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51 - 우르엘라의 방식 (3)
"우르와트의 마탑주 알바트 트리플도어라고합니다!!! 영주님을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아아아!!!"
"일버르엘라의 마탑주 베어본이라고합니다!! 귀하신 분을 이렇게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아아앗!!"
... 뭔데 이거?
두 마탑주의 열렬한 환영인사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어쩌다가 이런 상황이 펼쳐졌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만 지금 사람을 착각하신 것..."
"끼오오오에엑! 유진 칼리오페님 부디 말씀을 낮춰주십쇼오오오!!!"
미친놈.
그래도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것 보니 사람을 착각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아니, 괜찮습니다. 그런데 제가..."
"으오오오!! 저 베어본도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아아!! 제바아아알!!! 말씀을 낮춰주십시오!!!"
나이로 따지면 할아버지에 가까운 두 사람에 갑자기 말을 놓기에는 쉽지 않았지만....
뿌드득-!
90도를 넘어 180도에 가깝게 허리를 숙이는 모습에 이 이상 거절했다가는 두 탑주의 허리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만 같았다.
"알았습... 아니, 알았다. ... 그런데 허리는 괜찮나?"
"크으으으!!! 저 같은 것을 걱정해주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이란 말인가!! 이 베어본 평생 유진님에게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영주님께서 친히 신경 써주시다니!!! 이 알바트 트리플도어 일생의 영광으로 삼겠습니다!!!"
뿌드득! 빠드득!
트리플도어와 베어본이 다시 몸을 일으키는 순간 그들의 허리에서 나서는 안 되는 소리가 들렸다.
"... 진짜 괜찮은 거 맞나? 지금 이마에서 땀이 비 오듯이 흐르는데?"
"하하하! 괜찮습니다! 영주님! 아무래도 오늘 날씨가 좀 더워서 그런가 봅니다!"
베어본은 잇몸이 환하게 드러날 정도로 웃으며 대답했지만, 오늘 날씨는 덥기는커녕 살짝 쌀쌀하게 느껴질 정도다.
'... 나한테 왜이러는건데.'
수상 할 정도로 호의적인 두 마탑주의 태도에 내가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내가 알고 있던 마탑주는 분명 오만하고 권위적이기 짝이 없었던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인가.
"... 그런데 영주는 무슨 소리지? 내가 이 마을의 영주라도 된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유진 칼리오페님 만이 이솔스의 유일한 지배자이십니다!"
"이솔스에 영광을!! 유진 칼리오페 만세!! 만세!! 만세에에!!"
질문 한 번 했을 뿐인데 둘의 반응이 폭발적으로 돌아온다.
아니, 둘 뿐만이 아니다.
"끼에에에엑! 내 목숨을 이솔스에!!!"
"유진 칼리오페 만세에에에!!!!"
"날 가져요!!! 사랑해요!!! 유진 칼리오페!!!"
"교수님!! 저좀 졸업시켜... 읍... 으읍...!!.. 사.. 살려..!! 읍...!!"
도시 내부에서 펼쳐지는 무수한 환영 인사는 마치 내가 사이비 교단의 교주라도 된 것만 같았다.
'.... 돌겠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영지를 하사받은 적이 없다.
매일 같이 터지는 사건사고를 막기도 벅찬데 언제 영지 같은 걸 관리하고 있냐는 말이다.
그러나 내 의문을 채 풀기도 전에 두 마탑주가 또 다시 입을 열었다.
"자, 영주님! 여독으로 피곤하실 텐데 우선 여관로 안내하겠습니다!"
"일행분들도 내리시지요! 이쪽입니다."
심히 당황스러웠지만, 그렇다고 노숙을 할 수도 없는 노릇.
일단은 숙소를 잡고 궁금증을 해결 할 생각에 두 사람의 안내를 따라가자.
빵바바방─! 빠밤바 빰빠밤!
길마다 레드카펫이 깔리고 장미잎이 펑펑 쏟아져 내리며 오케스트라가 펼쳐졌다.
"하!... 어... 언제 이런 것까지 준비하고 있었데?"
"... 유... 유진님... 역시... 대단해요!"
얼마 전까지 이름만 귀족이었던 베아트리스의 자매는 이런 환영은 처음 받아봤는지 잔뜩 신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본다.
"선생님! 선생님은 영주였나요?"
릴리스는 성녀로서 이런 경험이 몇 번 있는지 비비안과 비앙카만큼 놀라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들떠 보이는건 다름없다.
"... 흐음."
반면 리아나는 이런 환영에 익숙해서 일까.
그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별다른 말 없이 뒤를 따라왔다.
"여기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도착한 곳은 도시에서 가장 눈에 띈 건물이었다.
'... 이게 여관이라고?'
현대의 호텔을 가져와도 충분히 상대 할 것 같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건물.
그리고 어째서일까...
의미는 모르겠지만 저 간판을 보고 있자니 등골이 오싹해진다.
"자,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베어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예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나조차도 이름을 들어 본 적 있는 화가의 그림으로 가득 차있다.
진품이라면 최근 경매가 기준으로 한 장 당 금화 5천매 정도 한다.
'... 그래도 가품이겠지.'
만일 이게 진품이라면 여기 있는 그림만 해도 한화로 수 백 억에 가깝다.
"흐음... 전부 진품이네."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리아나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것이 들렸다.
"...."
이윽고 부유석으로 만들어진 엘레베이터를 타고 최상층까지 올라가자 트리플도어가 말했다.
"지금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준비 중이니 먼저 목욕부터 하시는게 어떻습니까. 이솔스의 명물 온천수로 만든 대욕탕이 있습니다."
확실히 이솔스는 이전부터 온천으로 유명한 마을.
어차피 오늘 하룻밤을 쉬고 갈거면 온천에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모두의 의견을 구하기 위해 잠깐 둘러보자.
비앙카와 비비안의 눈은 이미 기대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리아나는 어떻게 할래요?"
"흐음~ 나는 유진이랑 같이 들어갈까?"
직설적인 리아나의 말에 내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음에요. 그럼 목욕 후에 다시 식당에서 만나는걸로해요."
그렇게 각자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가는걸 확인하고 나도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 순간.
우우웅-!
"....!"
심상치 않은 부유감과 함께 방이 솟구쳤다.
***
우르와트의 막내 교수 루니아와 치르산오는 식당 앞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별 문제 없겠지?"
"네. 일단은... 하지만 아무래도 갑작스러워서... 원래 귀빈 대접은 탑주님들이 직접 맡기로 한 거 아니었습니까?"
슬쩍 바라본 식당 안에는 유진을 제외한 일행들이 모여있었다.
"어쩔 수 없잖아. 탑주님들이 허리를 삐어서 꼼짝도 못 하는데..."
"... 알고는 있습니다만."
"알면 그만 투덜대고 준비해. 유진님 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분들 앞에서 실수하면 안 되니까."
루니아의 말에 치르산오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왜 뭐 또 불만 있어?"
"... 아니, 불만이 아니라. 왜 탑주님들이 유진님을 그렇게 중요시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말했잖아. 루시아님의 부군 되실 분이라고."
"아니, 그게 아니라 서열로 따지면 우르엘라 가문보다는 황실이 더 높은 거 아닙니까? 그런데 죄다 우르엘라만 신경 쓰고 황실은 뒷전이지 않습니까?"
대가문이라고 해봤자 어찌 됐건 귀족 중 하나.
황가의 핏줄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 치르산오의 생각이었다.
"... 뭐?"
질문을 들은 루니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치르산오를 바라보았다.
"야, 너 우르엘라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 모르냐?"
"...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서부의 대가문 아닙니까?"
"와, 이 새끼 봐라. 진짜 모르네. 안 되겠다. 너는 앞으로 5년은 졸업할 생각하지 말아라."
"가..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졸업을 못 한다는 소리에 치르산오가 몸을 벌벌 떨자 루니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국의 식량의 40%를 우르엘라의 영지에서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라던가, 황실보다 돈이 많은 가문이라던가 여러 가지가 떠올랐지만, 마탑의 대학원생의 피부에 와닿는 설명은 따로 있었다.
"너 우리 마탑의 우르와트의 우르가 어디서 나온 지 모르냐?"
"우르요...?"
그 순간, 치르산오의 머리를 스치는 한 가지 생각.
"... 호... 혹시?"
"새끼, 멍청해도 눈치는 있네. 그래, 우르와트 초대 교장이 우르엘라 가문 출신이라 우르와트라고 이름 지은 거다. 그 뒤로도 계속 우르엘라 가문의 출신들이 마탑의 고위직을 맡고 있고."
루니아 교수의 말에 치르산오의 입을 떡 벌렸다.
우물안 개구리가 바다의 넓이를 모르듯 치르산오 역시 우르엘라 가문이 무작정 대단한 가문이라도 생각했지 어느 정도인지는 몰랐던 탓이다.
"... 참고로 일버르엘라의 엘라도 우르엘라의 가문에서 따온 거다."
"네?! 이... 일버드엘라도요?"
"왜 더 말해줘? 보바르, 덤스트우 마탑도 우르엘라 가문의 방계가 세웠다."
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마탑 중 네 곳이 사실상 우르엘라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니!
치르산오의 얼빠진 표정을 본 루니아가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 그러니까 제국에서 마법사로 살고 싶으면 우르엘라를 신처럼 생각해. 알았어?"
"네... 교수님."
***
"... 설마 방 전체를 부유석으로 만들어 놨을 줄이야."
나는 푹신한 소파에 기대서 와인을 홀짝였다.
옥상이라 그런지 도시의 경관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런걸 바로 펜트하우스라고 하던가.
솔직히 방이 치솟았을 때는 제법 당황했지만....
미리 방안에 놓여있던 쪽지를 읽고나자 긴장을 풀고 느긋하게 도시를 구경할 수 있었다.
"... 음?"
그때, 멀리서 무언가가 이곳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새인가 싶었지만, 그런 생각은 곧바로 사라졌다.
저런 덩치를 가진 새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펄럭─
"... 그리핀?"
사자의 몸통에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를 가진 대형 마물.
아니, 그리핀은 마물이라기보다는 영물(靈物)에 가깝다.
먼저 공격하지 않는 이상 인간을 공격하지도 않고, 잘 길들인다면 그리핀은 탈것으로도 이용 가능하니까.
실제로 지금 날아오는 그리핀의 아래쪽에도 마차의 몸체가 매달려있었다.
─쿠웅!
순식간에 다가온 그리핀이 거대한 날개를 펄럭거리며 마차를 내려놓자.
곧이어 마차의 문이 열리고 길고 흰 다리와 함께 푸른 드레스 자락이 눈에 들어왔다.
또각─
그 순간,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한 여인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구름에 가려졌던 달이 살며시 얼굴을 내민다.
또각─
달빛을 잔뜩 머금은 은발이 바람에 부드럽게 흩날리며...
"주인님!"
환하게 미소짓는 루시아가 내게 달려와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