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345화 (345/354)

Chapter 345 - 악몽 토벌전 (2)

"그럼 루시아, 카르네아를 잘 부탁할게."

출발하기 전, 내가 학생회장실에서 카르네아에 남아있는 루시아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 주인님."

루시아가 남은 건, 카르네아에 출현하는 '퍼져나가는 악몽'을 상대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카르네아에서 나타나는 녀석은 굳이 루시아가 아니더라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약한 녀석이다.

그런데도 루시아가 남아있어야 하는 이유는 만일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는 루시아만이 즉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다녀올게."

"자... 잠시만요... 주인님..."

그 순간, 루시아가 유진의 소매를 잡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루시아?"

"죄... 죄송해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주인님이 너무 위험해요."

믿으려고 노력했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두려움 억누르고 억눌렀지만, 눈앞에서 떠나는 유진의 뒷모습을 보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 지금이라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볼게요... 아니면... 주인님에게 사람을 몇 명이라도 더 붙여줄 테니까 같이 가주세요... 제발요."

몇 번이고 유진의 죽음을 지켜본 루시아에게는 이 순간이 너무나 두려웠다.

"괜찮다니까. 루시아."

"도대체 뭐가 괜찮다는건데요!!! 다른 사람과 달리 주인님은 부적합 판정을 받았.... 흐... 읍..!!!"

애원하듯 소리치는 루시아였지만, 입술에 닿는 따듯한 온기가 말을 가로막았다.

팔로 유진을 밀쳐내려고 했지만... 도무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유진의 온기를 몸에 새기듯 숨이 벅찰 때까지 키스한 끝에서야 간신히 떨어질 수 있었다.

"... 하아... 하아... 이런건... 치사해요. 주인님."

"미안해. 그래도... 난 할 수 있으니까. 믿고 기다려줘."

이건 루시아의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말이 아닌 진심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고작해야 재앙 하나 막지 못하는 남자가 종언을 막을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럼, 약속해주세요... 반드시... 반드시... 제 곁으로 돌아온다고..."

"응, 약속할게."

다시 한번 루시아에게 짧은 키스를 한 내가 방문을 열자, 비앙카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자, 준비됐지? 다들 기다리고 있어."

비앙카의 말에 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저벅─ 저벅─

이 복도를 끝까지 걸어가면 곧장 단상 위에 도착한다.

저벅- 저벅- 뚝-

이제 한 발자국 뒤면 내가 전쟁의 시작을 알린다는 사실에 긴장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숨을 내쉬고 있자, 비앙카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자, 먼저 들어가시죠. 총사령관님."

"... 네, 비앙카. 잘 따라와요."

"응, 네 옆에는 언제나 내가 있을 테니까 졸지 마."

비앙카의 응원과 함께 걸음을 내딛는 순간.

화아악─!

밝은 태양 빛이 잠깐 시야를 가리더니, 이내 단상 아래에 서 있는 전교생의 모습이 보였다.

"...."

생각보다 긴장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전쟁하러 간다기에는 지나치게 풍족한 장비와 식량에 조금 들떠 보이는 모습마저 있었다.

"다들 겁먹지 않은 건 좋은데... 그래도 전쟁인데 저래도 되는 거야?"

"괜찮아요. 긴장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요."

어차피 학생들의 전력은 재앙을 상대하기에 충분하다.

포기하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

'나는 오히려....'

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비앙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학생들의 부담을 최대한 덜기 위해서, 이쪽에서 위험 대부분을 담당했으니까.

포기만 하지 않으면 이기는 학생들과 달리 우리는 실수를 하면 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니지...'

조금 전에 루시아에게 믿어 달라고 한 주제, 비앙카를 걱정하는 것도 우습다.

나는 내 여자들을 믿는다.

반드시 이겨서 이 자리에 무사하게 돌아올 것이다.

"... 제가 내리는 명령은 단 하나입니다."

내가 확성 마법이 걸린 단상 위에서 진심을 담아 부탁했다.

"모두, 이 자리에서, 지금처럼 다시 만납시다."

***

그리고 '퍼져나가는 악몽' 토벌전 당일.

곧 쏟아져 나올 재앙을 기다리며 과거에 있었던 일을 정리했다.

'퍼져나가는 악몽'의 전투능력과 지능은 개체마다 제각각이지만, 몇몇 특수개체를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하급 마물에서 중급 마물의 수준으로 소환된다.

하지만 일반적인 마물과 '퍼져나가는 악몽'은 크게 다른 점이 2개가 있는데...

첫 번째는 모든 '퍼져나가는 악몽'의 정신이 하나로 연결되어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퍼져나가는 악몽'들끼리는 아무리 먼 거리에 있어도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그를 통해 진화한다.

물론 기본적인 지능이 낮은 터라 바로 반격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집단 지성의 성장력은 무시할 수 없다.

두 번째 특징은 높은 감염력이다.

생명체가 '퍼져나가는 악몽'에 물리거나 상처를 입으면 '악몽'에 감염된다.

초기에는 감염돼봤자 약간 우울해지고 몸이 쳐질 뿐이라 생각보다 별거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순간은 아주 찰나일 뿐이다.

감염의 진짜 위험한 점은, 감염된 사람의 정신을 강제로 '퍼져나가는 악몽'에 연결하여 '악몽'의 위력을 늘리는 연산력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니까.

사람 한 명당 올라가는 위력은 그리 높지 않지만, 숫자가 수백, 수천이 되어 일정 수준을 넘는 순간 모든 감염자는 '퍼져나가는 악몽'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여기까지만 봐도 충분히 최악이지만...

더욱 최악인 것은 비슷한 전염방식을 가진 언데드와는 달리, '퍼져나가는 악몽'이 되어버린 자들은 단지 인격이 망가졌을 뿐 능력은 전혀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금 전까지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던 모리어티가 '퍼져나가는 악몽'이 됨과 동시에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서 사용했던 마법으로 학생들을 찢어발겼던 것처럼.

'... 진짜 생각할수록 지랄 맞은 세상이네.'

결국, 생각해보면 나는 단 한 번도 '퍼져나가는 악몽'을 공략한 적이 없었다.

내가 엔딩을 봤을 때 사용한 방법은 처음부터 '퍼져나가는 악몽'을 상대를 하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스킵 방식은 이랬다.

'퍼져나가는 악몽'이 출현했던 모든 지역에서 사람들을 쫓아낸 다음 거대한 장벽을 둘러서 격리했고.

잠깐 병력에 여유가 생긴 사병들을 북부로 진격시켜 늑대기사단과 함께 봉인이 풀린 '고대 마물'들을 상대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지만...'

... 결과적으로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당연히 제국의 영토의 상당 부분이 격리당했으니 식량과, 병기, 의류품 무엇하나 제대로 보급받지 못한 북부 병사들의 피해는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다.

그뿐인가 한순간에 자신의 일군 모든 것을 빼앗긴 시민들의 불만은 시위와 폭동으로 발전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우리는 어떻게든 폭동을 가라앉히기 위해 장벽의 지키던 병사들까지 동원해봤지만...

식량조차 제대로 보급받지 못한 군대에 충성심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결국, 군대는 말을 듣지 않고 폭동은 점점 커졌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대가문의 재산을 전부 풀어서 진정시키고 나니...

장벽 속에 남은 생물을 잡아먹으면 진화를 거듭한 '퍼져나가는 악몽'이 장벽을 뚫고 나왔다.

'... 그때부터는 타임 어택의 시작이었지.'

어차피 시간을 끌면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니 어떻게든 최종 보스의 얼굴이라도 보자는 생각으로 '퍼져나가는 악몽'을 무시한 채 무작정 최종 보스에게 도전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최종보스의 봉인에 성공했고, 세계의 멸망을 아주 조금 유예시켰다.

그래... '아주 조금'이다.

다행스럽게도 최종보스를 봉인하는 순간 '퍼져나가는 악몽' 역시 사라졌지만, 이미 제국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황성, 아카데미, 교회 같은 제국의 주요 시설의 대부분은 파괴됐으며,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약탈과 살인은 일상이 되었고, 사람들 사이에는 오직 불신만이 떠돌았다.

'... 그리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건, 루시아도 마찬가지였다.

봉인의 대가로 루시아는 오른팔과 왼 다리, 그리고 내장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

참혹하기 짝이 없지만, 이것이 세계의 '엔딩'을 본 유일한 기억이다.

'...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루시아와 수도 없이 토론했지.'

그렇게 이 세계에 해피엔딩을 가져오기 위해 루시아와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모든 '퍼져나가는 악몽'을 출현과 동시에 전부 토벌하는 것.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하지 않았다.

말했다시피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퍼져나가는 악몽'이 처음 태어났을 때의 위험도는 하급과 중급의 마물 수준이다.

어느 정도 싸울 줄만 알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러나 모든 악몽을 동시에 토벌한다는 건 지난 회차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했던 조건이다.

그때의 내게는 리아나도, 멜피사도, 트리스티아도 지금 가지고 있는 인연 대부분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손에 들어왔다.

전 군대의 총지휘권을 가진 나와, 장벽 격리 당시에 모든 악몽의 출현 장소와 숫자를 기록해놨던 루시아 그리고 수많은 인연의 힘을 합쳐서 어떻게든 여기까지 만들어냈다.

쩌저─! 쩌저저적─!

그때 하늘의 색이 붉게 물들며 공간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고, 내가 검을 뽑으며 속삭였다.

"이제 남은 건...."

결과로 증명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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