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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284화 (284/354)

Chapter 284 - 네가 여기서 왜 나와? (6)

우리는 산키샌 마을 안에서 마차를 타고 트리스티아의 가게까지 가고 있었다.

평상시라면 걸어갔지만, 최근들어 나도 그렇고 릴리스도 그렇고 상당히 유명한 상태다.

가는 도중 눈치채는 사람을 만나면 괜한 소란이 벌어질 것이 뻔하므로 마차를 빌려 이동했다.

"음...!! 대, 대단해요!! 세... 세상에 이런 맛이..!!! 어... 엄청 맛있어요!!"

"캬하하!! 잘 먹는구나. 잔뜩 사 왔으니! 맘껏 먹거라!!"

베를리오즈가 릴리스의 입안에 민트초코가 듬뿍 들어있는 치즈볼 넣어주고 있었다.

".... 웩."

그 모습을 본 비앙카가 혀를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

"미각이 망가졌나? 저걸 어떻게 먹는거야...?"

"글쎄요..."

사실 저 비누맛 나는 게 뭐가 좋다고 먹는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뭐 탕수육을 부어 먹은 것도 아니고, 저 정도는 개인의 취향 수준에서 존중해줄 수는 있다.

"음! 음! 음!!... 너무 마씨써요!! 더! 더주세요! 아니! 다주세요!"

"캬캬카캬캿!!! 그래그래! 잘 먹으니 기분이 좋구나!! 얼마든지 먹어라!!!"

마치 오랜만에 방문한 손녀에게 밥을 차려주는 할머니처럼, 베를리오즈는 릴리스에게 끊임없이 음식을 꺼내주었다.

"야, 쟤네 둘은 왜 저렇게 사이가 좋은 건데?"

"... 그것도 잘 모르겠네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처음 봤을 때부터 베를리오즈가 릴리스를 좋아하는 것 같기는 했다.

'하긴... 릴리스가 좀 친해지기 쉽기는 하지.'

지금 내 주변 여자 중에서 릴리스만큼 친해지기 쉬운 사람이 있던가?

루시아는 좀 날카롭고, 비앙카는 아싸 체질이고, 비비안은 좋은 성격은 아니다. 그리고 리아나는... 리아나니까.

하지만 릴리스...?

착하다.

그것도 성녀라는 이름에 걸맞게 엄청나게 착하다.

착하고, 잘 웃고, 순수하고, 친절한데 어떻게 안 친해질 수 할 수 있겠는가.

그 증거로 황실에서의 일이 있던 뒤부터 반 친구들이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던 나랑은 다르게.

릴리스는 성녀인 걸 밝히고 나서도 반에서의 태도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강아지... 아니 카피바라 같네."

"뭐라고?"

"아, 그냥 혼잣말이에요."

수상하다는 듯 잠시 노려보던 비앙카가 콧김을 뱉으며 말했다.

"흥!... 근데 백소소, 걘 어때?"

"백소소요?"

"그래, 너 없는 거 보고 지금쯤 카르네아에서 난리 치는 거 아니야?"

"음... 아닐걸요? 제가 기다리고 했으니까 한동안은 방에서 얌전히 있을 거예요. 그리고 감시도 붙여놨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

내가 한마디 하는 것에 벌벌 떠는 것만 봐도 내 명령을 거부할 것으로 생각하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내버려 두면 또다시 나타나겠지만, 적어도 며칠 정도의 여유는 있을 것이다.

'... 일단 백소소가 확실히 적이 아니라는 증명하기만 하면 상당한 도움이 된다.'

백소소는 최종 전투에서 활약할 수 있는 '메인 히로인'이다.

루시아나, 비비안처럼 일반병 다수를 상대하기는 힘들지만, 소수 정예를 상대하기에는 이만한 사람이 없다.

'그런 점은 비앙카랑 닮았네.'

체력 문제상 비앙카도 다수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소수정예를 상대하는 쪽이 편하다.

능력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가슴 크기도 그렇....

'아니, 가슴은 비앙카의 쪽이 확실하게 작은 것 같은데.'

쿡─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갑작스럽게 비앙카가 팔꿈치로 옆구리를 찔러왔다.

"비앙카...?"

"응? 어? 뭐지... 미안. 나도 모르게 그랬네. 아팠어?"

"... 아뇨. 괜찮아요."

찔린 부위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비앙카였지만 등골에서 소름이 끼쳤다.

이제 비앙카는 본능적으로 가슴이라는 단어에 반응하는 경지에 오른 듯했다.

"선생님!!!"

그때, 충분히 먹었는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릴리스가 다가와서 말했다.

"네, 릴리스."

"헤헤헤. 저 릴리스! 머리 쓰다듬어 주세요!!"

릴리스가 내 다리 사이에 쏙 들어오자 나는 곧바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후아... 흐아... 역시... 밥먹고 선생님한테 받는 쓰담쓰담이 최고에요..."

릴리스가 흐물흐물 녹아내리자 혀를 쯧 찬 비앙카가 릴리스에게 말했다.

"... 그렇게 좋냐?"

"흐으읏... 네에... 엄청 기분 좋아요! 헤헤헤. 아! 비앙카 언니도 선생님에게 쓰다듬어달라고 하세요!!"

"무.. 뭐?! 나, 나, 나는 ... 돼... 됐어! 너나 많이 받아!"

"그러지 말고요! 선생님 엄청 잘 쓰다듬어 주세요!! 지금도.. 후아아아..."

정수리를 주물주물 마사지해주자 릴리스가 완전히 녹아내린다.

"후아... 흐에... 후에에..."

"...."

"흐헤헤... 너... 너무... 저아여... 흐에..."

"...."

"헤헤... 선생님... 흐으흣..."

"... 나... 나는....."

결국, 내 소매를 살짝 붙잡고는 아무 말 없이 붉어진 얼굴로 올려다보는 비앙카.

"비앙카도 해줄게요."

나는 작게 웃고는 비앙카의 머리도 쓰다듬기 시작했다.

쓰윽─ 쓰윽─

"음... 흐음.. 나, 나쁘지 않네..."

"... 흡.. 흐입... 흐아... 선... 생님... 너... 너무... 조하여... 흐에에.."

그렇게 릴리스와 비앙카랑 마구 꽁냥거리고 있자 어느새 마차가 멈춰섰다.

"다 온 거 같네요. 다들 내리죠."

마부에게 팁과 돈을 주고 내리자 익숙한 건물이 보였다.

[마녀의 만화점]

"여기에요. 트리스티아의 가게."

"마녀의 만화점이라... 트리스티아 다운 이름이구나."

어딘가 씁쓸해 보이는 표정으로 간판을 쓰다듬은 베를리오즈가 말을 이었다.

"그럼 들어가자꾸나."

"잠시만요."

"왜 그러느냐?"

"제가 먼저 들어갈게요."

혹시나 베를리오즈가 바로 달려들 것을 대비해서 내가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딸랑─

문을 열자 트리스티아가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테이블에 기대고 있었다.

"어서오.... 어머! 도련님!"

손님이 나라는 걸 확인하자 한순간에 함박웃음을 짓는 트리스티아.

"트리스티아."

"오랜만이야 도련님. 나는 완전히 나를 까먹은 줄 알았잖아."

슬쩍 뼈가 있는 말로 인사하는 트리스티아.

"미안해요. 좀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흐음... 여러 가지라.... 뭐, 하긴, 나도 듣기는 했지..."

많은 귀부인들이 찾는 가게이다.

그 사람들이 한 마디씩만 떠들었어도 황실에 대한 소문이 안들렸리 없다.

"그래서 나는 도련님의 파벌에 안 넣어주는 걸까나?"

"그럴 리가요. 안 온다고 해도 강제로 데려갈 거에요. 내 여자니까요."

"후후훗... 기분이 나쁘지 않네. 그래서 오늘도 또 여자를 끼고 왔네?"

".... 또 라뇨. 오해하잖아요."

"오해? 사실이잖아? 안녕. 꼬마 아가씨. 오랜만이야."

"내가 그렇게 부르지말라고 했잖아!"

나보다 살짝 작은 트리스티아랑 비앙카 사이에는 꼬마라고 불리기 큰 차이가 존재했다.

"아아, 미안 미안, 그래서 그 약은 잘 썼어?"

"무, 무슨 앾!"

삑소리가 나온 비앙카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말을 잇는 트리스티아.

"정신 나간 요정의 장난' 그 있잖아. 동생이랑 몸이 바뀌는 약."

"꺄우으에세엑!!!"

아, 그걸 어디서 구했나 했더니 트리스티아가 만들어줬나보다.

트리스티아는 괴상한 소리를 내는 비앙카를 완벽히 무시하며 릴리스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또 새 여자네?"

"안녕하세요! 전 릴리스에요!"

배꼽에 손을 모은채 허리를 숙이는 릴리스에 맞춰 트리스티아도 우아하게 치마 끝을 살짝 잡고 들어 올린다.

"릴리스씨는 도련님과는 무슨 관계 일까나...?"

"선생님은 제 선생님이에요!"

"... 선생님? 도련님이 뭘 가르치는 걸까?"

나를 바라본 트리스티아가 음란하게 웃더니 말했다.

"나는 성교육 말고는 생각 안나는데?... 후후훗.."

"와! 맞아요! 성교육이에요!"

"...."

릴리스의 말에 쓰레기를 보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트리스티아.

"도련님...? 혹시 저 아이를 속여서 자빠트린 건..."

"절대로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오히려 내 쪽이 피해자다.

첫 만남부터 갑자기 릴리스가 나를 강간하려고 달려들지 않았던가.

"흐음... "

의심에 찬 표정으로 나를 위아래로 흝은 트리스티아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도련님 뒤에 한 명 더 있는 거 같은데...?"

"캬캿...."

스으윽─

트리스티아의 말에 베를리오즈가 기다렸다는 듯 내 등 뒤에서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랜만이구나. 트리스티아."

".... 당신은."

한참 동안 베를리오즈를 바라보던 트리스티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 누구시죠?"

"...."

"...."

전혀 기억에 없다는 듯한 트리스티아의 태도.

그 모습에 당황한 것은 나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캬아...?... 네.. 네년.... 지금 본녀와 장난치는 게냐!"

"아니요. ... 진짜 모르겠는데요? 절 아시나요?"

"웃기지마라! 네년이 본녀를 잊을 리가 없다!!"

베를리오즈가 소리치자 나는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말을 걸었다.

"혹시 사람을 착각한 건..."

"그럴 리 없다!! 비켜보거라!!"

성큼성큼 트리스티아에게 다가간 베를리오즈가 인상을 잠시 뜯어보고는 손뼉을 짝 부딛혔다.

"캬캬캿! 그랬군! 그래서 본녀가 찾을 수 없던 것이었어!"

그렇게 말한 베를리오즈는 반응할 틈조차 주지 않고 손을 움직여 트리스티아의 이마를 중지로 톡 건드렸다.

스으윽─

순간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트리스티아.

"....!!"

"....!!"

그와 동시에 나와 비앙카가 달려들어 베를리오즈를 제압했다.

"지금... 트리스티아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

내가 으르렁거리자 베를리오즈가 양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해를 끼친 것이 아니니 진정하거라. 애초에 본녀는 트리스티아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맹약을 맺지 않았더냐? 만일 본녀가 맹약을 어겼다면 이렇게 멀쩡할 수 있겠느냐?"

베를리오즈의 말대로다.

솔직히 그것 때문에 조금 마음을 놓고 있었다.

만일 베를리오즈가 트리스티아에게 해를 끼치려해도 맹약이 작동한다면 충분히 대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 말 돌리지말고 대답해라! 트리스티아에게 뭘 한 거지?"

"하아... 무서운 아이로고... 본녀는 그저 트리스티아가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해줬을 뿐이다. 본녀도 저렇게 쓰러질 줄은 몰랐다. 아마 갑작스럽게 기억이 되살아나서 기절한 거겠지."

"릴리스."

릴리스를 바라보자 이미 말하기도 전에 트리스티아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음... 문제 없어요! 선생님. 베를리오즈님의 말처럼 그냥 기절했었을 뿐이에요!"

"보았지? 이제 그만 본녀의 목에서 손을 치우거라."

"...."

릴리스의 말에 나는 베를리오즈를 놓아주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베를리오즈님... 더는 오해받을 짓을 하지 말아주시죠."

"캬캿... 미안하구나. 화나게 할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본녀는 천성이 이렇게 태어났구나. 그렇다고 이제와서 고치기에는 너무 늙어버렸고."

외모보다 나이가 있다는 걸 알지만 봐서는 10대 중반쯤 되는 베를리오즈가 이런말을 하자 어색하기 짝이 없다.

고개를 살짝 저은 내가 물었다.

"그래서 트리스티아는 언제 깨어나죠?"

"글쎄... 십 분이 될 수도 있고, 한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아, 지금 깨어났구나."

"....?"

베를리오즈의 시선을 따라가 고개를 돌리는 눈을 감은 채 허공으로 떠오른 트리스티아의 머리카락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 베를리오즈."

붉은 눈을 빛내는 트리스티아가 위협적인 마력을 내뿜으며 트리스티아의 낮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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