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307화 (307/354)

Chapter 307 - 루시아 우르엘라 (10)

11회차, 입학식 9년 전.

"아..."

눈을 뜨는 순간 알았다.

이 회귀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아마도 다음이 마지막...'

한때는 저주처럼 느껴졌던 회귀였지만, 지금은 회귀가 끝나는 것이 두렵다.

'어떻게...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세계를 구할 수 있을까.

아니, 어떻게 해야 유진이를 구할 수 있을까.

'... 양보하지 마십시오.'

눈을 감고 고민하는 동안 백소소의 유언이 계속해서 귓가에 반복된다.

"...."

양보하지 않아도 된다면 유진을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내가 유진이를 독점했을 때 항상 결과는 최악이었....

"....!!"

아니었다.

내가 유진이를 독점하고도 최고의 결과를 낸 회차가 있었다.

'... 1회차!'

지금까지는 의식적으로 1회차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지난 10번의 회귀 동안 정말 많은 것을 시도했지만, 1회차만큼의 성과를 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1회차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간다면...

적어도 1회차처럼 최종보스의 봉인에는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아무리 상황을 조절한다고 한들 1회차 때와 완벽하게 동일하게 진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설령 기적이 일어나 똑같이 재현했다고 해도 결국 세계의 멸망이 잠시 유예될 뿐이다.

하지만...!

'비비안, 비앙카, 릴리스, 마르잔...'

지금의 내게는 1회차 때 부족했던 걸 보충해줄 사람들이 있었다.

유진이와 그녀들의 힘이 더해진다면, 최종보스를 봉인하는 것이 아니라 쓰러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문제는 어떻게 1회차를 재현하느냐.'

알다시피 1회차의 유진과 그 이외의 유진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그러니 계획을 세워야 했다.

유진이를 나의 주인님으로 만들 계획을.

'... 하지만.'

이제 내게 남은 회귀는 1번 뿐.

아무리 나라고 해도 1회차의 재현을 단숨에 할 수는 없었다.

1회차의 재현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번 회차를 포기하고서 철저히 준비를 해야했다.

"....."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나는 결심했다.

마지막 회차에 모든 것을 걸기로.

***

"흐읏... ♥"

1회차가 끝난 뒤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다행스럽게도 뛰어난 두뇌는 기억을 조금씩 되살릴 수 있었다.

"... 흐아읏... 하으... 하... ♥"

한 번 봉인해두었던 기억을 꺼내니 육체는 욕망에 솔직해졌다.

"흐앗... ♥... 흐엣..!"

그렇게 매일 밤, 홀로 연습했다.

어떻게 해야 유진이를 유혹할 수 있는지 철저하게 고민하며 내 몸을 그것에 맞춰 조교 했다.

그리고...

마지막 회차가 시작되었다.

***

12회차, 입학식 10년 전.

느껴졌다.

나의 회귀가 끝났다는 걸.

'... 마지막 기회.'

11회차의 세워두었던 완벽한 묘책을 실행했다.

가장 먼저 칼리오페 가문에 편지를 보냈다.

만에 하나 유진의 영혼이 예상보다 일찍 돌아오더라도 다른 곳으로 도망칠 수 없도록 기정사실을 만든 것이다.

그 뒤로는 마르잔을 개미굴에서 데려오고, 파르테논에 조금씩 카르네아에 대한 긍정적 소문을 흘려 릴리스의 관심을 끌게 하고...

무엇보다 내 몸을 철저하게 조교 했다.

이렇게 탑을 쌓아 올리듯 하나하나 준비한 끝에 입학식이 시작되었다.

***

"영광스러운 카르네아 아카데미의 일원으로서... 읏...!"

단상에 올라 연설을 하던 도중 유진과 시선이 마주치자 가볍게 가버렸다.

'... 흐으읏...! ♥'

아무리 진동석을 넣어놨다지만, 시선만으로도 가버리다니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유진 칼리오페... 저를 따라오세요."

입학식이 끝난 뒤 유진이를 방안에 불러들인 순간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였다.

".. 흐윽... 죄, 죄송해여어. 주, 주인님... 흑.. 육.. 변기는.. 이러면.. 안대는데.. 더는 못참겠어여."

"내 허락 없이 제멋대로 발정하지마라. 멍청한 년."

그러자 예상했던 대로 주인님을 연기하는 유진.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복종하고 싶어진다.

"발에 입을 맞추며 네년이 쓰레기 같은 존재인 걸 다시 상기해라."

"네.. 네엣..."

유진의 명령에 따라 그의 발끝에 입을 맞추는 순간..

쪼르륵─

나는 오줌을 지리며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

예상보다 육체의 조교가 너무 잘 되어버렸지만....

어쨌거나 유진이를 나의 주인님으로 만드는 건 성공적이었다.

그 뒤로도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었다.

유진이를 조심스럽게 유도해 비비안을 손에 넣게 했고, 비앙카를 조교 하게 만들었으며, 릴리스가 카르네아로 전학 오게 했다.

물론, 가르시아나 레이카... 심지어는 리아나마저 유진이의 여자가 되어버리는 건 전혀 계획에 없었던 일이지만, 그래도 유진이를 지키는 방패이자 검이 될 여자들이라 생각하니 간신히 견딜 만했다.

그러나...

백소소가 나타났을 때는 무언가 달랐다.

지금까지 유진이가 어떤 여자를 관계를 맺어도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회귀라는 나만의 특별한 인연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백소소 역시 회귀의 기억이 있다는 사실을 알자, 더는 유진이에게 내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게 될까 두려워 견딜 수가 없었다.

'... 나는 네가 알고 있는 '나'에 대한 기억이 없다.'

허나, 두려워하던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유진이 역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도망치지 않고 내게 먼저 다가와 자신의 두려움을 보여주었다.

나는 용기를 내준 유진이를 향해 깊게 감사하며,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주인님... 아니... 유진아. 이게 내가 지금까지 너에게 숨겨 온 이야기야."

"...."

루시아의 긴 고백이 끝나고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 저건 나다.'

루시아와 함께한 유진 칼리오페는 '플레이어'의 내가 아닌, 이곳에 있는 '유진 칼리오페'였다.

나는 겁쟁이다.

만약에 루시아의 노력 없이 이 세계에 떨어졌다면, 분명 루시아를 보고서 도망쳤겠지.

당연했다.

지금까지 '아카조교사'의 세계관에서 루시아를 조교 하기 위해서 수도 없이 배드엔딩을 봤으니까.

루시아를 조교 하기 위해서 하나뿐인 목숨을 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세계가 멸망하건 말건, 시선을 돌린 채 하루라도 더 살아남기 위해 계획을 세웠겠지.

나는 어설프다.

하지만 어설픈 나는 시선을 돌리기로 했으면서도 당장 눈앞에서 고통받는 비비안을 무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는 결국 비비안에게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그 후, 운이 좋다면 루시아의 말대로 비비안과 연인이 됐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리석다.

그리고 뒤늦게 깨달았을 것이다.

결국, 나는 이 세계를 구해내야 한다는 걸.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비비안을 지키기 위해서.

그때부터가 루시아가 말한 2회차의 나처럼 목숨을 걸고 세계를 구하기 위해 어떻게든 발버둥을 쳤겠지.

그 뒤의 회차도 마찬가지였다.

루시아의 회귀라는 나비 효과 때문에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결국 내가 선택했을 일이었다.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내 안에 있는 수많은 시체와 창에 꿰뚫린 여인이 그것을 증명했으니까.

"하... 하핫..."

문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생각보다 나라는 인간은 괜찮은 인간이었다.

「영웅의 자질을 가진 자」 처음 이 칭호를 상태창에서 봤을 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내게 걸맞지 않은 과분한 칭호라 생각했다.

나는 결코 영웅이 될 수도, 영웅이 되기도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틀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나는 영웅이 될 수 있었다.

저벅- 내가 루시아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모든 것이 끝나고 전하려고 했다."

세계를 구하지 못한다면 결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만일 내가 먼저 죽는다면, 나의 말은 저주가 되어 루시아를 구속하리라 여겼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건 맹세였다.

"사랑한다."

"... 아?"

반드시 너를 지키고 이 세계를 구하겠다는 맹세.

"너를 사랑한다. 루시아 우르엘라."

".... 아... 아...."

루시아의 입술이 떨린다.

뺨이 붉게 달아오르고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어디 눈물뿐이던가, 훌쩍이며 삼키고 있지만, 콧물마저 흘러나온다.

루시아에게 있어서는 태어나서 가장 못생긴 얼굴로.

... 하지만 내게는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얼굴로 루시아가 말했다.

"저... 저도... 사랑해요... 유진... 칼리오페...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당신을... 사랑해요.."

나는 루시아를 들고 껴안은 채, 숨이 막힐 때까지 입을 맞췄다.

***

"... 아마도 회귀를 공유하는 게 열쇠일 거예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회귀의 사실을 누군가에게 알릴 때마다 커다란 틀이 바뀌었으니까.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루시아, 너는 어떻게... 아니, 왜 회귀를 하는 거지?"

그 질문에 루시아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 모르겠어요. 시간이 생길 때마다 알아보려고 노력은 했지만... 결국 알아내지 못했어요. 주인님."

뭐, 알고 있었다면 진작 말해줬을 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그런데 루시아."

"네, 주인님."

"언제까지 주인님이라고 부를 생각이야?"

"... 아."

더 이상 루시아와 나는 노예와 주인을 연기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꼬옥-

그러자 루시아가 내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지금은... 주인님이라고 부르는게 편해서요... 안돼나요?"

... 안될 리가 있나.

루시아 같은 여자에게 주인님이라고 불리는 건 모든 남자의 로망과도 같은 일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주인님으로 부르라고 하기에는 양심에 찔렸기에 살짝 돌려 말했다.

"뭐, 천천히 고쳐가자."

"네... 주인님.."

조심스럽게 웃는 루시아 모습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 어찌됐건 이번 회차가 지금까지 중에서 상황은 가장 좋은 편이네."

"네, 지금껏 없었을 정도로 좋아요."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몇 번이고 고난은 있었다지만, 누구하나 잃지 않았다.

'... 최종보스를 제외하고 앞으로 남은 재앙은 '퍼져나가는 악몽' 하나뿐.'

그마저도 이미 철저하게 대비책을 세워놓은 상황이다.

"이제 기한 안에 트리스티아가 인챈트만 완성하면 되네."

"... 그러게요."

인챈트의 이야기를 꺼내자 갑자기 루시아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 아니요."

"있는 거 같은데..."

계속되는 추궁에 루시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 아요."

"뭐라고?"

"... 트리스티아가 주인님의 처음을 가져갔잖아요."

"아...."

"제가 그렇게 유혹했는데... 절대로 손을 안대놓고서... 트리스티아는 한 번에 가져가고...."

그때는 루시아와 관계를 맺으면 빨려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미안해."

"... 사과할 필요는 없어요. 이미 지난 일이니까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여전히 입술을 내밀고 있는 루시아.

나는 그런 루시아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그럼 루시아,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 있으니까...?"

"그러니까..."

"...."

"...."

시선을 마주치자 끈적하게 달아오르는 분위기.

더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나와 루시아가 옷을 벗으며 입술을 맞췄다.

"하아.. 하아... ♥.. 주... 주인님... ♥.. 저... 오늘은... 마... 많이... 하고.. 싶어요.. 자... 잔뜩... 참았으니까..."

루시아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얼마든지 하자."

"... 어... 얼마든지요? 저... 정말이요?"

"... 그래, 얼마든지. 다른 건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네가 만족할 때까지 계속하자."

뚝─

그때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님이... 나쁜거에요."

"...?"

이어서 루시아가 뭔가를 중얼거리더니, 나를 침대에 밀치고 위로 올라왔다.

"하아! 하아! 하아! ♥... 그... 그동안!!... 자... 잔뜩 참고 있는데!!.... 얼마든지 해도 된다고 하니까....!! ♥"

루시아의 눈이 무섭다.

마치 먹이를 앞에 둔, 몇 달 굶은 육식동물 같다고 해야 할까.

"루... 시아? 자..... 잠깐만... 기달....."

"... 싫어요! 못 기다려요!!!"

내 위에 올라탄 루시아가 눈을 감고 양팔을 벌린다.

화아아아아아악─!!!

이윽고 막대한 마력이 루시아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

처음 보는 마법이라 용도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정도 마력이 사용되는 걸 보면 최상위의 마법인 게 분명했다.

잠시 후, 마력이 고갈됐는지 루시아가 내게 쓰러지듯 몸을 기댔다.

"하아... 하아... 성공... 했네요."

"루시아, 지금... 뭘 한거야?"

"마법을 사용했어요."

"아니... 그건 아는데. 어떤 마법을..."

그러자 입술을 야릇하게 핥은 루시아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 100번 사정하지 않으면 방에서 못 나가는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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