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4화 〉 수면 아래에서 (2)
* * *
작은 유리병에 담긴 호박색 액체를 바라보던 비비안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언니 정말 할거에요?”
“그럼 이제와서 어쩌자고! 비비안 너도 괜찮을 것 같다면서!”
비앙카가 애써 목소리를 높이며 강한 척을 해보지만, 솔직히 떨리는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정신 나간 요정의 장난」
물약을 나눠마신 사람끼리 일시적으로 육체가 뒤바뀌는 물건이다.
상당히 수상쩍은 물건이었지만 트리스티아가 만들어준 녀석이니 효과는 확실할 터.
“...그...그치만 막상 마시려니까 조금 무서워서.”
“너도 내가 얼마나 민감한지 궁금하다며!”
비앙카의 한 달 치 용돈을 전부 털어서 간신히 산 녀석이다.
이번 달 내내 간식조차 먹을 수 없는 상황에서 비비안이 발을 빼는 건 용서 할 수 없다.
“그..그건...유진님이...맨날 언니보고 민감하다고 하니까.”
비앙카의 가슴을 힐끗 곁눈질하는 비비안.
도대체 얼마나 민감하길래 유진님이 관계를 맺을 때마다 민감하다고 칭찬을 하는 걸까.
‘...생...생각해보면 예전에 언니를 괴롭힐 때도...’
베아트리스가에서 비앙카를 괴롭혔을 때 정말 순식간에 가버리는 언니를 보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물론 비비안도 태어나서 한 번도 자신이 못 느낀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확실히 비앙카가 느끼는 것에 비하면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지금도 그럴까요?’
순간적으로 호기심을 참지 못한 비비안은 비앙카의 젖꼭지를 손끝으로 튕겼다.
“흐아앙♥”
옷 위로 그것도 정말 살짝 스쳤을 뿐인데 야릇한 신음을 흘리며 몸을 움츠리는 비앙카.
그 모습을 본 비비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확실히 언니가 훨씬 민감한 거 같네요...부러워요.”
“뭐...! 뭐야! 부럽기는 뭐가 부러워! 사람이 말하는데 젖꼭지 만지지 말라고!”
“히익...죄...죄송해요..언니.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인 비비안을 보며 비앙카는 화를 다스리려는 듯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후우... 잘 들어 비비안. 너는 내가 부러울지 몰라도 솔직히 나는 정말 전혀 요만큼도 큰 가슴이 어떤 기분일지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고 부럽지도 않아.”
“....”
전혀 신용이 가지 않는 말에 비비안이 침묵하자 비앙카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왜 대답이 없어? 내가 그따위 지방 덩어리를 부러워하는 거 같아?”
“아...아니요...하나도 안부러워하는거 같아요...”
“그래. 그렇지.”
“네... 언니 말대로 가슴은 그냥 지방덩어리인데요... 저도 언니처럼 키가 작고 가슴이 없는 체형이었다면 훨씬 좋을 거 같아요.”
빠직─
어째서인지 자신이 했던 말이지만 비비안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니 열이 뻗친다.
‘참아...참아...’
분노로 덜덜 떨리는 손을 누르며 비앙카가 말을 이었다.
“잘 들어 비비안. 객관적으로 봐서 우리의 최대 무기는 자매라는 거야. 알겠어?”
“....그...그게...왜...무기가...”
“유진 그 새끼는 변태니까. 자매를 동시에 따먹는 것만으로도 몇 배는 흥분한다고.”
“아...”
뭔가 어긋난 설명이었지만 비비안은 단숨에 이해했다.
어떠한 말로 포장하더라도 유진이 변태라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하..하지만.....변태...같은...모습도....’
유진에게 조교 당할 때를 생각하자 비비안의 아랫배가 애달프게 조여온다.
조교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런 기분이 드는데, 만일 언니의 민감한 몸으로 조교를 당하게 되면 과연 얼마만큼의 쾌락을 얻게 될까...
비앙카의 작고 앙증맞은 가슴을 바라보자 입안이 바짝 마르는 듯하다.
“그...그럼...마실까요?”
“안돼!”
비비안이 병에 손을 뻗자 비앙카가 휙 낚아채며 말했다.
“약효는 겨우 12시간밖에 안 간다고. 미리 마시면 아깝잖아!”
“그...그럼...언제 마시나요?”
“그 새끼가 들어오면 딱, 그때 마시는 거야. 우리 차례가 될 때까지 몇 시간 남았지?”
“3시간이요...”
“아직 좀 남았네. 그 사이에 몸이 바뀌면 뭘 할지나 생각해둬.”
“네! 언니!”
유진의 방안.
베아트리스 자매가 수상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
“좆됐다....”
광장 한복판에 있는 시계를 확인하자 한숨이 흘러나왔다.
비비안과 비앙카를 만나야 할 시간이 한참 지나있었다.
일단 변명하자면 어쩔 수 없었다.
릴리스에게 정기를 너무 빨려서 기절하다시피 잠들었으니까.
눈을 뜨자마자 튀어나왔는데도 이 시간이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죽을 것 같다.’
정말 불알 안에 있는 정액 한 방울까지 다 뽑아냈는지 아직도 다리가 떨린다.
‘릴리스를 너무 얕봤어...’
순식간에 가버리는 허접 보지 주제 체력은 굉장했다.
아무리 절정 시켜도 계속해서 부활해 달려드는 릴리스.
그리고 그때마다 정기를 흡수해서 관계를 맺으면 맺을수록 릴리스가 성장하는 게 느껴졌다.
[침대 위의 황제 (Rank A+)]
더 이상 당신을 침대 위에서 이길 존재는 없습니다! 서큐버스의 여왕에게 키스를 받고도 살아남은 정력입니다! 어떤 여자라고 할지라도 한 번 당신을 맛보면 포로가 되어버릴 겁니다!
상태창의 설명을 본 내가 쯧 혀를 찼다.
‘뭐가 서큐버스의 여왕에게 키스를 받고도 살아남은 정력이라는 건지...’
여왕은커녕 릴리스 하나를 상대하는데도 아슬아슬할 지경이다.
과대광고하지 말라고 짜증을 내며 상태창을 닫으려던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잠깐만...’
만약 상태창이 과대광고를 한 게 아니라면?
지금 내 몸 상태는 마치 리리스에게 키스를 받았을 때와 비슷하다.
즉, 릴리스와의 섹스는 서큐버스 여왕의 키스와 동급...
아니, 그동안 내가 성장한 것까지 계산하면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물론 섹스와 키스와는 엄청난 간격이 존재한다.
그래도 리리스와 비슷하게 정기를 짜냈다는 건 릴리스의 음마족으로서의 능력이 여왕급에 가깝다는 것이다.
‘릴리스가... 그러니까 성녀가... 알고보니 음마족의 여왕급이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 같지만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렇다면 릴리스가 저렇게까지 엄청난 양의 정기를 탐내는 것도 이해가 된다.
본래 음마족은 수많은 남성에게서 정기를 빼앗아야 하는 종족.
하지만 릴리스는 나 하나로 견디고 있는 상황이다.
이럴때라도 잔뜩 정기를 뽑아가야 하는 것이다.
‘...좀 더 자주 해야겠네.’
릴리스가 좀 지나쳤다고 생각했는데 종족 특성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었다.
내가 짧은 반성을 마치고 다시 베아트리스 자매를 만나러 달려가려던 순간.
“야! 이! 개새끼야아아!!”
저 멀리서부터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비앙카가 보였다.
“...비앙카.”
“이름 부르지 마! 개새끼야!”
씩씩거리는 비앙카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나는 장난기 섞인 어조로 말을 이었다.
“비앙카를 비앙카라고 부르지 아니면 뭐라고 불러요. 안 그래요. 비앙카.”
“아! 진짜! 자꾸 너한테 이름 불리면 화 풀릴 것 같으니까 이름 부르지 말라고!”
“...”
평소에는 까칠한 비앙카다 보니 가끔 솔직해질 때는 내가 더 부끄러워진다.
“후우... 그래서 왜 안 왔어. 나랑 비비안이 방에서 기다리는 건 들었지?”
“그게...”
“아니! 됐어! 말하지 마!”
꼬옥─!
그러자 갑작스럽게 나를 껴안은 비앙카가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숨을 크게 들이쉰다.
“쓰으읍...!!...흐하아.... 이건... 음란 성녀의 냄새네.”
“....”
“그것도 신선한 걸 보니 조금 전까지 같이 있었고...”
왜 내 주변의 여자들은 이렇게 후각이 뛰어난지 모르겠다.
어떻게 냄새만으로도 누구랑 언제까지 있었는지 맞출 수 있는 거지.
이빨을 으득 간 비앙카가 소리쳤다.
“너 새끼야! 지금까지 릴리스랑 떡 치고 있던 거야? 설마 그 음란 성녀가 약속을 깬 거야?”
“..하아...하아....그...그런건가요? 유진님?”
비앙카뿐만이 아니라 뒤늦게 도착힌 비비안도 슬퍼하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물었다.
점점 꼬여가는 상황에 두통이 몰려온다.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캬캬캿!!”
지끈거리는 이마를 붙잡은 내가 입을 열려던 순간, 괴상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저것 보아라. 본녀의 말이 맞지 않느냐? 분명 계집질하고 있을 거라고.”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비비안보다는 작고 비앙카보다는 커다란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파랗다.’
소녀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파랗다였다.
옷, 신발, 눈동자, 머리카락.
마치 하늘에서 태어난 사람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채도가 높은 파란색으로 이루어진 듯한 미소녀.
“뭐야? 잰 누구야?...너 설마 또...”
“...”
비앙카의 의심 가득한 목소리에도 나는 소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단순히 소녀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다.
소녀가 내가 모르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위험해.’
나라고 ‘아카조교사’의 모든 등장인물을 아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저렇게 특이한 모습의 등장인물을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런데도 내가 모른다는 건....'
저 소녀는 내가 리아나 루멘하르크를 공략하면서 생긴 나비효과로 나타나게 된 인물이라는 뜻이다.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소녀에 내가 긴장하며 노려보고 있자.
스으윽─
소녀의 뒤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
이번에는 소녀와 달리 매우 익숙하고, 아군임이 확실한 남자였지만 나는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유진 칼리오페.”
남자의 정체가 정말 새까맣게 잊고 있던....
로레오스 교수였으니까.
* * *