 은숙 씨의 단점이고 유치한 건 은숙 씨의 장점이다.
은숙 씨는 최근, 아버지가 너무 무르다고 자주 하소연을 한다.
‘사람의 심리를 꿰고 있으면 남들보다 냉소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지 않니? 그런데 네 아버지는 대체 왜 그런다니?’
그것이 은숙 씨가 아버지에게 가지고 있는 불만과 불안이다.
‘사람이 너무 착해서 탈이야.’
‘마음이 너무 여려서 탈이야.’
은숙 씨는 그렇게 말하지만 내 생각에 아버지는 다만 경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전부를 안다고 자만하지 않도록. 자만해서 그것을 거칠게 다루지 않도록.
‘남영인 착하고 불쌍한 아이.’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착하고 불쌍한 아이.’
‘착하고 불쌍한 아이.’
나는 그것을 가끔 되뇌는데 되뇔 때마다 아버지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착하고 불쌍한 아이.’
그런 말은 좋지 않다는 걸,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아버지도 알고 있을 텐데.
세상 어떤 사람도 착하지 않고, 세상 어떤 사람도 불쌍하지 않다.
아버지도 그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남영을 착하다고도 또 불쌍하다고도 여기는, 진짜 그렇게 여기는지는 의문이지만, 아무튼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아버지는 지금 남영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오고 있다. 남영은 오늘부터 우리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하늘이 흐려, 맑았으면 좋았을걸, 하고 생각한다. 아니면 눈이라도 내리든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날씨.
벽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반, 마음에 들지 않아도 티 내지 않겠지…… 하는 확신이 반.
대문 밖을 기웃거리며 크게 숨을 내쉬자 아주 옅게 입김이 번진다.
……마음에 들어 하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