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347화 (347/354)

Chapter 347 - 악몽 토벌전 (4)

제국 중앙, 지하수도.

양손에 붕대를 감은 한 소녀가 주먹을 굳게 쥐었다.

"... 하아. 지하는 싫은데."

숨을 길게 내쉰 비앙카는 '되살아난 타락'을 마주친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깊은 곳에 묻어 놨을 뿐, 사실은 아직도 두렵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유진을 잃는다는 두려움.

"하아... 하아... 하아... 흐윽..."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호흡이 가빠지고 눈물이 넘칠 것 같다.

비앙카는 두 번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남들처럼 유진이랑 결혼해서 아들 5명, 딸 5명만 낳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러니까...."

그 미래를 위하여 넘쳐나는 공포를 살의로 바꾼다.

공포뿐만이 아니다.

기쁨, 슬픔, 후회, 절망, 아픔, 불안, 질투, 지금만큼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감정을 순수한 살의로 정제한다.

다만... 사랑만큼은 한 조각 남겨 놓은 채.

철퍽─ 철퍽─

지하수도 이곳저곳에서 '퍼져나가는 악몽'이 나타나고 동시에 불쾌한 짐승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 전부."

그 한 가운데에서 비앙카의 씰룩거리는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빛났다.

전신을 가득 채운 건 자신과 유진을 갈라놓으려고 하는 '퍼져나가는 악몽'에 대한 짙은 살의.

"죽여 버릴 거야."

그 지독한 살의에 공포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퍼져나가는 악몽'조차 잠시 숨을 멈췄다.

... 그리고

콰아아아앙─!

어둠 속에서 안광을 빛내는 한 마리의 '광견'이 날뛰기 시작했다.

***

제국 남부, 늪지대.

검은 머리의 소녀가 신발을 벗으며 맨발을 드러냈다.

"설마, 소녀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사옵니다만..."

찰팍-

백소소의 발이 늪에 닿았다.

"... 서방님과 떨어져서 다행이옵니다."

베를리오즈가 백소소를 경계했던 건 '강신'이 위험하기 때문이 아니다.

순수한 체술로만 따지면 열두 가문 중에서도 하위권인게 백사 가문이니까.

"서방님께 만큼은... 소녀의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으니 말이옵니다."

베를리오즈가 경계하고 두려워했던 백사 가문의 진가는 독에 있었다.

무색무취무미무형(無色無臭無味無形)의 극독

그래도 일반적으로 마나를 쌓은 신체에는 자연적으로 독에 저항력이 생기지만...

백소소가 한 번 더 발전 시킨 '백사의 독'에게 저항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치이익─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백소소가 뿜어내는 독을 견디지 못하고 옷이 하나씩 녹아내린다.

바사삭-

또한, 백소소의 피부가 닳는 곳부터 식물은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지고, 동물은 살점과 뼈가 썩어들어간다.

"어서 나오지 않으면 그대로 녹아 죽을 것 옵니다?"

백소소의 말과 동시에 늪 아래에서 잠복하고 있던 '퍼져나가는 악몽'이 산채로 썩어가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튀어나오자.

"... 물론."

피잉────

늪 위에 거미줄처럼 퍼져있는 은색의 실에 닿으며 살점이 뭉텅이로 베어진다.

"... 나온다고 해서 살려두지는 않을 것이옵니다만."

──키에에에에에엑!

은사(銀絲)지옥 사이에서도 얕은 상처만 입고 살아남은 '퍼져나가는 악몽'들이 백소소에게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지만...

"... 어라? 후후훗."

어느새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물든 백소소에게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 순간, '퍼져나가는 악몽'들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 까니옵사였하각생 고다있 수 을닿 게에녀소 가위따 들물괴 마설"

실에 베인 부위에서부터 신경이 타들어 가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 느껴지고, 뒤틀린 목소리, 흔들리는 시야가 느껴진다.

캬륵─ 캬르르륵──

이윽고 완전히 오감이 망가진 '퍼져나가는 악몽'에게 다가간 백소소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 오직 서방님만이 소녀에게 닿을 수 있사옵니다."

***

제국 중앙. 황성.

언제나 많은 수 사람들이 들끓던 장소가 지금은 한없이 고요하다.

황제인 라인그람은 북부의 장벽 너머에서 '고대의 마물'들과 싸우는 중이고, 그나마 남아있는 사람들도 모두 대피했다.

"....."

그렇게 비어있는 황좌에 홀로 몸 기대고 있던 리아나가 눈을 떴다.

"... 응, 역시 불편하네. 다들 이런 게 뭐가 그리 탐나는 걸까?"

편하기로 따지면 유진의 침대가 훨씬 편했다.

황좌에 앉아 이런저런 자세를 취해봤지만, 너무 딱딱하고 커서 황'좌'이면서도 의자의 역할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흐음... 조금 잘라가서 유진이한테 선물로 줄까?"

만일 제국의 학자들이 들었다면 기겁할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리아나.

물론, 리아나도 사람들이 탐내는 건 황좌 자체가 아닌 권력인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리아나에게 그것을 포함해 황좌는 그저 불편한 의자일 뿐, 진정으로 편히 있을 수 있는 건 유진의 곁이었다.

"... 응응, 그쪽은 어떻게 생각해? 나름 좋은 선물이 될거 같지 않아?"

리아나가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나타난 네 마리의 '퍼져나가는 악몽'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유진에게 설명을 들었을 때, 적들의 대부분 하급에서 중급 수준이라고 했다.

하지만 가끔 인간 중에서도 리아나 같은 예외가 나타나는 것처럼, '퍼져나가는 악몽'에서도 그런 예외가 존재했다.

그 예외가 바로 리아나의 눈앞에 서 있는 네 명의 기사였다.

백색 갑옷과 활을 든 기사.

적색 갑옷과 검을 든 기사.

흑색 갑옷과 저울을 든 기사.

마지막으로 청색 갑옷과 낫을 든 기사.

단순히 '예외'라고 평가하기에는 너무나 규격 외인 존재들.

"아하하하핫...! 미안! 미안! 그러고 보니 벙어리라고 했었지...!"

그들을 바라본 리아나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 이거 생각보다 더 위험하네?'

기사들이 뿜어내는 살기에 피부가 찌릿찌릿하다.

위험하다는 감정을 느껴본 지가 도대체 얼마만이지...

두근거리는 심장에 리아나가 붉은 입술을 핥았다.

리아나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감춰놓은 무언가가 있는 것도, 전성기의 힘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리아나는 리아나 루멘하르크다.

「깨지고 ─ 부셔지고 ─ 무너져라」 리아나의 기습적인 공격에 네 명의 기사가 피하지만, 직선으로 뻗어 나가던 빛이 리아나의 손끝을 따라 갑작스럽게 방향을 튼다.

슈우욱─!

빛이 꺾인다는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네 명의 기사는 유기적으로 반응하여 빛을 쳐냈다.

"와오... 대단하네♪"

─콰앙!

튕겨 나온 빛은 천장에 있던 샹들리에를 박살 냈고, 유리 조각이 반짝이며 흩날렸다.

"... 하지만 예상대로야."

「확산하라 ─ 빛이여」 유리 조각을 투과하며 난반사 되는 빛이 리아나가 앉아 있는 옥좌를 제외하고 황실의 모든 것이 분해하기 시작한다.

피융─! 피융─!!

미친 듯이 쏟아지는 빛의 폭격 사이에서도 네 기사는 묵묵히 쳐내거나 피할 뿐.

하지만 이걸로 네 명을 다 처리할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 오직 한 명.

처음부터 흑기사만을 노린 궤도.

마치 끓는 물의 개구리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 구석으로 유도된 흑기사를 손가락으로 겨눈 리아나가 속삭였다.

「깨지고 ─ 무너져라」 피융─!

리아나의 손가락 끝에서 쏘아진 빛에 심장이 꿰뚫린 흑기사가 단숨에 먼지가 되어 흩어진다.

"응! 계획대로네! 설명을 들었을 때 다른 건 결국 안 맞으면 되는 거지만, 저울은 조금 거슬렸거든... 자! 그럼..."

붉은 눈을 빛내는 리아나가 황좌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정신 안 차리면 순식간에 끝날걸?"

***

"하아... 하아..."

내가 거친 숨을 내쉬며 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지탱했다.

자신을 제외한 마지막 '퍼져나가는 악몽'을 제거할 때까지, 무릎을 쭈그린 채 앉은 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나를 관찰하고 있던 녀석.

케르르─

장난치듯 내 앞에까지 다가온 녀석에게 검을 휘둘러보지만, 너무나도 쉽게 피한다.

「베어라 ─ 바람 ─ 칼날」 마법도 마찬가지다.

내가 입술을 달싹거리는 순간, 이미 무엇을 사용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움직이는 녀석.

──캬캬캬캬캬캬캬캬캬캬컄캬캬캬캬!

그 짓을 몇 번이고 반복하던 놈은 자신이 나보다 강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확신했는지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

'틀린 말은 아니지...'

저 녀석을 제외하고도 이곳에서 나오는 '퍼져나가는 악몽'의 숫자와 질은 상당했다.

이렇게 될 걸 알면서도 여유를 남길 수는 없었고 가지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염동력]

마지막으로 이제는 손발처럼 사용할 수있는 염동력을 기습적으로 날려보지만...

-케켁.... 케케케케켘케케켘!!

이번에도 역시 너무나도 쉽게 피해버린다.

녀석은 '퍼져나가는 악몽'에게 공유받은 연산력을 오직 나를 분석하는 데 사용했다.

그 결과, 나조차도 모르는 버릇까지 전부 알고 있는, 사실상 유진 칼리오페용 최종병기가 탄생했다.

"... 하."

그런 생각을 하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러나왔다.

──크르르르르릉

자기가 처 웃는 건 괜찮으면서, 내가 웃는 건 거슬렸는지 녀석이 웃음이 뚝 멈추고 위협하듯 으르렁거렸다.

"그래... 나는 너를 이길 수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내 모든 약점을 파악하고 있는 녀석을 내가 어찌 이긴단 말이냐.

"... 나는 말이지."

「그림자」 촤악-!

오른손을 뻗자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되살아난 타락'의 검이 쥐어지고, 왼손에 끼어있는 반지가 반짝였다.

──캬르르륵?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기술을 보자 녀석이 분석하기 위해서 뒤로 물러난다.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는 게 저 녀석의 특징이니까.

"고맙네. 변신 시간도 주고... 그럼 마지막으로."

『인과역전』 비비안의 마법을 훔쳐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끌어낸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내 것이 돼, 내 것이 아닌 지식들이 나를 집어삼키려 들지만... '강신'을 사용해 육체의 주도권을 내게 가져온다.

"자...."

모든 준비를 마친 내가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고..

촤아악─!

한순간에 가속하며 녀석의 오른팔을 베어냈다.

"... 2페이즈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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