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52 - 우르엘라의 방식 (4)
"주인님!"
품에 안긴 루시아에게서 특유의 은방울꽃 향기가 아찔할 정도로 풍겨온다.
"... 오랜만이에요. 주인님."
가슴에 얼굴을 마구 비벼대는 루시아의 모습이 마치 새끼고양이처럼 사랑스러워 나도 모르게 있는 힘껏 껴안아 버렸다.
"흐읏..."
그렇게 한참이나 루시아의 체온을 만끽한 뒤에 내가 팔에서 힘을 풀자.
"... 조금만..."
이번에는 루시아가 나를 힘껏 껴안으며 뜨거운 숨결을 내뱉는다.
"... 조금만... 더요..."
어리광을 부리는 루시아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고 있자, 루시아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 주인님... 사실... 저 화가 났어요."
여전히 품에 안긴 채 고개를 올려다보는 루시아의 눈매가 매섭다.
"...."
내가 지금까지 루시아를 얼마나 함부로 대했는지 떠올려보면 화내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루시아의 입에서 나온 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이었다.
"... 주인님을 빼앗은 그 암코양이에게 화가 났어요... 그리고 곁에 있으면서도 그걸 막지 못한 저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어요."
"...."
이런 상황에서조차 나를 탓하지 않는 루시아가 너무나도 미안할 따름이었다.
"루시아...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그때는..."
"으음... 말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주인님이 어째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이해하니까요. 하지만..."
까드득─
그때, 뭔가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리아나는.... 그.... 암코양이만큼은 아무리 해도 용서가 안돼요... 감히... 감히.. 감히.. 감히감히감히!!... 또 다시 제게서 주인님을 빼앗아가려고...!!"
"지.. 진정해라. 루시아."
이대로 내버려 뒀다가는 큰 사고를 칠 것만 같은 루시아의 분위기에 내가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아!... 죄... 죄송해요. 주인님. 최근에 너무 여러 가지 일이 있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부디 용서해주세요."
"아니, 네가 사과할 필요는 없다. ... 오히려 내가 너에게 사과하고 싶다."
"네? 주... 주인님이 제게 사과한다고요?"
사과한다는 말에 루시아는 진심으로 깜짝 놀랐는지 두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 그래. 나는 네가 나를 떠난 게 아닌지 걱정했다."
"떠.. 떠... 떠나다뇨!!!"
"...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니 그렇게 놀라지마라."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네가 우르엘라로 돌아간 그 날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죽거나 죽였어야 했을 리아나가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만 봐도 이 세계는 내가 알고 있던 '아카조교사'와는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그렇다면...
언제나 내 곁에 있어 주었던 루시아도 나를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루시아가 나를 떠난 그날.
나는 불현듯 그런 두려움에 휩싸였었다.
그러자 루시아가 양손으로 내 뺨을 강하게 붙잡으며 외쳤다.
"그럴 수는 없어요!!"
"... 루시아?"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고요!! 주인님!! 저는 주인님을 절대로 떠나지 않을 거예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떠나지 않을 거라고요!!"
"...."
"주인님 있기에 제가 있어요!! 제가 세계는 주인님이 있어야만 존재해요!! 주인님이 없는 세계 따위는 제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요!!"
루시아의 외침에 담긴 사랑이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다가왔기 때문일까.
나는 루시아에게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었다.
"...."
그렇게 숨을 거칠게 숨을 내쉬는 루시아의 얼굴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자.
"...."
루시아의 붉은 입술이 파르르 천천히 떨려오더니 이윽고 눈을 감는다.
그 무언의 신호에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루시아와 입술을 포겠....
"자... 잠시만요! 주인님."
"....?"
입술이 포개지기 직전, 루시아가 갑작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루시아에게 스킨십을 거절당한 건 처음이어서 몹시 당황스럽다.
하지만 루시아는 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옥상 이곳저곳을 구둣발로 내리찍었다.
쿵─, 쿵─, 쿵─
"여기는 문제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루시아의 행동.
이윽고 루시아는 어디선가 망원경을 꺼내 주위를 샅샅이 둘러본다.
"음..! 이것도 괜찮은 거 같네요. 아무런 문제 없어요."
"... 루시아. 지금 뭐 하는 거지?"
내 질문에 루시아가 부끄럽다는 듯 뺨을 살짝 긁적이며 말했다.
"아... 혹시 부실공사로 옥상이 무너지거나, 예상치 못한 습격이 발생할까 봐 확인했어요."
루시아의 과도한 걱정에 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 걱정이 과하다."
발길질 몇 번에 무너질 옥상이었다면 애초에 그리폰이 착륙했을 때 무너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솔스처럼 황실로 향하는 길에 있는 마을은 주기적으로 제국의 군대가 마물을 토벌해주기 때문에 어지간히 운이 없지 않은 이상 습격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몇 번이나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방해받았던 걸요?"
루시아의 잔뜩 한이 서린 말에 나는 조용히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루시아와 뭔가를 하려던 순간 사건이 터진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오늘은 절대로 방해받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했어요."
"... 이렇게나 거창하게 말이냐?"
내가 마을의 경관을 바라보며 말하자, 루시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주인님!"
양팔을 펼친 채 도시의 야경을 자랑스럽게 내려다보는 루시아.
고작 나와의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고 이런 엄청난 짓을 저지르다니.
... 도대체 이걸 기뻐해야 할지, 황당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주인님의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오직 주인님을 위해 준비한 거예요!!"
거기까지 말한 루시아가 가슴 쪽의 살짝 드레스를 젖히자, 새하얗고 커다란 두 개의 살덩어리가 나타났다.
"... 물론... 저도 포함되고요."
스으윽─
시선이 자연스럽게 가슴 쪽으로 이동하던 중, 루시아의 가슴팍에 달린 브로치가 눈에 들어왔다.
"... 응?"
내가 알고 있는 한 회중시계 모양의 황금 브로치가 상징하는 것은 하나였다.
"루시아 그건?"
"아...!... 주인님... 저는 이제 우르엘라의 차기 후계자가 아니라고요?"
총총걸음으로 몇 발자국 물러난 루시아가 우아하게 치마를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주인님. 우르엘라의 가주 루시아 우르엘라라고 합니다."
루시아의 말에 순간 정신이 멍해진다.
'... 루시아가 가주가 되었다고?'
우르엘라의 가주가 되었다는 건 우르엘라의 모든 것이 루시아의 손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 그러니까 이렇게 마을을 통째로 뜯어고쳤구나...'
루시아는 분명 막대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가주가 되었다는 건 꼭 좋은 것만 있는 게 아니다.
권리가 커진 만큼, 의무와 책임 또한 차기 가주 일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 날 테니까.
안 그래도 신경 쓸 일이 많은 루시아에게 부담이 더해진다는 생각에 내가 표정이 굳어지자.
-쪽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루시아가 내게 입을 가볍게 맞췄다.
".... 루시아."
"후훗. 우르엘라가의 가주의 키스는 어떠신가요? 가주가 된 저는 더욱 맛있어졌나요?"
"하지만...."
"괜찮아요. 저는 괜찮으니까... 지금은 그냥 주인님을 느끼고 싶어요."
이미 내가 걱정하는 것에 대해는 잘 알고 있다는 루시아의 태도.
"...."
고개를 끄덕인 내가 입을 맞추자 루시아의 혀가 안으로 파고든다.
"... 흐음... 하... 음... 하...."
루시아의 달아오른 체온을 느끼며 내가 옷을 벗기려던 순간.
콰아아앙─!
아래쪽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내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폭발의 원인을 확인하려고 하자.
"으음...!"
루시아는 자신에게 집중해달라는 듯 살짝 세운 손톱으로 내 등을 긁었다.
하지만....
"당장 유진이 데려와아아아아!!!"
"비... 비앙카님. 지... 진정을...!"
"진정이고 뭐고! 당장 안 데려오면 여긴 끝장날 줄 알아!!"
이어지는 목소리에 더는 진도를 나갈 수 없었다.
그때야 루시아도 포기한 듯 내게 떨어지며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 쯧, 결국 이렇게 방해가 들어오네요."
루시아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짧게 한숨을 내쉴 뿐이다.
구멍이 뻥 뚫린 식당에서 남자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비앙카의 모습이 보였다.
"유진이 안 데려와? 안 데려오면 내가 찾으러 갈꺼야!!"
"비... 비앙카님...!!!.. 제... 제발... 진정을!... 황녀전하!!... 도... 도움을..."
"으음? 내가 왜 도와줘? 재미있는데?"
역시 리아나는 리아나였다.
사람이 대머리로 바뀌는 과정을 즐길 수 있다니...
보통의 인성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 끄아아악!... 비앙카님!... 머... 머리카락만은!!.. 비비안님..!.. 비앙카님을.. 마.. 말려주시십오..!!"
"... 죄... 죄송해요... 저... 저도.. 유진님이 걱정되어서."
"저... 정말 아무 일도 없습니다! 단지 유진님의 목욕이 길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믿냐고!!!"
난장판이 되어버린 식당을 보며 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루시아... 아무래도 돌아가 봐야 할 것 같다."
"... 후후훗... 괜찮아요. 주인님. 이 정도는 예상했으니까요. 곧 해결할 사람이 나타날 거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나서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콰앙─
그때 부엌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몸이 굴곡이 확실히 드러날 정도로 딱 달라붙는 흰색 제복을 차림의 마르잔이 나타났다.
"비앙카님! 진정하시고 잠시만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마르잔...?"
익숙한 얼굴의 등장에 날뛰던 비앙카도 조금 진정 된 것처럼 보였다.
"뭐, 그래 봤자 얼마 못 견디겠죠."
남의 일처럼 말하는 루시아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앙카가 지금까지 날뛴 이유가 내 안전에 대해 걱정했던 거라면, 이제부터는 루시아가 나를 데려갔다는 것에 대해 날뛸 것이다.
"그러니까... 도망치죠."
"... 응?"
뭐라고 대답할 틈도 없이 내 손을 붙잡은 루시아가 그리폰을 향해 달려갔다.
"어서요 주인님!"
펄럭ㅡ
나와 루시아가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리폰은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방을 들고 날아올랐다.
'... 도망친다고? 이렇게? 진짜로?'
정말 이렇게 놔두고 떠나도 괜찮은 걸까 싶은 걱정에 창밖을 내다보려고 하자 루시아가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이제는 못 쫓아와요."
"아니... 그게 아니라. 저대로 내버려두면 아마도...!"
내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 루시아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 주인님이 타고 온 마차로는 수도까지 사흘은 걸리겠죠. 하지만 이 그리폰이라면 하루면 충분할 거예요... 그러니까 그 시간만큼은......."
스르륵─
루시아의 드레스가 바닥에 떨어지고 새하얀 나신이 그 존재감을 자랑한다.
"... 루시아만의 주인님이 되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