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46 - 악몽 토벌전 (3)
제국 동부, 어느 시골 마을.
두 명의 음마족이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 이 옷을 입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네."
"그러게... 후후훗. 이 나이를 먹고 설마 다시 입을 줄은 몰랐네."
두 음마족이 입고 있는 건 반짝이는 가죽 재질의 레오타드형 하이레그였다.
SM 클럽에서나 볼법한 이 복장은 믿을 수 없지만, 사테르 고아원장에게 대대로 내려온 전투 예장이었다.
"그래도 체형이 변하지 않아서 다행이네."
"어머, 클라리스 나는 가슴이 좀 끼는 거 같은데 부럽다."
"... 엘라리스 재미없는 농담하지 마. 너랑 나랑 한 번이라도... 어?"
웃으며 엘라리스의 가슴을 바라본 클라리스가 눈을 깜빡거렸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체형이 달라진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미묘하지만 엘라리스가 더 컸다.
"... 어떻게? 아...! 너 역시 내 정액 훔쳐먹은....!!"
"자,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 클라리스 준비해. 슬슬 오는 것 같네."
엘라리스의 말에 앞을 바라보자 허공에서 오크를 닮은 '퍼져나가는 악몽'이 쏟아져 내렸다.
꾸이이익-!
돼지 같은 울음소리를 낸 '퍼져나가는 악몽'은 엘라리스와 클라리스를 발견하자마자 곧장 달려들었다.
"... 이번 일은 나중에 이야기하자 클라리스..."
"그래, 엘라리스.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지금은 저 참을성 없는 돼지 새끼들한테..."
"... 응, 오랜만에 예절 교육을 좀 시켜줘야겠네."
촤아악-!
엘라리스와 클라리스가 동시에 채찍을 내리쳤다.
****
제국 서부, 넓은 평야 지대.
네 명의 마탑주가 미친 듯이 마법을 난사하고 있었다.
쾅와앙─! 쾅앙─! ────콰콰광!!
"자네... 왜 자꾸 늦게 쏘는가? 동시에 쏘는 게 더 효율적이라 말하지 않았나!!"
"그러면 딜이 씹히는 부분이 발생하지 않는가! 계산을 해보니 3초 뒤에 날리는 게 총 데미지가 더 높네!!"
"그래! 총 데미지로 계산하면 그렇겠지!! 하지만 자네의 계산식에 방어력은 안 들어있지 않은가! DPS를 높이는 것보다 누킹 위력을 올려서 처리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걸 왜 모르는가!"
마탑주들의 생각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마법과 같이 아름다운 학문이 전쟁에 사용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마탑의 마법사는 기본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이용하자는 합리적인 방식의 인간들이다.
처음부터 제안을 거절했으면 모를까 전장에 나온 이상, 전장에서 쌓을 수 있는 데이터를 최대한 축적하기 위해 노력했다.
콰아앙앙-! 퍼엉─! ────콰콰광!!
"에이 씹..., 늙어서 귀가 처먹은 게가? 왜 또 늦게 쏘는가! 내가 동시에 쏘라고 했지!!"
"뭐? 씹? 이래서 보바르 새끼들은 안된다니까! 딜이 씹히는 게 누적되면 결국 딜 낭비로 이어지는 걸 말해줘도 모르는가!!"
"일버르엘라년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입만 터는구나!! 그래서 너 마법의 전설 티어가 어떻게 되는데??"
"여기서 갑자기 티어 이야기가 왜 나오는가!! 실전이 중요하지 티어가 뭐가 중요한가!!"
"... 어이, 일버르엘라, 보바르, 그만 입 다물고 와서 마력이나 넣게!!"
알바트의 말에 베어본과 키리온이 동시에 침묵하며 마력을 주입했다.
키리온의 티어는 실버, 베리온의 티어는 골드... 하지만 알바트는 다이아였으니까.
***
제국 북부, 울창한 숲 속.
한 명의 아버지가 바위에 앉아있었다.
살랑, 살랑, 톡.
긴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눈송이가 에다드의 콧등에 내려앉았다.
크르르릉─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들려오는 '퍼져나가는 악몽'의 울음소리에 에다드가 바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는 괜찮은 가주였지만..."
객관적으로 가주로서 '에다드 칼리오페'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성군이라 불릴 정도는 아니지만, 영지를 착취하지도 않았고, 적어도 마물들의 위협에서는 영지민들을 평온하게 살게 했으니까.
"... 나쁜 가장이었다."
하지만 결코 좋은 가장은 아니었다.
'파볼리에 키아라'가 죽은 뒤에도 그녀를 너무 오랫동안 잊지 못했기에 가정에 소홀했다.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가장으로서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고, 돌이키기 어렵다는 생각에 완전히 포기해버렸으니까.
그런 내가... 과분한 아들들을 덕에 가주와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덜고 새 삶을 살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저런 근본도 모르는 괴물에게 새 삶을 방해받는다는 걸, 에다드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스르릉─
검을 뽑은 에다드가 마지막 한 마디를 담았다.
"... 그리고 매우 뛰어난 검사지."
입꼬리를 비튼 에다드의 머릿속에 제국제일검이 남긴 한 마디가 떠올랐다.
[... 겨울에는 자네와 검을 겨루고 싶지 않군.]
제국제일검에게서 무승부를 얻어낸 유일한 검사, 그것이 에다드 칼리오페였다.
***
제국 동부, 어느 도시의 광장.
푸른 옷을 입은 한 명의 제자 웃었다.
"캬캬캬캿!... 이걸 사용하는 것도 오랜만이구나."
양손에 쌍비조(雙飛爪)를 착용한 베를리오즈가 즐겁게 웃었다.
그녀는 한때 이 세계를 포기했었다.
아니, 베를리오즈뿐만이 아니라 트리스티아 그리고 오르펠리아마저....
모든 여신의 제자들이 이 세계를 포기했다.
여신에게 많은 것을 배운 제자이기에 이 세계의 종언은 막을 수 없는 걸 느끼고 절망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한 아이를 만났다.
흔해 빠진 재능을 가지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해진 아이.
여신의 제자조차 포기한 이 세계를 구하겠다고 발버둥 치는 아이.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지만, 이제는 그 이상의 감정을 품게 된 아이.
두근─ 두근─
그 아이를 보고 있을 때 시끄럽게 떨리는 심장이 아직은 사랑인지... 아니면 성욕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니까..."
감정의 정체를 알아내기 전까지는 베를리오즈는 여기서 멈춰 서있을 수 없다.
쿠우웅─
머리카락이 일렁거리고 동공이 용의 것으로 바뀐 베를리오즈가 크게 웃었다.
"캬캬캿캬캿!!!"
아직 넷이서 함께 했던.... 가장 행복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
제국 남부, 해안가의 모래사장.
활과 지팡이를 든 학생들과 병사들... 그리고 한 명의 성녀가 해안가를 지키며 있었다.
"어...?... 나... 나타났습니다!"
철퍽─ 철퍽─ 철퍽─
누군가의 말과 동시에 넓은 해안가에서 어인을 닮은 '퍼져나가는 악몽'들이 느릿느릿하게 기어 나왔다.
"... 앞에서 공격을 막아 줄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정말 괜찮은 거 맞나?"
"그러게 아무리 성녀님이 있다고 해도.... 정말로 혼자서 가능할까..."
이렇게 넓게 퍼진 전선은 한쪽이 뚫리는 순간 순식간에 무너지고 만다.
게다가 방어 병력이라고는 성녀 혼자뿐, 나머지는 죄다 공격이지 않은가.
정석과는 너무나도 먼 배치에 불안감이 병사들 사이에 스멀스멀 퍼져나갈 때, 릴리스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 릴리스가! 전부 지킬 테니까요!"
"... 성녀님."
──캬으으으으으!!
그때, 갑작스럽게 큰 비명을 지른 '퍼져나가는 악몽'들이 조금 전까지 느릿한 움직임은 거짓말이었다는 듯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아.. 아!! 오... 온다! 사격 준비!!"
"아직 대기해라!! 성녀님의 명령이 없이 발사하지마!!"
"서.. 성녀님 정말 괜찮은 거 맞죠?"
"... 네, 괜찮아요!"
불안감에 떨며 전선을 지키는 병사들 사이에서, 릴리스가 홀로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왔다.
릴리스는 선생님과 약속했다.
모두를 지키겠다고! 반드시 웃으며 돌아가겠다고!
그러니까 릴리스가 이 자리에 있는 한, 누구도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저 릴리스!!!"
촤악─!
어두운 밤하늘 릴리스가 손을 높게 치켜들며 선언했다.
"여신과 성녀의 이름으로! 지금 이곳을!!! 성지로 선포합니다!!!!"
성스럽게 울려 퍼지는 릴리스의 목소리에 두려움이 전부 씻겨져 나가는 느낌이다.
화아아아악─!!
아니, 느낌만이 아니었다.
드넓은 해안가를 통째로 둘러싸는 「성스로운 보호막」이 릴리스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보호막 안에 있는 병사들은 체력과 용기를 솟아오르는 걸 느꼈다.
쾅코쾅캉─!
수천이 넘는 마물이 동시에 달려드는데도 흠집 하나 나지 않는 방어막의 모습에 모두가 감탄하고 있을 때, 릴리스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자! 여러분! 모두 쏘세요!"
***
제국 동부, 깊은 낭떠러지 아래.
한 마법사가 허공에 떠 있었다.
사람들에게 제국제일검을 꼽아보라면 주저 없이 한 남자를 뽑겠지만, 최고의 마법사가 누구냐고 물으면 많은 고민을 할 것이다.
현재까지 대외적으로는 우르엘라의 전 가주가 꼽히는 편이지만, 루시아도 만만치 않게 지지를 받고 있다.
아, 당연히 리아나를 빼놓을 수도 없다.
본래부터 황실의 혈족마법은 압도적인 파괴력으로 유명했고, 그걸 사용하는 리아나 역시 압도적인 실력자니까.
하지만 유진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건 무조건 비비안이지."
비비안 베아트리스
마법의 축복을 받은 자.
물론 루시아나 리아나처럼 특정 부분에서만큼은 더 뛰어난 마법사가 있는 경우도 존재하겠지만....
마법이란 전반적인 영역에서 비비안을 따라잡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반짝─
유진에게 받은 반지를 만지작거린 비비안이 작게 웃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은 것도.
누군가에게 신뢰를 받은 것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은 것도.
두두두두─!
"캬야아아아아아악!"
비비안의 발 아래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퍼져나가는 악몽'이 솟아나고 있었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단지, 기쁠 뿐이었다.
자신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양손을 펼친 비비안이 담담하게 말했다.
"태워 죽여라."
[태워 ─ 죽여라]
《태워 ─ 죽여라》 {태워 ─ 죽여라}
「죽여 ─ 태워라」
영창 파기, 마법 분열, 마법 재조합, 흑마법, 인과역전.
하나의 마법을 쓸 때마다 동시에 사용되는 마법들의 숫자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물론, 압도적인 위력을 보여주는 만큼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들이지만, 비비안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마법을 난사했다.
... 죽음을 각오한 것은 아니다.
아직 유진과 해보지 못한 플레이가 산처럼 있다.
그걸 다 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죽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비비안이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이기적인 등가교환』 비비안이 치러야 할 모든 대가를 마력으로 처리하는... 비비안만이 사용 할 수 있는 만큼 이름처럼 이기적인 기술 때문이다.
당연히 대가가 엄청난만큼 한 번 사용 할 때마다 마력이 뭉텅뭉텅 깎여나가지만.... 현재 비비안의 마력량은 전성기의 리아나와 비슷한 수준.
"눌러 죽여라."
[눌러 ─ 죽여라]
《눌러 ─ 죽여라》 {눌러 ─ 죽여라}
「눌러 ─ 태워라」
... 바닥을 보이기에는 한참이나 멀었다.
온 몸에 마법진을 두른 비비안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 한 마리도 놓치지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