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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300화 (300/354)

Chapter 300 - 루시아 우르엘라 (3)

그날 이후, 나는 유진의 영혼을 되찾기 위해 매일 같이 영혼 마법에 관한 권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셀 수없이 많은 서책을 탐독했다.

허나...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인간의 영혼은 생명과 이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영혼이 없는데 살아있는 인간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 좀비나 구울 같은 언데드라면 몰라도 인간이 영혼이 잃어버렸다는 건 전례가 없습니다.'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나를 광인처럼 바라보는 시선들.

그런 시선을 받으면서 난 한 번도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았다.

유진 칼리오페가 내게 새긴 감정과 기억은 너무나도 뚜렷했으니까.

다만 한가지 두려웠던 것은...

나의 회귀로 인해 그의 영혼이 사라진 것이 아닐까 하는 것 뿐이었다.

***

'... 또... 여기에...'

내가 다시 카르네아에 입학한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이곳의 도서관에서만 찾을 수 있는 고서들과 뛰어난 교수진의 도움이라면 유진의 영혼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으니까.

"... 지금 이 자리에서 선언합니다."

단상에 올라 오랜만에 보는 유진의 눈동자는 여전히 비어있었다.

가슴이 찢어질 듯 괴로웠지만, 내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부디 이곳에서는 그의 영혼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

"... 영광스러운 카르네아 아카데미의 일원으로서..."

애써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대본을 읽어가던 중.

"....!"

나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알던 유진 칼리오페가 돌아왔다는 것을.

".... 아."

이유는 모른다.

그가 어떻게 영혼을 되찾았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여신께서 내 간절한 기도를 들었을 수도 있고, 그저 기적일 수도 있다.

"끄흐으윽.... 흐으윽.. 흐앙... 흐아아앙...."

다만, 그가 돌아왔다는 걸 확인한 순간 나는 터져 나온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루... 루시아양? 괜찮은가요? 갑자기 무슨 일이신가요?"

"가.. 감사.. 합니다... 흐윽... 가... 감사합니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잊은 채.

나는 어린아이처럼 제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할 뿐이었다.

***

탓─ 탓─ 탓─

입학식이 끝나고 가장 늦게 강당을 나서는 유진의 뒤를 따라갔다.

'... 더는...'

더는 망설이지 않는다.

더는 기다리지 않는다.

두 번 다시 후회하지 않도록 누구보다 먼저 그에게 내 감정을 전한다.

"유진 칼리오페."

".... 루시아... 우르엘라?"

이름을 부르자 당황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유진.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그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저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주세요."

***

기숙사 방에 돌아온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누워있었다.

그리고는....

"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비명을 내지르며 베개 위에 올라타서 주먹으로 마구 내리쳤다.

퍼억! 퍼억! 퍼억!

베개에서 터져 나온 깃털이 허공에 흩날린다.

"왜! 왜! 왜! 차인 거야!"

설마 차일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전생에 유진과 연인이 되지 못한 건, 그저 내가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 그런데 설마 내가 고백했는데 차일 줄이야!

회귀보다 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 나쁜자식... 아니... 유진이가 나쁜자식은... 아니지만... 아니! 그래도 나쁜자식...!!.. 어... 어떻게 나... 나를 차!!.... 루시아 우르엘라를!!"

아무리 이해하려 노력해봐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기가 잘생기면 다야!"

유진의 외모에 반한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유진이가 좀 생기기는 했다.

아니, 좀이 아니라 많이 잘생기기는 했다.

객관적으로 봐서 제국의 남자 중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외모이니까.

하지만...

"난... 엄청 이쁘잖아!!"

외모로 따지면 내가 부족 할 리가 없다.

스스로 말하기는 창피하지만 태어나서 나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본 적 없다.

만일 내가 우르엘라가 아니라 아무 평민 가문으로 태어났어도 얼굴로 작위를 받았겠지.

그리고 어디 가진 게 얼굴뿐인가?

몸매 역시 완벽하다.

목욕을 마치고 거울을 보면 가끔 여신이 재림한 게 아닐까 싶어서 깜짝 놀랐었으니까.

이렇게 다 가지고 태어나서 미안할 지경이었다.

뭐, 그나마 리아나 루멘하르크가 '제국의 태양'이라 불리며 나와 견줄 만 하다고는 하지만...

'... 솔직히 내가 더 이쁘지.'

화려하기만 한 리아나와 달리 나는 화려함과 더해 청초한 아름다움까지 지녔다.

미(美)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야, 리아나가 나를 비슷하다고 하지, 미적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내가 훨씬 이쁘다는 걸 알 거다.

거기에 능력은 어떤가?

제국의 기린아가 총집합한다는 카르네아 아카데미의 수석 입학!

웬만한 책은 한 번 훑기만 해도 이해하고 두 번쯤 읽으면 몇 장에 뭐가 있는지도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뒷배경이 부족한가?

아니다!

대가문 중 필두라 할 수 있는 우르엘라 가문의 외동딸이자, 차기 가주는 사실상 확정이다.

눈을 씻고 흠을 찾아 볼래야 찾을 수 없는 완벽한 여인.

그것이 루시아 우르엘라다!

"... 그런데 왜!"

도대체 왜!

유진 칼리오페는 왜 날 찼단 말인가!

"... 이... 이건... 뭔가 잘못 됐어요."

분명 회귀 탓이다.

회귀 때문에 어딘가 세계의 법칙이 어그러진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차일 리 없지 않은가!

"다시... 다시 한 번 물어보는거에요. 그래요... 일단 지금은 잠을 자고 내일..."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이불을 머리까지 눌러쓴 채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 아아아아아아아! 왜! 왜! 왜! 차인거야!!"

***

"..."

믿을 수 없지만, 유진이 나를 피하고 있었다.

다가가려고 하면 슬쩍 사람들 사이에 숨어 사라지고, 쫓아가면 도망쳤다.

유진이 나를 피한다는 사실에 머리 끝까지 화가 났지만 어쩌겠는가.

... 반한 사람이 죄인인걸.

내가 그를 붙잡은 건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였다.

탁─!

"... 따라오세요."

유진의 손목을 잡은 나는 그를 끌고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 말했다

"... 왜죠?"

"네?... 뭐가 말입니까...?"

나는 슬쩍 도망치려던 유진 칼리오페를 가로막고 물었다.

"왜 저를 찬 거죠?"

"...."

설마 그걸 물어보고 싶었던 거였냐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유진.

"... 빨리 대답하세요."

"하아... 루시아님. 갑자기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달라고 말씀하셔도... 가문간의 합의도 필요하고 대가문끼리의 혼약같은 경우에는 황실의 허락도 받아야 하고..."

유진의 말을 내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루시아 우르엘라를 찼다고요?"

내가 결혼한다고 하면 제국의 법을 뜯어고쳐서라도 할 사람이 줄을 섰는데!!!

유진의 얼굴을 한 번 본 나는 긴 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 그래요. 좋아요. 알겠어요. 그럼 결혼을 전제로 한다는 말은 빼요. 우리 그냥 사귀어요. 됐죠? 그럼 오늘부터 우리는..."

"... 죄송합니다."

"도대체 왜 그러는데요!!! 제가 뭐가 부족해서...!!.. 히잉..."

설마 같은 남자에게 두 번이나 차일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기에 눈물이 핑 돈다.

"... 우세요?"

"안 울어요! 흐윽... 그보다! 이유가 뭐에요! 결혼 뺐잖아요... 그런데 이... 이번에는 왜 찬 거에요? 당신 눈에는 제가 안 이뻐요?"

"... 이쁩니다."

"그럼 왜요! 제국에서... 아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지금 당신에게 고백했다고요! 지금 저한테 말 한 번 걸어보겠다는 남자가 얼마나 있는 줄 알기는 해요!"

그 말에 유진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채 되물었다.

"루시아님."

"왜요... 이제야 자기가 누굴 찼는지 알겠어요? 그래도 저는 너그러우니까 용서해 줄께요... 대신..."

"아니요. 그게 아니라... 왜 저입니까? 루시아님의 말대로 남자들이 줄을 설텐데..."

"...."

유진의 질문에 나는 말 없이 주먹을 꽉 쥐었다.

'... 당신을 보았으니까.'

당신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그 사실을 전할 수는 없지만...

유진이여야 했다.

유진이 아니면 안 된다.

"... 그냥 첫눈에 반했어요. 자, 이제 대답했으니 우리 사귀는 거예요?"

".... 죄송합니다."

"아... 히잉... 진짜 뭐가 문젠데요!!!"

연속으로 차이니까 이제는 정말 눈물이 나올 것 같다.

그러자 유진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 루시아님이 싫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

그래... 유진은 이런 남자였다.

잃어버렸던 영혼이 수십 년 만에 돌아와도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채, 그저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을 구하고자 하는 그런 남자.

이 모습에 나는 반했던 것이었다.

나는 유진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 제가 도와줄게요."

"루시아님... 말씀은 감사하지만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괜찮아요."

목숨을 잃을 수 있기에 더욱더 그를 혼자 하게 둘 수 없었다.

이번 생에서는 절대로... 절대로 유진이 죽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같이해요."

내 진심이 전해졌을까.

잠시 고민하던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그의 허락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웃음이 솟아난다.

"...."

그러자 갑자기 멍한 표정을 짓는 유진.

눈을 보아하니 영혼을 다시 잃은 건 아니었지만, 불안함이 솟아오른다.

"... 유진님?"

"...."

"괜찮아요? 유진님?"

"아... 죄송해요. 잠시 딴 생각을."

"얼굴이 빨게요... 호..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니죠?"

"...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보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아무런 대가도 없이 도와주신다고 하고.."

"대가 있는데요?"

"... 네?"

"제가 도와주는 대신...."

나는 당황하는 유진을 눈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우리 친구부터 시작해요."

***

드르륵─

5반의 강의실 문을 열자 시선이 내게 몰렸다.

여긴 유진의 반이지만 지금 나는 유진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비비안 베아트리스."

"... 네... 넷... 저... 저요?"

"잠깐 저 좀 보죠."

"... 루... 루시아님... 제... 제가... 무슨... 자... 잘못이라도..."

소심한 성격 탓인지, 아무짓도 안했는데 비비안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 흐음."

허리를 구부정하게 있음에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는 무지막지한 가슴.

내 가슴이 작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이 아이 앞에서는 어른과 아이의 차이 같았다.

쓸데없는 생각을 지우기 위해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당신 괴롭힘을 당하고 있죠?"

"... 아.. 아니에요.. 그... 그런 일은..."

"걱정하지 말고 솔직히 말하세요. 알다시피 당신 반에 있는 사람의 가문을 다 더해도 우르엘라에게는 안돼요."

".... 저... 정말... 아... 아니에요."

정말이지...

이 아이도 착해 빠졌다.

괴롭힘을 주도하는 애들을 지키려고 감추는 모습이 어딘가 유진을 닮아서...

어째서 전생에 유진이와 연인이 됐는지 알 것만 같았다.

"뭐, 말하기 싫다면 좋아요. 대신 이거 받아요."

나는 비비안에게 우르엘라의 문양이 새겨진 브로치를 꺼내 주었다.

"... 이... 이게... 무.. 뭔가요...?"

"제 친구라는 증거에요."

"치... 친구요? 루... 루시아님이랑 제가요?!"

"네, 오늘부터 누군가 당신을 괴롭히면 보여주세요. 그러면 알아서 숙이겠지만... 그래도 만약에 숙이지 않으면 제게 말하세요. 알겠어요?"

"... 이... 이런걸... 저.. 저 따위가..."

브로치를 받은 채 손을 벌벌 떠는 비비안.

"비비안! 대답하세요."

"네.. 네넷! 알겠습니다!! 꼬.. 꼭... 말씀드릴게요..."

"좋아요. 그럼 이제 돌아가도 되요."

"... 가... 감사합니다... 루... 루시아님..."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가려는 비비안의 뒷모습을 보니 한 가지 빼먹은 말이 있었다.

"아, 잠깐만요."

"... 네... 넷!.... 왜... 왜그러시나요..?"

또각─ 또각─

나는 비비안에게 다가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브로치로 뭘 해도 상관 없지만... 유진 칼리오페에게는 접근하지 말아요."

"... 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는 듯한 비비안.

당연했다.

괴롭힘을 당하던 비비안을 유진이 도와주면서 사랑을 싹틔웠으니까.

이제 막 학기가 시작된 지금, 비비안은 유진의 존재도 잘 모를 것이다.

"모르면 됐어요. 그냥 머릿속에 새겨두세요."

"... 네... 넷... 루시아님."

확실한 견제였지만 비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찌됐건 비비안의 괴롭힘은 유진보다 훨씬 빠르게 해결했고.

그리고...

본래 사랑이란 빼앗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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