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288화 (288/354)

Chapter 288 - 백소소 (1)

카르네아로 돌아가는 마차 안.

".... 흠냐... 흐헤헤... 가슴... 커져... 다..."

비앙카는 피곤했는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잠꼬대할 정도로 깊게 잠들었고, 베를리오즈와 릴리스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딱 붙어 있었다.

"저 베를리오즈님..."

"응, 그래. 무슨 일이고?"

평소와는 다르게 어딘가 진지해 보이는 릴리스의 모습이 신경 쓰여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여신님께서는 정말 우리를 사랑한다면 어째서 우리를 떠나신 걸까요... 아무리 자식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는 게 괴로우셨다지만... 그래도 정말로 저희를 사랑했다면... 끝까지 곁에 남아주지 않으셨을까요?"

"... 아이야. 본녀가 말했던 건 어디까지나 본녀의 추측일 뿐이다... 여신께서는 아무 말도 없이 떠나셨으니 말이다.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다른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떠났을지도 모르지."

"... 그... 그렇겠죠? 분명 여신님께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겠죠?"

"....."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베를리오즈의 모습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둘에게 다가갔다.

"릴리스."

"아, 선생님."

"제가 잠깐 베를리오즈님과 이야기 좀 해도 될까요."

"아! 네 선생님 알겠어요."

애써 우울한 기색을 감추며 자리를 비켜주는 릴리스.

나는 릴리스의 온기가 남아있는 자리에 앉아 입을 열었다.

"... 베를리오즈님."

"가... 가... 가... 갑자기... 무... 무.. 무.. 무... 무슨일이냐!"

그냥 말 한 번 걸었을 뿐인데, 말을 심하게 더듬고 동공이 마구 떨리는게 베를리오즈가 지나칠 정도로 당황하고 있었다.

"그냥 좀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런데 왜 그렇게 놀라세요?"

"캬... 캬캬캬캬캿!!! 노... 놀라기는 누가 놀랐다는 말이냐! 본녀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 아니, 지금 누가 봐도 놀라셨는데..."

"안 놀랐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만에 하나 본녀가 놀랐다고 한들!! 당연히 놀랄 수도 있는 거 아니냐! 본녀의 눈앞에서 그런 미친 짓이 펼쳐졌는데 말이다!"

아, 트리스티아의 가게에서 있었던 일을 아직도 마음에 담고 있던 건가.

솔직히... 살짝 지나쳤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백문불여일견이라고 100번 설명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게 낫지 않은가?

'... 근데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내가 공공장소에서 섹스한 것도 아니고 그냥 사적인 장소에서 잠깐 딜도를 쓴 것뿐인데...

그걸 아직도 마음에 담고 있는 건 좀 베를리오즈가 지나치게 예민한 게 아닌가 싶었다.

"하아... 얼굴을 보아하니 뭐가 잘못인지도 모르는 모양이로구나... 되었다. 말해 뭐하겠느냐. 그보다 묻고 싶다는 게 뭐냐?"

"... 아, 여신님에 대해서요. 교전보다는 아무래도 직접 본 사람의 말이 정확할 테니까요."

"호오? 갑자기 무엇이냐..? 이제와서 갑자기 여신교에 귀의라도 하고 싶어진 게냐?"

베를리오즈의 말에 내가 고개를 젓고는 물었다.

"아니요. 여신의 외모가 궁금해서요."

여신교는 사실상 이 세계의 유일한 종교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강한 세력을 지닌 종교집단이지만, 그 어디에서도 여신의 모습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물론 여신을 그린 벽화나, 흉상도 존재하지 않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문제지...'

아름답다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머리카락 색부터 가슴의 크기까지 여신에의 외모는 죄다 다르게 표현되어있다.

심지어는 여신과 가장 닮은 세 명을 뽑았다는 세 명의 제자마저 외모부터 성격까지 전부 다르지 않은가.

그러자 베를리오즈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뭐냐? 네놈 설마... 제자와 성녀로는 부족해서 이제는 여신님까지 넘보는 게냐?"

".... 갑자기 호칭이 놈이 됐군요... 도대체 베를리오즈님 저를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미친 난봉꾼으로 본다."

"....."

이렇게 단언할 정도면 아무래도 내 프레젠테이션이 상당히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하아... 그런 게 아닙니다. 그저 제가 생각하는 게 맞는지 증명하고 싶어서 그런 것입니다."

"... 정말인게냐?"

"정말입니다. 믿어주세요."

필사적으로 눈빛을 보낸 끝에 이제야 베를리오즈가 간신히 허락했다.

"... 하아.. 알겠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믿어주마. ... 그런데 여신님의 모습이라니? 이미 잔뜩 알려져 있지 않느냐?"

"그건 그렇지만... 죄다 모습이 다르잖아요. 저는 여신님의 진짜 모습이 궁금한 거예요."

"아아, 그런 거였나? 그렇다면 미안하지만 말해 줄 게 없다. 전부 진짜거든."

"... 네? 그게 무슨."

"그 모든 게 여신님이라는 소리다. 여신님께서는 언제나 외모와 성격이 바뀌었지."

거기까지 말한 베를리오즈는 옛 추억을 떠올리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여신님께서는 어느 때는 순진무구한 어린아이 같기도 했고, 어느 때는 모든 것을 깨달은 현자 같기도 했지. 그처럼 종잡을 수 없는 분이지만... 단 한 가지는 확실했느니라."

".... 그게 뭔가요?"

"우리를 사랑했다는 것. ... 적어도 본녀는 그리 믿고 있다."

"...."

말을 듣고 나자 내가 품고 있던 생각이 좀 더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베를리오즈의 말처럼 여신의 모습이 계속 바뀌었다면 그 모습도...'

언젠가 보았던 무저갱 같은 어둠.

그것과 함께 있던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시체.

그리고 무엇보다 사슬에 온몸이 구속되고 날개가 꿰뚫렸지만, 어둠에 삼켜지지 않을 정도로 밝은 빛을 뿜어내던 여인.

"... 그렇다면 베를리오즈님. 혹시 여신님의 모습 중에서 이런 모습도 존재했습니까?"

"어떤 모습 말이냐?"

"그러니까..."

내가 꿰뚫린 여인에 대한 모습에 관해서 설명하려던 순간.

덜컹─!!

커다란 소리와 함께 마차가 크게 흔들리며 내 몸이 베를리오즈 쪽으로 쏠렸다.

콰앙-!

"히이이이이익! 그... 그만.. 두거라!!.. 보... 보... 본녀는... 아직.. 수.. 순결을 !!"

급하게 균형을 잡느라 아무 곳에나 손을 뻗었는데 하필이면 베를리오즈를 벽쾅 하는 자세가 되어버렸다.

"아,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고.. 고.. 개... 갠.. 찬타!!... 그... 그보다... 떠러지거랏!!"

베를리오즈가 가슴팍을 밀치자 내 몸이 그대로 릴리스쪽으로 날아갔다.

"헤헤... 선생님! 저 릴리스가 잡았어요! 착하다.. 착하다.."

스윽─ 스윽─

가슴으로 내 머리를 받혀준 릴리스가 양호마망에게 배운 방식대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쓰다듬을 때마다 몸이 점점 풀리는게 아주 제대로 배운 것 같았다.

동시에 양팔로 가슴을 감싼 베를리오즈가 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하아...! 하아...! 위험한 놈이로다!!! 여신님에 관해 묻는 척 방심을 본녀의 풀게 하더니 사실은 본녀의 육체를 노리던 게냐!"

"아니.. 그건 갑자기 마차가 흔들려서 그런.."

"듣기 싫다!! 마차가 흔들렸는데 하필이면 본녀를 덮치는 듯한 자세가 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억울했다.

내가 손톱만큼이라도 그럴 생각을 하고 있었으면 몰라도 이건 진짜 억울했다.

"아니... 베를리오즈님... 정말로 그런 생각은!"

"듣기 싫다 하였다! 본녀의 정조는 네놈의 생각처럼 값싸지 않다! 당장 물렀게라!"

축객령과 함께 완전히 귀를 막아버리는 베를리오즈를 보며 내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

'... 결국, 못 물어봤네.'

축객령 이후, 마차 안에서는 계속 시선을 피했고, 내린 뒤에는 순식간에 도망쳐버린 탓에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오해를 풀기 위해 베를리오즈를 쫓아다니기에는 아직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잔뜩 있다.

물론 그중에서 가장 급하게 해결해야 할 숙제는...

'... 백소소지.'

루시아의 비밀도 급하기는 했지만, 루시아가 요청한 일주일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 하지만 백소소는 완벽한 이레귤러다.

아직은 내 협박이 먹혀서 방 안에서 잘 기다리는 모양이지만 어느 순간 터져버릴지 모르는 것이다.

백소소의 방문 앞에 도착한 내가 문을 두드리려던 순간.

끼익─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열린 문안으로 내가 들어가자...

"... 어서오십시오 서방님. 소녀, 이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백소소가 무릎을 꿇고 땅에 머리를 붙인 채 기다리고 있었다.

"백소소... 왜... 절을 하고 있지?"

"당연하옵니다. 소녀가 서방님을 맞이하는데 어찌 감히 서서 맞이하겠사옵니까..."

"...."

들어오자마자 머리부터 박는 게 마치 루시아와의 첫 만남을 보는 듯하다.

짧게 한숨을 내쉰 나는 백소소를 향해 손을 뻗었다.

"... 다음부터는 이런 식으로 기다리지 마라. ... 그리고 늦게 와서 미안하다."

"서... 서방님! 소녀에게 사과를 하실 필요는 전혀 없사옵니다. 소... 소녀가 .서방님께 사과를 하게 하다니!... 이, 이 죄를 어찌 씻어야 할지...! 소녀는 그저 서방님의 존안을 뵌 뒤로 하루하루가 너무 기뻐서 이렇게라도 억누르지 않으면 참을 수 없었기에 한 일이옵니다. 절대 서방님께 부담을 드리고자 한 일이 아니옵니다! 그... 그러니 부디 사과를 거두어주시옵서서...."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백소소의 모습에 내가 손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알겠다. 사과는 거둘 테니까 그만 진정하거라."

"아... 죄... 죄송하옵니다. 허나, 진정하고 싶어도 서방님이 곁에 있으니 소녀의 심장의 떨림이 잦아들지 않사옵니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그렇게 말한 백소소는 진심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저렇게 웃는 백소소에게 말을 하기는 어렵지만 지금 말하지 않으면 더욱더 말하기 힘들어질 것 같았다.

"... 백소소."

"네, 서방님. 말씀하시옵소서."

"... 솔직히 말하마. 지금의 나는 너를 믿을 수 없다."

"네....?"

말을 듣는 순간 백소소의 눈이 크게 떠지더니 이윽고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 어째서입니까...?... 아니, 소녀가 어찌해야 서방님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겠사옵니까? 서방님... 서방님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면 소녀 뭐든지...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사옵니다. 그러니... 제발.. 방법을 알려주시옵서..."

백소소의 태도는 도저히 연기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지만, 재앙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금 상황에는 만에 하나를 대비해야 했다.

"방법은 하나다."

길게 한숨을 내쉰 나는 백소소를 향해 냉정하게 말했다.

"내가 너를 품게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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