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42 - 그래서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3)
"....."
공문을 꺼내자마자 침묵하는 모리어티 교수의 모습에 '해치웠나'라는 생각이 들 때쯤.
"감히... 여신님의 이름을 우롱하지 말게!!!"
지금까지 중 가장 분노한 모습의 모리어티 교수가 소리쳤다.
"자네가 어떤 비열한 방식으로 꼬드겼는지는 몰라도 성녀가 자네의 파벌에 있다는 건, 제국의 백성이라면 세 살짜리 아이도 알고 있네! 그 예언도 성녀를 앞장세워 조작한 것이 아닌가!!"
"...."
모리어티 교수를 설득하는 데 예언이 제법 도움이 될 거로 생각했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난듯하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광신도 투성이인 여신교의 예언을 조작할 힘까지는 없는데...
'... 문제는 저쪽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이럴 때는 파벌이 큰 것도 문제였다.
"하아... 예언조차 무시한다면... 뭐, 좋습니다."
짧게 한숨을 내쉰 내가 말을 이었다.
"모리어티 교수님의 말대로... 재앙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가정해봅시다. 하지만 만에 하나의 가능성조차 대비해야지 않겠습니까? 고작 금화 몇 푼과 약간의 시간 때문에 사람의 목숨을 저울에 올려 놓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래, 만에 하나라도 제국이 멸망한다면 반드시 대비해야지.... 하지만 나는 자네가 말하는 만에 하나조차 거짓일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있네. ... 자네의 논리대로라면 얼마나 막대한 시간과 돈이 들든 당장 지진이 일어나 대륙이 가라앉을 가능성도 대비해야지 않는가? 어째서 그것에는 입을 다물고 있지?"
나와 달리 저쪽은 그리 준비할 시간도 없을 텐데 어째 한마디도 밀리지 않고 대답한다.
"... 이야기가 평행선을 그리는군요. 그럼 교수님. 학생인 제가 어떻게 해야 교수님을 설득할 수 있는지 가르쳐주시는 건 어떠신가요?"
그 말을 들은 모리어티 교수가 이빨을 까득 갈았다.
"유진 칼리오페. 내가 자네를 믿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뭔지 아나?"
"... 솔직히 모르겠군요."
그러자 모리어티 교수가 나눠준 자료를 지도 위로 쫙 펼치며 말했다.
"여기 있는 자료들을 보면 황실의 '로열가드'도, 우르엘라의 '워메이지'도, 아멜리아의 '국경수비대'도 그 외에 크고 작은 가문들의 사병의 이름들도 전부 들어있지만.... 딱 한 가지 빠진 게 있지. 뭔지 알겠나?"
"...."
"역시 대답하지 못하는군. 그럼 내가 대신 말해주지. 칼리오페의 '늑대 기사단'만큼은 이름이 빠져있다."
모리어티 교수는 지도 위에서 칼리오페의 본가를 손가락으로 정확히 가리키며 말했다.
"제국의 재앙을 가장 앞장서서 막겠다는 유진 칼리오페가. 칼리오페의 병사만큼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것이 자네가 단순히 권력을 과시하고 싶어서 한다고 여기는 가장 큰 이유네."
역시 카르네아의 정교수라고 할까.
내가 가장 밝히고 싶지 않았던 지점을 단숨에 찔러온다.
"... 하아,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군요. 루시아, 리아나. 준비해."
"네."
"네에~"
대답과 동시에 루시아가 내부의 소리를 새어나가지 않게 하는 보호막을 치고 리아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내 강제로 입을 다물게 생각인가?"
노려보는 모리어티 교수와 눈을 마주친 내가 입꼬리를 올렸다.
"만일 그렇다면 어쩌겠습니까?"
"... 네놈!!"
이제 모리어티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 네놈까지 떨어졌다.
"저는 진지하게 묻는 겁니다. 모리어티 교수님. 제가 이곳에서 당신을 제거하겠다고 한다면... 당신은 뭘 할 수 있죠?"
다가오는 미래를 예상하듯 모리어티 교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리아나, 루시아는 처음부터 내 파벌이고, 로레오스와 트리스탄 역시 내 편이다.
"...."
아무리 긍정적으로 상황을 계산해봐도...
모리어티 교수에게는 티끌만큼의 승산이 존재하지 않았다.
"... 좋다! 이 자리에서 내가 죽더라도 네 녀석 만큼은 같이 데려가마!!"
모리어티가 달려들려던 순간, 나는 양팔을 올리며 적의가 없다는 걸 보여주었다.
"진정하시죠. 교수님... 조금 전의 말은 제가 힘으로 강요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드린 겁니다."
사실 모리어티가 본성이 썩어빠진 인간이라면 정말 힘으로 찍어 눌렀을지도 모른다.
"사실... 제가 진심으로 교수님을 제거하고 싶었다면 이렇게 콘클라베를 열 필요도 없지 않았겠습니까? 교수님이 말하시는 제 세력의 힘으로 은밀히 처리하는게 훨씬 편할 테니 말입니다."
"...."
물론, 선을 넘지 않은 이상 죽이지는 않겠지만... '퍼져나가는 악몽'을 제압할 때까지는 어디에 가둬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리어티 교수는 나와 가치관이 다를 뿐, 진심으로 학생들을 위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힘으로 강요하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 왜 그러지 않은 거지?"
"저는 아직 이 상황을 대화를 통해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러니까 에이미 교수님. 지금 입에 머금고 있는 말은 삼켜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에이미를 보며 방긋 웃었다.
로레오스와 트리스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건, 애초에 내가 그럴 생각이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지만, 에이미는 달랐다.
"... 읏... 읏... 읍!.. 꼴깍!"
에이미 교수가 내 뇌물을 받은 건 어디까지나 휴교에 대해서 찬성표를 던지는 거지, 살인을 묵과하는 것이 아니니까.
내가 정말로 모리어티를 공격하면 즉시 반응할 수 있도록 입안에 용언을 머금고 있다.
"... 알... 알고 있던 것입니깟! 헛! 서... 설마..!! 이 에이미에 대한 시험이었던 것 입니깟! 에이미는 배신하지 않았습니닷! 유진 칼리오페 만셋! 만만세입니닷!"
잠깐 에이미가 멋있어 보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위엄이 한없이 바닥까지 떨어진다.
나는 열심히 만세를 외치는 에이미를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방음 마법 마법도 어디까지나 지금부터 보여줄 정보는 극비를 요구하기에 적당한 조치한 것뿐입니다. 그럼... 리아나."
"네에~"
대기하고 있던 리아나가 테이블 가운데에 수정구슬을 올려놓자...
우우웅─
마침 빔프로젝터처럼 수정 구슬에서 쏘아진 빛이 천장을 향해 쏘아졌다.
[흠.. 이렇게 작동하는 것이 맞는 건가?]
[.... 좀 더 물러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핫! 그렇군. 오, 이제 짐의 얼굴이 보이는군.]
화면에서 얼굴을 드러낸 남자는 라인그람 루멘하르크.
제국의 황제였다.
"폐하...!!"
"호... 황제폐하입니닷..!!"
교수들이 각자 예를 표하려고 하자 영상 속 라인그람이 말했다.
[혹시나 예를 표하고 있다면 그럴 필요는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과거의 행동을 재생하고 있을 뿐이니. 아무리 예를 표해도 짐에게는 닿지 않는다. 하하하하하핫! 자, 자네도 얼굴이 보이게 이쪽으로 오게나.]
[폐하께서는 이 늙은이를 너무 부려먹으시는군요.]
"제국 제일검...?"
이어서 등장한 인물에 로레오스 답지 않게 놀랐는지 눈이 크게 떠졌다.
[... 폐하께서도 아시겠지만, 이 늙은이는 제국이 아닌 황제를 수호하는 자입니다.]
[하하하하핫! 잘 알고 있네! 그래서 짐이 직접 장벽 너머까지 온 거 아닌가 하하하하핫! 짐이 전장에 서 있으면 자네는 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검을 휘둘러야 할 테니 말이다!]
[.... 이 늙은이의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폐하를 싸 들고 황성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하하하하핫! 불충하구나!! 아, 이런 녹화 시간이 한정되어있는 마도구인데 잡담이 길었군. 자, 보게 현재 짐은 늑대 기사단과 함께 장벽 너머에 있네. 그 이유는... 직접 보는 편이 좋겠지.]
라인그람이 화면 밖으로 물러나자 가려져 있던 거대한 빙하들이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거대한 빙하에 갇혀있는 수많은 마물들이 보였다.
"....!!"
영상 너머로도 공포가 느껴질 정도로 위협적인 형태.
저기 있는 마물들은 한 마리 한 마리가 낮게 잡아도 최상급의 마물이었다.
"저... 것들은?"
"현재 북부에서 발견된 고대의 마물들입니다. 그리고 보다시피..."
데룩─!
"...!... 우... 움직였습니닷! 지금 이쪽을 봤습니닷!!"
에이미 교수의 말대로 영상 넘어 마물의 눈동자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 점차 봉인이 풀리고 있는 상태고요. 가능하면 저 상태로 소멸시키려고 해봤지만... 제국제일검의 힘으로도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봉인 앞에 진지를 지어서 최대한 유리한 조건에서 싸울 수 있게 만드는 것 뿐이죠."
"설마 봉인이 풀리는 시기는..."
"네, 예측상으로는 '퍼져나가는 악몽'의 등장과 거의 같은 시기입니다. 그럼, 모리어티 교수님. 이제 왜 늑대 기사단이 참가 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해명이 되었을까요?"
콧등을 꽉 누르고 있던 모리어티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 정도 규모의 마물떼를... 늑대 기사단만으로.. 감당하겠다고?"
"저도 마음 같아서는... 지원을 불러오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퍼져나가는 악몽'의 방어선이 비게 됩니다. 그리고... 저곳에는 제국제일검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차기 제국제일검인 에르덴과 리아나의 혈육인 라인그람도 있으니 어떻게든 될 것이다.
"왜... 처음부터 이걸 보여주지 않은 거지... 처음부터 보여줬다면..."
"... 가능하다면 끝까지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교수님의 말씀처럼 '퍼져나가는 악몽'은 실체도 분명하지 않은 데다, 막연한 종말론에 가까워 진심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하지만... 대규모의 마물이 곧 풀려난다는 사실은 다릅니다. 저 정보는 반드시 제국에 혼란은 가져다줄 테니까요."
'퍼져나가는 악몽'은 초창기에 철저하게 제거하지 못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혼란을 가중 할 정보를 풀 이유는 없었다.
"... 그러니 이 사실은 부디 안에 계신 분들만 알고 있어 주시기 바랍니다."
"...."
그 말을 끝으로 모리어티 교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물들을 막지 못했을 때, 가장 먼저 짓밟히는 건 칼리오페의 가문이라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황실 군대에 관한 모든 지휘권을 가진 내가 칼리오페를 지원하지 않는 건 그만큼 이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의미했으니까.
"... 자네의 뜻은 잘 알겠네. 휴교령은 찬성하지, 나 역시 전장에도 나가겠네... 하지만 학생들을 강제로 전장에 끌어들이는 것만큼은...."
"강제가 아닙니다."
이 순간을 위해 우리가 그토록 열심히 동의서를 준비해놓은 것이다.
모리어티 교수라면 설령 설득에 넘어가더라도 끝까지 학생들만큼은 참가시키지 않으려고 했을테니까.
"... 참전 동의서입니다. 카르네아의 재학생 중 98%가 찬성했고요. 동의를 하지 않은 2%는 질병이나 특별한 사유가 존재하니... 사실상 재학생의 100%입니다. 거기에..."
거기까지 말한 내가 로레오스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비장의 수단을 꺼냈다.
스릉─
"저는 이것들을 무상으로 제공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