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9 - 우르엘라의 방식 (1)
"... 거! 성녀치고는 더럽게 음란한 몸뚱이구나!"
"...."
베를리오즈의 갑작스러운 폭언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릴리스의 몸이 음란하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나도 솔직히 릴리스가 성녀(性女)인지 성녀(聖女)인지 가끔 헷갈리니까.
하지만 아무리 사실이라고 해도 저건 당사자 앞에선 하면 안 되는 말 아닌가.
"에...? 지금 뭐라고 하셨나요?"
다행스럽게도 릴리스는 제대로 듣지 못했는지 큰 눈을 껌뻑거리며 되물었다.
"캬캬캇! 미안하구나! 본녀가 실언을 했다! 못들은 걸로 하거라! 그보다 성녀여 민트초코는 좋아하느냐?"
겉보기와는 달리 베를리오즈에게는 상식은 있는 모양이다.
굳이 다시 한번 폭언을 퍼붓는 대신 화제를 돌리는 베를리오즈.
물론 말을 돌리는 방식이 심히 어색하기는 했지만, 릴리스의 음란한 몸에 대해서 떠드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 민트 초코요? 네! 좋아하는데요?"
"그래, 좋아한단 말이지!"
릴리스의 활기찬 대답에 베를리오즈는 잠시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마치 할머니가 손녀를 보듯 인자하게 웃으며 사탕을 몇 개 꺼냈다.
"자, 받거라! 아스란 제국의 명물 민트초코사탕이다. 황성까지는 길이 멀 터이니 도중에 하나씩 까먹거라!"
"...."
민트초코닭꼬치도 그렇고 민트초코볶음면도 그렇고 이 세계에서 민초란 도대체 뭐길래 다들 미쳐버린 걸까.
'... 그리고 사탕이면 사탕이고, 민트초코면 민트초코지 민트초코사탕은 또 뭐야?'
겉은 녹인 설탕으로 코팅되어있어 사탕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내용물은 누가 봐도 그냥 민초였다.
사탕이라고 하기에는 민초에 가까웠고, 민초라고 하기에는 사탕의 형태를 지닌 녀석.
내가 민초 사탕의 정체성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하는 동안 릴리스가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 그... 그러니까... 교... 교단에서... 모르는... 사람이 주는 과자는 받지 말라고 했는데..."
누가 봐도 먹고 싶다는 듯이 두 눈이 사탕에 고정되어있는 릴리스.
어째서 치약 맛 사탕이 먹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릴리스의 취향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나는 대신 사탕을 받아 입안에 쏙 넣어주었다.
"음...! 마씨써요!"
"이러면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거 아니니까 괜찮죠?"
"그러네요!! 역시 선생님! 완벽한 해결책이었어요!!"
도토리를 잔뜩 머금은 다람쥐처럼 볼을 빵빵하게 불린 릴리스는 베를리오즈를 향해 머리를 꾸벅 숙였다.
"사탕 감사합니다! 엄청 맛있어요!"
"캬캬캿! 별거 아니다. 오늘은 급하게 소식을 들은 바람에 이것 밖에 못 가져왔지만, 다음에는 좀 더 챙겨오마!"
"와! 다음에 또 주시나요?"
"그래! 또 만나면 더 맛있는 걸 먹여주마."
사탕을 오물거리는 릴리스를 잠시 흐뭇하게 지켜보던 베를리오즈가 비앙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럼, 제자야. 성녀의 얼굴도 봤으니 본녀는 이만 돌아가마."
"잠깐만 왜 성녀껀 있는데 내껀 없어?"
"쯧, 네겐 본녀가 주먹밥을 주지 않았느냐? 그리고 사탕 정도는 알아서 사 먹을 나이가 되었을 텐데?"
"... 왜? 그냥 나 말고 쟤를 제자 삼지 그래?"
비앙카의 토라진 모습에 베를리오즈가 낄낄대며 걸어갔다.
"하! 질투하지 말 거라. 본녀가 가르친 강신법은 사탕 따위랑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가치가 있으니까 말이다."
"질투 아니거든! 그리고 간다면서 언제까지 있을 거야! 빨리 가라고!"
"쯧쯧, 말하지 않아도 갈 거다. 제자야."
"조심히 가세요!"
떠나가는 베를리오즈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꾸벅 인사하는 릴리스.
고작 사탕 몇 개에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은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았다.
'... 이러니까 교단에서도 사탕을 받지 말라고 했겠지.'
내가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착하니까 성녀로 선택받았겠지만, 사람이 너무 착해도 문제다.
"... 아! 한가지 잊었군."
그때 베를리오즈가 갑작스럽게 뒤를 돌더니 릴리스를 향해 속삭였다.
"귓가에 햇살을 받으며 석양까지 행복한 여행을."
"... 에?... 그... 그러니까!... 우... 웃으며 떠나갔던 것처럼 미소를 띠고 돌아와 마침내 평안하기를..?"
"... 하, 이것만큼은 잊혀지지 않았구나."
그 말을 끝으로, 베를리오즈는 만족했다는 듯 모습을 감췄다.
"후우...! 좋은 분이였어요!"
"좋은 분은 무슨! 그냥 이상한 사람이야."
"그런가요? 먹을 것도 주는 거 보면 착한 분 같은데."
".... 너는 먹을 거 주면 다 착한 사람이냐?"
"아닌가요...?"
"..."
나도 비앙카의 의견에 동의했다.
비앙카나 릴리스를 대하는 태도를 봐서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지만 이상한 사람인 건 확실했다.
"그런데 릴리스. 방금 그 말은 뭐예요? 귓가에 어쩌고 했던 거요."
"아, 그거요! 음... 그러니까 여신교 초기에 사용되었던 인사말이에요! 근데 사실상 사장된 말이라 지금은 교단에서도 고위 사제급이 아니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텐데..."
릴리스가 아무리 평소에 바보 같고 어리숙해 보여도 여신교에서는 교황에 버금가는 위치에 있는 성녀다.
그런 릴리스가 여신교의 사장된 인사말을 알고 있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저분은 어떻게 알고 있을까요? 제가 얼굴을 모르는 거 보면 분명 교단의 사람은 아닐 텐데?"
"... 그러게요."
나는 베를리오즈가 사라진 곳을 잠시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동안은 바쁘기도 했고, 로레오스의 소개라 그다지 신경 안 썼지만...'
아무래도 베를리오즈에게는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 황태자를 만나고 와서는 루시아에게 뒷조사라도 시켜봐야겠다. ... 그 전에 루시아랑 화해부터 해야겠지만....'
루시아를 떠올리자 갑자기 기분이 우울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루시아가 내게 말도 없이 떠난 것은 '아카조교사' 플레이를 포함해 이번이 처음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 루시아가 갑자기 떠났단 말인가.
'내가 좀 루시아를 소홀히 하기는 했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는 도대체 지금까지 몇 번이나 루시아와의 약속을 어겼는지...
마음 한구석에서는 루시아라면 이해해주겠지 하는 마음에 저지른 행동들이었다.
'... 하아... 그래도 일단 답장은 왔으니까.'
내가 황태자의 즉위식에 맞춰 황실로 떠난다는 편지를 보내자, 루시아도 그에 맞춰서 도착하겠다는 답장이 왔었다.
최소한 두 번 다시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는 뜻은 아니니까 다행이었다.
'이번에 만나면 진짜 잘해줘야지...'
짧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나는 마차에 올라타며 말했다.
"... 그럼 이제 출발할까요."
***
제국 서부의 명문 마탑 우르와트.
그 우르와트의 대학원생인 치르산오는 지금 한창 노가다 중이었다.
「베어라-바람-칼날」
물론 마법사인 만큼 육체를 사용하는 대신 마법을 사용했지만, 하는 일 자체는 돌을 옮기고, 나무를 다듬는 등 노가다 그 자체였다.
'내가 이걸 왜 하는 건데! 여기가 아카데미야? 이럴거였으면 카르네아에 들어갔지 우르와트에 왜 와!'
치르산오가 불만에 찬 얼굴로 입술을 잘근 씹었다.
실전적인 마법과 기술을 배우는 아카데미와는 달리 마탑은 순수한 마법적 지식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었던가!
"자! 자! 좀 더 빨리빨리 움직여라! 의뢰주님께서 많은 기대를 걸고 계시다! 절대로 일버르엘라 마탑 녀석들에게 뒤처져서는 안 된다!"
"네, 교수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도교수가 솔선해서 노가다를 하는데 배를 쨀 수도 없는 노릇이다.
"파리카형... 형은 열 안 받아요? 우리가 공부하러 마탑왔지, 일하러 왔어요?"
"... 어, 열 안 받아. 이번 일만 잘 끝내면 교수님께서 졸업논문을 통과시켜준다고 했거든... 헤헤.. 헤."
"...."
파리카의 대답에 치르산오는 입을 다물고 나무를 다듬기 시작했다.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마탑의 특성상 교수는 신이고 무적이다.
괜히 지도교수한테 밉보여서 10년째 대학원생을 하는 파리카형처럼은 되고 싶지 않았다.
"자! 그럼 5분간 휴식!"
그렇게 한참 동안 일을 하고 나서야 얻은 짧은 휴식 시간.
치르산오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래도 마탑이 대단하기는 하네...'
며칠 전까지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 이곳은 이미 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단순히 형태만 갖춘 것도 아니다.
건물이 완성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시민들이 이사를 오더니 조금씩 도시로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대체 의뢰주가 누구야?'
고작 며칠 만에 도시하나를 만들어낼 정도로 마탑의 힘은 굉장했지만, 그런데도 건설사에서 마탑을 고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마탑의 마법사는 자존심이 강하다.
운영자금을 벌기 위해 의뢰를 받는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마도구 제조나, 인챈트 같은 것이지 이렇게 육체노동을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란 말이다.
그런데도 마탑을 한 개도 아니고 네 개나 고용해 인력사무소처럼 사용 할 수 있다는 건, 셋 중 하나를 뜻했다.
의뢰주가 엄청난 부자이거나.
의뢰주가 엄청난 권력자이거나.
의뢰주가 엄청난 부자면서 권력자이거나.
아무래도 이 정도로 일을 벌였으면 마지막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 저것만 봐도 그렇지.'
치르산오가 고개를 들어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고층건물을 보았다.
도대체 어딜 봐서 저게 여관이라는 말인가?
라는 이름의 여관은 고작해야 여관주제 마탑의 최신기술과 최고급 건축자재가 사용된...
솔직히 말해서 우르와트의 마탑보다 더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 내부도 장난 아니었지.'
수도의 대저택을 일시불로 살 수 있는 금액의 장식품이 내부에 도배가 되어있는 걸 봤을 때는 진심으로 기절할 뻔했다.
땡땡땡─!
그때 종이 마구 울려 퍼지며 종탑 위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Q-12에서 연락! 코드명 U.C가 현재 마을에 접근 중! 예상 소요시간 2시간!"
그 순간 모든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귀 떨어지게 듣지 않았던가.
'... U.C 앞에서는 실수할 바에는 차라리 죽으라고.'
그때였다.
"주모오오오오오오옥!"
평소 강의 때는 잘 들리지도 않게 말하던 교수가 어디서 저런 힘이 났는지 엄청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현 시간부로 마탑의 모든 인원은 특수 작전 태세로 돌입한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좋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U.C에게 실수하는 인물은...."
교수의 말이 길게 늘어지자 치르산오가 침을 꼴깍 삼켰다.
"최소 10년 동안은 졸업할 생각은 말도록! 알겠나!"
교수의 말에 치르산오는 튀어나오려던 욕설을 간신히 집어삼켰다.
파리카 형을 봤으면 알다시피 저 새끼는 졸업 안 시킨다면 진짜 안 시키는 새끼니까.
"뭐 하고 있어! 빨리 움직여!"
"네! 교수님!"
정말 더럽고 치사했지만, 교수의 외침을 듣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했다.
왜냐하면...
치르산오, 그는 마탑의 대학원생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