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48 - 악몽 토벌전 (5)
제국 중앙, 카르네아.
루시아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도했다.
누구에게 기도하는지는 그녀 자신조차 알 수 없었다.
이 기도를 들어준다면, 여신이든 누구든지 상관없었다.
"제발..."
모두가 무사하기를...
그리고 유진이가 무사하기를...
그렇게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빌고 또 빌고 있자, 누군가 문을 거칠게 두들기며 소리쳤다.
"루시아님!... 첫 신호탄이 쏘아졌습니다!"
"... 다들 대기하세요."
신호탄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붉은색이면 실패, 파란색이면 성공이다.
루시아가 초조하게 신호탄의 색을 기다리고 있자.
푸슈우융─! 퍼엉!
마침내 최고점에 도달한 신호탄에서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파란색!... 아델페이드 마을 토벌 성공입니다!"
성공적인 첫 토벌 소식에 채 흥분하기도 전에 이어서 다음 연기가 피어올랐다.
"메시안 평야에서도 파란색 연기를 확인! 토벌 성공입니다!"
"시아이 숲도 토벌 성공했습니다!"
"수호자의 광장... 토벌 성공입니다!"
"푸른 연기!! 마르티니크 해안입니다!"
마르티니크 해안은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릴리스가 잘 해내 주었다.
"... 어..? 비... 비비안님이 귀환하셨습니다! 토벌은... 성공했답니다!"
"비비안이 돌아왔다고요?"
미네스 절벽에서 카르네아까지는 도저히 하루 만에 올 만한 거리가 아닌데 어떻게...?
그런 의문이 잠깐 들었지만, 지금은 그걸 알아 낼 때가 아니다.
"네! 부상은 없지만, 마력을 지나치게 사용해서 현재 탈진 상태랍니다!"
"... 알겠습니다. 일단 최대한 편하게 휴식을 취하게 해주세요."
"넵!... 아! 중앙 하수도 토벌 성공입니다!"
비앙카
"칼로스 늪지대 토벌 성공입니다!"
백소소
"황성... 토벌 성공입니다!!!"
리아나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승전보들.
마땅히 기뻐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루시아는 기뻐할 수가 없다.
'... 주인님은?'
계속해서 승전보가 들리지만, 어째서인지 유진이 있는 페일 협곡에 관한 소식만은 마지막까지 들리지 않는다.
"... 주인님."
꽈악─
초초함 속에 루시아의 움켜쥔 주먹 사이로 피가 흘러내린다.
"어! 페일 협곡... 신호탄 올라왔습니다!"
"... 아!"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유진의 신호.
루시아는 보고를 듣기보다는 직접 창가로 달려가 확인했다.
퓨슈우욱─!
하늘 높이 솟아올라 간 신호탄에서....
퍼엉!
... 붉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페... 페일협곡... 토벌 실패입니다! 루시아님 명령을!!.... 루시──────"
유진이 졌다.
다른 곳과는 달리, 유진이 처음부터 승리할 가능성이 희박한 싸움인 걸 알았지만...
소리가 멀어지고 전신의 피가 차갑게 식는다.
1초라도 빨리 대응을 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도저히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꽈아악─
지금이라도 당장 사람들을 협곡쪽으로 보내면 '퍼져나가는 악몽'은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주인님은?
당장 지원군을 보낸다고 해도 빨라도 하룻밤은 걸린다.
그 사이에 유진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가.
생각 하면 생각 할 수록 절망적인 상황에, 루시아가 정신이 무너지려던 순간.
"아.... 아아..."
"루... 루시아님!!"
따듯한 품과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초췌한 모습의 비비안이 자신을 껴안고 있었다.
"비... 비안... 비비안... 나.... 나... 어... 어떻게... 해야해... 주.. 주인님이.."
"루시아님... 괜찮아요!"
비비안이 공황상태에 빠진 루시아를 꽉 끌어안았다.
"... 괜.. 찮... 으니까..!!!... 이... 이럴 때를 위해서 제가 온 거니까요!!.. 괜찮아요..!!"
"비... 비비안."
"그러니까.. 루시아님. 일어나세요. 지금은 낭비 할 시간이 없어요. 유진님에게 가야죠."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을 하면서도, 끝까지 자신을 위로하는 비비안의 모습을 보니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짜악─!!
루시아가 스스로 뺨을 강하게 때렸다.
입안에 비릿한 피 맛이 돌자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 그래, 가자 비비안."
"네... 루시아님. 이쪽이에요."
비비안은 일반적으로는 수 일에 걸릴 거리를 고작 몇 시간 만에 주파했다.
그것이 가능해던 건 폭발마법을 추진제로 사용하면서 날아간다는, 문자 그래도 정신나간 짓을 반복했기 때문이었다.
"... 죄송해요.. 지금.. 마력이.. 부족해서..... 제어는 제가 할테니까요.. 루시아님은."
"응, 믿고 맡길게."
「불꽃 ─ 폭발 」 퍼엉─!! 퍼엉─!!
둘 중 하나만 실수해도 휩쓸려 크게 다칠 수 있지만, 루시아는 망설임 없이 쏘아냈다.
퍼엉─!! 퍼엉─!! 퍼엉─!! 퍼엉─!! 퍼엉─!! 퍼엉─!!
그렇게 몇 시간 정도 마법을 난사하니 협곡에 도착했다.
"저... 저기에요!"
"내려가요!!"
유진이 싸운 장소는 찾기 어렵지 않았다.
넓은 협곡이었지만, 한 장소를 중심으로 주변이 온통 파괴되어 있었으니까.
"유... 유진님!! 유진님!!!"
"주인님!! 어디계세요!!"
그때, 무언가 발견한 비비안이 루시아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루... 루시아님... 저기..!!"
"아.. 아... "
비비안의 손가락을 끝을 따라가자 보인 것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유진이었다.
***
죽었다.
.... 마침내 저 개새끼가 죽었다.
"... 하아."
마지막으로 확실히 확인사살을 하기 위해서 염동력으로 목을 베어내는 순간, 나도 그대로 쓰러졌다.
"... 힘들어... 죽겠네... 진짜."
「인과역전」도 그렇고, 반지도 그렇고, 이것저것 가져다 쓴 게 많아서 그런지 반동이 장난이 아니다.
솔직히 처음에 팔 하나 잘라냈을 때는 내가 무조건 이겼다고 확신했는데...
아무리 지식이 다르다고 해도 결국 움직이는 건 '나'여서 그런지 겹치는 버릇이 있던 모양이다.
초반에는 먹히나 싶더니, 금방 내 패턴을 분석해서 나중에는 80% 가까이 피해냈다.
"이거 시간 더 끌었으면 졌겠네..."
어질─
머리가 핑 돌고 시야가 흐릿하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면 바로 의식을 잃을 것 같지만, 그래도 할 건 해야지 않겠는가.
마지막 남을 힘을 쥐어짠 내가 허리춤에서 신호탄을 꺼내 쏘아 올렸다.
슈우웅─! 퍼엉─!
높게 올라가 터진 신호탄이 빨간 연기를 피워 낸다.
"이제... 좀... 자야...."
할 일을 마친 내가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는 순간...
'... 빨간... 연기..?'
뒤늦게 잘못 쐈다는 걸 깨달았다.
파란색을 쏴야 했는데, 너무 피곤해서 손에 잡히는대로 쏴버리고 말았다.
'아... 다시... 쏴야... 하는데...'
알고는 있지만, 한 번 감긴 눈꺼풀이 도무지 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 모르... 겠다.'
당장 지원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는 아니지만... 도움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니까.
일단 자고 생각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잠들었다가 깨어나니...
"... 흐윽... 끄윽.... 흐윽... 가... 가삼.. 합니다...."
"... 흐아아... 흐아아... 사... 살아있어요..."
양쪽에서 비비안과 루시아가 나를 껴안고 엄청나게 울고 있었다.
"... 루시아?... 비비안?"
"흐윽... 끄윽... 주... 주.. 인님.... 죽은... 줄.. 끄흑... 흐윽..."
"흐으흑... 끄윽.. 유... 유진님... 흐에윽...."
"미안..."
둘의 우는 얼굴을 보고 나서야 뒤늦게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 미친놈.'
당연한 일이었다.
나였어도 루시아가 빨간 신호탄을 쐈으면 이렇게 놀라서 날아올 게 뻔한데... 너무 지쳐서 머리가 어떻게 됐나 보다.
"... 내가 잘못했다."
"끄흑... 흐윽... 흐윽..."
"흐아... 흐아앙... 흐에에에.."
둘을 한참을 토닥여준 뒤에야 내가 다시 한 번 신호탄을 쏘았다.
푸슈우욱─! 퍼어엉─!
떠오르는 태양 아래에 파란색 연기가 제대로 피어올랐다.
***
"개새끼..."
카르네아로 돌아오자 눈이 새빨개진 비앙카가 가슴에 머리를 쾅쾅 박아댔다.
"이.. 개새끼야.... 씨발새끼... 흐윽... 내... 내가.. 어... 어... 얼마나... 끄흑... 흑..."
"... 흐윽... 흑... 선생님... 무...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미안해요... 많이 놀랐죠."
나 때문에 여기저기서 울음을 터트리는 사람들을 전부 달래주고 나서 의자에 앉자.
"... 유진이가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도 있었네?"
리아나가 옆에 슬쩍 다가와 머리를 기댔다.
"그렇게 말하는 리아나는 별로 안 놀란 거 같은데요."
거의 평상시랑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리아나.
단지, 네 기사와 싸우고 와서 그런지 옷이 좀 찢어졌고, 얼굴이 피곤해 보일 뿐이었다.
"음... 맞아. 그야 유진이가 진짜 죽었으면 나도 따라 죽으려고 했으니까.... 별로 놀랄 필요는 없지."
"...."
너무 담담하게 무서운 발언을 하는 리아나의 모습에 내가 고개를 저었다.
"... 리아나 때문이라도 오래 살아야겠네요."
"응... 꼭 나보다 오래 살아. 하루라도 일찍 죽으면 쫓아가서 혼내줄 거야♪"
"하루는 봐주세요..."
"안돼~♪ 유진이는 나보다 1분이라도 늦게 죽어야 해."
그렇게 잠시 리아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자, 루시아가 다가와 서류를 건네주었다.
"주인님. 이게 토벌전의 결과에요."
사망자 0, 부상자 0.
완벽하고 깔끔한 결과.
뒷장을 더 읽어보니 부상자는 제법 존재했지만, 이미 릴리스와 파르테논의 지원을 통해 완전히 회복시킨 상태다.
"... 완벽하네, 그런데 아직 '장벽' 쪽에서 연락은 없었지?"
"네. 아직이에요. 걱정되시면 연회를 뒤로 늦출까요?"
"... 아니, 일단은 계획했던 대로 시작하자."
압승을 거두기는 했어도, 학생들은 전쟁을 치른 것이다.
지금은 승리에 취해서 실감이 나지 않을지는 몰라도, 그 점을 깨닫고 나면 분명 두려움이 올라 올 것이다.
아직 모든 것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만에 하나, 다시 학생들이 싸울 경우를 대비해서 연회로 공포를 씻어주는 것도 중요했다.
".... 음. 유진아. 연회는 언제 하는 건데?"
"승전 기념 연회는 출발하기 전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가능하면 내일 열 생각인데..."
'퍼져나가는 악몽'과 전쟁이 펼쳐졌지만, 의외로 직접적으로 전장이 된 장소 말고는 일상적인 생활이 이어지고 있었다.
애초부터 패배는 생각해두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
당연하지 않은가.
어차피 패배하면 제국의 멸망인데, 반드시 승리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모든 계획을 짰다.
"흐음... 내일? 그럼, 미안하지만 나는 빠질게♬"
"... 빠진다고요? 왜요?"
리아나의 말에 내가 놀라 되물었다.
이번 전쟁에서 리아나는 명실상부한 주역이다.
리아나가 아니었다면 네 명의 기사를 막는데 얼마만큼의 희생을 치렀을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음... 열심히 싸워서 좀 피곤하기도 하고... 그리고 내일은 세르메스의 신상 발매일이거든 사러 가야지♬"
"... 또. 명품. 그냥 빨리 사고 오면 안돼요?"
리아나가 명품을 좋아 하는 건 알고 있지만, 이런 날은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었다.
"음... 안 될 거 같아! 아침에는 세르메스, 저녁에는 채낼에 가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
"... 쯧, 승전 연회인데 꼭 가야 해? 그냥 고용인들한테 사 오라고 시키면 되잖아."
비앙카도 기왕이면 같이 축하하고 싶은 것인지 슬쩍 말을 꺼내봤지만.
"안돼, 직접 고르는 게 의미가 있는 걸♪ 그리고 이번에 놓치면 언제 손에 들어올지 모르잖아. ... 솔직히 나한테는 유진이랑 단 둘이면 몰라도 너희들이랑 하는 소꿉놀이보다는 이게 더 중요하거든♪"
"... 뭐, 소꿉놀이? 씹, 넌 말을 해도..."
솔직히 소꿉놀이라는 말에 나도 살짝 서운했지만, 우선은 발끈하는 비앙카를 말려야 했다.
"... 진정해요 비앙카."
"아니! 왜 나를 말려! 쟤한테 뭐라고 해야지!! 사람이 신경 써서 말해주는데 대답을 저딴 식으로 하잖아!!"
"아아... 화나게했네~ 도망쳐야지!"
장난스럽게 손을 흔들며 떠나는 리아나의 등을 향해 내가 말했다.
"그럼,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뚝─
그 말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바라본 리아나가 작게 웃었다.
"... 아하하핫♬ 기다리지 마. 늦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