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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락자 (1/7)

누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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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천 번쯤 태어났다가 천 번쯤 죽었다.

 시간의 순서 없이 공간의 제약도 없이 아무 시간 아무 곳에서나 태어나 살았고 또 죽었다.

 그렇게 천 번쯤.

 태어나자마자 열병으로 말라죽은 적도 있었고 전쟁에 나가 밟혀죽은 적도 있었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맞아죽은 적도 있었고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다 교수형을 당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늙어 죽은 적은 없었다.

 스무 해를 넘기도록 살아본 적이 없었다.

 사랑을 준 적도 받은 적도 없었다.

 그런 삶을 천 번쯤…….

 어려서 죽어도 삶은 언제나 지루했고.

 유복한 부모를 만나도 삶은 당연하게 비참했다.

 나는 어째서 이 모든 죽음을 기억하는 것일까. 왜 다른 이들은 나와 같지 않을까. 나의 기억은 실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만 허상인 걸까.

 기억은 의문을 낳았고 의문은 분노를 낳았고 분노는 몇백 번의 삶을 송두리째 허비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조차 무용하다는 것을 차츰차츰 깨달아갔다.

 허방을 구르는 수레바퀴처럼 모든 것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사이.

 의문도 의지도 식지 않을 것 같던 분노조차도 그렇게 자연스레 스러져 가듯이.

 그리하여 오백 몇십 번째 삶에서야 나는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벌이라고.

 이토록 비참하고 지루한 삶은 그저 벌이라고. 나는 아마도 죄 많은 영혼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천 번 하고도 한 번 더. 아마 그쯤.

 그쯤의 죽음을 맞이하고 눈을 떴을 때, 나는 하얀 방에 서 있었다. 바닥과 천장과 벽이 구분 없이 하얗고 환한, 하얗고 환한데 조금도 눈부시지 않은 그런 신묘한 방이었다. 그 방엔 나 말고도 한 사람이 더 있었다.

 글쎄, 그 사람을 정말로 사람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사람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 사람은 하얀 옷을 입은 커다란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내가 눈을 뜨고 주위를 한 번 휘둘러보는 짧은 사이 침묵했다가 무척 유감스럽다는 표정으로 형식적이라고 할 만큼 담담하고 건조한 음성을 내어 말했다.

 너는 누락자라고.

 나는 누락자가 뭐냐고 물었다.

 아니, 적어도 물었다고 생각했다. 생각만 했을 뿐 그것은 분명 목소리는 아니었다. 말도 아니었다. 진동이라는 물리력이 없으니 소리조차 아니었다.

 실재 없는 정체 모를 물음.

 그 정체 모를 것에 남자는 대답했다.

 누락자란 순리와 법칙에서 벗어난 자. 부여 받은 윤회의 사슬에서 이탈한 자. 짝을 잃고 세상을 떠도는 자. 잘못된 궤도를 도는 고장 난 천체이자 아무도 모르게 생긴 구멍으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나가버린 잃어버린 구슬 같은 거라고.

 그건 누구의 잘못이냐고 내가 또 물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남자는 대답했다.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신의 잘못도, 너의 잘못도,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그럼 나는 벌을 받고 있던 게 아니겠네.’

 ‘아니지.’

 ‘죄도 없겠네.’

 ‘아주 없진 않지만 그런 끔찍한 삶을 끝없이 되풀이 할 정도는 아니지.’

 ‘그냥 운이 없었던 거네.’

 ‘빌어먹게도 운이 없었던 거지.’

 ‘그럼 이제 난 어떻게 되는 거야?’

 ‘본래의 사슬로 돌아가야지. 돌아가서 본래의 운명대로 본래의 삶을 살아야지.’

 ‘차고 넘칠 만큼 살았는데 이제 그만하면 안 될까. 더는 살고 싶지가 않아.’

 ‘유감스럽지만 그건 안 돼.’

 ‘그래서, 빌어먹게도 운이 없다는 말이나 들으려고 내가 여기에 당신과 함께 있다는 거야?’

 ‘그래. 그리고 또 하나 일러둘 것이 있어. 누락자였던 영혼에겐 이전과 이후를 설명할 것. 그게 규칙이니까.’

 ‘점점 피곤해지니까 빨리 말해줄래.’

 ‘인간은 윤회를 거듭할수록 영혼이 성숙하도록 되어있어. 그게 일반적인데 너 같은 누락자는 잘못된 윤회를 하기 때문에 영혼이 성숙해지지 않아. 다만 늙을 뿐이지. 넌 지금 미성숙하고 늙은 영혼이야. 너에겐 가혹하지만 이것만큼은 어쩔 수가 없어. 제대로 된 사슬로 돌아가도 한동안은 힘들 거야. 왜 힘든지 영문도 모르고 힘들겠지. 지금까지의 네 기억은 모조리 사라지게 될 테니까. 내게 들은 설명들도 모두 잊게 될 거야. 잊혀도 영혼에 기록될 테니 걱정은 마. 그게 순리니까.’

 ‘걱정을 왜 하겠어. 듣던 중 유일하게 반가운 소린데.’

 ‘이제 막 태어난 영혼과 다름없으니 부모와의 연도 약할 테고. 다만 구(求)하면 얻을 연이 하나 있을 것인데 그마저도 스스로 구하지 않으면 얻지 못하겠지…….’

 ‘그래. 그럼 난 얻지 못하겠네. 스스로 구하지 않을 테니.’

 ‘응. 그렇게 되면 더욱 불행해질 거야. 너도. 네가 구하지 않아 유기된 네 인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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