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04 - 루시아 우르엘라 (7)
"케흐엑!!.... 흐우엑!... 우에엑..!!"
겨우 진정시켰다고 생각했더니 피와 내장 조각이 뒤섞인 무언가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
한 번의 사용으로도 영혼이 더럽혀지는 흑마법을 그렇게나 사용했으니 살아있는 게 운이 좋다고 여겨야 했다.
그리고 처음 이 길을 걷기로 했을 때부터 오래 사는 건 기대하지 않는다.
단지 유진이가 이 세계를 해피엔딩을 보는 그 순간까지만 견뎌주면 된다.
".... 하아."
저벅-저벅-
비틀거리는 몸을 겨우 진정시키고 골목길의 좀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악취가 코를 찔렀다.
"....."
제국의 가장 어두운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장소.
늘어나는 빈민가의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무분별한 확장을 계속한 끝에, 그 모습이 마치 개미굴과 같아서 개미굴이라 불리는 곳이다.
개미굴에서는 제국의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납치, 살인, 강간 따위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곳.
스윽─
아무리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다지만, 여자라는 걸 감출 수준은 아니었으니 얼마 걷지 않아 순식간에 둘러싸였다.
"아가씨... 이런 곳에 혼자 오면 안 되지."
앞에서 칼을 빙글 돌리며 다가오는 남자.
"... 그래... 이.. 이.. 아저씨들이랑 놀자고."
그리고 뒤를 막아서는 또 한 명의 남자.
그 외에도 골목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튀어나온다.
"크하하하... 그런 몸이 망토로 가린다고 숨겨지겠어?"
"아니, 일부러 대주려고 들어온 거 아니야?"
"하하하! 그럴지도 모르지 오랜만에 가랑이 종기에서 고름 좀 빼겠네."
"...."
대답할 가치도 없는 버러지의 말.
그것에 대해서 오해를 했는지 무리는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
"하하하! 저것봐 무서워서 말도 못 하나 보네!"
"그렇게 얌전히 있으면 죽이지는 않으마."
스윽─
"...."
"...."
내가 망토를 벗자 제멋대로 떠들어대던 무리가 일순간에 입을 다물었다.
이런 곳에서 말하기는 그렇지만, 나는 흔치 않은 외모다.
저들도 곧 내 신분을 눈치채겠지.
그러자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는지 떠들기 시작한다.
"... 야... 저건... 아무리 봐도.. 웬만한... 귀족은.. 아닌데..."
"나... 나..... 누군지... 알아!... 루... 루시아 우르엘라야...!!"
"... 루시아 우르엘라라면 제국의 달?"
"아.. 안돼!! 우... 우르엘라 가문을 잘못 건들였다가는... 아무리 개미굴이라고 해도..!!"
"다들 입 다물어!!"
동요가 퍼져나가자 무리 중 가장 덩치가 좋은 한 남자가 소리쳤다.
"... 우르엘라의 공녀가 수행원도 없이 개미굴에 혼자 찾아온 걸 보니... 아무래도 황녀를 살해했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보군."
"...."
황성에서 탈출한 지 겨우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여기까지 소문이 퍼진 모양이다.
"크하하하!! 오히려 잘됐어. 황족살해자라면 우리가 손을 대도 우르엘라 가문의 뒷감당 할 필요 없다는 거 아니야! 다들 뭐해! 덮쳐!!"
"그래! 우리가 언제 저런 년을 먹어보겠어! 얼굴이랑 몸매는 죽이니까 적당히 돌려먹다가 황실에 팔아먹으...."
퍼억─
추잡한 말을 지껄이던 남자의 머리가 토마토처럼 터졌다.
"...?"
퍼억─ 퍼억─ 퍼억─
이윽고 나를 둘러싸고 있던 인간들의 머리가 연속해서 터져나간다.
"... 히... 히익...!!.. 고... 괴물이야!!"
"무리야... 우리가... 우르엘라를 마법사를 어떻게 이겨!!"
몇 명이 죽고 나자 혼비백산하여 도망가는 사람들.
"도망치지 마라!!!"
"아... 아알았서... 제.. 제발..!.. 하... 하지... 끄아아아아아악!"
부우욱-!
그러자 도망치려던 사람을 잡은 대장은 맨손으로 복부를 찢더니 쏟아져 나오는 내장을 입으로 물어 뜯었다.
"퉷, 도망치는 새끼는 내 손으로 직접 죽여주마!!"
대장의 잔혹한 모습에 무리가 다시 나를 향해 검을 겨눈다.
"그... 그래... 그래봤자 상대는 하나야!!... 죽여!!"
"어차피 도망치면 죽느거 다 같이 달려들어 죽여버려..!!"
달빛에 모여드는 벌레처럼, 내게 달려드는 인간들을 보며 경멸이 솟았다.
하찮다.
지금까지 나의 적들은 세계를 멸하는 재앙들이었다.
그들과 비교하면 이들은... 싸워야 할 상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차라리 다 같이 저 남자를 죽이고 도망쳤다면 조금라도 생존 가능성이 올라갔을 텐데.'
벌레가 아무리 날갯짓을 한다고 한들...
달에는 닿을 리가 없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하룻밤.
내가 개미굴의 새로운 왕이 되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
입학식 2년 전.
"보스."
얼굴 반쪽을 갈색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있는 여인이 말이 걸었다.
지금이야 머리를 기르고 있었지만,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는 머리를 완전히 민 상태였다.
그녀의 이름은 마르잔.
내가 학살의 날, 구해낸 아이였다.
개미굴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얼굴에 끓는 기름을 부은 불쌍한 아이.
폭력과 공포로 길들인 이 개미굴에서 거의 유일하게 내게 진짜 충성심을 바치는 아이였다.
"정말... 괜찮겠어요?"
"...."
마르잔을 물음에 나는 말 없이 눈을 바라보았다.
".. 왜... 이런짓을... 하는.. 건가요... 보스는... 그런사람이 아니잖아요...."
"뭐가 아니라는 거지?"
그러자 마르잔이 주먹을 쥔 채 말을 뱉어냈다.
"... 보스가 그 자리에 오르고 난 뒤로 개미굴에도 최소한 규칙이 생겼습니다. 아직 바깥과 비교하면 멀었지만... 하지만 적어도 눈먼 칼에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요. 보스는... 이런 쓰레기 같은 곳의 주민들조차 구해주..."
"그래서..."
내가 마르잔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그래서 저보고 어쩌라는 건가요? 당신이 애원하니까 그만두라고요?"
"... 아니요. 제 목숨은 보스의 것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따를 겁니다. 하지만 보스의 손에 많은 피를 묻히게 될 거에요.."
"이미 피라면 잔뜩 묻었어요. 제가 당신을 거둔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 못 해요?"
"그 자식들은 죽어도 되는 쓰레기였습니다! 하지만... 이건 다르지 않습니까!"
마르잔이 말하고자 하는 건 안다.
지금까지 내 손에 잔뜩 피를 묻혔지만, 그들은 악인이거나 나를 죽이려는 적이었다.
단 한 번도 죄 없는 일반인을 죽인 적은 없었다.
....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다.
일어날지도 모르는 재앙을 막기 위해 몇 개의 마을을 통째로 몰살시키는 거니까.
"착각하지 마요. 마르잔. 제가 이곳에 규칙을 세운 건. 단지 그게 관리하게 편하기 때문이에요. 반대로 마을을 다 죽이는 게 편하기 때문이고요."
"보스..."
".... 제 선택에 따르지 못하겠으면 닥치고 떠나세요. 그동안의 충성을 봐서 몇 푼 정도는 던져줄 테니까."
차라리 마르잔이 떠나주기를 바라고 한 말.
하지만 마르잔은 천천히 그리고 아련하게 웃었다.
"보스의 말뜻은 알겠지만... 그리 말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보스께서 가시는 길이라면 저 역시 지옥까지라도 따라갈 거니까요."
"...."
어리석은 아이.
너야말로 이런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너는 나와 같이 지옥에 떨어질 필요가 없는데.
솟아나는 슬픔과 죄책감을 뒤로하고 나는 말했다.
"그럼... 출발하죠."
"... 알겠습니다."
마르잔의 말과 같이 나는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겠지.
그래도 지옥에 떨어지는 것으로 유진이를 구할 수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악마가 될 수 있다.
**
입학식 1년 후.
눈을 감으면 내가 죽인 이들의 저주와 비명이 들린다.
그동안 피와 죽음으로 유진이 걸어갈 길을 닦아놓았다.
그러면서도 모든 공은 유진이 가져갈 수 있도록 나는 어둠 속에서 철저히 숨어 있었다.
유진 칼리오페는 이 세계의 희망의 별이 되어야 했으니까.
화려하게 빛나는 그는 이 더러운 이쪽 세계를 볼 필요가 없었다.
그날도 그랬다.
유진이 오기 전에 재빨리 자리를 정리하고 떠날 생각이었다.
"... 잠깐."
"....!!"
겨우 그의 목소리를 한 번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술렁거린다.
내 앞을 가로막은 유진이 말했다.
".... 당신이지...?... 루시아... 우르엘라.."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 의심을 하고 있었지만... 당신이 여기에 있는 걸 보니 확실한거 같네... 내 주변에 벌어진 일들... 전부 당신이 한 일이었어."
처음에는 모르는 척하려고 했지만, 확신을 하는 유진의 눈빛에 나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웃었다.
"그래, 나다."
괴물 취급을 당할까.
아니면, 살인자라고 비난을 당할까.
처음부터 각오한 일이었지만, 유진의 차가운 시선과 말을 받을 생각에 너무나 두렵다.
하지만 유진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미안하다..."
"... 뭐?"
"... 내가.... 너무... 늦게 눈치챘어.... 너에게만 그런 무거운 짐을 지게해서... 미안하다."
"지금 무... 슨... 소리를... 하는거야?... 나는... 그냥 살인자야!!"
"그래... 알고 있어... 분명... 너는 잘못된 선택을 했어... 하지만... 나는 어째서 네가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고 있다.."
두근─
유진이 건넨 건 위로였지만, 어째서인지 비난받는 것 이상으로 심장이 괴로웠다.
하지만 여기서 인정해서는 안된다.
만일 인정해버리면 유진이는 분명 자책 할테니까.
"... 헛소리 집어치워! 내가 지금까지 저지른 일들은단지 그게 편했기 때문이야!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 아는 척 하지....!!"
"... 루시아."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 유진이 말했다.
"더는 혼자 괴로워 하지마라... 앞으로는 나도 함께 죄를 짊어지겠다."
"...."
그 말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도망쳤다.
휙-
조금이라도 더 보고 있다면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기에.
"보스. 괜찮으세요?"
"... 괜찮아. 그보다 아무도 근처에 못오게 해."
"네... 알겠습니다."
철컥─
방 안에 들어간 나는 문에 등을 기댄 채 홀로 주저앉아 울었다.
".. 끄흑.... 흐윽.... 끄윽.... 유진.... 아.. 유.. 진.. 흐윽... 아....."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유진이는 나를 알아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더럽혀진 영혼이 구원받은 느낌이 들었다.
***
입학식 2년 후, 재앙대책 위원회.
재앙의 힘이 점점 강해졌기에 더는 정체를 감추고 활동하는 건 무리였다.
"... 살인마년.."
"황녀 살해자.."
"패륜아..."
"..."
나를 향해 비난하는 사람들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들의 말대로 나는 살인마였으니까.
"감히... 뻔뻔하게도 얼굴을 들고 걸어오네."
"...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 뭐?"
"이 안에서 내 도움이 없이 재앙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책임지지 못할 거라면 가만히 입 닥치고 있어."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비난하고 손가락질해도 상관없다.
유진에게 이해해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
마지막 재앙, '퍼져나가는 악몽'을 잡았다.
그 과정에서 상당한 희생이 있었다.
나는 오른팔이었던 마르잔을 잃었고, 유진이는 비앙카와 비비안을 잃었다.
그래도 이제 모든 재앙을 물리친 것이었다.
'... 남은 건 최종 보스 뿐.'
이 정말 엔딩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 케흑!!!... 하...!!.. 커하윽... 하.!!.."
다만 한 가지 문제는 나의 수명 또한 얼마 남지 않았다는것.
'... 제발... 조금만... 더...'
유진이가 이 세계를 구하는 그 순간까지만...
이 썩어가는 몸뚱이가 조금만 더 견뎌주길 간절히 바라고 바랐다.
***
─화르르륵!
다시 만난 최종 보스는 그저 절망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쏟아 부었지만 지금까지 쌓아 올린 것이 쓰레기처럼 느껴질 정도로 압도적인 힘.
1회차의 유진은 도대체 어떻게 저런 괴물을 어떻게 봉인 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는 준비해온 모든 것을 잃었고, 나는 유진과 함께 죽음을 맞았다.
***
10회차.
유진이 아스란 제국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