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32 - 뱀은 정력에 좋아 (1)
윤기 넘치는 검은 머리카락과 새하얀 피부, 그리고 반짝이는 붉은 눈동자.
남자 기숙사 1층에 달린 거울 앞에서 얼굴을 확인한 백소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완벽하옵니다!"
서방님의 부름에 급히 달려왔지만, 남편에게는 언제 어디서나 완벽한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내로서의 기본 소양이 아니겠는가.
"... 으엑."
그때 등 뒤에서 들린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자신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귀여운 외모의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비앙카?"
"... 야, 너가 여기 왜 있냐?"
"그건 소녀가 묻고 싶은 말이옵니다. 비앙카야 말로 남자 기숙사에는 무슨 일이옵니까...?"
"나... 나는... 그냥.. 볼일이 있어서."
비앙카가 남자 기숙사에 볼일이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하나뿐이었다.
"... 혹시 서방님이 불렀사옵니까?"
"하아... 역시 너도?"
"... 그렇사옵니다."
"유진 그 새끼... 나만 부른 게 아니었네... 미... 미친새끼.. 두 명이나 불러서 뭘 어쩌겠다고..."
음란한 상상이라도 했는지 얼굴을 붉힌 채 입술을 꽉 깨문 비앙카.
서방님이 소녀만 부르지 않은 건 살짝 아쉬웠지만, 눈앞에 첩실에게 정실다운 여유를 보여줘야 했다.
"... 비앙카... 이런 대낮에 뭘 기대한 것이옵니까?"
"기대하기는 뭘 기대해! 그냥 부르니까 온 거지!"
"... 흐음?"
그러자 백소소가 아무 말 없이 다가가서 비앙카의 치마를 뒤집어 버렸다.
펄럭─!
비앙카의 작은 가슴에는 어울리지 않는 젖소 무늬의 야한 끈 팬티.
"....?"
"이런 음란한 속옷까지 입어놓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는 말이옵니까?"
"이... 이거... 미친년 아니야!! 갑자기 치마는 왜 뒤집는데!!"
소리를 빽 지른 비앙카가 치마를 벗기려고 하자 백소소가 휙 물러났다.
"아니 되옵니다. 소녀의 몸은 전부 서방님 것이옵니다. 아무리 동성이라도 할지라도 함부로 손댈 수는 없사옵니다."
"씨발! 그럼 나는!"
"소녀가 그것까지 알아야 하옵니까?"
"넌 진짜 잡히면 뒤졌어!"
"후훗! 그럼 안 잡히면 되는 것 아니 옵니까!"
쫓아오는 비앙카를 따돌리며, 재빨리 계단을 올라 유진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서방님! 소녀가 왔사옵.... 니다..?"
"하읍... 쪼옵... ♥"
백소소의 눈에 루시아가 입으로 유진에게 포도를 먹여주는 모습이 보였다.
"... 루... 시아. 지금... 서방님의 방에서 뭘 하고 있사옵니까?"
조금 전까지 장난기 넘치던 백소소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다른 여자들이야 천 명을 가져다 놓아도 서방님을 빼앗기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루시아만큼은 주의할 대상이다.
"... 쫍♥ 보면 모르겠어? 주인님께 과일을 먹여드리고 있잖아."
"그러니까 왜 여기서... 하, 됐사옵니다. 그보다 이제는 괜찮은지 모르겠사옵니다."
"뭐가 말이야?"
"모르는 척하는 것이옵니까? 얼마 전에는 첩실답게 정실인 소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도망치지 않았사옵니까?"
"아... 그래, 네가 정실이라는 건 인정 할 수 없지만... 뭐, 그랬었던 적도 있었네."
뭔가 이상했다.
지난번에는 살짝 도발했다고 발끈하던 루시아가 갑자기 확 성장한 것만 같았다.
"당신... 뭔가 변했사옵니다."
"... 후후훗, 뭐 그럴만한 일이 있었으니까."
백소소를 위아래로 슥 훑은 루시아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물론... 너는 절대로 모르겠지만. 훗."
여유가 넘치는 그 모습에 백소소가 눈을 크게 떴다.
"... 다... 당신!!"
"주인님 앞에서 경박하게 소리치기는... 그럼, 주인님. 방해꾼이 왔으니까 루시아는 나중에 다시 올게요. 사랑해요."
쪽─
그 말을 끝으로 내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방으로 나선 루시아.
뭐랄까.... 이제는 침대 위를 제외하고는 루시아를 이길 수 없어진 느낌이다.
"...."
루시아가 떠나고, 잠깐 굳어 있던 백소소가 소리쳤다.
"서... 서방님..! 루... 루시아...! 저년이... 소... 소녀를... 비웃었..!!"
루시아의 이런 대응은 처음 당해본 듯 상당히 당황해하는 백소소의 모습이 또 새롭다.
"소소야. 진정해."
"그... 그치만...! 저... 정실은 소녀인데...!! 루... 루시아가!! 자... 자기가 정실인 것 처럼!!"
소소가 정실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나는 정실 같은 건 만들 생각도 없다.
내 여자라면 다 평등하게 사랑할 거니까.
"야, 그래서 왜 부른 건데. 루시아랑 꽁냥대는거 보여주려고?"
그때, 상당히 화가 난 것 같은 목소리로 비앙카가 말했다.
하긴 내가 비앙카의 입장이었어도 화가 났을 것 같았다.
"아뇨, 베를리오즈님이 우리 세 명이 함께 와달라고 해서요."
"... 어? 뭐야? 스승님이 돌아왔어?"
그러자 처음 듣는다는 듯 비앙카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직 인사 안 했어요? 그저께 저랑 같이 돌아왔는데."
당연히 비앙카에게 인사 정도는 했을 거로 생각했는데.
"안했어... 쯧... 뭘 하길래 돌아왔는데 말도 안하냐."
그러자 비앙카가 서운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민다.
"음... 아마 비앙카가 먼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나 봐요."
"... 지랄. 짜증 나니까 내 남자가 스승님 편들지 마."
"무슨 소리에요. 저는 항상 비앙카 편인데요."
"또 말 만 잘한다..."
내가 툴툴거리는 비앙카를 끌어당겨 안아줬다.
"... 이거.. 놔."
놓으라면서 몸에 힘은 전혀 주지 않는 모습이 비앙카의 매력이다.
"싫어요. 안 놔요."
"... 서방님. 소녀도 안아주시옵서서..."
"그래. 소소도 이리 와요."
왼쪽 허벅지에는 소소를 오른쪽에는 비앙카를 앉힌 채 껴안는다.
유난히 체구가 작은 둘이라 그런지 두 명이나 안고 있는데도 품 안에 쏙 들어온다.
"...."
"...."
그렇게 잠시 후.
"그럼 슬슬 갈까요?"
둘이 진정된 것 같아서 내가 말하자, 품에 얼굴을 묻은 비앙카가 작게 속삭였다.
"... 5분만 더."
**
"요물이로다."
바닥에 내려놓은 쪽쪽이를 베를리오즈가 팔짱을 낀 채 진지한 표정으로 노려다 보았다.
진짜 조금만 가지고 놀 생각이었는데, 정신을 차리니까 또 하루가 지나가 있었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
정말 자위에 미쳐버린 변태가 돼버리고 만다.
"이런 건 부셔버려야....!!"
손을 치켜들었던 베를리오즈가 다시 천천히 내렸다.
절대 아까워서가 아니다.
친구가 선물로 준 걸 함부로 부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역시.... 봉인이 낫겠구나."
곧바로 상자에 쪽쪽이를 넣고 튼튼한 밧줄로 둘둘 감는다.
꽈악─!
그렇게 몇 번이고 밧줄로 감아대니 이제 밧줄에 파묻혀 상자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는다.
"그럼 이제 이걸 묻어야하는데... 어디에 묻을고...."
사람들 손이 닿지 않으면서도, 원한다면 언제든지 꺼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움찔─ 움찔─
하지만... 쪽쪽이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고 있자 또 아래쪽이 근질거린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 인사를 못 했는데..."
마지막으로 딱 1번만 더 쓰자는 생각으로 밧줄을 풀려던 순간.
"스승님! 안에 있죠!! 나와요!!"
하나뿐인 제자의 목소리에 베를리오즈가 혀를 찼다.
"때를 못 맞추는구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돌아온 뒤로 종일 자위만 하고 있었으니 맞출 때가 없었을 것이다.
철컥─
베를리오즈가 문을 열자 유진과 비앙카.... 그리고 백소소가 보였다.
"....."
백소소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찬찬히 백소소의 얼굴을 뜯어본 베를리오즈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하나였다.
'... 닮았다.'
외모부터 시작해서 체형, 분위기까지 모든 것이 그 아이와 너무 닮았다.
베를리오즈가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 제자야."
"... 응."
"수련하던 숲에 가서 기다리거라... 곧 가마."
***
얼마 뒤, 옷을 갈아입고 숲에 도착한 베를리오즈는 백소소에게 물었다.
"아이야. 본녀가 누구인지 아느냐?"
"비앙카의 스승님인건 알고 있사옵니다."
"그럼 본녀가 너희를 왜 불렀는지도 아느냐?"
"... 강신의 전수를 위해서가 아니 옵니까?"
"틀렸다."
베를리오즈가 고개를 저었다.
"유진 저 아이에게 강신을 전수하려는 건 맞지만... 널 부른 이유는 전수를 위해서가 아닌, 포기하라는 설득을 위해서다."
"... 어째서 소녀는 안되는 것이옵니까?"
백소소의 물음에 베를리오즈는 긴 숨을 내쉬었다.
"먼저 말해두마. 본녀는 네 조상의 스승이기도 하다."
"조상이라 하시옴은..."
"... 아스란에서는 흑사(黑蛇)라고 불리는 그 아이다."
흑사라는 말을 듣자마자 백소소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네가 본녀를 원망하는 것은 이해한다. 본녀가 강신을 가르치지 않았더라면 그 아이가 그리 사람을 죽일일도... 흑사가 될 일도 없었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고통받았을 리도 없었다."
"소녀는 원망하지 않사옵니다."
"... 뭐라?"
"강신은 도구일 뿐이옵니다. 살인귀가 검을 휘둘렀다고 해서 무기상을 증오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 옵니까? 이것도 마찬가지 옵니다. 흑사 때문에 소녀가 가문에서 괴로웠던 것은 사실이오나..."
거기까지 말한 백소소가 유진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그 시절이 있었기에 소녀는 서방님을 만날 수 있었으니 버릴 수는 없는 기억이옵니다."
"... 그럼 아이야. 본녀가 묻겠다. 네가 품은 감정 중 가장 짙은 건 무엇이고?"
"사랑이옵니다."
한치에 망설임 없는 백소소의 모습에 베를리오즈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기에 본녀는 더욱 너를 가르칠 수 없다. 너는 강신을 도구라고 말했지만... 강신은 단순히 도구로 취급될만한 기술이 아니다."
베를리오즈가 턱 끝으로 비앙카를 가리켰다.
"본녀가 제자를 비교적 자유롭게 놔두는 건, 저 아이의 '재능'과 '견신'과 '살기' 셋 모두 지극히 구조가 단순하기 때문이다."
"... 그거 칭찬이야 욕이야."
"칭찬이다. 단순한 감정이라는 건, 그만큼 연료로 사용하기 좋은 감정이라는 뜻이니까."
몇 번째인지 모르는 한숨을 내쉰 베를리오즈가 말을 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살의는 눈앞의 적을 죽이면 끝이다. 하지만 사랑은? 사랑의 끝이 무엇이더냐? 혼약을 맺으면? 교접을 하면? 아이를 낳으면? ...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폭주를 하게 되면 그 끝을 알 수 없는 게 사랑이다."
눈을 감은 베를르오즈의 앞에 마을의 인간들은 산채로 박제하던 흑사의 얼굴이 떠오른다.
"... 상관 없사옵니다. 설령 목숨이 위험할지라도 소녀는 힘이 필요하옵니다."
"이해할 수가 없구나.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다. 너는 이미 충분할 정도로 힘을 지녔다. 그 이상은 과욕이란 말이다."
유진이 범재, 비앙카가 영재라면 백소소는 두말할 것 없이 천재다.
명백히 선택받은 쪽의 인간이란 말이다.
굳이 강신을 배우지 않더라도 더욱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 욕심을 부리지 않고는 서방님을 지킬 수 없사옵니다. 소녀는 두 번 다시 서방님을 잃지 않을 것이옵니다."
귀기(鬼氣)마저 느껴지는 말에 베를리오즈는 백소소가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을 느꼈다.
애초에 몰랐다면 모를까 강신의 존재를 확인한 이상, 어떻게든 배울 방법을 찾아내겠지.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범위에서 폭주할 바에는....
"... 그렇다면 알겠다. 네게 강신을 가르쳐주마."
"정말이옵니까! 소녀 진심으로 감사하옵..."
"다만..."
백소소의 말을 끊은 베를리오즈의 동공이 세로로 갈라졌다.
"만약 네가 폭주한다면 본녀는 죽여서라도 막겠다."
"... 그러사옵소서. 서방님을 지킬 수 없다면 소녀의 목숨 따위 상관없사.."
"안돼요."
그때, 지금까지 아무 말 하지 않고 듣고 있던 유진이 입을 열었다.
"절대로 안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