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41 - 그래서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2)
모리어티 교수
이름만 들으면 왠지 탐정과 싸우다 폭포에서 떨어져 죽을 것 같은 악역일 것 같지만...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 확실한 선역이다.
'퍼져나가는 악몽' 사태 때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홀로 시간을 벌다 몇 번이고 잡아먹힐 정도로 말이다.
아니... 애초에 카르네아에 나쁜 교수가 있는지부터가 의문이다.
나라고 해서 모든 교수를 잘 아는 건 아니라 확신은 못 하겠지만, 적어도 정교수 중에는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굳이 따지고 보면 트리스탄 교수님이 잠깐 배신을 했지만, 배신하지 않으면 친딸이 죽는 상황이니까 어느 정도는 정상참작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걸 알자마자 죗값을 치르기 위해 '기어오는 공포'로 변한 딸과 자폭하지 않는가?
"주인님."
그때, 카르네아의 제복에 학생회장의 완장을 달고 있는 루시아가 내 오른쪽에 다가와 섰고.
"유진아♪"
동시에 부회장 완장을 단 리아나가 내 왼쪽으로 다가왔다.
"..."
루시아가 회장인 건 너무 당연한 거지만, 분명 내 기억상으로 부회장은 리아나가 아닌 다른 학생이었는데 어떻게 리아나가 저 자리를 차지했는지는 모르겠다.
"흐흥~♬"
... 세상에는 몰라도 되는 일이 있는 법이니까 굳이 묻지는 않았다.
참고로 나는 서기의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한다.
'뭐, 전혀 의미는 없지만...'
콘클라베가 시작되기 전에 로레오스 교수님과 트리스탄 교수님께는 이미 내막에 관해서 설명해 드렸고, 에이미에게는 뇌물을 잔뜩 먹여놨다.
땡─ 땡─ 땡─
그때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고, 내가 넥타이를 살짝 느슨하게 풀며 말했다.
"들어가자."
끼이익─
회의장의 문이 열렸고, 제1회 콘클라베가 시작되었다.
***
회의장에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보인 건, 교수석에서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로레오스와 그 옆에서 나를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 트리스탄이었고.
이어서는...
"후헤헤...!! 이번 일만 성공하면 나도 부자인 겁니닷!! 키도 쭉쭉 커지고 가슴도 잔뜩 커지는 겁니닷!"
탐욕에 눈이 먼 에이미 교수가 보였다.
"...."
아까 했던 말을 정정하겠다.
정교수 중에서 에이미 교수만큼은 사리사욕을 위해 행동하기는 한다.
'그래도 뭐... 에이미 교수니까.'
욕심부리고, 애 같고, 바보인데다 쪼잔하기는 해도 사람은... 착하다.
막말로 '용언'을 악용하면 돈을 버는 건 순식간일 텐데 꼬박꼬박 일해서 돈을 벌지 않는가.
"... 쯧."
내가 혀 차는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신경질적으로 인상을 찌푸린 채 안경을 닦는 모리어티 교수가 보였다.
"거기 앉게나."
로레오스의 말에 준비된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다시 일어나며 허리를 숙였다.
"우선, 콘클라베에 응해주신 교수님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콘클라베는 당연히 서기가 아닌 학생회장이 주도해야 하지만...
여기 있는 모두가 루시아는 단순히 명분일 뿐, 실질적인 건 전부 내가 주도하는 것을 알기에 내가 일어난 것이다.
"쯧, 인사치레는 됐네. 용건은?"
"... 그럼, 모리어티 교수님의 말대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 콘클라베가 열린 이유는 카르네아의 임시 휴교 요청 때문입니다."
"그것도 이미 알고 있네. 나는 자네가 '콘클라베'라는 사장된 교칙까지 이용해서 부른 진짜 이유를 묻는 걸세."
처음부터 삐딱하게 나오는 모리어티 교수였지만, 저 정도는 예상범위 안이다.
"그럼, 준비한 자료를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눈빛을 보내자 리아나가 서류 뭉치를 교수진에게 나눠주었다.
사락─ 사락─
잠시 후 서류를 다 확인한 모리어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서류 읽어보니 자네가 휴교를 요청한 이유가 학생들을 전장에서 멀어지도록 하는 게 아닌 오히려 참전시키겠다는 의미로 보이는데... 내가 잘못 읽은 건가?"
"아니요. 제대로 읽으셨습니다."
"하, 그렇다면 더 들을 필요도 없군. 나는 무조건 반대다."
"어째서입니까?"
내 질문을 들은 모리어티가 이를 갈았다.
"어째서냐고? 반대로 묻지. 유진 칼리오페. 우리가 교수님라고 불리며 학생들의 존중을 받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아는가?"
"... 학생들을 가르치기 때문이 아닌가요?"
"그렇네. 바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옳은 길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네는 그런 교수에게 학생들이 전쟁터에 내보내라고 하고 있네!! 태어날 때부터 귀족이었던 자네에게는 카르네아가 인맥을 쌓을 수 있는 무도회 따위로 느껴질지 몰라도 나에게 카르네아는 배움과 가르침의 성지다!!! 그런데 감히 내게 학생들은 전장에 내보내기 위해서 휴교를 요청해? 웃기지 말게! 학생은 군인이 아니다!!"
콰앙─!
책상을 거칠게 내리친 모리어티가 루시아와 리아나를 보며 말했다.
"루시아, 리아나.... 자네들에게도 실망했다. 그래, 자네들이라면 전장에서도 충분히 활약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카르네아의 모든 학생이 자네들처럼 강한 건 아니라는 건 기억하게."
"...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모리어티 교수님. 그래서 준비 한 게 이것입니다."
루시아가 내게 보여줬던 지도를 몇 배는 확대한 것 같은 거대한 지도를 책상 위에 펼쳤다.
"학생 개개인의 실력과 적의 전력을 철저하게 계산해서 나온 배치표입니다. 계획대로만 진행된다면 학생 중 누구 하나 큰 부상 없이 끝날 겁니다."
"자네의 계획이 완벽하다고 어찌 자신하나!! 전장에서 상대의 모든 전력을 예측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래, 모리어티의 말대로 완벽한 계획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책상 위에 펼쳐진 지도가 나의 루시아의 정보를 총집결시켜 만든 공략본이라고 할지라도 완벽만큼은 장담할 수는 없다.
'... 에머리, 원프레드, 엘로이즈.'
내가 완벽한 계획이라 여기고 오만하게 행동했을 때 얼마나 끔찍한 결과가 나왔는지 나는 조금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모두의 도움이 필요했다.
"왜 다른 교수님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십니까! 다들 정말 모르는 겁니까!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겁니까! 언제부터 카르네아의 정교수가 권력에 개가 되었...!"
"모리어티 교수!!"
"윽...."
"지나치게 흥분한 것 같군... 조금 흥분을 가라앉히게."
아무리 같은 정교수라도 해도 군부의 전설이라 여겨지는 로레오스와는 엄연한 급의 차이가 존재한다.
... 이것이 내가 개인 면담이 아닌 콘클라베를 요청한 이유였다.
여기서야 로레오스가 모리어티를 억제해주지만, 만일 개인 면담이었다면 모리어티 교수는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도 전에 내쫓았을 테니까.
"죄송합니다... 말씀대로 제가 흥분했습니다. 하지만 로레오스 교수님... 아니, 여기 계신 모두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쾅─!
다시 한번 책상을 내리친 모리어티 교수의 손가락이 나를 가리켰다.
"이건 전부 유진 칼리오페의 연극이라는 걸!"
"...."
"...."
"제국을 멸망시킬 재앙? '퍼져나가는 악몽'? 좋습니다. 만일 이런 재앙이 정말로 발생한다면 당연히 휴교령을 내리고 교수들도 나가서 싸워야겠죠. 저도 가장 앞장서서 학생들을 지킬 것입니다."
저것이 단순히 흥분해서 한 말이 아니라는 걸 여기서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나는 몇 번이고 모리어티가 학생들을 위해 몸을 던져 죽는 걸 봤으니까.
"하지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애초에 이 모든 일이 어떠한 증거도 없이 반드시 벌어질 걸 전제로 적혀져 있다는 걸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 겁니까?"
"... 모리어티 교수님께서는 제가 고작 장난이나 치자고 이런 짓을 벌인 것 같습니까?"
"그래, 그렇게 보이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것이 정치적 시위라고 보네."
"... 시위 말입니까?"
"모르는 척하지 말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종말론에도 자네의 한 마디면 황실의 군대와 카르네아의 교수, 그리고 학생들까지 전부 움직일 수 있다는...!! 자네의 권력이 황권 위에 있음을 과시하고 싶은 게 아닌가!!"
"...."
인정하기는 싫지만 모리어티 교수의 말은 지극히 정론이었다.
나와 루시아, 백소소는 직접 경험해봤기에 반드시 일어날 것을 알고 있지만...
삼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퍼져나가는 악몽'은 지금까지 수없이 등장한 종말론과 다름없다.
모리어티 뿐만이 아니라 길가에 들려오는 소문으로도 내가 권력을 보여주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다는 말이 많다.
... 그렇다고 해서 재앙이 다가온다는 걸 증명 할 방법도 없었다.
'이건 모르면 죽어야지 같은 불합리한 공격이니까...'
'되살아난 타락'이나 '일그러진 욕망'과는 달리 '퍼져나가는 악몽' 미리 알고 있지 않은 이상 대처 자체가 불가능하단 말이다.
'... 그래도 아직 패는 남았다.'
이때를 대비해서 우리가 그동안 밤잠을 줄여가며 설득할 준비를 해온 거 아닌가.
"저를 못 믿으시겠다면... 그럼, 여신교의 예언이라면 어떻습니까?"
"... 뭐?"
"모리어티 교수님은 여신교의 독실한 신자라도 들었습니다..."
스윽─
내가 품 안에서 여신교의 인장이 찍힌 두루마리를 꺼내며 입꼬리를 올렸다.
"... 자, 여기 여신교의 에서 직접 보내온 재앙의 출현에 관한 예언과 협력 요청 공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