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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차 히로인이 조교를 기억함-281화 (281/354)

Chapter 281 - 네가 여기서 왜 나와? (3)

"백소소가 전학을 왔다..."

"네...?"

되묻는 루시아에게 나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다시 말했다.

"... 백소소가 전학을 왔다고 말했다."

"마... 말도 안 돼요... 그녀가 어떻게...?"

"조금 전에 직접 보고 온 사실이니 틀림없다. 그보다 루시아... 백소소에 대해서 알고 있었나?"

나도 모르게 일단 루시아를 찾아왔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루시아와 함께 이 세계의 엔딩을 보았을 때는 루시아와 백소소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루시아는 백소소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 아. 네, 주인님. 예전에 우르엘라의 정보부에서 백소소가 첫 번째 제자가 되었다는 것은 들었어요..."

"백소소가 첫 번째 제자가 됐다고?"

루시아의 말에 머리가 더더욱 복잡해진다.

앞서 아스란 제국에는 황위를 이을 수 있는 열두 가문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열두 개의 가문이 전부 똑같은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흑호(黑虎)와 청룡(靑龍) 그리고 적견(赤犬)이 황위를 번갈아 가면서 차지하는 유력 가문이었고, 반대로 백소소가 속한 백사(白蛇) 가문은 최약으로 유명한 가문이었다.

백사 가문이 최약의 가문이 된 건 플레이어의 시점보다 한참 전의 일이여서 자세히는 언급되지는 않지만.

대충 요약하자면 백사 가문의 제자 한 명이 도시 몇 개를 멸망시켰고, 그 대가로 백사 가문은 멸문 직전까지 갔다고 했다.

'.. 그런 의미에서 백소소는 첫 번째 제자가 될 만한 위치가 아니야.'

백소소 재능은 첫 번째 제자가 되기 충분했지만, 그것을 받혀줄 가문의 지원이 부족했으니까.

실제로 내가 아스란 제국에 가서 '프린세스 메이킹'을 하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백소소가 자력으로 첫 번째 제자가 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 아마 기억이 남아 있는 것과 관련이 있겠지.'

백소소가 언제 기억을 떠올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본격적으로 황위 쟁탈전이 일어나기 전에 떠올렸다면 기억을 바탕으로 세력을 키웠을 가능성이 있다.

그때, 루시아가 긴 숨을 뱉으며 물었다.

"그런데 주인님... 백소소가 전학 온 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그냥 단순한 유학일 가능성도..."

스스로도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내게 동의를 구하는 듯한 루시아의 말.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백소소가 나를 알고... 아니,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가... 주인님을 기억하고 있다고요?"

순간, 루시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손이 덜덜 떨린다.

"어... 어떻게... 마.. 말도... 안되요!!.. 그럴 리가 없어요. 백소소가 주인님을 기억하다니 그런 게 가능할 리가..!!"

루시아의 호흡이 급격히 거칠어지자 나는 루시아를 꽉 껴안아 주며 속삭였다.

"진정해라. 루시아. 네가 당황하면 나는 누구를 의지해야 하지?"

"으.... 읏... 죄... 죄송해요. 주인님..."

그 말에 눈을 감고 숨을 가다듬기 시작하는 루시아.

루시아가 충격을 받는 것도 당연했다.

자신만이 나와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과거의 기억을 백소소도 알고 있었으니까.

"... 네, 이제 진정됐어요. 감사해요. 주인님..."

잠시 후, 다시 눈을 뜬 루시아의 눈에는 더 이상 흔들림이 보이지 않았다.

"그거 다행이구나."

분위기를 풀고자 내가 억지로 웃으며 말하자 얼굴을 살짝 붉힌 루시아가 입을 열었다.

"... 주인님은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일단 대화를 나누고 싶다. 백소소는 기억하고 있다고는 말했지만... 거짓말일 가능성도 있고..."

사실 백소소가 첫 번째 제자가 된 이상 거짓말일 가능성은 낮다고 보지만...

기억하고 있다면 정확히 어느 회차를 기억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

그러자 루시아가 내 손을 꽉 쥐며 말했다.

"... 주인님. 혼자서는 안돼요."

"안다. 그래서 너를 만나러 온 거다."

리아나와는 다른 의미로 예상할 수 없는 게 백소소다.

'... 최악의 경우 나를 납치할지도 모르지.'

물론, 나도 대처를 해두겠지만 백소소에게 어디까지 통할지는 미지수다.

그러자 루시아가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해요. 주인님. 저 혼자서 백소소를 감당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최선을 다하겠지만... 만에 하나 주인님이 상처를 입는다면... 저... 저는..."

"괜찮다 이해한다."

되도록 전생이 기억은 감춰두고 싶기에 루시아 이외의 인물을 부르고 싶지는 않지만...

상성 상 루시아는 백소소를 상대하기 불리했다.

"어쩔 수 없지만 리아나를 불러서..."

".... 리아나는 안돼요."

루시아의 눈을 바라보니 평소에 리아나에 대한 악감정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 정말로 불러서는 안 된다는 확신을 하고 있었다.

"왜지?"

"... 만일... 제가 알고 있는 백소소라면... 리아나를 만나게 하는 건 좋지 않을 거 같아요."

"... 확실히 그것도 그렇군."

루시아의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해보니 '아카조교사'의 위험인물 순위의 1위와 2위가 마주치면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날지 모른다.

"알겠다. 그럼 리아나를 대신 비앙카를 부르도록 하지."

비앙카라면 백소소와 상성 상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전생에 관한 이야기가 살짝 흘러나와도 눈치채지 못할 것 같았다.

"네... 그게 좋을 것 같아요."

거기까지 말한 루시아는 내 얼굴을 올려다보고는 다짐하듯 속삭였다.

"걱정 마세요. 주인님... 제가 어떻게 해서든 주인님을 지켜낼 테니까."

***

넓은 회의장에 나와 루시아 그리고 비앙카가 테이블 끝에 나란히 앉아서 백소소를 기다리고 있었다.

"... 왔네."

귀를 쫑긋거린 비앙카가 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백소소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또각- 또각-

긴장하고 있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빠져버릴 것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백소소의 외모.

'... 후우.'

내가 숨을 길게 내쉬는 것으로 잡념을 털어내자, 테이블 앞에서 멈춰선 백소소는 가볍게 치마 끝을 살짝 들어 올리며 인사했다.

"처음 뵙겠사옵니다. 첩실 여러분."

"뭐...?"

가벼운 도발에 비앙카가 발끈하자 내가 손을 잡아 멈췄다.

"진정해요. 비앙카. 그리고 백소소. 일단 앉아라."

"후후훗... 네 서방님. 알겠사옵니다."

그 말에 순순히 의자에 앉는 백소소.

나는 테이블을 검지로 두드리며 말했다.

"... 가능하면 사실대로 대답해주면 좋겠군."

"어머, 소녀는 서방님께 어떠한 것도 감추지 않사옵니다. 지금이라도 이 옷 아래가 궁금하시다면..."

스으윽─

슬쩍 저고리를 풀더니 가슴팍을 젖히려는 백소소를 보자 루시아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백소소... 왜 이곳에 온 거죠."

"흐음... 당연한 것을 묻사옵니다... 소녀는 서방님의 보필을 하러 왔사옵니다."

"왜 하필이면 지금이냐고 묻는 겁니다. 언제든지 올 수 있었을 텐데요?"

비앙카가 듣고 있기에 최대한 전생에 관한 언급은 피하면서도 백소소의 의도는 꿰뚫어 볼 수 있는 좋은 질문이었다.

그러자 백소소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웃었다.

"저는 서방님의 곁에만 붙어있던 루시아 당신과는 다르옵니다. 소녀는 서방님을 위해서 여러 가지 준비를 했사옵니다."

"단순히 첫 번째 제자라는 위치가 탐난 것은 아니고요?"

그 말에 한숨을 푹 내쉰 백소소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아... 정보를 감춰뒀다고 한들 소식이 이렇게 느려서야."

"... 뭐라고요?"

"소녀는 더는 첫 번째 제자가 아니옵니다. 첫 번째 제자라는 건 사실상 아스란의 차기 황제와 다름없사옵니다. 그리고 차기 황제가 타국으로 유학을 간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 아니 옵니까?"

"그렇다면..."

"네, 서방님. 이곳으로 올 때 소녀는 두 번 다시 그 자리에 오를 수 없다는 맹약을 맺고 왔사옵니다."

그 말을 들은 비앙카가 혼잣말하듯 내뱉었다.

"... 뭐 때문에 황제 자리까지 버리면서 온 거야."

"말하지 않았사옵니까. 소녀는 서방님의 보필을 하려고 왔사옵니다. 아스란 제국의 황제 자리 따위야... 서방님과 비교하면 소녀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사옵니다."

생글생글 웃는 백소소의 얼굴에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는 건 고맙군."

"후후훗... 그럴 필요는 없사옵니다. 소녀가 서방님을 모시는 건 당연한 일이옵니다."

"하지만... 어차피 내게 올 것이었다면 어째서 첫 번째 제자가 된 거지? 그 자리까지 가는데 상당한 시간과 힘이 필요했을 텐데."

그러자 백소소가 아쉽다는 듯 한쪽 손을 뺨에 대며 말했다.

"소녀도 서방님에게 조금이라도 빠르게 오고 싶었지만... 첫 번째 제자가 되지 아니하면 전쟁을 일으킬 수 없사오니 어쩔 수 없었사옵니다."

전쟁?

아스란 제국이 어디와 전쟁을 한단 말인가.

그러자 백소소가 작게 방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황녀가 루멘하르크 제국에서 내전을 일으키면... 소녀는 즉시 아스란의 군대를 이끌고 루멘하르크와 전쟁을 하려 했사옵니다."

"...!!"

백소소의 믿을 수 없는 발언에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예상하기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백소소가 저런 계획을 세웠을 줄이야.

"백소소 당신... 지금까지 한 번도 깨진 적 없었던 제국의 평화 협정을 깨겠다고요?"

"이미 지난 일이옵니다. 첫 번째 제자가 아닌 소녀에게는 더는 전쟁을 일으킬 힘이 없사옵니다.... 그리고 설령 전쟁이 일어난들 어쨌다는 말이옵니까? 어차피 이 세계는 서방님이 아니면 의미 없는 세계인 것을..."

쾅─!

"완전히 미쳤어... 백소소 당신은 전쟁이 어떤 의미인지 알잖아!!"

책상을 내리치며 소리치는 루시아에게 백소소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

"루시아. 소녀는 미친 것이 아니라 서방님께 필요하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뿐이옵니다."

백소소의 말에 내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 백소소. 전쟁을 일으키는 게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된다는 말이지."

"네... 서방님. 설명하겠사옵니다."

나를 향해 공손하게 머리를 숙인 백소소가 대답했다.

"... 소녀는 아스란과 루멘하르크를 전부 손에 넣어 서방님께 바치고자 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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